Group of People on the Beach with Fishing Boat Arriving, 1882, ink,on paper
테오에게...
식구들이 나에게 법의 보호를 받게 할지도 모른다고 했지. 몇몇 목격자들(거짓 목격자일지라도)만으로도 내가 경제적인 문제를 스스로 책임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질 테고, 그것으로도 아버지는 나의 시민권을 박탈하고 법의 보호 아래 묶을 수 있을 거라 했지. 요즘 같은 시절에도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나는 그걸 거부할 권리가 있다.
보호조치를 하는 법적인 절차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나 '별로 유쾌하지 않은 사람'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쉽게 적용될 수 없다. 게다가 당사자도 법적으로 항의할 권리나 여러가지 구제책을 보장받고 있다. 영리한 변호사라면 법을 피해가는 게 쉽겠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그렇게 묶어두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남자답게 그리고 당당히 항의하는 사람을 보호조치 아래 든다는 것은 이제 쉽지 않은 일이다. 내 가족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믿을 수가 없다. 물론 길 사건(과거에 길Gheel에 있는 정신병원에 집어넣겠다고 아버지가 고흐에게 협박한 일) 때 그런 시도가 있었다. 아버지니까 그럴 수 있었지. 그러나 아버지가 또다시 그렇게 나온다면,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저항할 것이다. 아버지도 나를 공격하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또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제발 그러지 말라고 사정만 하지는 않겠다. 그렇게 하기는커녕 가족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망신당하게 하고 소송비도 부담하게 만들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시엔을 좋아하고 그녀 역시 그렇다. 그녀는 나와 어디든 동행하고 있고,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내가 시엔에게 느끼는 애정은 작년에 케이를 향해 느꼈던 열정보다는 약하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데, 케이를 향한 열정이 좌절된 후, 이것은 나에게 찾아온 유일한 사랑이다. 그녀도 나도 불행한 사람이지. 그래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고 있다. 그게 바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만하게 해주는 힘이 아니겠니.
내가 시엔과 이렇게 지내고 있는 이상, 결혼이라는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겠지. 비록 우리 가족은 그렇지 않다 해도. 아버지가 결혼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와의 결혼에 반대하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함께 사는 일은 더 나쁘게 보시겠지. 아마 시엔과 헤어지라고 하실 거다.
이제 나도 이마에 주름이 진 서른 살의 남자다. 게다가 얼굴에 가득한 잔주름은 40대처럼 보이게 하고,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하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나를 어린아이로만 보신다. 1년 6개월 전에 띄운 편지에서 아버지는 "이젠 너는 첫번째 청춘을 맞고 있다"고 쓰셨다. 과거에도 여러 번 들었던 터라 조금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지.
네가 이리로 온다는 생각을 하면 아주 기쁘다. 시엔이 너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궁금해진다. 그녀에게 특별한 점은 없다. 그저 평범한 여자거든. 그렇게 평범한 사람이 숭고하게 보인다. 평범한 여자를 사랑하고, 또 그녀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 해도.
지난겨울 그녀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나 사이의 인연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내가 사랑을 거절당하고 좌절했을 때였으니까. 그러나 일은 다르게 흘러갔고, 내가 깊은 좌절을 이겨내고 생기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그런 느낌을 찾아 헤맸던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걸 발견했고, 이제 그녀와 나는 따뜻한 사랑으로 결합했다. 이 사랑을 포기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겠지.
시엔을 만나지 않았다면, 마법이 풀려 실의에 빠졌을 것이다. 그녀와 그림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시엔은 화가가 겪어야 하는 자잘한 고생을 도맡아주고, 모델이 되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케이보다는 시엔과의 동행이 나를 더 나은 예술가로 만들어줄 것이다. 비록 그녀가 케이처럼 우아하지도 않고 예절도 잘 모르지만, 선의와 헌신으로 가득 차 있어서 나를 감동시킨다.
1882년 6월 1일
첫댓글
그녀와 그림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