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연(因緣)
우르릉!
굉량한 천둥소리가 대지를 진동시키며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나갔다.
번쩍! 꽈쾅!
눈을 멀게 할 만큼 밝은 전광이 노송에 내려 꽂혔다. 굵은 소나무가 쩍쩍 갈라지며 불타올랐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더욱 커지고 빨라졌다. 짙은 먹구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허, 비가 오려는 모양이군.”
하얀 도복에 도관을 쓴 노인이 가던 길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의 노인은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신선이 있다면 이 노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리라.
태령진인(太怜眞人) 이백(李白).
그는 무림구대문파의 하나이자 도가의 종주라 할 수 있는 대무당파의 장로로서,
세수가 구십에 이른 당금 무림의 최고 배분의 명숙 가운데 한 명이다.
얼마 전, 도령자라는 전대 기인이 쓴 도경이 하북성 어딘가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갔다가 허탕을 친 후, 다시 무당으로 돌아가는 길에 적운산 부근에서
그만 소나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
태령진인은 멀리서 몰려오는 먹구름을 보고도 여전히 느긋하게 걸었다.
잠시 후 강한 뇌성이 몇 차례 울리더니 하늘에서 장정 손가락만한 굵기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태령진인은 서두르지 않고 갈대로 엮은 우의를 꺼내 걸쳤다.
쏴아아!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이 쏟아지는 폭우는 마치 하늘이 구멍이 나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거세게 쏟아졌다.
태령진인은 장대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소나기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드러났다.
“하늘빛이 참 곱기도 하구나. 허허.”
태령진인은 맑게 개인 하늘을 올려다 보며 한차례 너털웃음을 웃은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적운산 최고의 명승지라는 대운폭포를 구경하기 위함이다.
잠시 후 태령진인은 일곱 가지 색을 뚜렷이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무지개가 걸린 폭포 아래에 도착하였다.
우르르릉!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웅장한 대자연의 위용이 나타났다.
태령진인은 하얀 포말을 뿜어내며 떨어지는 대연폭포의 모습을 보자 경탄을 금치 못했다.
‘허, 장관이로구나…….’
태령진인은 폭포 옆에 있는 바위에 기대어 앉아 주위의 경치를 음미하듯 찬찬히 둘러보았다.
“엉?”
태령진인은 안색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위의 경관과 조화되지 않는 극히 이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게 무엇인고?”
태령진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폭포로부터 약 20여 장 아래쪽에 있는 바위를 주시했다.
물결이 다소 잔잔해진 물가 바위에 무언가가 걸려 있었다.
왠지 그 물체에 신경이 쓰이던 태령진인은 천천히 그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헉! 저, 저건…….”
태령진인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졌다.
땅을 스치며 날아가는 제비처럼 태령진인은 오 장이 넘는 바위들을 한번에 건너뛰었다.
“이보게! 정신 차리게!”
그곳엔 심한 상처를 입은 듯 피투성이의 사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태령진인은 서둘러 사내의 맥문을 짚어 보았다.
‘아직 살아 있다!’
태령진인은 급히 사내를 들쳐 업고 신형을 날렸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태령진인은 커다란 바위 아래 뚫려 있는 동굴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다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동굴 안으로부터 풍겨 나오는 짐승의 노린내 때문이다.
태령진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품에 안긴 사내를 한차례 내려다 보았다.
‘할 수 없지. 사람을 살려야 하니…….’
태령진인은 땅바닥에 뒹구는 돌멩이를 발로 힘껏 찼다.
슁!
공기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돌이 동굴 안으로 날아갔다.
“크앙!”
잠시 후,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와 함께 거대한 그림자가 동굴 안에서 튀어나왔다.
그림자의 정체는 집채만한 덩치의 곰이었다.
“우워어!”
곰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 보이며 태령진인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서서히 육중한 몸체를 일으키더니 두 발로 섰다.
곰은 사납기로 유명한 불곰이었고, 그 덩치 또한 태령진인의 두 배는 될 만큼 엄청나게 컸다.
“크워어!”
곰은 사납게 포효하며 무시무시한 기세로 태령진인을 후려쳤다.
빗맞더라도 황소의 두개골을 일격에 박살낼 수 있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다.
쉬잉!
그러나 곰의 앞발이 스친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태령진인이 어느 틈에 신법을 펼쳐 곰의 등 뒤로 돌아갔던 것이다.
태령진인의 우수가 곰의 엉덩이 부분에 살짝 닿았다.
“허허, 미안하구나.”
태령진인의 중얼거림이 끝남과 동시에 그의 우수에서 빛이 번쩍였다.
펑!
“크허엉!”
곰은 매우 고통스러운 듯 크게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곰의 모습은 곧 동굴에서 멀리 사라져 버렸다.
태령진인은 애초부터 생명을 해칠 마음이 없었기에 내공의 삼 할 만 이용하여 장을 쳐냈던 것이다.
태령진인은 동굴 안쪽에다 조심스레 사내를 눕혔다.
곰의 노린내가 동굴 안에 진동했지만 그것까지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사내의 부상 정도가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다. 태령진인은 다급히 그의 옷을 모두 벗겼다.
“으으…….”
사내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우측 가슴 부근의 피부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열양장에 맞았군.’
태령진인은 다른 곳의 상처도 꼼꼼히 살펴보았다.
심하게 긁히거나 찢긴 상처도 꽤 있었지만 생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열양장에 맞은 상처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태령진인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태령진인은 사내를 억지로 앉힌 뒤 가부좌를 틀게 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의 등 뒤에 같은 자세로 앉아 내공을 끌어올렸다.
수십 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익혀온 무당순양공의 순수한 힘이
태령진인의 단전에서 노도처럼 뿜어져 나와 온몸을 가득 채웠다.
태령진인은 자신의 두 손을 사내의 등에 붙이고 서서히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내의 몸에 진기를 불어넣는 순간 태령진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자신의 진기에 저항하는 힘을 전혀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 이런…….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구나.’
태령진인은 사내의 몸속에 들어찬 화독을 모두 제거한 후 혈도를 막고 있던 탁한 기운을 몰아냈다.
그리고 상, 중, 하단전을 자극하여 생명의 기운을 깨운 후에야 비로소 손을 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이 청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리라.’
짧은 시간동안 꽤 많은 내력을 사용했는지 태령진인의 안색은 많이 창백해져 있었다.
사내의 몸은 그 후 사흘간 온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올랐다가 차갑게 식기를 반복했다.
태령진인은 수시로 그의 몸에 내력을 주입하여 생기를 북돋아주었지만,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진원을 아끼지 않고 사내에게 주입해 준 까닭에
요 며칠 사이 태령진인의 안색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태령진인은 거의 포기하는 심정으로 사내의 몸에 자신의 모든 진기를 아낌없이 주입했다.
이번에도 깨어나지 않는다면 사내는 살 수 없으리라 여겼다.
태령진인이 내력을 순환시켜 혈도를 자극하고 모든 혈맥을 뚫었음에도
사내가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령진인은 사내의 등에서 손바닥을 떼고 자리에 눕힌 뒤 측은하다는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때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사내의 입에서 미약한 신음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 물…….”
태령진인의 안색이 눈에 띄게 밝아지며 급히 사내의 입 속으로 물을 조심스럽게 흘려 넣어 주었다.
사내는 간신히 몇 모금을 넘기곤 다시 정신을 잃었다.
태령진인의 얼굴에 처음으로 희색이 돌았다. 회복의 징조였기 때문이다.
‘허허, 의지가 무척 강한 녀석이로구나.’
태령진인은 대견해하며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날 저녁, 사내가 다시 깨어났다. 하지만 아직 정신이 없는지 뭐라 중얼거리기만 했다.
“으…, 령령…….”
태령진인은 얼른 그를 부축해서 앉혔다.
“정신이 드는가?”
사내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 여인을 애타게 찾았다.
“령령, 령령은……?”
태령진인은 곧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이며 품속에서 찢어진 옷자락을 꺼내 그의 두 손에 쥐어주었다.
“자네가 쥐고 있던 것일세. 결코 놓지 않으려는 걸 노부가 억지로 빼앗아 보관하고 있었지.”
사내는 멍하니 자신의 손에 들린 옷자락을 바라보다 절규와도 같은 울음을 터트렸다.
“령령…, 크흑!”
찢어진 옷자락을 뺨에 부비며 눈물을 흘리는 사내는 바로 마대위였다.
그는 절벽에서 가슴을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정신을 잃은 후
지금까지 혼수상태로 끊임없이 고통과 싸워왔던 것이다.
의식의 끈을 놓고 싶을 정도로 지독하고 긴 고통이었지만 그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
목 놓아 통곡하는 그의 귀에 태령진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옷의 주인이 령령이라는 소저인 모양이군. 아쉽게도 자네를 발견했을 당시 그녀는 없었네.
이미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간 모양일세.”
마대위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자신을 살려준 은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에 인자한 노도인의 얼굴이 들어왔다. 마대위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하염없이 통곡했다.
태령진인은 말없이 그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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