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난 뒤에 “내가 왜?”라는 물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부터?”인지가 궁금했고 조그마한 힌트라도 얻으려 똑똑하지 못한 머리를 굴려 병원에 있는 내내 기억을 회상했다.
# 힌트 첫번째- LUSH 스파를 5월 6일 일요일에 갔었을때 왼쪽 목에 아주작은 멍울이 있었다. 나는 당시 림프, 임파선이라는 곳에 병이 생길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저 늘 목이 뻐근했으니 생기는 근육뭉침정도로만 생각했다.
두번째- 7월 셋째주부터 결혼전 엄마와 추억을 쌓으려 유럽여행을 했는데 욕탕에서 샤워를 하면서 목을 만졌을때 쇄골위 목이 아주 단단했고 희안하게도 눌러도 눌러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아프지 않았기때문에 목이 아주 많이 뭉친거라고 생각했다.
내 기억에 따르자면 최소 4월부터는 시작된 것이겠지.
림프종은 사람마다 증상이 다양하게오지만 나같은 경우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왔다. 3주 가까이 약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고 후두염이 오는 듯 목이 계속해서 부어 초음파를 통해 확인된 경우다. 동네에 다니던 내과에서 확인을 하고 (10.2) 이틀 후(10.4) 창원삼성병원 이비인후과 내원 후 두경부 CT를 찍고 10월 7일 세침검사를하고 15일 결과를 들었다. 결과는 거대 미만성 비호지킨 림프종 b-cell
우리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친절하지만 아주 강한 아버지라 상심한 표정을 내게 한번도 보이지 않으셨고 지금도 웃으며 나를 대해주신다. 나이를 30살 먹으며 아버지 모습에 가장 놀라웠던 점은 병명이 나오기도 전 의심만으로 이리저리 알아보신후 서울대병원으로 전원을 하시기를 바라셨고 창원 삼성병원에서 필요한 자료 및 서류를 미리 준비를 해주셨다. 하루라도 치료를 앞당기기 위해... 그래서 조직세포 슬라이드.. 초음파 씨티 소견서 등을 챙겨 다음 날 10월 9일 서울대병원으로 갈 수 있었고 외래 가장 마지막 이름에 내 이름이 뜰 수 있었다.
교수님을 뵈니 내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걱정이되었다. 이미 목으로 종괴가 올라오고 있고 너무 단단해서 의사선생님은 촉진만으로도 종격동이 의심된다 하셨다. 불안할 필요 없으시다며 ‘응급 환자’로 분류하셨다 ㅋㅋㅋㅋㅋ 그런데 응급 환자라는 단어가 왜이렇게 불안한지.. 준비된 슬라이드로 다시 세포검사를 할 것이고 입원부터 진행해야겠다고 치료가 하루라도 급하시다고 하셨다. 당일 입원은 당연 불가고 다음날인 목요일 피검사와 pet ct를 찍어야해서 근처 급하게 호텔을 잡아 잠을 잤다.
내일 제발 입원실이 나와달라고 빌고빌어서일까 아침에(10.10) 2인실이 비었다고 연락이 왔다. 당장 입원을 하고 입원기간동안 필요한 검사를 다 하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pet ct 상 암덩이들이 목에만 집중되어있고 대신 기도와 식도를 다 누루고 있을만큼 심하게 집중되어있다고 하셨다. 또 겨드랑이 전이가 보여 최소 2기로 생각이 된다하셔서 원래 종격동은 속부터 올라오는 경우가 많아서 기수를 더 높게 예상했는데 목에 심하게 집중되어있다는 점이 특이점이지만 다행이 항암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이때 나 스스로도 3,4기 정도 예상했던터라 엄마와 둘이 얼싸안고 울었다.ㅠㅠ
이후 입원 기간동안 각종 검사를 했는데 골수검사와 케모포트 시술을 할때 우는 엄마를 보면서 정말 미안했고 슬펐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잠시라도 나가있으면 누구도 보이지 않는 커텐속에서 엄마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를 본 인턴 의사선생님께서도 눈물이 났다고... 나중에 말씀해 주셨다. 간이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엄마를 보면서 늘 예민하고 혀에 가시가 돋혀있는 딸이었던 내가 너무 미안했고 오랜 직장생활 끝에 자유로웠던 엄마가 다시 나때문에 고생을 한다는게 가장 이 병에게 원망스러웠다. 우리 엄마 고마워 사랑해.
드디어 조직검사 재발표날! 역시나 교수님 촉진대로 종격동 비호지킨으로 병명이 나왔고 항암제는 종격동에 효과가 더 좋다는 r-epoch를 쓰기로 했다. 바로 다음날부터 항암시작!
첫댓글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치료 잘되실 기도할게요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힘내세요.잘 되실거에요
눈물이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