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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궁 20 장
第 20 章. 새로운 시작.
1.
준비한 마른음식을 먹고 있던 도일봉 등은 망대(望臺) 위에서 부
르짖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우루루 선미(船尾)쪽으로 달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출렁이는 물결만이 펼처져 있을 뿐이
었다.
원강이 망대위를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
"이놈. 간 떨어지는줄 알았잖느냐! 뭐가 있다는 게야? 아무것도
안보이는데!"
망대위의 대원이 소리쳤다.
"뒷쪽 수평선(水平線)을 잘 보십시오. 분명 세척입니다!"
모두들 눈을 크게 뜨고 누렇게 일렁이는 물결 너머를 뚫어져라 바
라보았다. 찰랑이는 물결너머로 언듯언듯 새카만 점들이 나타났다
가 사라지곤 했다.
"저기다. 저기있다!"
모두들 그때서야 뒤를 좇는 배들이 있음을 알아챘다. 하지만 어떤
배인지는 아직까지 알아볼 수 없었다. 추격당하고 있다는 것은 좋
은일이 아니다. 도일봉이 소리쳤다.
"왕안수. 더 빨리 가야겠다!"
그러나 왕안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이 최고 속돕니다!"
"제기랄!"
도일봉은 난간을 후려치며 만약을 위해 탈취한 전리품들을 준비시
켰다. 투석기와 커다란 석궁, 석화시와 화룡출수까지도 설치해 두
었다. 그러나 양편의 간격은 좀체로 좁혀지지 않았다. 뒤좇는 배의
속도가 다소 빠르긴 했지만 탈취한 군선도 대단히 빠른 빼였던 것
이다.
왕안수가 입을 열었다.
"점심때가 되기전에는 따라잡히지 않습니다!"
무삼수가 물었다.
"그때까진 산채에 도달할 수 있겠지?"
"어림도 없어요! 이정도 속도라면 밤이 깊어서야 산채에 도달할
것입니다."
도일봉이 발을 굴렀다.
"제기랄. 어짜피 일전(一戰)을 치루지 않을 수 없구나! 중간에 도
망칠 길은 없을까?"
왕안수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점심쯤에 낙수와 만나는 지점에 다을 것입니다. 그곳은 두 물이
만나는 곳인지라 물살이 세고, 소용돌이도 많지요. 물길을 잘 안다
는 뱃사공들도 피해가는 곳이 있긴 합니다. 그곳으로 유인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더구나 그곳 주변에는 섬들도 몇 개 있는지라 잘
하면 숨을수도 있을 겝니다."
모윤이 한마디 했다.
"모르는 소리! 섬으로 들어간다면 우린 영영 끝이야. 저놈들이 누
군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쯤이면 근동에 파발이 도착하여 대대적인
수색이 벌어질거야. 머뭇거릴 여유가 없어요!"
무삼수가 거들고 나섰다.
"옳아요! 우린 되도록 빨리 육지로 올라 몸을 숨겨야 합니다."
도일봉은 어찌해야 좋을지 한동안이나 생각해 보았다.
"우선 그곳으로 갑시다. 아직은 더 좋은 방법이 없으니 가면서 생
각해 보기로 하고 앞뒤를 잘 살피도록 하시오."
왕안수는 물길을 잘 알고 있었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
되도록 물살이 약한곳을 택했다. 그리고 왕안수의 예상대로 점심쯤
에는 뒷배가 바짝 따라붙기 시작했다. 추적선은 벌써 오십여장 안
으로 접근해 있었다.
한바탕 결전을 준비시킨 도일봉은 뒷배를 자세히 살폈다.
"어라? 저건 군선(軍船)이 아니잖은가!"
추격선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확인되었다. 날렵한 배들은 분명 군
선이 아니었다.
"정날 군선이 아니군요. 어떤 자들일까요?"
무삼수의 물음에 도일봉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찌알꼬?"
"혹 우리처럼 보물을 노리는 자들이 아닐까요? 보물의 소재가 비
록 비밀에 붙여지긴 했으나 우리가 알아냈다면 다른 자들이라고 알
아내지 못할것도 없겠지요."
"빌어먹을. 그렇다면 물도둑놈들과 한바탕하게 생겼구나! 왕안수,
어디까지 온게요?"
"한두시간 후면낙수와 마나나는 지점에 도달합니다. 그 전엔 따
라잡히지 않아요!"
"흐음. 다행이구나. 투석기와 석화시의 사정거리가 이십여장이니
그 지점에서 한바탕 할 수 있겠어. 모두들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
할 수만 있다면 오십장도 날아가는 화룡출수를 사용해보고도 싶었
다. 하지만 화룡출수를 사용하려면 고도의 조준술이 필요하므로 당
장은 쓸 수 없다.
한시간이 흐르자 뒷배와의 거리가 삼십장 안으로 좁혀졌다. 이젠
갑판에 어슬렁 거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그들 정체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때 세척의 배중에 중간 뱃머리에
서 소리가 들려왔다.
"앞서가는 친구들은 잠시 배를 멈추고 이야기나 해봅시다!"
목소리가 우렁우렁 울려나오는 것을 보면 필시 내공력이 깊은 자
였다. 도일봉이 눈썹을 곤두세우고 호통을 처주려는데 무삼수가 팔
을 끌어당기며 뒷배를 가르켰다.
"저것 보시오! 돛에 푸른 독수리가 그려져 있소이다. 필시 물도적
들 중에서도 유명하다는 청응방(靑鷹幇) 놈들일게요."
무삼수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인상을 잔득 찡그렸
다. 청응방은 황하에서 수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패거린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기, 물귀신을 만난 격이군. 조심해야겠는데!"
저쪽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본인은 청응방의 호단주(胡團主)외다. 그리고 염상(鹽商)의 친구
들도 있으니 앞서가는 배는 잠시 멈추어 통성명이나 해봅시다. 그
러면 우리 청응방의 체면이 서겠소이다!"
체면을 세워주지 않는다면 좋지 않다고 협박하는 꼴이다. 도일봉
은 화가 치밀어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못된 것들이다! 이놈들아. 호랑이도 제 동무살은 뜯어먹지 않는
다고 했다. 계속 늘러 붙는다면 좋은일이 없을게다!"
도일봉의 목소리에는 내공력이 실리진 않았지만 청응방의 호단주
목소리 만큼이나 쩌렁쩌렁 울렸다. 호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은 어느쪽 사람들인가? 말로 우릴 따돌릴 생각이라면 잘못이
지. 그러지말고 배를 멈추시구려! 우리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두려
운게요?"
이죽거리는 입을 당장이라도 뭉게주고 싶었다. 도일봉은 대번에
황룡궁을 꺼내들어 시위를 걸었다. 장군전을 먹여 겨냥하여 손을
놓았다.
씨익!
장군전은 유성처럼 날았다. 뱃머리에 있던 자들이 놀라 기겁을 하
고 몸을 숙여 피했다. 장군전은 중앙돛대에 푹 박혀버렸다. 도일봉
이 껄껄 크게 웃었다.
"이놈들! 이제야 이몸이 누군지 알았으렷다. 더 가까이 왔다가는
누구든간에 모가지에 구멍이 생길줄 알아라!"
호단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핫핫. 누군가 했더니, 이거 밤고양이였군! 가까이 가서 한 번 당
해 보자꾸나. 우리 청응방이 네깟 도둑고양이를 두려워 하겠느냐?
멈춰서 결판을 내 보자꾸나!"
"이런 처죽일...아이고!"
화가 치밀어 욕을 하던 도일봉은 배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하마터
면 넘어질뻔 했다.
"뭐야? 무슨일이야?"
왕안수가 소리쳤다.
"소용돌이 지역으로 들어 섰습니다. 모두들 조심하시오!"
몸을 바로잡고 보니 누런 황하물과 퍼런 낙수물이 만나 섞이고 있
었다. 두 물줄기가 만나 섞이면서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들이 물결
을 일으키며 파도를 만들고 있었다. 왕안수는 그 소용돌이를 피해
가며 결사적으로 방향을 유지하고 있었다. 속력이 크게 떨어지고,
청응방의 배와는 거리가 더욱 좁혀지기 시작했다.
도일봉이 마음이 급하여 소리쳤다.
"투석기를 발사해라! 석화시를 쏴라!"
힘 좋은 황삼산이 대원 몇을 거느리고 선미에 장착된 투석기를 청
응방 배를 향해 겨냥했다. 무삼수등은 작은석궁에 석화시를 장착했
다. 도일봉도 대원 두명과 함께 거대한 강노에 다섯자 길이나되는
화살을 먹였다.
"꽉 잡아라. 발사한다. 하나 둘 셋!"
도일봉은 숫자로 구령을 맞춰 강노를 발사했다.
ㅍ!
커다란 화살이 유성처럼 꼬리를 끌며 날아갔다. 하지만 화살은 배
를 맞추지 못하고 옆에 떨어지고 말았다. 황삼산등도 머리통만한
철공을 담아 투석기를 발사했으나 겨냥이 정확하지 못했다. 배 옆
에 떨어져 불끈 물기둥만 솟게 만들었다.
"겨냥을 잘해라! 석화시도 쏴라! 혼내줘라!"
철컥 철컥!
투석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연속해서 철공들을 날렸다.
슈슈슈슉!
석화시의 꼬리에 장치된 심지에 불이 붙은체 하늘을 갈랐다.
뒷배는 이미 사정거리안에 들어서 있다. 겨냥이 정확하지 못했지
만 그중에 몇 개는 적선에 명중하기도 했다. 철공에 맞으면 갑판이
고 옆구리고 구멍이 뚫렸고, 거대한 화살에 맞으면 우지직우지직
부숴져 나갔다. 석화시는 적선의 돛폭에서 터져 마구 불을 뿜었다.
적선에서도 불화살 등을 날리긴 했다. 그러나 강노와 투석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위력이 한참 모자란다.
"불을 꺼라! 물이 센다!"
청응방 인물들은 군선에 장착된 무기들에 의해 혼줄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들의 특기는 빠른 속도를 위주로해서 적의 배와 붙
인 후 상대편 배로 올라 단병전을 치루는 것이다. 강력한 화기가
장착된 군선을 상대로 싸울 전술이 애초부터 있지를 못했다. 세불
리(勢不利)를 깨달은 그들은 재빨리 방향을 틀어 도망치려 했다.
"빨리 쏴라. 빨리 쏴! 놈들이 도망친다! 모조리 때려 잡아라!"
황삼산은 신이 났다. 투석기를 쓸수록 손에 익어 겨냥도 늘어갔
다. 중간 배는 이미 여러군데 구멍이 생겨 꽐꽐 물이 세고, 돛은
불이 붙어 제자리만 뱅뱅 돌고 있었다. 청응방 호단주등은 기겁을
하고 배를 버린체 옆 배로 옮겨타고 있었다.
"물살이 더 세집니다. 모두 조심해요!"
왕안수는 호통을 치면서 방향을 틀었다. 배는 섬 사이의 좁은 물
길로 접어들었다. 물살이 휠씬 빨라지고 파도도 심해졌다. 한바탕
승전에 신이 나있던 대원들이 기우뚱 거림에 놀라 급히 난간을 부
여잡았다.
청응방 인물들은 겨우겨우 중간배를 버리고 섬 반대쪽으로 사라지
고 있었다. 구멍나고 불이 붙은 배는 끝내 소용돌이에 빨려들어 침
몰하기 시작했다.
군선의 속력은 휠씬 떨어졌다. 왕안수는 용캐도 물살을 견뎌내며
천천히 거슬러 올라갔다. 도일봉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왕안수. 배를 적당한 곳에 멈추도록 하시오!"
어리둥절해진 무삼수가 물었다.
"어째서 배를 멈추란 겝니까? 도망치기에도 바쁜데요?"
"제기랄. 빨리 도망치려고 그러는게야! 왕안수, 배를 세워요!"
무슨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기는 왕안수도 마찮가지 였다. 하지
만 명령이니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물살이 너무 빨라 적당한 곳을
찾기 힘들었지만 왕안수는 조심스럽게 배를 섬 쪽으로 몰았다. 한
참을 헤매고야 겨우 물살이 약한 후미진 곳을 찾았다. 닻이 내려졌
다.
"무슨 일입니까? 이런 곳에선 오래 머물 수 없어요!"
"안다, 알아! 물건들을 우리가 타고 왔던 배로 옮겨 실어라! 서로
떨어진다. 서둘러!"
눈치 빠른 자들은 벌써 도일봉의 말 뜻을 알아채고 움직이기 시작
했다. 무삼수가 무릅을 치며 소리쳤다.
"물건을 싣고 세자는 말이구려!"
"그런 셈이지. 어서 옮겨 실어라. 시간 없다!"
대원들은 서둘러 물건들을 두척의 작은배로 옮겨 실었다. 부상자
와 시체들이 먼저 옮겨졌다. 스물한개의 크고작은 나무상자들이 옮
겨지고, 선두(船頭)쪽에 있는 투석기를 떼어 옮겼다. 군선에서 탈
취한 전리품중 석화시만 얼마간 남기고 모조리 옮겨 실었다.
"조심해서 육지에 대고 곧바로 마차를 빌어 운반해라. 새로 짓는
산채로 가란 말이다! 모윤은 최대한 빨리 옛날 산채로 달려가서 식
구들을 인솔하여 새 산채로 가시오. 서둘러야 하오!"
황삼산이 나섰다.
"이렇게 서둘 것 있겠습니까? 산채 식구들을 옮기는 것도 쉬운일
이 아닌데?"
"모르는 소리! 우리편 실종자가 넷이야. 그들이 잡혀 고문을 이기
지 못한다면 산채는 어짜피 끝장이야. 가져갈 수 있는것만 챙기고
나머지는 싹 불을 싸지르란 말야!"
도일봉은 전 대원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왕안수와 내가 이 군선으로 적들을 유인하는 사이에 서둘러 행동
하란 말이외다. 헤엄 잘치는 두명만 더 남고. 알아들었소?"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삼수나 황삼산이 대
신 남겠다고도 했지만 도일봉은 고개를 저었다.
"애쓸 것 없어. 내가 그중 나으니까! 자네들은 자네들 맏은 일이
나 차질 없도록 하라고. 서둘러!"
도일봉은 모윤이 지적한 두명의 대원을 빼놓고 등을 밀어 작은배
로 오르게 했다. 곧 밧줄이 풀리고 두척의 배가 물살에 떠나려가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두척의 배가 방향을 제대로 잡는 것을 보고서
야 군선의 닻을 올렸다. 멀어져 가는 두척의 배에서 아직까지도 대
원들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군선은 천천히 물살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남은 두 대원을 살폈다.
"자네들 여개(呂開)와 이수복(李壽福)아닌가? 재수 없게끔 남게
되었군!"
산채 인원이라야 고작 백여명인지라 도일봉은 대원들의 이름정도
는 알고 있었다. 이수복이 웃으며 말했다.
"대장님도 남지 않았습니까?"
"허허, 이 친구들 보게. 나는 살아남을 자신이 있으니 남은게고!
이 배는 가다가 침몰시킬게야. 자네들 헤엄쳐 강을 건널 수 있겠
나?"
"물가에 살았는걸요. 다른건 몰라도 물에 빠져 죽진 않을 겁니
다."
"좋아. 왕두목은 어떻소?"
왕안수도 이젠 제법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저도 물에 빠져 죽진 않을 겁니다."
"좋아, 좋아. 빨리 갑시다. 수적들이건, 관군들이건 나타나면 한
바탕 멋들어지게 벌여봅시다. 그러고도 안되면 배를 충돌시켜 함께
수장이라도 시키자고!"
넷은 좋다고 껄껄 웃기도 했다.
섬을 지나니 어느덧 낙수를 지나 있었다. 청응방의 남은 두척의
배가 먼저 도착해서 섬 양편을 살피고 있었다. 군선이 보이자 또다
시 추격하기 시작했다. 두척의 배를 떨쳐낸 군선은 속도가 더욱 빨
라져 있었다.
"저놈들, 우리배가 떨어져 나간 것을 눈치챈 모양입니다!"
이수복이 방향을 돌릴까말까 망설이는 한척의 배를 보고 소리쳤
다. 눈치를 채고 떨어져 나간 배를 추격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
틀림 없었다.
"빨리 투석기를 발사하자!"
도일봉은 여개와 이수복에게 서둘러 투석기를 발사하라 이르고 자
신은 석화시를 연속해서 발사했다. 철공과 석화시는 방향을 틀려는
배를 향해 집중적으로 날아갔다. 그 배는 공격을 피하며 방향을 고
정시켰다. 군선을 좇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속았다! 저 멍청한 놈들이 내 꾀에 넘어갔다!"
도일봉의 활솜씨는 이미 신궁에 이르렀다고 소문난 것이다. 혼자
쏘아대는 화살이 서너명이 쏘아대는 것과 비슷한 량이다. 청응방에
서는 속력을 높이기위해 두척의 배를 떨구었다고 생각한 것이 분명
했다. 그러나 전속력을 다해 좇아오진 않았다. 한 번 혼이 났으므
로 섣불리 덤벼들질 않는 것이다. 군선에 사고가 발생하거나 육지
에 오르기를 기다려 공격하려는 속셈이 분명하다. 그 덕분에 도일
봉은 애써 화살들을 쏘아댈 필요가 없어졌다. 양 편의 배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체 계속 달리기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짜증이 나는건 오히려 도일봉이었다.
"이 멍청한 관군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게야? 나타날 때가 넘었
는데..."
일부로 속력을줄여 청응방에게 시비를 걸어 보았으나 오히려 청
응방에서 싸움을 피했다. 적당한 간격만 유지한체 좇기만 했다. 심
드렁해진 도일봉은 벌렁 갑판에 누워서 하늘만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대장님! 앞에 배들이 있습니다!"
도일봉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선두 쪽으로 달렸다. 앞에 두척의 커
다란 배가 있었다.
"뭐야? 군선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좋다. 한바탕 해보자!"
도일봉이 서둘러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앞 쪽의 배가 물살을 타고
빠르게 달려왔다.
피유웅!
쿵!
풀썩!
역시 군선이었다. 두척의 군선에서 투석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배 옆에서 물기둥들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여개와 이수복도 투석
기를 쏘며 대응했다. 양 편의 간격이 급격히 좁아지기 시작했다.
때를 같이하여 그동안 멀찍이 좇기만하던 청응방의 배들이 갑자기
속력을 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양 편이 싸우는 동안 어부지리(漁
父之利)를 노리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쿵!
우지직!
갑판에 철탄이 마구 떨어져 내렸다. 널판이 부숴지고 배 옆구리가
깨져 나갔다.
"어이쿠! 모두 조심해라!"
도일봉은 이리저리 뛰며 계속해서 석화시를 발사했다. 그러나 혼
자로는 역부족이다. 적선에서 쏘아대는 철탄들이 워낙 많아 몸을
숨기기도 힘들었다.
"엇! 저쪽을 보십시오. 배들이 무더기로 나타났습니다!"
여개의 부르짖음에 고개를 돌려보니 양쪽에서 여섯척의 군선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제기랄. 안되겠다. 왕안수. 방향을 틀어요. 도망칩시다!"
왕안수는 급격하게 조타를 틀었다. 배가 한쪽으로 휘청 쏠리며 방
향을 틀었다. 양쪽에서 철탄과 화살들이 비오듯 쏟아졌다. 수십개
의 철탄들이 옆구리에 명중되었다. 몇군데에서는 벌써 물이 세기
시작했다.
어부지리를 노리겠다고 기회만 엿보던 청응방 놈들도 군선들이 대
거 나타나자 방향을 바꾸어 꽁지 빠지게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도일봉의 군선과 청응방의 배들은 방향을 바꾸느라 시간을 소비했
다. 어느새 군선들이 삼면에서 다가와 공격을 계속했다. 청응방 배
에서도 할 수 없이 군선들과 일전을 치루지 않을 수 없었다.
"틀렸다. 왕안수, 배를 물가 쪽으로 모시오!"
물이 콸콸 세들어 오는 것을 보고 도일봉은 대응을 포기했다. 또
한 번 방향을 틀 때 군선 한척이 어느새 다가들어 갈고리를 던져내
기 시작했다. 도일봉등은 몸을 숨긴체 화살을 쏘아댔다. 두 척의
군선은 나란히 달리며 붙었다 떨어졌다를 계속했다. 물은 벌써 선
실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모두 단단히 준비해. 왕안수, 배를 충돌시켜라!"
왕안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배가
휘익 기울어지며 나란히 달리는 군선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다.
옆을 따르던 군선은 기겁을 하고 덩달아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왕
안수가 워낙 기습적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에 군선은 미처 방향을
다 틀기도전에 옆구리를 받치고 말았다.
"뛰어들어!"
도일봉의 호통과 동시에 왕안수등이 물로 뛰어들었다. 마지막으로
도일봉이 뛰어들었다. 직후.
꽈릉.
우지직!
굉음을 울리며 두척의 군선은 충돌하고 말았다. 도일봉등은 배들
이 침몰하기 전에 멀찍이 떨어지려고 사력을 다해 헤엄쳐 나갔다.
뒤좇던 또 한척의 배에서 화살들이 비오듯 쏟아졌다. 양쪽 배가 침
몰하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군선에 탄
수군들도 서둘러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들었다. 뒤따르던 배가 선
원들을 구조하기에 바빳다. 도일봉등이 탈출한 것을 본 군선에서
소선이 내려졌다. 두척의 소선이 빠르게 강가로 향해 달렸다.
도일봉이 강가에 당도했을 때, 소선들도 어느새 다가와 있었다.
도일봉은 황룡궁을 꺼내들고 장군전을 날리기 시작했다. 장군전은
백밸백중 수군들을 맞춰 물로 떨어뜨렸다.
왕안수가 먼저 나왔다. 이수복이 나왔으나 끝내 여개는 보이지 않
았다.
"여개는?"
이수복이 침통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화살에 맞은 것을 보고 가보았습니다만 이미 보이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기랄! 안됐지만 일단 피하자! 여개의 복수는 다음에 하기로 한
다!"
도일봉의 황룡궁이 무서워 소선은 더 이상 다가오진 못했다. 하지
만 화살들은 여전히 비오듯 쏟아진다. 셋은 할 수 없이 도망쳐야
했다. 갈대 숲으로 몸을 숨기자 소선들이 이내 강가에 도착했다.
그것을 시작으로해서 또 다른 소선들이 줄줄이 달려왔다. 수군들이
새카맣게 갈대숲으로 몰려들었다. 해가 서산에 걸려있다.
세사람은 강변을 따라 뛰었다. 멀리서 군졸들의 추격소리가 들려
왔다. 두시간이 넘게 달리는 동안 날이 이미 어두워 졌다. 작은 어
촌에당도했으나 그곳엔 이미 군졸들이 지키고 있었다.
"제기랄. 힘들지만 계속 가야겠다!"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벌써 발각되었을 것이다. 셋은 마을을 돌아
달렸다. 갑자기 왕안수가 도일봉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저기좀 보시오."
강가 갈대숲에 작은 배 한척이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마을
의 배들은 이미 군졸들이 징발했을 것인데, 이 배는 마을 밖에 있
어 눈에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늘이 우릴 돕는구나. 어서 가자. 꾸물거려야 좋을게 없어!"
곧 부숴질 것처럼 낡은 배였다. 셋이 타자 반쯤은 물에 잠겼다.
왕안수는 노를 잡아 조심조심 배를 몰았다. 갈대숲을 벗어난 후에
는 열심히 노를 저었다. 이수복도 널판지를 구해 노로 사용해 왕안
수를 도왔다. 작은 배는 어둠을 타고 건너편을 향했다. 군졸들은
이쪽 강변에 몰려 있었다. 강 위에도 소선들이 널려 있었다. 강 중
앙을 지난 도일봉등은 배를 버리고 물로 뛰어들었다. 헤엄쳐 건널
생각이다.
한참 헤엄치고 있을 때 군졸들이 버린 배를 발견하고 뭐라고 마구
떠들어 댔다. 도일봉등은 더욱 열심히 헤엄쳤다.
"산채로 가봐야겠다!"
뭍에 오른 도일봉은산채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모윤을 보내긴 했
지만 일을 잘 해냈는지 궁굼했던 것이다. 세사람은 힘들었지만 밤
을 도와 길을 줄였다.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산채에 도착했다.
산채엔 아무도 없었다. 하늘높이 치솟는 연기만 보였다. 모윤은 이
미 사람들을 이끌고 떠난 모양이다. 왕안수나 이수복은 그동안 정
들었던 산채가 타는 것을 바라보며 아쉬워 했다. 도일봉이 고개를
저었다.
"새 산채로 가자. 미련둘 것 없어.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세 사람은 지체하지 않고 산을 내려갔다. 왕안수가 길을 아는 것
이 다행이었다.
세상에 또 하나의 소문이 퍼졌다.
황실로 올라가는 공물이 털렸다!
공물을 턴 자는 소림사에 무림인들을 끌어들여 법난(法亂)을 일으
켰던 도둑고양이 도일봉이다!
청응방과 염효들도 나섰다가 혼구멍만 나고 관군에 좇겨 달아났
다!
그런 소문이었다.
털린 물품들이 막대한 량의 금과 은이고, 두 번 보기힘든 골동품
들이란 말들도 무성했다. 관선들과 대대적인 싸움을 벌였다는둥,
관선과 충돌하여 보물들과 함께 도일봉마져 수장 되었다는둥, 보물
은 이미 빼돌렸는데 도일봉만 물에 빠져 죽었다는둥, 도일봉마져
멀정 하다는둥, 뒷소문들도 끊이지 않았다.
몽고놈들이 도일봉에게 또한번 된통 당해 후련하다는 말과 도일봉
은 역시 대단한 도둑감이라고 떠드는 자들도 있었다. 물론 인근의
관에서는 도일봉을 잡아들이기 위해 대대적으로 군졸들을 파견하였
다. 현상금도 배로 올렸다. 도일봉은 이제 정말로 도적의 길로 접
어들게 되었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합니다,
즐독입니다
잘밨어요
감사합니다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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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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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흑야묘 이름값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