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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9일 토요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장선마 전법을 써 보세요.
삶을 사는 우리는 세상의 약삭빠른 술수와 전략에도 능해야 합니다.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는 그의 詩 '전출새시'(前出塞詩)에서 '사장선마(射將先馬 : 장수를 쏘려면 먼저 말을 쏘아라)'라고 싸움의 전략을 가르쳐 줍니다. 이 말은 당사자를 잡기 위해서는 주변부터 공략해 가는 전법입니다. 장수를 잡으려면 그가 탄 말을 쏘아서 장수를 말에서 떨어트린 다음에 장수를 쏘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왕을 잡으려면 왕이 탄 말을 쏘거나 호위 군사를 먼저 죽여야 하는 것이 사장선마의 전법입니다
단골손님을 잡기 위해서는 주변정리를 잘해야 하고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도 주변 정리를 잘해야 합니다. 말이 나올 수 있는 구석을 그 때 그 때 적절하게 정리를 해서 말이 없도록 단도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생활에서는 주변경로를 중심경로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권투를 할 때도 먼저 무수한 잽(jab)을 날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의 펀치로 상대방을 다운(knock out)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게 어떤 사실로 사람을 쇠뇌 시킬 수도 있고, 천천히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전법은 실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전법입니다. 또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습득하고 응용해야 하는 전법입니다. 영화에서도 악당들을 등장시켜 여인을 미끼로 삼고 '총을 놓지 않으면 여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주인공이 총을 놓게 만듭니다. 어떤 때는 이렇게 야금야금 들어오는 그 술법이거나 주변 상황을 전개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말리게 하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법의 가장 고수이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이 전법 때문에 가장 고통을 받은 분도 예수님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이사이들과 모든 권세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고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잡아 죽일까 정말 치열한 전쟁이 시작됩니다. 또한 악마는 예수님을 이 땅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향해서 활시위를 당기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악마들이나 유다인들의 우두머리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그 주변을 잡아나가야 합니다. 왕을 잡기 위해서 먼저 그 호위병들을 죽이거나 매수하거나 또는 그 임무를 소홀하게 하여 직무 유기의 상태로 몰고 가야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쏘아서 잡힌 말과 같은 호위병은 바로 유다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미워하며 제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여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웁니다. 말을 잡아야 왕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전법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시며, 당신 때문에 고생한다고 위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은 뽑힌 사람들이고,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이미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분명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 살다보면 세상의 전법에도 능해야 합니다. 그리고 악마와 우리를 박해하는 모든 것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 잘 달려야 장수가 죽지 않는 것처럼, 호위군사의 무술이 출중해야 왕이 안심할 수 있는 것처럼 왕은 말이나 호위 병사가 가장 탁월해야 하기 때문에 특별히 선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호위 병사로, 당신께서 언제나 타실 말로 뽑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충성을 다한다는 것을 견마지로(犬馬之勞 : 개와 같이 충성스럽게 지키고, 말과 같이 열심히 뛰어다니며 일하겠음)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태운 말이며, 주님을 지키는 충성스런 군사로 뽑힘을 받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왕을 최고로 알고 있습니다. 왕에게 모든 충성을 다합니다. 왕의 명령은 죽어도 충성을 다하여 지킬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적의 왕을 잡아야 승리한다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적군의 왕을 죽이기 위해서 왕의 수레꾼도, 수호 군사도, 적장도, 말도, 그리고 눈에 띄는 모든 것을 죽일 것입니다. 전쟁은 그렇게 극열합니다. 그러나 적의 왕이 아니라 내 왕이고, 내가 모시는 분이라는 것을 안다면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도 창조주이시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예언에 따라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고 목숨을 봉헌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6.25전쟁에서도 그렇게 많은 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위해서 주변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의 확산을 방해하는 사제들을 사단병력에 비유하였습니다. 신부 한명과 사단 병력과 마찬가지로 취급하였답니다.
바로 사장선마의 전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그렇게 박해할 것을 아신 주님은 그 박해를 이길 수 있는 것은 당신을 보내신 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박해를 통해서 당신과 같이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견디고 이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역으로 이용하면 우리는 지금 사장선마의 전법으로 선교해야 합니다. 예비신자를 교회에 인도하기 위해서 먼저 예비신자의 주변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조금씩, 그들 안에 주님을 심어야만 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직격탄을 세례와 성사로 날려 주셔야 한답니다. 내 영혼도 주변정리를 잘하여야 한답니다. 가득 차 있는 모든 것을 조금씩 정리해서 주변경로를 잘 정리한 다음에 중심경로를 공략해야 하는 이치는 마찬가지랍니다.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6,1-10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축일5월 9일 성 제오르지오 프레카 (George Preca)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 연도 : 1880-1962년
같은 이름 : 게오르그, 게오르기오, 게오르기우스, 쁘레까, 제오르지우스, 조지, 호르헤
성 게오르기우스 프레카(Georgius Preca, 또는 제오르지오 프레카)는 1880년 2월 12일 지중해 중앙에 위치한 몰타(Malta)의 수도인 발레타(Valletta)에서 빈첸조 프레카(Vincenzo Preca)와 나탈리나 체라볼로(Natalina Ceravolo)의 아홉 자녀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열심한 부모에 의해 그는 그 해 2월 17일 발레타의 포르토 살보(Porto Salvo)에 있는 동정 마리아 본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1888년 프레카 가족은 발레타에서 멀지 않고 빠르게 성장하는 항구도시인 함룬(Hamrun)으로 이사하였다. 그곳의 성 카예타누스(Cajetanus) 본당에서 게오르기우스는 견진성사를 받고 첫영성체를 했다.
17살이 된 어느 날 그는 플로리아나(Floriana)에 있는 마글리오(Maglio) 정원을 따라 걷던 중 그가 다니던 리케움(Lyceum) 학원의 교수인 에르콜레 몸팔라오(Ercole Mompalao) 신부를 만났다. 에르콜레 신부는 그에게 “네가 어른이 되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의 친구가 되고, 너도 그들의 친구가 될 것이다. 너는 그들을 통해 너의 좋은 운명을 찾을 것이고, 그들도 너를 통해서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케움 학원에서 공부를 마친 게오르기우스는 사제가 되겠다는 뜻을 품고 몰타의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신학교에서 그의 고해사제였던 알로이시우스 갈레아(Aloysius Galea) 신부가 1905년 4월 8일에 선종했는데 며칠 뒤 게오르기우스에게 발현하여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가르치도록 너를 선택하셨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이에 감동한 게오르기우스는 라틴어로 규칙서를 작성하여 교황 비오 10세(Pius X)의 승인을 받고자 했다. 그는 모든 본당에서 평신도 보조자들의 도움으로 하느님의 백성을 양성할 책임을 맡을 7명의 종신 부제들의 모임을 마음속에 그렸다. 1905-1906년 사이에 그는 함룬에서 남성으로 구성된 한 청년 모임을 알게 되어 그들을 자신의 영성 모임에 초대하였다. 여기서 그는 청년 모임의 지도자였던 에우게니오 보르그(Eugenio Borg)를 주목하였고, 그에게 요한 복음에 대해 설명하였다. 에우게니오 보르그는 후에 그리스도교 교리회의 첫 번째 총장이 되었다.
게오르기우스는 사제 서품을 몇 달 앞두고 매우 심각한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다. 성 요셉(Josephus)에게 전구하여 호된 시련에서 살아났지만 그 질병의 결과로 왼쪽 허파가 영구적으로 손상되었다. 그는 1906년 12월 22일 피에트로 파체(Pietro Pace) 주교에게 사제품을 받고, 예수 성탄 대축일에 함룬의 성 카에타누스 본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서품식 이후 여러 주간 동안 그는 미사를 봉헌할 때를 제외하고는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는 작은 다락방에 칩거하여 하루 종일 묵상과 관상 생활에 전념하였다. 1907년 1월 말경 그는 예전에 보았던 청년 모임을 불렀고, 2월 2일 함룬의 타누초(Ta’Nuzzo) 성당에서 열린 영성 모임에 그들을 초대하였다. 그 후 이 작은 모임은 함룬의 프라 디에구(Fra Diegu) 거리에 작은 공간을 빌려 같은 해 3월 7일 첫 모임을 가졌다. 이 두 날이 그리스도교 교리회(the Society of Christian Doctrine)의 시작으로 기록되었다.
이 평신도 모임의 회원들은 모범적 생활과 가톨릭 신앙의 원리로 충실히 양성되어 사람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파견되었다.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처음에 이 모임을 ‘교황의 아들과 딸회’(Societas Papidum et Papidissarum)로 불렀다. 하지만 그때까지 그들이 모임을 갖던 낡고 허름한 공간 때문에 농담 삼아 ‘박물관’(Museum)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 별명은 곧 그들 모임의 이름으로 고정되었다. 한편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박물관’ 철자에 라틴어의 첫 글자를 따서 ‘M.U.S.E.U.M’(Magister Utinam Sequatur Evangelium Universus Mundus!)이라는 이름을 고안하였다. 이를 번역하면 “선생님, 전 세계가 복음을 따라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다. 1910년에는 지안니나 쿠타자르(Giannina Cutajar)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교 교리회의 여성 모임이 시작되었고, 그녀는 후에 첫 번째 총장이 되었다.
1910년경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스스로 늘 ‘아기 예수님의 놀라운 발현’이라고 부른 매우 강한 신비 체험을 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마르사 크로스(Marsa Cross) 근처를 지나가다가 갑자기 거름 자루를 실은 손수레를 밀고 있는 12살 소년을 보게 되었다. 그 소년은 그를 바라보며 급히 도와달라고 청했다.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손수레에 손을 얹는 순간 너무도 큰 영적 감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어디를 갔는지 또 그 소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결코 기억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이 체험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바로 그 소년이 예수님이었고, 주님께서는 그와 그의 동료들에게 정통한 교리와 양성으로써 주님의 들판과 포도밭을 재배하기 위해 자신들의 도움을 요청하고 계신다고 이해하였다.
이 교리교사들의 모임(M.U.S.E.U.M.)이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도교 교리회로 발전하였다. 교리교육 사도직에 헌신하는 이 평신도 모임은 자신들을 단순한 복음적 생활양식으로 인도했고, 그들 스스로 짧은 기도나 규칙적인 묵상을 통해 기도 생활에 전념했다. 매일 한 시간 동안 교리교육을 받고 이어서 그룹 모임을 가졌다. 1909년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그리스도교 교리회의 센터를 폐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는 상심하였지만 주저함 없이 이 명령을 따랐다. 그 후 교구 사제들이 자발적으로 교구청에 이의를 제기해 이 금령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914년과 1915년 사이에 여러 일간지들이 새로운 그리스도교 교리회를 모욕하는 기사들을 게재하였다.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회원들에게 온유함의 서약 또는 약속을 하도록 명했고, 장난삼아 그들을 괴롭히는 사람까지도 기꺼이 용서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리고 모욕까지 사랑하도록 가르치며 모든 고통을 참아내었다. 1916년 마우로 카루아나(Mauro Caruana) 주교는 그리스도교 교리회에 대한 조사를 명했고, 우여곡절 끝에 호의적인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비록 몇 가지 변경 요구는 있었지만 그리스도교 교리회에 대한 교회의 최종적 승인을 위한 길이 열렸고, 그 결과 1932년 4월 12일 카루아나 주교로부터 교회법적 승인을 받았다.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몰타 제도(諸島)에 복음의 가치와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다. 그는 몰타 사람들을 위해 교리 · 윤리 · 영성에 관한 많은 책들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회원들의 개인적 사용을 위한 기도나 대중적인 신심을 위한 기도를 담은 수많은 소책자들도 출판하였다. 그는 분명히 하느님의 말씀, 특히 ‘사랑 받은 이의 목소리’라고 부른 복음의 위대한 사도였다. 그는 회원들과 대중들에게 복음서의 문장과 구절들을 기억하도록 고무하였고, 카리스마에 충만한 그의 강론은 항상 성경의 비유나 이야기 그리고 성인들의 생애를 참조하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오직 하느님께만 돌려야할 영광을 지켰고, 어떤 것이 추악한 죄악인지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또한 죽음과 심판, 지옥과 천국에 대해 공공연히 설교하는데 주저하지도 않았다.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철저한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님의 무한하신 자비를 감동적으로 선포하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조언이나 격려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왔고, 그의 전구로 이루어진 치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였다. 사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초자연적 은총을 받았다. 사제로서 겸손과 친절, 온유와 관대함을 지닌 그는 진정 하느님 백성의 거룩한 목자였다.
몰타 사람들에게 있어서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강생(降生)의 신비에 대한 신심을 장려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1917년부터 그는 요한 복음 1장 14절의 말씀에 대한 신심을 전파하였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Verbum Dei caro factum est!”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회의 회원들이 이 말씀의 배지(badge)를 두르기를 원했다. 1921년 예수 성탄 대축일 전야에 그리스도교 교리회는 몰타와 고조(Gozo) 섬의 도시와 촌락에서 처음으로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구유 예식을 준비했는데, 이는 그 이후 몰타 제도에서 성탄절을 경축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되었다.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모든 어린이들이 교리반에 참석하여 성탄절을 위해 준비한 작은 구유나 아기 예수상을 만져보기를 원했다.
이 거룩한 사제는 특별히 그리스도교 교리회의 어려운 순간마다 동정 마리아의 모성적 보호하심에 의탁하도록 배웠다. 그는 1918년 7월 21일 카르멜회의 3회원이 되어 이듬해 9월에 서원을 하면서 프란코(Franco)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회 센터에 모인 어린이들에게 동정 성모 마리아께 대한 신심을 일깨워주었다. 그는 스카풀라(Scapulars)와 기적의 메달 사용을 장려했고, 그리스도교 교리회 본원 성당을 기적의 메달 성모님께 봉헌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1957년에는 개인적으로 묵주기도를 암송하기 위해 ‘빛의 신비’ 5단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1951년 5월 19일에는 산타 베네라(Santa Venera)에 성 미카엘(Michael) 학교 주춧돌 축복식을 가졌고, 1952년에는 호주에서 그리스도교 교리회를 시작하기 위해 회원들을 파견하였다. 이후 영국, 알바니아, 수단, 케냐, 페루에도 진출하였다.
복음에 대한 봉사와 하느님 백성의 그리스도교적 양성을 위한 길고도 활동적인 삶을 산 게오르기우스 신부는 1962년 7월 26일 목요일 저녁에 산타 베네라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몰타의 모든 주민들로부터 깊은 애도를 받았다. 생전에 그는 매우 검소한 장례식을 원했지만 시 당국과 교회의 고위층을 포함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그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몰려왔다. 그의 유해는 함룬 인근에 있는 기적의 메달 동정 마리아 성당에 안치되었고, 이곳은 곧 지속적인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그는 2001년 5월 9일 몰타의 플로리아나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7년 6월 3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의 축일은 전례적으로 5월 9일에 기념하고 있다.
오늘 축일을 맞은 제오르지오 프레카 (George Preca) 형제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가득히 받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