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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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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고구려(高句驪)의 천도(遷都)와 평양(平壤)
문 무 추천 1 조회 433 14.09.24 20:40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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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9.24 22:25

    첫댓글 기가 찰 노릇이죠. 영주 북쪽이 한나라 때 선비, 당나라 때 토곡혼, 송나라 때 글란 지금 글란이 어디인지 솔직히 대륙에서도 정확히 비정하지 못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사서에는 있는데 영토는 비정할 수 없는 역사가 키타이의 역사라고 하더군요. 해석하는 사람에 따랏 다르게 비정할 수 있는게 현실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키타이의 후손들을 발견했다는 기사도 보았습니다. 지금의 기준보다 한참 서쪽으로 갔더군요. 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안 나네요. 키타이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는
    소수민족이 있다고 합니다. 아마 보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불과 몇년 전에 나온 거니까요.

  • 14.09.24 22:27

    동천왕 때 밀려서 동진하여 평양에 도읍을 했다고 하는데 왕험 또는 평양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결국 왕험이라는 것은
    기자를 말하는 것이기에 재야사학에서 주장하는 왕검 혹은 단군은 허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놈들이 단군이라는
    요임금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자기들의 역사를 승급시키려는 조작질에 우리의 재야들이 놀아난 것 같습니다.

  • 작성자 14.09.25 12:36

    글란은 현 서유럽의 흉노에게 밀려 중앙아세아에서 신강성쪽으로 넘어옵니다. 이때 역사서는 기록하기를, 일만여호(戶)가 고구려에 의탁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곳은 현 신강성과 중아지방의 경계쯤 됩니다. 이것은 대륙사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란이 현재의 중원지방이나 그 동쪽지방으로 온 일은 없다는 것이지요. 키타이를 중국이니 중앙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는 서쪽과 동쪽의 중간지점인 현 중앙아세아의 종족이란 뜻도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왕험은 왕검성을 말하는데, 이것 역시 한 번 재고찰을 해보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성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작성자 14.09.25 12:40

    특히 요임금은 제곡고신씨의 아들입니다. 또 고구려는 제곡고신의 후예(직계)이므로 성을 고씨라 했다는 것으로 보면, 더 많은 증거를 찾아야겠지만, 요임금과 단군은 한 인물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 14.09.26 08:03

    고쥬몽의 의 선조에는 고진 고등왕 등이 [한단고기]에 나오는데 이들은 한나라보다 더 오래된 사람들 입니다 고주몽의 시조를 북방 전욱고양씨라고 하는 말도 있는데 모두 팩트가 아닙니다 이런 작위는 상대방을 쳐서 이길 수 없을 때 그를 잠시 인정해주는 말 입니다 마치 수박으로 셍사결전을 하다가 결판이 안나면 휴전 하고 나서 막걸리 한잔 나누면서 노형! 대형 ! 하면서 존칭으로 부르다가 세월이 흐른 후에 상대가 약해지면 기습 공격하여 명망시켜 버리는 것과 같은 겁니다 때문에 이른 바 삼황 오제라는 하화족이 만든 설들은 고구려가 천손이라는 사실 그리고 유럽 과 유라시아 그리고 현재의 지나대륙 스촨 섬서성까지 그리고

  • 14.09.26 08:12

    베링해를 넘어간 잉카까지 고구려였다는 사실을 하화족 이 자기들 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위해 만든 허구 입니다 동북공정 과 맥락을 같이 하는 허구입니다 고구려 보장왕은 베이징에서 당이 내려준 조선후라는 허울 뿐인 벼슬로 살면서 동족들의 마음을 어루 만지며 반란을 사전에 방지하는 일을 하여 당이 주는 생활비에 보답하다가 죽었다고 추측 됩니다 흉노가 순누고 순누가 선(태양) 입니다 로마 카토릭의 대신전 도 서천한 고구려의 굿당 입니다

  • 작성자 14.09.26 10:36

    예! 성원감사드립니다. 조선사를 중국사로 왜곡, 조작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상황오제는 조선사이며, 다만 호칭만이 서로 다르게 표현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한단고기는 아직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기록이기 때문에 인용치 않고 있습니다.

  • 작성자 14.09.26 11:23

    조선사를 지구사로 생각하는 것은 확대재생산이라고 봅니다. 지금도 풀리지 않은 여러 왕조의 유적물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장왕에 대한 이야기도 많은 부분이 잘못 전달되고 있으며, 베이징이 현 북경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큰 오류라 봅니다. 고주몽의 시조가 전욱고양씨 또는 제곡고신씨 중에 누가 되든 두 분은 가까운 사촌간입니다. 조선사 이야기를 중국사로 만든 것이라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됩니다. 한단고기는 우리나라에서만 일부가 인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공식적으로 인용이 되려면 기록의 검증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한단고기의 편찬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것이죠. 이게 문제라고 봅니다.

  • 14.09.27 09:45

    진서의 내용중에 천산 현토 황하가 나오는데 천산과 황하사이에 현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현토는 유주의 땅으로 상곡, 어양, 우북평, 요동, 요서, 낙랑이 포함되는데, 상곡을 아무다르여강 상류라 하셨고, 영주를 현 청해호 동쪽이라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주와 영주는 요해(발해)와 직접 관련있는 곳인데 요해(발해)의 위치 비정이 어렵습니다.
    幽 州 在 渤 碣之 間 并 州 北 有 代 朔 營 州 東 暨 遼 海 (遼史)

  • 14.09.27 10:00

    낙랑 현토 요동은 유주로 서로 인접지역이고, 영주 역시 발해의 인접지역이니 유주와 영주는 서로 붙어있는것 같습니다. 영주 북쪽에 한의 선비요, 당의 토곡혼이요, 송의 거란이 있다 했으니 결국 발해가 어디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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