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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의 창업주·회장·최고 경영자(CEO)이면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까지 겸하고 있는 폴 마르시아노는 특히 사진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1981년 창업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강렬한 흑백사진 광고가 바로 그가 만들어 낸 게스 이미지다. 그런 그에게 지금까지 만든 광고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하나를 고르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클라우디아 시퍼(89년)의 사진을 골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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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시퍼 |
직장에서건, 학교에서건, 가정에서건 사람을 키워 가는 것만큼 소중한 일도 드물 것입니다. 자기 앞가림도 벅찬 터에 주변 사람의 재능과 잠재력을 포착해 내고, 북돋워주고, 기회를 제공한다는 건 그야말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으면 힘든 일이지요.
이번 주 프런트는 무명의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와 나오미 캠벨, 그리고 16세의 카를라 브루니를 모델로 찾아내 수퍼모델과 프랑스 대통령 영부인으로까지 도약하게 한 게스(GUESS) 창업자의 ‘안목’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마침 환풍기 수리공을 하던 허각이라는 청년이 Mnet 의 ‘슈퍼스타 K2’ 쇼에서 우승하며 ‘스타 가수’로 발돋움한 게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미드 ‘로스트’의 배우 김윤진씨(4, 5면) 역시 영화 ‘쉬리’에 출연한 게 미국 ABC방송의 켈리 리 캐스팅 담당 수석부사장의 눈에 띄어 발탁된 경우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봅니다. 이런 사람들을 키운 공덕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갔을까요. 바로 게스와 Mnet, ABC방송입니다. 그들에게 성공과 부를 되돌려준 것이지요. 인생사 성공의 기본은 결국 ‘사람 키우기’인 것 같습니다. 히스 형제도 "Grow your people”이라고 조언을 해 줬습니다(8, 9면). 거꾸로 남 흠집내기에만 몰두하는 우리 정치가 빠른 속도로 사양화(15면)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주말 ‘내 주변에선 누굴 키워줄까’ 한번 생각해 보신다면 이번 호 j는 성공일 것 같습니다. 지난주 커버 스토리였던 ‘한국 청년들(힙합그룹 FM), 빌보드 정상 밟다’ 기사는 23일 토요일 하루에만 JoinsMSN에서 20만1648 클릭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j 독자 여러분의 관심에 늘 노력하는 지면으로 보답 드리려 합니다.
최훈 중앙일보 j 에디터
수퍼모델 클라우디아 시퍼와 나오미 캠벨, 그리고 카를라 브루니 프랑스 대통령 부인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폴 마르시아노(58) 게스 회장이 발탁해 스타덤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들은 1980년대 게스 광고를 찍을 때만 해도 무명이었다. 프랑스에서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막 의류사업을 시작한 마르시아노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짜낸 궁여지책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같이 탁월한 사람 보는 눈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결합돼 바로 게스 성공의 발판이 됐다. 한국을 찾은 마르시아노 회장을 22일과 23일 이틀간 만나 자수성가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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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 모델을 고집한 이유가 뭔가.
“깊은 뜻은 없다. 모델료 줄 돈이 없었을 뿐이다. 느낌이 좋은 모델이 있으면 ‘돈을 못 주는데, 거저 할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대신 광고가 실리게 될 유명 잡지들을 읊어줬다.”
그러면서 그의 비즈니스 본능이 발동했다. “신인 모델들과 계약하면서 모든 저작권은 게스에 있는걸로 했다. 그래서 어떤 광고든, 어디에서든, 영원히, 게스가 사용할 수 있다.”
마르시아노는 20년어치 광고를 모은 300쪽짜리 자료집 2권을 가져오더니 한 장씩 넘기며 말을 이어갔다.
“여기 이 여성은 파리에서 찾은 모델인데, 2년간 일감이 없었다. 우리 광고를 찍고 나서 스타가 됐다. 영화도 찍었는데, 캐리 오티스 아느냐? (캐리 오티스는 1990년 영화 ‘와일드 오키드’에서 미키 루크와 주연을 맡았다.) 아, 여기 이 여성은 안나 니콜 스미스인데 본명은 비키 스미스, 레스토랑 웨이트리스였다. 우리 아동복 모델이 된 일곱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온 그를 보고 ‘아들 말고, 저 엄마 찍자’고 했다. 2m 가까운 장신이었는데, 상대를 압도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우리 광고 찍고 나서 유명 모델 에이전시에 소개해 주고 예명도 내가 지었다.”
● 수만 장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
“1989년 클라우디아 시퍼를 찍은 이 컷. 최고 중의 최고다. 브리지트 바르도를 연상시키는 시퍼의 얼굴은 1950년대 고전 영화의 느낌을 재현해 보고 싶은 내 꿈을 이뤄 주었다. 게스 비즈니스의 미래도 바꿔놓았다.”
화제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이자 최고의 패셔니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카를라 브루니에게로 옮겨갔다.
● 브루니의 첫인상은 어땠나.
“오우~ 마담 사르코지! 1987년, 파리에서 그를 ‘발견’했을 때 그는 16세 소녀였다. 매우 클래식하고, 우아했다. 이 사진을 봐라. 감탄할 만한 얼굴, 믿기 힘든 존재감을 가지지 않았나. 그런데 (양손으로 테이블을 치며) 이 테이블처럼 납작했다. 가슴이 없었다. 이전 ‘게스 걸’은 항상 볼륨이 있었다.”
● 그럼에도 그를 택한 이유는.
“귀족스러운 풍모에 가정교육을 잘 받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지녔다. 그런 소녀가 반라(半裸)로 나이가 3배는 많은 남자와 호텔이라는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 싶었다. 광고가 뿌려지자 실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사진 속 브루니는 상의를 벗은 채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중년 남자의 무릎에 앉거나 그의 앞에 섰다. 역대 세 번째 ‘게스 걸’이었던 브루니는 게스와 두 차례 광고를 찍은 뒤 크리스찬 디올, 샤넬, 베르사체 쇼에 서게 됐다.
● 데뷔시켜준 ‘은인’인데, 그 후 브루니를 만난 적 있나.
“아니. 이제 난 비즈니스맨일 뿐이고, 그는 영부인이 됐지 않나.(웃음)”
● 안목은 타고난 건가.
“운이다. 나는 운이 좋을 뿐이다.”
● 답이 안 된다.
“굳이 꼽자면, 진짜 여성들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돈도 돈이지만, 알려지지 않은 모델을 찾은 덴 그런 이유도 있었다. 꾸며지지 않은 진실함이라고나 할까. 지금까지 모델의 95%쯤을 내가 직접 뽑았다.”
● 사람을 뽑을 때 뭘 보나.
“그에게서 꿈을 읽으려고 한다. 지금도 클라우디아 시퍼의 사진에는 꿈의 내음이 난다. 모델을 직접 만나지 않고 사진으로만 본다. 피사체와 카메라의 화학반응을 보기 위해서다. 예쁜 여성은 많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는 건 또 다른 능력이다.”
●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은 독특한 광고 이미지는 어떻게 탄생했나.
“창업 당시 내가 동경하던 광고가 2개 있었다. 랄프 로렌과 캘빈 클라인 진스다. 두 광고는 한 사람이 만들었다. 브루스 웨버라는 최고의 실력자였다. 뉴욕으로 그를 찾아가 게스 광고를 맡아 달라고 제안했다. 그는 ‘좋은데, 나는 매우 비싸다’고 했다. 내가 돈이 넉넉지 않다고 하자 ‘그럼 함께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거절당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광고를 만들기로 했다. 그와 모든 걸, 정반대로 하는 게 목표였다. 차별화를 위해. 그래서 흑백을 고집했다. 그리고 또 다른 혁신을 시도했다.”
● 뭔가.
“광고에 우리 상품을 넣지 않았다. 모델들이 걸친 속옷, 겉옷, 액세서리, 어느 하나 게스 상품이 없다. 당장 형제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광고는 이미지라고 주장하며 설득했다. 패션은 왔다가 가지만, 이미지는 사라지지 않는다. 난 청바지나 셔츠, 재킷을 팔려는 게 아니다. 꿈을 팔고,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게스 광고는 상업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르시아노는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인 클리오광고제에서 여러 차례 수상하며 작품성도 인정받았다.
● 29년간 이미지가 한결같은데.
“상품을 넣지 않고, 흑백으로 찍으니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timeless) 이미지가 됐다. 29년치 광고를 놓고 제작연도를 가리면 어느 해 광고인지 맞힐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러니 언제 봐도 촌스럽지 않다. 이런 이미지 광고 덕분에 청바지를 패션 상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게스가 등장하기 전에 청바지는 ‘편한 바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게스는 여성의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디자인을 선보여 섹시함과 화려함을 뽐내고 싶은 여성의 욕구를 읽어냈다.
● 게스가 업계에 가져온 혁신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81년 미국에 ‘스톤워시 청바지’(일명 스노 진)를 처음 소개했다. 청바지를 워싱할 때 작은 돌을 넣어 부분적으로 탈색시키는 기법이다. 업자들은 미쳤느냐, 왜 그걸 해야 하냐, 기계 망가진다며 처음엔 반대했다. 결국 돌을 주머니에 넣어 기계가 상하는 것을 막는 타협점을 찾아 제품이 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 히트작은 ‘스리 지퍼 청바지’였다. 배와 양쪽 발목, 이렇게 세 곳에 지퍼를 달아 ‘넣고 꿰맨 듯이’ 몸에 딱 붙는 바지였다. 이렇게 타이트한 청바지는 처음 나왔다. 서서는 아예 입을 수도 없고, 바닥에 드러누워야만 지퍼를 겨우 채울 수 있었다. 매장 바닥에 누워 지퍼를 올리는 여성들의 모습이 방송을 타며 화제가 됐다. 1000만 장을 팔았다.”
마르시아노 회장은 유대계로 모로코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성장했고,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고향 마르세유의 디스코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청바지 가게에서 6년간 점원으로 일한 경험이 게스를 창업한 발판이 됐다. 게스라는 브랜드명은 네 형제가 차를 타고 지나가다 맥도날드의 옥외광고에서 ‘guess’라는 단어를 보고 즉흥적으로 정했다고 한다. ‘뭐게(guess what?)’라는 말을 연상시켜 호기심을 불러오고, 어느 나라에서든 부르기 쉽다는 이유였다. 30년 가까이 미국 생활을 했지만, 그의 영어엔 아직도 프랑스식 억양이 남아 있다.
● 다양한 문화적 배경도 일에 도움을 줬겠다.
“무엇에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을 줬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 떨어져도 난 살길을 찾을 수 있다. 도전을 즐기는 게 아니라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모든 걸 잃는다 해도 내일 당장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다시 테이블을 닦거나 설거지를 해야 한다면, 할 수 있다. 하루 세 끼 먹고, 침대 하나에서 자는 건 누구나 똑같지 않은가. 주민이 8000명밖에 안 되는 작은 어촌 출신인 내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며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축복을 받았다.”
● 당신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다. 꿈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프랑스에서 올 때) 우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래서 잃을 것도 없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누구나 꿈꿀 수 있다. 다만 꿈의 한계를 어디까지 설정하는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