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2장 제물론(齊物論) 19절
[본문]
설결이 말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이롭고 해로운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지극한 사람은 본시부터 이롭고 해로운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왕예가 대답하였다. ”지극한 사람이란 신묘한 것이다. 큰 연못을 말릴 뜨거운 불이라 하더라도 그를 뜨겁게 할 수가 없고, 큰 강물을 얼어붙게 하는 추위도 그를 춥게 할 수가 없다. 굉장한 우레가 산을 무너뜨리고 바람이 바다를 뒤흔든다 하더라도 놀라는 일이 없다. 그러한 사람은 구름 기운을 타고 해와 달에 올라앉아 이 세상 밖에 노니는 것이다. 죽음과 삶도 자기에게 변화를 가져올 수 없거늘 하물며 이롭고 해로운 것의 평가기준이야 어떠하겠느냐?
[해설]
19절은 제물론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극한 사람이 일반인들과 달리 어느 정도까지 신묘한 경지에 이르는지를 말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이익을 추구하고 손해를 피하려고 하는데 비해 제물론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극한 사람은 이익과 손해에 얽매이지 않는다.
물론 공자도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하였고, 칸트도 “이성적 존재는 목적 자체로서 존재한다”고 하면서,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근대까지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하였다.
장자가 이상적인 인간이라고 여기는 지인(至人, 지극한 인간)은 이 세상 밖에 노니는 자이다. 즉 세속적인 출세나 성공 등을 목표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인은 삶과 죽음까지 초월한 자로서, 무더위와 강추위, 우레와 바람이 기승(氣勝)을 부려도 놀라지 않는다.
이러한 경지를 염두에 둔 장자의 이상형 인간(至人)이 만물을 가지런하게 보는 제물론(齊物論)의 사고에서 나왔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제물론은 상반되는 세계 전체를 차별없이 하나의 같은 것으로 보는 사고의 지평이 열릴 때 가능해진다. 상반되는 세계 중 대표적인 것은 있음과 없음의 세계이다.
노자 『도덕경』 40장
[본문]
되돌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약한 것은 도의 쓰임이다. 천하만물은 있음에서 생겼고, 있음은 없음에서 생겼다.
[도표]
도의 속성 | 도의 진행방향 |
되돌아감 | 유약함 | 생성의 방향 | 되돌아가는 방향 |
도의 움직임 | 도의 쓰임 | 없음 → 있음 → 만물 | 만물 → 없음 |
[해설]
도(道)는 머무는 집이 아니고, 집들을 연결하는 길이다. 이 세상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없음의 상태에서 있음의 상태로 출현했다. 그리고 있음의 상태로 수명이 다할 때까지 존재하다가 없음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노자는 도의 움직임이라고 하였다. 도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유약(柔弱)해야 한다. 도의 관점에서 보면, 있음과 없음, 삶과 죽음은 동등하게 존재하며, 인식되며, 가치가 있다.
〈이어지는 강의 예고〉
▪ 585회(2024.10.01) : 장자 해설(27회), 이태호(통청원장/철학박사/『노자가 묻는다』 저자) ▪ 586회(2024.10.08) : 장자 해설(28회), 이태호(통청원장/철학박사/『노자가 묻는다』 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