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창 친구 한 명이 정겨운 멜로디 하나를 카톡방에 올렸습니다. 고마운 마음으로 잘 감상했습니다. 바로 영화 '哀愁'의 몇 장면과 함께 실린 'Auld Lang Syne'입니다. 1788년 영국 스코틀랜드의 詩人 로버트 번스가 작곡한 가곡인데, 제목은 '그리운 옛날'이라는 뜻이라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석별'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영화 '애수'의 배경인 영국에선 파티가 끝날 때, 그리고 매년 12월 31일 자정, 한 해가 바뀌는 순간에 이 노래를 부르며 가는 해를 아쉬워 합니다. 그러나 정작 가사 내용은 '이별의 슬픔'이 아니라 '재회의 기쁨'이랍니다. ''그래 악수하세, 내 믿음직한 친구여! 자네 손을 주게나. 우리 우정의 잔을 함께 드세, 그리운 시절을 위해서''라는 노래의 마지막 句節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원제가 'Waterloo Bridge'인 영화 '哀愁'는 1940년도 작품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개봉되는 많은 영화들이 그랬듯, 이 제목 역시 일본인들이 붙인 것을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80년 前이니 우리 동창들 거의가 태어날 무렵 쯤 되겠지요.
1차대전 당시 어느 날 밤, 런던의 워털루 다리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갑작스런 독일 전투기의 공습을 피해 급히 인근의 지하 방공호로 대피합니다. 그 渦中에 젊은 남녀의 운명적 만남이 이뤄지지요. 남자는 현역 육군 대위, 그리고 여자는 발레 공연단의 무용수입니다. 내로라하는 환상의 미녀와 미남의 만남이기도 했습니다. 두 주인공 役의 배우가 다름아닌 비비안 리와 로버트 테일러였으니까요.
서로의 이름을 알기도 전에 두 사람은 만나는 순간 깊은 사랑에 빠집니다. 결혼하기 위해 다음 날 바로 신부님을 찾아갔을 정도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아무도 말릴 수 없을 만큼 컸지요. 그러나 시간이 늦어 이 날 결혼식을 올리진 못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참으로 우연한 일들이 이들의 계획에 차질을 빚습니다. 남자 로이 크로닌이 상부의 지시를 받고 급작스레 戰場으로 떠납니다. 어쩔 수 없이 연인을 떠나보낸 여자 마이라 레스터에겐 계속 불미스런 일이 생깁니다. 신문의 戰死者 명단에서 연인의 이름을 발견하곤 실신합니다. 발레단에선 퇴출되고, 방세도 밀리는 등 생활고에 허덕이지요. 구차스런 삶이나마 이어가기 위해 결국 '밑바닥 인생'으로까지 추락합니다. 눈물겹고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손님'(?)을 물색하러 워터루 驛에 나갔다가 귀환하는 장병들 틈에서 夢寐에도 못 잊던 연인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신문기사는 誤報였고, 그는 살아있었던 거지요. 뛸듯이 기뻐하면서 로이는 다시 만난 연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갑니다. 家門도 좋지만, 엄청난 大富豪입니다. 그러나 착하고 순진한 마이라가 크나큰 심리적 갈등에 시달리는 건 不問可知요, 當然之事겠지요. 도저히 연인에게 自初至終을 고백할 수는 없는 노릇, 어느 안개 자욱한 밤, 그녀는 워털루 브리지 위를 달리던 군용 트럭에 스스로 몸을 던집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밤, 대령으로 승진한 나이 지긋한 로이는 워털루 다리 위에서 그녀를 생각하며 悔恨의 눈시울을 적십니다. 그의 손에는 처음 만나던 날 밤에 그녀가 선물했던 조그만 인형 마스고트가 쥐어져 있습니다.
이 때 '올드랭 사인'의 잔잔한 멜로디가 흐느끼듯 흐릅니다.
만약, 오래 전 그 날 밤 그 시간에 공습이 없었더라면, 그리하여 두 사람의 만남 자체가 없었더라면 어찌 됐을까요? 여자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겠지요?
그런 게 바로 미리 알진 못 해도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운명'이라는 것 아닐까요? 이 세상엔 결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주연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일약 세계적 배우가 된 후, 그 이듬해에 이 작품에 출연해 다시 한 번 眞價를 발휘했습니다. 이 때 28세 유부녀였던 그녀는 당시 33살의 유부남 로렌스 올리비에와 열렬하게 사랑하며 동거하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20년을 함께 했던 둘의 사랑이 끝난 후, 결핵과 극단적 조울증에 시달리는 등 씁쓸한 말년을 보냈지요. 겨우 54세에 삶을 마감한 건 애석한 일입니다. 두 번이나 아카데마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던 연기파입니다.
美男의 대명사로 불렸으나 불과 57세에 타계한 로버트 테일러, 그의 잘 생긴 용모는 이 영화에서도 역시 수많은 여성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여성 관객들이 손수건께나 적셨던 悲戀의 영화 '哀愁'는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훗날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쓴 로버토 셔우드가 1930년에 쓴 원작을 '쿼바디스', '마음의 행로' 등으로 유명한 머빈 르로이가 감독했습니다.
오늘은 2020년의 끝 날, 친구가 카톡방에 올렸던 '올드 랭 사인' 멜로디를 '哀愁'의 몇 장면과 함께 다시 한 번 검색해 감상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이 해의 마지막 하루, 모두들 뜻깊게 보내시고,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새 해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