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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 시대, 과현 현실화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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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저널(2004/05) |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
서울대의 황우석 교수와 문신용 교수가 세계 최초로 사람의 난자에 체세포를 넣어서 배아줄기 세포를 만들었던 성과가 세계적인 뉴스 거리가 되었다. 비록 어느 몰지각한 신문기자가 학술적 업적에 대한 국제적인 보도 제한 관행을 지키지 않아서 잔치 분위기가 조금 썰렁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리 과학계의 짧은 역사에서 분명하게 기록에 남을 업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성과가 우리 모두가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 "인간복제"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던져주기도 했다.
과학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신"(神)에 의해서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그런 "신"을 "하느님", "창조주", "조물주"라고 부르기고 했고, 막연하게 우주의 "정기" 또는 "자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부모와 자식은 피를 나누어 가졌다는 뜻에서 "혈통"(血統)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확실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던 그런 "믿음"의 폐해는 대단한 것이었다.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신(神) 위력을 앞세운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나 남다른 "제왕적" 혈통을 내세운 정치 지도자들의 절대 권력 앞에서는 "인권"이나 "자유"라는 개념은 존재조차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 선조의 대부분은 똑같은 인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근거 없는 믿음 앞에서는 짐승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차별의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야만 했던 것이 우리의 분명한 역사였다.
생명의 신비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0년 전이었던 19세기 중엽 오스트리아 오지의 과학자이면서 수도승이었던 멘델의 노력 덕분이었다. 멘델은 완두를 이용한 유명한 실험을 통해서 혈통을 이어주는 "인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같은 시기에 영국의 찰스 다윈은 생물의 진화를 주장하는 "종의 기원"(1859)을 발간하여 세계를 뒤흔들었다. 생물은 끊임없이 변종을 만들어내고, 그 중에서 환경에 적응하는 변종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신의 존재를 확고하게 믿고 있던 당시에 원숭이가 우리의 선조일 수도 있다는 다윈의 주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단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물결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다. 1869년에 스위스의 과학자 요한 미셔가 외과 수술용 붕대에 묻어있던 고름에서 세포의 핵 속에 들어있는 이상한 물질을 처음 발견했다. 훗날 DNA라고 밝혀진 유전 물질이었다. 1888년에는 그런 물질로 구성된 염색체가 우연하게 발견되었고, 1904년에 컬럼비아 대학의 토머스 헌트는 초파리를 이용한 실험으로 염색체와 그 속에 들어있는 DNA가 생물의 유전적 특징을 결정하는 핵심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53년에 영국의 왓슨과 크릭이 DNA의 화학적 구조를 밝혀내면서 현대의 "생명과학"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섰고, 이제는 "인간 유전체(지놈)"의 구조를 밝혀내게 되었다. 이제 생명의 신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되어 버렸다. "사회적 지위"와 "교육"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수 조(兆)개의 세포에는 길이가 1.8미터에 이르는 나선 모양으로 꼬인 사다리처럼 생긴 DNA라는 분자를 가지고 있고, 그런 사다리의 가로대를 만드는 4 종류의 유기 염기(뉴클레오타이드)의 순서가 바로 우리의 신체적 특징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졌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우리 모두가 생물학적으로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바로 현대 "생명과학"의 가장 중요한 성과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새로운 과학 지식은 곧바로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생명과학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생물의 유전자를 극단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심지어 동물을 복제하는 "생명공학"(biotechnology)이 바로 그것이다. 21세기가 열리면서 현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인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생명공학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1997년에는 복제양 돌리가 탄생했고, 1999년에는 황우석 교수가 "영롱이"를 탄생시킴으로써 우리도 생명공학 강국의 대열에 당당하게 합류했다. 이번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알려졌던 인간의 체세포 복제의 가능성을 한층 높여주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 놀라운 성과들이 사회적으로는 우리에게 심각한 과제를 던져주기도 한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이 생명공학 기술도 사회의 가치 기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학술적으로 아무리 훌륭한 연구 결과이고, 그것이 아무리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기술이 우리 사회의 윤리와 가치 기준에 부합되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 쓸모가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과연 인간복제를 이용한 질병의 치료의 정체가 과연 어떤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윤리적이나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점은 없는지, 그리고 그런 기술을 허용할 경우에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게 될 가치관의 변화를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냉정한 검토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판단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가치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과학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판단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사실만을 근거로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그런 판단에 참여하는 전문가는 모두 그런 기술과 관련된 과학적 사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과 이해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섣부른 지식을 근거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되고, 자칫하면 우리 사회 전체가 심각한 혼란과 후퇴의 늪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특히 "신"(神)의 문제는 심각하게 다루어야만 한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인간은 과학적 지식만으로 살 수 없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자연에서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종교적 논리를 남용할 경우의 심각한 폐해는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그래서 현대의 생명공학 기술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신을 모독"할 수 있다는 단순한 명분 때문에 금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하다. 그런 명분이 암울했던 중세 암흑기를 지배하던 것이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동일한 종교 원리를 추종하더라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복제는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직면했던 어떤 사회 문제보다도 심각한 것이다. 자칫하면 우리 모두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위력을 가진 가능성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신이나 단순한 두려움을 핑계로 새로운 가능성을 포기해버릴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생명의 신비를 밝혀내려는 순수한 과학적 탐구는 절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중요한 과학적 과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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