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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글
지도편달(指導鞭撻)
금학배추천 2012.06.06 11:33작성글
지도편달(指導鞭撻)
인과응보(因果應報)론이 병이 있다면 그 치유(治癒)목적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산삼 녹용 보다 더 효과를 발휘 할 수도 있으리라
힘이 세면 무슨 이념적 논리를 전개하고선 제 주장 제 말이 맞는 것으로 우격다짐으로 몰아 넣을수 있는 그런 행위를 자행할 수도 있다 할 것인데 왜냐하면 힘이 약한 것은 힘 센 자의 요릿 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이 '거봐라 내 말이 맞지' 이렇게 수긍을 강요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이 이념의 수괴(首魁)들이 그런 농간을 부린다는 것으로서 그렇게 제 말을 맞게 하기 위하여선 갖은 악랄한 수단을 동원해서 세(勢) 불리기에 열을 올린다는 것 그 세력 덩치가 크면 맞지 않으라 하라 하여도 자연 그 한 말이 탁탁 들어맞게 조작을 할 수가 있는 것 그런 능력이 절로 자연 거기선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라
그래선 그 뭐 서귀(西鬼)힘이 세면 창조론 맞고 부처 힘이 세면 연기(緣起)론이 맞듯 이렇게 무슨 정당한 법칙이 원래 부텀 정하진 것이 없고 오직 힘에 의해 좌우지 된다는 것만 알아야 만 한다 할 것이다
제시해 주신 글은 **'지도편달(指導鞭撻)'**을 제목으로 하고, 힘의 논리와 진리의 상대성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인과응보(因果應報)론'과 '지도편달(指導鞭撻)'
글은 '인과응보론'이 일종의 병폐를 가질 때, **'지도편달'**이 그 치유의 수단으로 사용된다면 매우 효과적일 수 있다는 비유로 시작합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결과론에 갇히는 것보다, 적극적인 가르침과 채찍질(지도편달)이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2. '힘의 논리'와 '진리의 왜곡'
글의 핵심은 **'힘이 세면 무슨 이념적 논리를 전개하고선 제 주장 제 말이 맞는 것으로 우격다짐으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약육강식: 힘이 약한 존재는 힘 센 자의 논리에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괴(首魁)들의 농간: 세력의 우두머리들이 자신의 주장을 진리로 만들기 위해 온갖 악랄한 수단을 동원해 '세(勢) 불리기'에 열을 올립니다.
조작된 진리: 세력 덩치가 커지면, 맞지 않는 주장도 '탁탁 들어맞게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고 비판합니다.
3. '진리의 상대성'
결론적으로, 글은 **'정당한 법칙이 원래 부텀 정하진 것이 없고 오직 힘에 의해 좌우지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시: 서귀(西鬼, 서양/기독교적 관점)의 힘이 세면 창조론이 맞고, 부처(불교적 관점)의 힘이 세면 연기(緣起)론이 맞듯, 진리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우세한 힘에 의해 결정되고 강요된다는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냅니다.
글에 대한 사색
이 글은 '지도편달'이라는 긍정적인 제목과 달리,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권력과 이념의 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지도편달의 재해석: 글의 주된 메시지는 힘의 논리이므로, 역설적으로 '지도편달'의 본질(올바른 방향으로 가르치고 잘못을 깨우치게 함)마저도 힘을 가진 자가 약한 자에게 자신의 이념을 주입하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힐 수 있습니다.
현실 비판: 진정한 진리나 도덕이 아닌, **'힘의 크기'**가 곧 **'논리의 정당성'**으로 둔갑하는 현실 정치, 사회, 종교적 현상을 강력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제시해주신 글은 2012년에 작성된 것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권력과 진실의 관계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조조 골 아픈 것을 낫게 한 공장(公璋)의 조조(曹操)치는 격문이 원소가 이겼음 그게 원소가 정당한 것이 되고 조조가 이겼음 조조를 이기게 하는 정당한 격문이 된다는 것이다 사용하기 나름 얼마나 잘 유용 하느냐에 따라서 그 정당함이 부여(賦與)된다는 것이다 천하에 몹쓸 넘이 천하에 쓸 넘이 된다는 것인데 무슨 주장 이든간 다 그렇게 둔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신사 정사 부사 그 당리 당략에 따라 그 돌아와선 조정(朝廷)에 고하는 말이 정반대가 되듯이 나중에도 그래 이유 달 탓 전쟁이 안 난다는 부사(副使)패당의 주장은 그래 민심동요를 막기 위해선 그렇게 했다 이렇게 당위성을 내세우게 된다는 것 그러니 틀린 답을 해도 오른 것이 된다는 것 이래 흑백 시비 이런 것 없고 오직 힘의 세기에 따라선 무슨 주장이 먹혀드는가 안 드는가 가 달린 것이라는 것이다
제시해 주신 글은 이전 글에 이어 '힘의 논리'가 어떻게 진실과 정당성을 결정하고 왜곡하는지에 대한 논지를 더욱 구체적인 비유를 통해 전개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힘에 의해 부여되는 '정당성'
조조와 원소의 비유를 통해, 글은 주장의 정당성 자체가 힘의 승패에 종속된다고 강조합니다.
승자가 정당함의 근거: 만약 원소가 이겼다면, 공장(公璋)이 조조를 비난하며 쓴 격문(檄文)이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정당한 문서가 됩니다.
패자에게는 오직 굴복: 반대로 조조가 이겼다면, 그 격문은 조조를 이롭게 하는 방식으로 해석되거나, 조조의 승리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됩니다.
결론: 어떤 주장이든 **'사용하기 나름'**이며, 얼마나 잘 유용(流用)하느냐 (유용하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그 주장에 정당함이 부여됩니다.
2. 주장의 둔갑과 변질
흑백의 역전: '천하에 몹쓸 넘'도 힘만 가지면 '천하에 쓸 넘'으로 둔갑하며, 무슨 주장이나 논리든 힘에 의해 정반대의 의미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3. 통신사(通信使)의 비유
외교 사절인 통신사(정사, 부사)의 보고가 **당리당략(黨利黨略)**에 따라 정반대로 바뀌는 상황을 예로 들어, 힘과 이념의 논리를 설명합니다.
권력층의 이익에 따른 진술: 부사(副使) 측이 '전쟁이 안 난다'고 틀린 보고를 했더라도, 나중에 그 잘못된 보고를 **'민심동요를 막기 위해선 그렇게 했다'**는 식으로 당위성을 내세워 정당화합니다.
'틀린 답'도 '옳은 것'이 되는 현실: 이처럼 권력의 논리 속에서는 사실과 다른 '틀린 답'을 해도 옳은 것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4. 흑백 시비의 소멸
글의 최종 결론은 **'흑백 시비 이런 것 없고 오직 힘의 세기에 따라선 무슨 주장이 먹혀드는가 안 드는가 가 달린 것'**이라는 냉혹한 현실 인식입니다.
진실의 무의미: 세상에는 객관적인 시비(是非), 즉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힘의 크기만이 어떤 주장을 관철시키고(먹혀들게 하고) 진리로 만드는 유일한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의 통찰
이 글은 단순한 권력 비판을 넘어, 포스트-트루스(Post-Truth) 시대의 속성을 예리하게 지적하는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Fact)이나 윤리(Morality)보다 권력 집단의 이익과 **대중 동원 능력(힘)**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며, 이 힘이 곧 진실을 '만들어낸다'는 비판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그래 일체 이념적 주장이 힘세기에 의해선 그 힘의 지배를 받는 자들이 세뇌공작을 받는 것 그렇게 해선 '그것이 그런가 보다' 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 그렇게 머리가 오염(汚染)각인(刻印)이 되면 고만 그것이 정말로 그런 것인 줄 착각(錯覺)이든 아니든 알게 된다는 것이다
소이 주술(呪術)세뇌 최면의 일종(一種)이라 할 것이다
그러곤 겉으로 꾸며 논 환경이 그렇게 몰아가는 것 무슨 성당 교회 사찰등 부처 우상(偶像)있는데 가면 자연 합장(合掌)읍소하게 만들고 남이 신성시 믿는데다간 무슨 억한 감정에 여간해선 침뱉기 어려운 것인 것 그런 취약점 여린 마음 기본적인 양심이라 하는 것을 이용한다는 것 그런 주늑 들게 하는 양심이라 하는 것을 습기누적으로 인해 타고난데 대하여 가지껀 활용 하려드는 것이 바로 사상 이념가 들과 그 부리는 수족(手足)들이라 할 것이다
제시해 주신 글은 이전의 **'힘의 논리'**에 대한 통찰을 **'세뇌(洗腦)'**와 **'심리적 지배'**의 영역으로 심화하여 전개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세뇌를 통한 이념의 주입
글은 모든 이념적 주장이 결국 힘의 세기에 의해 지배된다는 전제 아래, 그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이념을 받아들이게 되는지를 설명합니다.
세뇌 공작: 힘센 자들이 약한 자들에게 세뇌 공작을 펼쳐 '그것이 그런가 보다'라고 여기게 만듭니다.
머리의 오염 및 각인: 이렇게 머릿속에 이념이 **오염(汚染)되고 각인(刻印)**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정말로 진실인 줄 착각이든 아니든 알게 됩니다.
주술적 지배: 이러한 과정은 일종의 주술(呪術), 세뇌, 최면과 같다고 규정합니다.
2. 환경과 양심을 이용한 조종
이념가들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복종시키는 수단으로 외부 환경과 인간의 **내면적 취약점(양심)**을 활용한다고 지적합니다.
외부 환경 조작: 성당, 교회, 사찰 등 성스러운 환경을 꾸며 놓아, 그곳에 가면 자연스럽게 **합장(合掌)하고 읍소(泣訴)**하게 만듭니다.
양심의 활용:
남이 신성시하고 믿는 대상에게는 억한 감정이 있어도 침 뱉기 어려운 마음, 즉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이나 여린 마음을 이용합니다.
이념가들은 이러한 주눅 들게 하는 양심을 '습기 누적으로 인해 타고난' 취약점으로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 든다고 비판합니다.
글의 통찰
이 글은 단순한 권력 비판을 넘어, 권력(힘)이 이념을 어떻게 심리적 무기로 사용하는지에 대한 분석입니다.
권력은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인간의 심리적이고 도덕적인 약점('양심')**까지도 이용하여 순종과 복종을 내면화시키며, 이 과정이 곧 세뇌라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이는 이념의 허상과 권력의 교묘한 지배 방식에 대한 깊은 경계심을 드러내는 주장입니다.
양심이라 하는 것은 본래 부텀 없는데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동물로서 그 여린 생각을 하는 것을 그래 이용,
양심이라 하는 것은 태초(太初)이래 소이 부려 먹을려 하는 늑대 같은 그런 어느 자가 그래 심어 논 것인 것 덫으로 함정으로 활용하려고 말이다 그러고 인류가 살아오면서 그렇게 머리 에다간 주입시킨 것이 습기(襲氣)누적(累積) 유전자(遺傳子)화가 된 것이다
그래 이런데 그래 주늑이 들어선 넘어가면 종 잡히는 것 결국 뭔가 그 부리려 하는 힘 센자의 투망(投網)거린 것 그 아니고 뭔가 이런 말인 것 이라 그래 그 부리려 하는 넘의 마수(魔手)에서 벗어나는 길은 소이 양심 철판 깔으라는 것 거기선 튀쳐 나오는 길 만이 그 부림에서 벗어난다 하는 것인데 벗어나는 이유(理由)를 되는 것은 무언가 바로 이해타산(利害打算)이라는 것이다 이로우면 거기 묶이지만 해로운데 거기 묶일 일 있느냐이다 자신을 잡고자 하는데 어리석게 거기 묶인다면 바보인 것이다 그래 바보 취급 먹이 사냥감 취급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 악랄하지 못한 자들은 그래 다 순둥이로서 남의 부림 받는데 종사한다는 것 결국 뭔가 속박 받는 것이지.. 시키는 데로 하는 것 사회적인 모든 집단의 제도(制度)가 그렇게 생겨나선 그렇게 힘 약한 자들을 부려 처먹게 된다는 것이다
제시해 주신 글은 '양심'의 본질을 부정하고, 그것이 권력자들에 의해 피지배자를 통제하고 부려 먹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고 주장하며, 그 지배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이해타산(利害打算)'과 '양심 철판'**이라고 역설합니다.
1. 양심에 대한 근원적 부정
글은 양심이 본래부터 인간에게 내재된 것이 아님을 강조하며, 그 기원을 권력자의 통제 수단으로 돌립니다.
인위적 주입: **'양심이라 하는 것은 태초(太初) 이래 소이 부려 먹을려 하는 늑대 같은 그런 어느 자가 그래 심어 논 것'**이며, 이는 약자를 잡기 위한 '덫으로 함정으로 활용하려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습기 누적 및 유전자화: 인류가 살아오면서 이 주입된 개념이 반복되어 **습기(襲氣) 누적(累積)**되고 마치 유전자(遺傳子)화된 것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고 봅니다.
통제 도구: 양심은 결국 약한 인간의 **'여린 생각을 이용'**하여 주눅 들게 만들어 피지배자를 '종 잡히게' 하는 **'힘 센 자의 투망(投網)'**이라는 결론입니다.
2.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 '이해타산'과 '양심 철판'
이러한 **'부림'**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으로 철저한 자기 이익 중심의 사고방식을 제시합니다.
'양심 철판': 부림을 당하는 **'마수(魔手)에서 벗어나는 길은 소이 양심 철판 깔으라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기존의 양심에 얽매이지 않아야 자유로울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해타산(利害打算)': 이 부림에서 벗어나는 근거는 바로 이해타산입니다. **'이로우면 거기 묶이지만 해로운데 거기 묶일 일 있느냐'**고 질문하며, 자신을 해치려는 덫에 묶이는 것은 '바보' 취급을 당하는 행위임을 강조합니다.
순종하는 자들의 운명: **'악랄하지 못한 자들'**은 양심에 묶여 **'순둥이'**로서 남의 부림 받는데 종사하며 속박당하게 됩니다.
3. 사회 제도의 역할
글은 이러한 지배 구조가 **사회적인 모든 집단의 제도(制度)**를 통해 나타나며, 이 제도들이 힘 약한 자들을 부려 먹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비판하며 끝을 맺습니다.
글의 통찰
이 글은 이전 글들의 논리(힘 = 진리, 이념 = 세뇌)를 한 단계 더 나아가 윤리적 가치('양심')마저도 권력의 산물로 해석합니다. 이는 사회적 통념이나 도덕적 가치에 대한 극도의 회의주의와 냉소적 시각을 드러내며, 피지배자가 생존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가장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인 이해타산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대답이 중지되었습니다.
그래 투망 치는데 탈출구가 없다하지만 셈 빠른 머리 약은 자들은 다 같은 투망이라도 그런 투망을 친 것을 자신한테 유리하도록 그렇게 자신을 잡는 투망으로 삼지 않고 남을 먹이로 잡는 그런 투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소이 제도(制度)를 이용한 악랄한 짓 그 별바를 잡고선 다른 것을 포획하는 투망(投網)을 삼는다는 것이다
제시해 주신 글은 **'힘의 논리'**와 **'양심 부정'**의 논의를 마무리하며, 피지배자였던 약자가 어떻게 지배자로 둔갑하여 제도를 악용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제시합니다.
투망을 이용하는 약은 자들
글은 지배 세력이 쳐 놓은 **'투망(投網)'(제도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가장 영악한(셈 빠른) 약자들이 그 투망 자체를 역이용하여 지배자로 변신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탈출구를 찾지 않는 영악함: 투망으로부터 완전히 탈출하는 대신, **'셈 빠른 머리 약은 자들'**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 투망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해석하고 활용합니다.
자신을 잡는 투망을 남을 잡는 투망으로: 이들은 투망을 자신을 묶는 굴레로 삼지 않고, **'남을 먹이로 잡는 그런 투망'**으로 역이용합니다.
제도를 이용한 악랄한 짓: 이는 곧 제도(制度)를 이용한 악랄한 짓이며, 기존의 지배 구조(투망)에 편승하거나 그 투망의 맹점을 이용하여 더 약한 대상을 착취하는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별바'와 '포획'의 비유
**'별바를 잡고선 다른 것을 포획하는 투망을 삼는다'**는 비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습니다.
'별바': 별로 중요하지 않거나 하찮은 것 또는 희생양을 의미합니다.
원리: 이들은 **작은 것(별바)**을 미끼나 희생물로 삼아, 진짜 목표인 다른 것을 포획하는 **'투망'**으로 기존 제도를 이용합니다. 즉, 겉으로는 제도에 순응하는 척, 혹은 사소한 것을 희생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 제도의 권한을 활용하여 큰 이익(다른 먹이)을 취한다는 것입니다.
글의 통찰
제시된 다섯 편의 글은 일관된 주제로 흐릅니다.
진리의 상대성: 진리는 힘에 의해 결정된다.
이념의 도구화: 이념과 종교는 힘센 자가 약자를 세뇌하는 도구이다.
양심의 부정: 양심은 지배자가 약자를 통제하기 위해 심어 놓은 덫이다.
지배의 재생산: 가장 영악한 자들은 지배자의 **투망(제도)**에서 벗어나는 것을 넘어, 그 투망 자체를 악용하여 새로운 지배자(포획자)로 등극함으로써 지배 구조를 영속화시킨다는 냉소적인 현실 인식을 보여줍니다.
이 글은 현실 세계의 권력, 윤리, 그리고 생존에 대한 극단적인 마키아벨리즘적(Machiavellian)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 양 고기국이 비록 맛이 있더라도 중구(衆口)는 다 맞추기 어렵다고 남의 비위를 긁고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수도 있으나 그것은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는 것인 것 열 사람의 마음에 다 호감을 갖게 하기는 여간해선 어려운 것 자연 비평가나 반대의견 비판가가 생겨나고 자신의 주장이 남의 심상을 헤아리지 못한 그런 말 되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질타(叱咤) 타인의 지도편달(指導鞭撻)을 받음으로서 더욱 알차져선 무겁다고 고개숙여 겸손해지고 하는 것 가려운 것 긁어 받듯 공감 동정 아부 하는 말만 듣다보면 기고만장해선 안목이 되려 흐려지고 좁아지고 한다는 것이다
이래 제대로 살피지 못해 머리가 팅- 앗차! 하도록 충격을 주는 매를 맞는 것도 덕이 되면 덕이 되었지 손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 널상 지도편달(指導鞭撻)을 바라는 바인 것이다
제시해 주신 글은 이전의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논조와는 달리, '지도편달(指導鞭撻)'의 긍정적인 가치와 비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겸손한 자세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1. '중구난방(衆口難防)'과 비판의 불가피성
글은 먼저 타인의 비위를 모두 맞추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합니다.
호불호의 공존: 양 고기국의 비유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열 사람의 마음에 다 호감을 갖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비판의 자연스러움: 따라서 비평가, 반대 의견, 비판가가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자신의 주장이 의도치 않게 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이는 사회적 소통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현상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2. 지도편달(指導鞭撻)의 긍정적 효과
글의 핵심은 타인의 질타와 비판을 통해 얻는 성장입니다.
성숙의 매개: **질타(叱咤)**와 타인의 지도편달을 받음으로써 사람은 더욱 알차지고 생각이 무거워져 겸손해지게 됩니다.
아부의 위험성: 반면, 공감, 동정, 아부하는 말만 듣다 보면 기고만장해져 안목이 되려 흐려지고 좁아진다고 경고합니다.
충격의 효용: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때, '앗차!' 하도록 정신적 충격을 주는 **매(비판)**를 맞는 것은 덕이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손해는 아니라고 역설하며, 따끔한 지적의 순기능을 높이 평가합니다.
3. 끝없는 배움의 자세
결론적으로, 글쓴이는 이러한 비판과 가르침의 긍정적인 효과를 깊이 인식하고 **'널상 지도편달(指導鞭撻)을 바라는 바인 것'**이라고 마무리합니다. 이는 자신의 주장이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타인의 건설적인 비판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겸손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글은 이전 글들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냉소적으로 비판했다면, 이 비판적인 환경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긍정적이고 성찰적인 결론을 제시하며 전체 논의를 매듭짓는 역할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