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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 (소설가, 전 고려대 세종캠퍼스 문화창의학부 교수)
아직 제대로 된 한국환경생태사조차 출간되지 않은 한국 학계의 현실에서 (사)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 위원회 회원 소설가 9인이 힘을 합쳐 산업화 이전의 한국환경생태사를 소설로 썼다. ‘소설로 읽는 한국문화사’ 제4집 1권 『소설로 읽는 환경생태사1 : 산업화 이전편』에는 신작 중편소설 3편, 신작 단편소설 6편을 싣고 있다. 신라 시대 해양 오염 사건을 다루고 있는, 김찬기의 중편소설 「핏빛 바다」는 알천 주변으로 몰려들어 살게 된 백성들의 생활 하수가 늘어나 생긴 인재(人災)임을 주장한다. 이진의 「매 나간다」는 순수한 생업이었던 매사냥이 국가적 통제를 받으면서 어떤 식으로 변모해 가는지, 원나라의 내정간섭이 백성들에겐 어떤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그런 부담들이 고려 후기 민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 중건과 관련한 금강송 벌채를 두고 왕권을 대표하는 대원군과 신권을 대표하는 김병기의 대립 관계를 서사구조로 하고 있는, 엄광용의 「땅의 아픔, 하늘의 슬픔」은 소나무 남벌을 주제로 한 환경의 파괴를 다루고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전개간의 성행으로 산림은 황폐해졌는데 일제가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가면서 더욱 산림은 황폐해졌다고, 묘하고 있는 정수남의 「산촌별곡」은 조선시대 화전 개간으로 인한 숲의 황폐화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구한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김현주의 「어둠의 연대기」 는 구한말 조선의 개항으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을 묘사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의 금광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는, 유시연의 중편소설 「정선 금광」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강원도 정선 산골에서 금을 채굴하기 위해 바위산을 허물고 나무를 베어내고, 다이너마이트로 바위산을 지속적으로 폭파하는 동안 야생 동물이 멸종되었고, 지하수와 지표면이 오염되어 갔다고 묘사하고 있다. 조선 호랑이 절멸의 전말을 서사구조로 하고 있는, 하아무의 중편소설 「범 나려온다」는 조선총독부와 경찰 등의 도움을 받아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지리산으로 들어간 멸호군이 조선 호랑이를 죽였으나, 멸호군도 큰 피해를 입은 사실을 묘사하고 있다. 1920~1930년대 당시 조선의 화장품 계를 풍미하며 여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박가분’을 소재로 한, 김주성의 단편소설 「곽씨분의 추억」은 1920~1930년대 화장품의 납 성분이 화장을 일상으로 하는 업종의 여인들에게 피부 괴사, 정신 이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켜 사회문제가 되었던 ‘납 중독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한국인 피폭자 문제를 다루고 있는, 김민주의 단편소설 「나는 히바쿠샤」는 ‘히바쿠샤’(被爆者)는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을 가리키며, ‘히바쿠샤 증명서’가 있어야 국가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집필 작가 소개
김찬기 199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애기소나무」 당선.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 졸업 및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과 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문학박사). 소설집 『달마시안을 한 번 보러와 봐』, 연구서 『한국 근대문학과 전통』ㆍ『한국 근대소설의 형성과 전(傳)』, 역서 『고등소학독본』, 등 출간. 전 한경대학교 교무처장. 현 한경대학교 교수. 현대소설학회 회장.
이진 2001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겨울날의 우화」 당선. 2023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에 단편소설 「전업자녀 탈출기」 발표. 전남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졸업 및 광주여대 대학원 문예창작과와 목포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소설집 『소설의 유령』‧ 『창』ㆍ『알레그로 마에스토소』ㆍ『꽁지를 위한 방법서설』, 장편소설 『하늘 꽃 한송이, 너는』ㆍ『허균, 불의 향기』 등 출간. 전 광주여대 교수.
정수남 198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접목」 당선. 국학대(고려대 전신) 국문학과 졸업. 한국소설문학상 수상. 창작집 『분실시대』ㆍ『별은 한낮에 빛나지 않는다』ㆍ『타성의 새』ㆍ『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ㆍ『시계탑이 있는 풍경』ㆍ『길에서, 길을 보다』ㆍ『앉지 못하는 새』, 장편소설 『행복아파트 사람들』, 시집 『병상일기』 등 출간. 현 일산문학학교 대표.
엄광용 1990년 《한국문학》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벽속의 새」 당선. 1994년 삼성문예상 장편동화 부문 수상. 류주현 문학상 수상.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및 단국대 대학원 석사과정 사학과 졸업과 박사과정 사학과 수료. 소설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중편소설 『세종대왕』 ㆍ 『이성계』 , 장편소설 『황제수염』ㆍ『사냥꾼들』ㆍ『사라진 금오신화』ㆍ『천년의 비밀』, 대하소설 『광개토태왕 담덕』 10권, 동화집 『초롱이가 꿈꾸는 나라』 등 출간. 현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연구원.
김현주 1998년 계간 《문학과 사회》 단편소설 「미완의 도형」 당선. 송순문학상 수상. 광주일보문학상 수상. 광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과 및 동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소설집 『물속의 정원사』‧『메리 골드』 출간, 장편소설 『붉은 모란주머니』, 평전 『지석영 평전』 출간. 현 광주전남작가회의 소설분과위원회 분과장.
유시연 2003년 계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당신의 장미」 당선. 현진건문학상 수상. 정선아리랑문학상 수상.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소설집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ㆍ『오후 4시의 기억』ㆍ『달의 호수』ㆍ『쓸쓸하고도 찬란한』,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ㆍ『바우덕이전』ㆍ『공녀, 난아』ㆍ『벽시계가 멈추었을 때』ㆍ『허준』 등 출간. 현 소설로 읽는 한국문화사 편찬위원회 간사.
하아무 2007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마우쓰 브리더」 당선. 2008년 MBC창작동화공모대상 수상. 남명문학상 수상. 소설집 『마우스브리더』ㆍ『푸른 눈썹』ㆍ『황새』ㆍ『하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동화집 『두꺼비 대작전』ㆍ『일어선 용, 날아오르다』 등 출간. 현 경상남도 하동군 박경리문학관 사무국장.
김주성 19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해후」 당선. 삼성문학상 수상. 황순원문학연구상 수상.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 문예창작과와 경희대 대학원 박사과정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소설집 『어느 똥개의 여름』, 장편소설 『사랑해 수니야』, 대표작품집 『불울음』 출간.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
김민주 200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탱고」 당선. 201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신의 자장가」 당선. 김만중 문학상(은상) 수상. 천강문학상 수상. 대구가톨릭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및 상명대학교 문화기술대학원 소설창작과 졸업. 소설집 『화이트 밸런스』, 공동창작집 『쓰다 참, 사랑』, 장편소설 『최무선: 하늘을 나는 불』 출간.
책 속으로
음험한 기색이 한껏 묻어 있는 김경선의 목소리가 정사당 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고, 머지않아 신령스러운 동쪽 바다까지 핏빛으로 변할 것이라는 파진찬의 말에 정사당 회의에 참석한 대소 신료들은 다시 다시 걷잡을 수 없는 불안 속으로 휩싸여 들며 몹시 초조한 기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하오! 머지않아 신령한 동쪽 바다까지 핏빛으로 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변고가 아니겠소. 그렇다면 각간의 말씀대로 사직이라도 무너뜨릴 그 무시무시한 변고의 실체는 낱낱이 밝혀야 하지 않겠나이까.”
-p. 34.
원나라 황제에게 바칠 공물로 선발된 매는 장군뿐이었다. 자신의 매가 최고라며 서로 나서서 우겨댔지만 해동청이 아니라거나 나이가 들었다거나 하는 이유로 거절되었다. 아버지의 은수리 역시 보라매가 아니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보라매 시절 안 지나온 매가 여기 어디 있갔슴요? 사냥 기술 뛰어나믄 된 거 아니래요?”
아버지가 따져 물었으나 관리는 고개를 저었다. 원 황제 쿠빌라이 칸이 원하는 건 고려의 해동청 보라매뿐이라는 거였다.
--p.74.
그런데 정작 훙인군과 이경하는 스스로 나서서 죄를 달게 받겠다고 했다. 앞으로 국유림에서 더 이상 목재가 나올 곳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궁전 기둥감으로 거목이 필요하였으므로 이미 왕릉의 아름드리 금강송까지 베어다 적재해 놓았으나 모두 불타버리고 말았으니, 실로 그럴 법도 한 일이었다.
“지금까지 벌목한 것은 국유림에서 가져온 것이니, 이제부터는 산 주인의 허락 여부를 상관하지 말고 사유림에서도 벌목하도록 하시오. 여기 삼정승과 대신들이 있지만, 누구의 선영이든 가리지 말고 목재가 될 만한 금강송이 있으면 남벌해도 죄를 묻지 않을 것이오.”
대원군은 문무 대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p.91.
산이 아침부터 또 울기 시작했다. 벌목꾼들이 일찍부터 톱질과 도끼질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잠시 뒤 그들이 외치는 소리와 함께 잘린 나무토막들이 산자락을 타고 굴러 내려가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판돌은 얼굴을 찡그렸다. 나무가 찍히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적마다 자기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아프고 저렸다. 신은 우리에게 산을 주었고, 산은 우리에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그러나 그걸 망각한 채 착취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의 대가 또한 주는 게 산이라고 했다.
-p.109.
기하급수적으로 환자가 늘어났다. 어린아이들이 설사 끝에 피똥을 싸면서 죽었다. 몸이 부실한 자와 노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탈진해서 죽었다. 사방에 독한 냄새가 번졌다. 구토와 대변 냄새로 인해 성한 사람들도 거의 환자가 되어갔다. 그들은 오직 물만 마셨다. 그러나 시전 안에 있는 오염된 우물물은 마실수록 더 설사를 부추길 뿐이었다. 고열이 계속되어 혼미해진 환자들은 해골처럼 뼈만 남더니 결국엔 죽었다. 기이한 돌림병이었다.
-p.139.
다이너마이트 터지는 소리가 천지를 울렸다. 야생 짐승들이 놀라 달아나고 나무가 베어진 산 중턱은 벌거숭이가 되었다. 산비탈에 감자와 옥수수 농사를 지어먹으며 고즈넉한 삶을 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바위산이 무너지고 산허리가 휑하니 파헤쳐지는 광경은 천지가 진동할 놀라움이었다. 남자는 사막의 풍경을 연상했다. 풀도 나무도 없는, 모래 먼지가 쌓여 산을 이루는 사막의 건조한 광경이 무너진 바위산과 겹쳐졌다.
외지에서 들어온 광부들은 강변에 천막을 치고 살거나 형편이 좀 나은 사람들은 여관방을 얻어 합숙을 했다.
-p.168.
불현듯 무언가 큰 동물이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신에 소름이 쭉 끼치고 식은땀이 흘렀다. 천술은 비록 약초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이름난 지리산 사냥꾼이었다. 지금도 집안 사정을 아는 이들은 천술에게 한마디씩 하곤 했다. 사냥꾼의 피가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을 텐데 어찌 참고 사느냐는 것이다. 사냥꾼들은 일쑤 농반진반으로 지금이라도 자기들과 함께 다니자고 구슬리곤 했다. 어릴 적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이 있고, 정말 타고난 피가 있어선지 동물에 대한 그의 감각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p.234.
곽보루 상회 같은 거상이 어떻게 이십 년 동안 독이 든 분을 만들어 팔아올 수 있었을까. 그걸 얼굴에 발라온 여인네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의 배를 불려줬던 게 아닌가. 체질마다 다르고 얼마나 많이 바르느냐도 문제겠지만 원인을 모른 채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인네들이 얼굴이 퍼렇게 썩고 정신 이상까지 생기는 부작용으로 고통받았을 것인가. 이 자들이야말로 간밤의 강도들보다 윗길의 악한이 아닌가. 이 모든 사실을 깨닫기엔 아직 세상은 어둡고 사람들은 몽매했다.
-p.305.
다리 위를 지나가던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눈부신 빛이 몇 초 동안 그들의 머리 위에 골고루 내려앉았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본 듯 입을 벌리고 그 아름다운 빛과 그 빛이 뿜어내는 눈부심에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다시 0.1초보다 빠르게, 빛을 보며 환희했던 눈동자와 동공, 홍채와 망막, 각막과 시신경 모두가 저주받듯 녹아내렸다. 4천 도의 열 폭풍이었다.
진공 상태 같은 몇 초가 지나자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공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p.312.
출판사 서평
김찬기의 신작 중편소설 「핏빛 바다」는 신라 시대 해양 오염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찬 김개원은 각간 김경선과 파진찬 박유청의 무리가 도모하는 모반의 실체를 알지 못하여 고민에 빠진다. 그런 가운데 작년 초가을부터 큰물이 졌고, 흰 기운이 하늘에 뻗쳐 가시질 않았는가 하면 요성(妖星)이 동쪽에 나타나고, 알천의 냇물이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에 군신들이 술렁이기 시작하였고, 한여름에 이르자 김경선을 우두머리로 삼는 불온한 무리는 알천 냇물은 물론이거니와 머지않아 선대 왕이 수호하는 동쪽 바다까지 핏빛으로 물들 것이라는 점을 들어 왕실과 김개원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귀족들의 정사당 회의가 열리고 각간 김경선의 무리와 황실을 대변하는 이찬 김개원 간의 쟁투가 시작된다. 이 자리에서 각간의 무리는 알천 냇물의 변고를 하늘의 변고로 규정하며 황실을 몰아쳤고, 이에 이찬 김개원과 이찬을 돕는 대나마 김춘성은 알천 냇물의 변고는 하늘이 조화를 부린 변고가 아닌, 알천 주변으로 몰려들어 살게 된 백성들의 생활 하수가 늘어나 생긴 인재(人災)임을 주장한다. 결국 대나마 김춘성은 알천, 그리고 동쪽 바다의 바닷물까지 핏빛으로 물든 변고를 황토를 뿌려 해결한다.
이진의 신작 단편소설 「매 나간다」는 고려 시대 매사냥을 다루고 있다. 「매 나간다」는 고려 말기 응방도감이 설치되던 시기의 민간 매사냥 이야기이다. 순수한 생업이었던 매사냥이 국가적 통제를 받으면서 어떤 식으로 변모해 가는지, 원나라의 내정간섭이 백성들에겐 어떤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그런 부담들이 고려 후기 민간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보여주고 있다. 매사냥에 관한 몽골의 영향은 관련 용어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사냥매로서의 성숙도에 따라 송골매니 보라매니 지칭하거나, 매를 길들여 사냥하는 전문 사냥꾼을 가리키는 수할치, 매의 꽁지깃에 다는 표식인 시치미 등의 단어들이 그것이다.
엄광용의 신작 단편소설 「땅의 아픔, 하늘의 슬픔」은 소나무 남벌을 주제로 한 환경파괴를 위주로 다루고 있다. 조선 말기의 고종 재위 시절, 흥선대원군이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경복궁 중건 사업을 강압으로 밀어붙이던 때를 배경으로 하는 「땅의 아픔, 하늘의 슬픔」은 경복궁 중건과 관련한 금강송 벌채를 두고 왕권을 대표하는 대원군과 신권을 대표하는 김병기의 대립 관계를 다루고 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 사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면서 전국의 소나무들이 무작스럽게 벌채되었다. 조선 팔도의 산들이 소나무 벌채로 벌거숭이 산이 될 정도였다. 벌채만 하고 조림사업은 등한시하여 벌거숭이 산은 일제강점기에도 그대로 있었고, 백성들이 기아에 허덕이면서 송기떡으로 연명하게 되자 어린 소나무의 수난은 계속되었다. 게다가 일본에서 들어온 소나무재선충으로 그나마 보존되던 금강송마저 이파리가 적갈색으로 변해 고사목이 되었다.
정수남의 신작 단편소설 「산촌별곡」은 조선시대 화전 개간으로 인한 숲의 황폐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화전개간의 성행으로 산림은 황폐해졌는데 일제가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가면서 더욱 산림은 황폐해졌다. 그 개발 속도가 더욱 빠르게 번져 울창한 숲으로 우거졌던 산이 금방 벌거숭이가 되었다. 아침부터 들려오는 톱질과 도끼 소리를 더는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판돌과 병달, 상출은 자신들이 어떤 특단의 조치를 실행해야겠다고 작심했다. 벌목꾼을 관리하는 일본인 야마모토의 창고를 급습하여 도끼와 톱을 없애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세 사람의 행적을 끝으로 소설은 끝난다.
김현주의 신작 단편소설 「어둠의 연대기」는 조선의 개항으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구한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한 「어둠의 연대기」의 주인물은 광화문 시전 유만득으로, 그의 가족은 모두 장티푸스로 죽게 된다. 그러나 젖먹이였던 막내딸 영희는 천안 외가에서 천덕꾸러기로 성장하다가, 외삼촌에 의해 이웃 마을 늙은 진사의 첩이 되었다. 그러던 중 진사 영감이 급사하자 다시 외삼촌의 집으로 쫓겨났다. 24세가 된 영희는 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서울 용산의 한 상점에서 잡일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빚을 지게 된다. 이들의 거짓말과 경제적 착취를 피하려고 달아난 영희는 결국 일본인 유곽의 창녀가 되었고, 매독에 걸려 짧은 일생을 마쳤다. 개항에서 일제강점기로 들어서면서, 조선 백성들은 속수무책 전염병에 시달렸으나 아무런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시연의 신작 중편소설 「정선 금광」은 일제 강점기의 금광 개발로 인한 환경파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선군 동면(현재 화암면) 화암동굴, 몰운리, 한치, 광대곡에 금광이 있었다. 광산업자는 금을 채굴하여 신작로 길을 통해 운반해 갔다. 일제는 금을 채굴하기 위해 바위산을 허물고 나무를 베어냈다. 다이너마이트로 바위산을 지속적으로 폭파하는 동안 야생 짐승이 멸종되었고, 지하수와 지표면이 오염되어 갔다. 물고기와 온갖 생물이 숨을 쉬던 강물은 뿌옇게 변해버렸고 그 강에 기대어 살던 사람들은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던 일을 그만두고 금광 주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사금을 채취하거나 술을 빚어 팔거나 막노동으로 품팔이를 하며 살아갔다.
하아무의 신작 중편소설 「범 나려온다」는 조선 호랑이 절멸사를 다루고 있다. 1917년 일본인 타다사부로가 정호군(征虎軍)을 조직해 조선에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 이때 사냥한 호랑이를 시식하는 행사를 경성의 조선호텔과 도쿄의 제국 호텔에서 열었다. 이를 본 많은 일본인들이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사무라이 집안의 후예인 유우타와 쇼타 형제도 추밀원의 후원을 받아 2년 후 멸호군(滅虎軍)을 만들어 조선으로 갔다. 조선총독부와 경찰 등의 도움을 받아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혹한과 자신들의 미숙함 때문에 어려움을 겪던 멸호군은 조선 포수들의 도움을 받아 수범 왕대를 쫓았다. 크고 사납지만 젊고 경험이 부족한 왕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암범 달무리 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반면 멸호군도 큰 피해를 입었다. 사무라이의 후손으로서 조선 호랑이를 직접 사냥해 일본인의 기개를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멸호군의 목표는 실패로 돌아갔다.
김주성의 신작 단편소설 「곽씨분의 추억」은 1920~1930년대 화장품의 납 성분이 화장을 일상으로 하는 업종의 여인들에게 피부 괴사, 정신 이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켜 사회문제가 되었던 ‘박가분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곽씨분의 추억」에 등장하는 ‘곽씨분’은 1920~1930년대 당시 조선의 화장품 계를 풍미하며 여인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박가분’을 모델로 하였다. ‘박가분’뿐 아니라 ‘서가분’, ‘장가분’ 등 당시 유통되던 여러 분(粉)들은 모두 납 조각을 식초로 처리해 얻은 ‘납꽃’이라는 하얀 가루에 조개껍질 가루, 칡가루, 쌀가루, 보릿가루를 섞어 만들었다. 이 납 성분이 화장을 일상으로 하는 업종의 여인들에게 피부 괴사, 정신 이상 등의 부작용을 일으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는 판매 급감으로 이어졌는데 특히 인기가 높았던 ‘박가분’의 타격이 커서 1937년 폐업하기에 이르렀다.
김민주의 신작 단편소설 「나는 히바쿠샤」는 일제 강점기 원자폭탄 한국인 피폭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히바쿠샤’(被爆者)는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을 가리키며, ‘히바쿠샤 증명서’가 있어야 국가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원폭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남았다고 해서 모두 히바쿠샤가 되지는 못했다. 방사능 피폭의 후유증은 단시간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고, 수년, 혹은 수십 년, 혹은 수 대에 걸친 유전으로까지 진행되었지만, 그것을 증명하기는 요원했다. 설사 ‘히바쿠샤 증명서’를 발급받았다고 해서 병이 완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고통 속에 놓여 있고, 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그 고통은 현재진행형으로 자녀와 손자 대로 이어지고 있다. 핵은 유전자 변형은 물론, DNA를 파괴하여, 더 이상 세포 재생을 막아 영원히 치유 불가능 상태로 만든다.
기본정보
ISBN 9791189171810 | ||
발행(출시)일자 2024년 12월 31일 | ||
쪽수 338쪽 | ||
크기 152 * 225 mm판형알림 | ||
총권수 1권 | ||
시리즈명 소설로 읽는 한국문화사 |
소설로 읽는 한국환경생태사2: 산업화 이후편
소설로 읽는 한국문화사 제4집
김종성 , 정라헬 , 김세인 , 박숙희 , 정우련 , 배명희 , 채희문 , 마린 , 은미희 지음
서연비람 · 2024년 12월 31일
추천사
김종성 (소설가, 전 고려대 세종캠퍼스 문화창의학부 교수)
아직 제대로 된 한국환경생태사조차 출간되지 않은 한국 학계의 현실에서 (사) 한국작가회의 소설분과 위원회 회원 소설가 9인이 힘을 합쳐 산업화 이후의 한국환경생태사를 소설로 썼다. ‘소설로 읽는 한국문화사’ 제4집 2권 『소설로 읽는 환경생태사2 : 산업화 이후편』에는 신작 중편소설 2편, 신작 단편소설 7편을 싣고 있다. 김종성의 「불의 협곡」은 일신 그룹 청계제련소가 000 000 청계협곡을 파괴하고, 그곳에서 대대로 삶을 영위해 왔던 원주민 사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해 버려 원주민들에게 고향이라는 이름의 장소를 상실하는 아픔을 안겨주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라헬의 「온산향가」는 국책 사업에 고향을 내어준 온산면 이주민의 처지와 환경오염 방지를 소홀히 하여 온산병을 야기했던 국가와 기업의 행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김세인의 「둥지 잃은 새」는 천수만의 간척지 조성으로 인해 바다를 잃어버린, 근원적인 고향을 상실한 원주민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낙동강 페놀 수질오염 사건을 다루고 있는, 정우련의 「은어가 사는 강물」은 그 최대의 피해자는 임산부들이었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배명희의 「너무 늦지 않게」는 이 땅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땅이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자연과 생명을 지키는 길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다. 채희문의 「무지개다리 건너는 법」은 의료폐기물에 관한 틀에 박힌 규정이나 의무가 따르는 시행 방식에 관해 쓴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버려지는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합당한 태도를 고민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밀양 송전탑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린의 「풀잎들」은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을 동원하여 농성장을 없애버리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한다고 해서, 고향 땅에서 내몰리고 공동체가 붕괴하며, 국가로부터 소외당한 쓰라린 경험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지리산 일대에서 건설 중인 골프장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은미희의 「마고할미가 울었어」는 기후변화로 인해 갖가지 재앙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 골프장 건설 등 생태계의 파괴는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머리말
1. 불의 협곡-불의 땅 3: 00제련소 환경문제 - 김종성
2. 온산향가: 온산공단 환경오염 - 정라헬
3. 둥지 잃은 새:천수만간척사업 - 김세인
4. 곡지 씨의 개나리:원자력발전소 방사능오염 - 박숙희
5. 은어가 사는 강물: 낙동강 페놀 수질오염 - 정우련
6. 너무 늦지 않게:새만금간척 개발 - 배명희
7. 무지개다리 건너는 법:의료 폐기물 - 채희문
8. 풀잎들:밀양송전탑 사건 - 마린
9. 마고할미가 울었어:골프장 환경오염 사건 - 은미희
작품 해설 - 김종성
집필 작가 소개
집필 작가 소개
김종성 1984년 방송대문학상 단편소설 「괴탄」 당선. 1986년 월간 《동서문학》 신인문학상 중편소설 「검은 땅 비탈 위」 당선. 2006년 『연리지가 있는 풍경』으로 경희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 2024년 『가야를 찾아서』 로 이병주국제문학상 대상 수상.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국문학과 졸업 및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와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연작소설집 『탄(炭)』ㆍ 『마을』ㆍ『가야를 찾아서』, 중‧단편소설집 『연리지가 있는 풍경』ㆍ『말 없는 놀이꾼들』ㆍ『금지된 문』 등 출간. 연구서 『한국환경생태소설연구』 ㆍ『글쓰기의 원리와 방법』 등 출간. 전 경희대 국문과 겸임교수 및 고려대 세종캠퍼스 문화창의학부 교수.
정라헬 2013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발재봉틀」 당선. 신라문학대상 소설 부문 수상. 경성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아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졸업. 동의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김세인 1997년 계간 《21세기문학》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옥탑방」 당선. 숭의여대 문예창작과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및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류주현문학상 향토문학 부문 수상. 소설집 『무녀리』ㆍ『동숙의 노래』, 장편소설 『오, 탁구!』ㆍ『어린 새들이 울고 있다』 출간. 전 숭의여대 및 장안대 강사. 현 세종시평생교육학습관 강사.
박숙희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날개가 아니다」 당선. 부산대학교 인문대학 사회학과 졸업. 단편소설집 『오이와 바이올린』, 장편소설 『쾌활한 광기』· 『키스를 찾아서』· 『이기적인 유전자』· 『사르트르는 세 명의 여자가 필요했다』·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다』 등 출간. 산문집 『너도 예술가』 출간. 전 도서출판 풀빛 편집장.
정우련 1996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서른네 살의 다비장」 당선. 부산소설문학상⸱부산작가상 수상. 부산여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및 경성대 대학원 박사과정 국문학과 수료. 소설집 『빈집』ㆍ『팔팔 끓고 나서 4분간』, 산문집 『구텐탁, 동백아가씨』 등 출간.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
배명희 2006년 중앙일보 중앙신인상 단편소설 「와인의 눈물」 당선. 영남대학교 생활과학대학식품영양학과 졸업 및 한양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 식품영양학과 졸업. 소설집 『와인의 눈물』‧ 『엄마의 정원』 등 출간.
채희문 1987년 계간 《세계의 문학》에 중편소설 「철탑(鐵塔)」을 발표. 198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병원」 당선. 서라벌 문학상 신인상 수상. 황순원 작가상 수상.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창작집 『철탑』ㆍ『검은 양복』, 중편소설집 『흥선 대원군』, 장편소설 『흑치』ㆍ『슬픈 시베리아』, 대표작품선 『바람도 때론 슬프다』 출간. 전 편집회사 랜스 에디팅 대표.
마린 2007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나쁜 꿈」 당선. 인하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 졸업. 소설집 『아메리칸 앨리』 등 출간.
은미희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다시 나는 새」 당선. 2001년 삼성문학상 장편소설 『비둘기집 사람들』 당선. 광주대학교 인문사회대학 문예창작학과 및 같은 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신대 한국어교원학과 박사과정 수학. 소설집 『만두 빚는 여자』, 장편소설 『소수의 사랑』ㆍ『바람의 노래』ㆍ『18세, 첫경험』ㆍ『바람남자 나무여자』ㆍ『나비야 나비야』ㆍ『흑치마 사다코』 등 출간. 전 동신대 강사.
책 속으로
석양이 뉘엿뉘엿 염화산 기슭을 누런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슬레이트로 지붕을 인 연립주택들이 참나무와 잣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던 산비탈에 코를 박고 서 있었다.
청계제련소의 굴뚝은 하얀 수증기를 끊임없이 대기 속으로 뿜어 올렸다. 아황산가스를 머금은 수증기였다. 대기와 만난 수증기는 눈송이로 변했다. 알루미늄처럼 하얀 빛의 파이프라인 위로 눈송이가 떨어졌다. 동그랗고 기다란 파이프라인이 000 위를 가로질러 갔다. 마치 그것은 거대한 히드라가 꿈틀거리며 기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눈송이가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ooo이 이고 있는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지 않는데, 청계제련소가 이고 있는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일신눈’이었다.
줄기차게 차창에 따라붙던 청계제련소 굴뚝이 뒤로 물러서자, 눈송이가 사라졌다.
-pp. 50-51
남자의 호적에 엄연히 올려져 있는 그의 이름은 좀상날이었다. 그는 표정이 굳어서 더 괴이해진 얼굴로 바다를 바라봤다. 하다못해 조상날이면 좀 나은 편에 속했을려나. 여기 살면서 그의 이름이 공적으로 쓰일 일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했을까. 이장이 가지고 왔던 누런 종이에도 거주자 이름으로 그렇게 적혔다.
“이주할 덴 정했는가?”
이장은 이주 보상비와 관련해서 현 주거지에 살고 있는 사람을 대조하러 왔던 것이다. 정부가 온산면민을 집단 이주시킬 계획을 발표했던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p.122
“제가 바라는 것은 보상보다 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갑상샘암을 앓고 있는 저와 치매에 걸린 제 아내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우리 부부에게는 자식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처지에 보상받는다고 한들 뭐가 좋겠습니까. 단지 저는 이리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사는 미장군 주민들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대처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방사능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누구보다 처절하게 겪은 우리 부부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마지막 의무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p.174
대구의 주부들과 시민단체의 불매운동뿐 아니라 유통업계까지 나서서 구산 제품불매운동을 벌이는 등 사상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사회는 분노할 줄만 알았지 정작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일에는 인색했다. 은옥은 페놀아줌마라고 불리며 임산부들의 피해보상을 위해 싸웠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은 그 노도와 같은 분노를 서서히 잊어버리고 이들을 외면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페놀아줌마들의 투쟁은 재판부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돈을 밝힌다,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한다고 2차 가해를 했다.
-p.197
부안, 김제, 옥구, 군산 일대의 해안가 지역민들에게 보상금은 불가항력으로 다가온 재난이었다. 보상금은 마을을 둘로 쪼개버렸다. 어류와 조개를 잡는 어촌계 어민과 김 양식자들에게 나온 보상금 액수가 차이 났다. 어촌계는 김 양식업자들에게 보상금 절반을 어촌계에 넘기라 요구했고, 김 양식자들이 거절하며 마을은 냉랭한 분위기가 돌았다. 보상금 총액은 양쪽이 비슷했는데, 어촌계 가구는 김 양식 가구보다 몇 배가 많아 가구별로 보상금을 나누면 액수가 형편없이 적었다. 사람들은 애초 김 양식을 하라고 바다를 내준 게 어촌계이니 보상금을 공평하게 나누자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
-pp. 206-207
오늘을 넘기게 되면 황비홍이 죽은 지 사흘이 되는 셈이었다. 날이 저물자 황씨는 마음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썩은 내가 사방에 진동하는 것도 문제였으나 벌써 부대 자루 틈새로 꾸물꾸물 구더기가 끓는 게 큰 문제였다. 구더기가 끓으니 그걸 먹이로 삼는 작은 새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 부대 자루를 집안에 둘 수 없었기 때문에 황씨는 경운기를 몰아 고물 하치장으로 향했다. 그나마 고물 하치장에서는 썩은 내가 진동하더라도 누가 나서서 시비를 걸진 않을 테니까.
-pp. 239-240
움막과 텐트는 삽시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시내 병원으로 실려 갔고 온몸에 기운이 빠진 노인들은 풀숲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망연히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날 하루에 밀양의 4개 농성장은 일시에 철거되었다. 이날 경찰은 약 2,500명, 한전 직원 등 공무원은 250여 명이 동원되었다.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에 동원된 인원이 38만여 명에 이르렀고 그들의 숙박비는 99억여 원에 달했다. 한전에서는 ‘밀양 주민의 대승적 협조로 행정대집행이 완료되었다’라는 보도 자료를 내보냈다.
-p.260
경훈의 말을 들으면 골프장만 들어오면 금방이라도 도시의 어느 정돈되고 잘 꾸며진 공원처럼 마을이 변할 것 같았다. 하지만 미현은 경훈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림처럼 잘 다듬어진 공원 같은 골프장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적어도 궁벽한 이곳까지 이동할 수 있는 수단과, 그린피를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 또 밥을 먹고, 고가의 골프 세트를 사고, 번듯하게 차려입고, 그리고, 자신을 드러낼 그 무언가로 치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을 위한 곳이 그곳이었다.
-p.289
출판사 서평
김종성의 신작 중편소설 「불의 협곡-불의 땅 3」은 「붉은 숲-불의 땅 1」(《내일을 여는 작가》 2023년 봄호 발표)ㆍ「붉은 바다-불의 땅 2」(《경기작가》2022년 12월 발표)로 구성된 ‘불의 땅’ 연작의 세 번째 작품으로 일신 그룹 청계제련소가 0000000000000하고, 청계협곡에서 대대로 삶을 영위해 왔던 원주민 사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해 버려 원주민들에게 고향이라는 이름의 장소를 상실하는 아픔을 안겨주는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0000을 제련해 0000을 생산하는 일신 그룹 청계제련소는 환피아와 관피아의 비호 속에 포섭, 배제, 강압, 불법, 편법 등의 다각적인 방법으로 제1공장, 제2공장, 제3공장을 건설해 청계협곡을 식민화하고 청계면 주민을 종속화해 청계협곡에 위계구조로 이루어진 ‘일신 왕국’을 세웠다. 청계제련소가 배출하는 폐수에 섞여 있는 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주민들에게 이타이이타이병을 안겨주었고, 청계제련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황산가스는 청계협곡의 생태계를 초토화 시켜 청계협곡을 불모의 땅으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지에서 살길을 찾아 이주해 온 대다수의 청계면 주민들은 생존권 보장을 내세우며 청계제련소를 옹위하는 데 앞장선다, 중편소설 「붉은 숲」에서 인간과 자연을 상품화하려는 시장논리를 앞세워 청계협곡과 청계면 주민을 지배하는 일신 그룹이라는 거대한 재벌에 맞서 청계협곡의 생태계와 문화와 풍습을 지키려고 지난한 싸움을 해온 훈장 도원은 「불의 협곡」 대단원에서 진주홍 화염에 휩싸여 『퇴계집』과 함께 한 줌의 재가 된다.
정라헬의 신작 단편소설 「온산향가」는 온산공단의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가가 경상남도 울주군 온산면에 비철금속공단을 조성하기로 했던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온산향가」 의 전반은 온산면 이진리에 살고 있는 좀상날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온산향가」 의 후반은 이주 보상비에 불만을 품은 이주 대상 주민들이 항거하는 이야기이다. 「온산향가」는 국책 사업에 고향을 내어준 온산면 이주민의 처지와 환경오염 방지를 소홀히 하여 온산병을 야기했던 국가와 기업의 행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다.
김세인의 신작 단편소설 「둥지 잃은 새」는 천수만 간척사업을 모티브로 하여 쓴 작품이다. 천수만 바다를 메워 여의도의 140배가량 면적의 농지가 생겼다는 것만 좋아했지 그만큼의 바다를 잃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 땅의 주인은 대기업이 되었고 그 바다에서 돈벌이를 하던 어민은 일터를 잃었다. 새에게 둥지가 보금자리이듯이 어민에게는 바다가 곧 둥지이다. 둥지를 잃은 어민들의 상실감, 그리고 새로 상징되는 희망을 잃어버린 어민의 회한에 대해 아무도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있다. 드넓은 간척지와 철새 도래지로 알려진 천수만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는 탐조객을 유치하여 관광 수입을 올리기 위하여 행정력을 쏟고 있다. 「둥지 잃은 새」는 천수만의 간척지 조성으로 인해 바다를 잃어버린, 근원적인 고향을 상실한 원주민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숙희의 신작 단편소설 「곡지 씨의 개나리」는 원자력 발전소 방사능 오염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곡지 씨의 개나리」의 주인물(main character)인 곡지 씨는 1953년생이며 평생 원자병으로 고생하면서 사는 여인이다. 곡지 씨가 원자병을 앓게 된 이유는 곡지 씨 어머니의 원자병이 대물림되었기 때문이다. 「곡지 씨의 개나리」는 3대에 걸쳐 방사능오염에 노출된 가족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들 가족은 정부나 기관으로부터 어떤 보호와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정우련의 신작 단편소설 「은어가 사는 강물」은 낙동강 페놀 수질오염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구산전자가 5개월여 전부터 지속적으로 방출한 페놀폐수가 낙동강 전체를 오염시켰다.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로 조업을 재개한 구산이 또다시 페놀폐수를 방출하는 바람에 사건은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 대구를 비롯한 영남 지역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그 최대의 피해자는 임산부들이었다. 명수의 아내 은옥은 만삭으로 사산을 하게 되고 다른 피해 임산부들과 시위에 나선다.
배명희의 신작 단편소설 「너무 늦지 않게」는 새만금 간척개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새만금 개발이 망가뜨린 것은 바다와 갯벌뿐 아니다. 거기 기대 살던 사람들과 공동체도 파괴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 이주해야 하는 불안을 외부인은 상상하기 어렵다. 「너무 늦지 않게」는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하고 있다. 「너무 늦지 않게」는 이 땅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살아갈 땅이며, 그들을 위해서라도 어른들이 자연과 생명을 지키는 길에서 너무 많이 벗어나지 않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염원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중편소설 「병원」에서 의료폐기물 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루었던 채희문은 신작 단편소설 「무지개다리 건너는 법」에서 의료폐기물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채희문의 「무지개다리 건너는 법」은 의료폐기물에 관한 틀에 박힌 규정이나 의무가 따르는 시행 방식에 관해 쓴 것이 아니라 쓰레기로 버려지는 생명을 대하는 인간의 합당한 태도를 고민해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사랑했든 사랑하지 않았든, 함께 생활했던 생명체를 폐기물 봉투에 넣어 버리는 행위는 오락적인 이유로서 생명체를 칼로 난도질하는 행위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며, 어쩔 수 없이 쓰레기로 버려질망정 죽은 생명체를 대하는 인간의 합당한 태도란 어때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마린의 신작 단편소설 「풀잎들」은 밀양 송전탑 사건을 다루고 있다.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공권력을 동원하여 농성장을 없애버리고 송전탑 건설을 강행한다고 해서, 고향 땅에서 내몰리고 공동체가 붕괴하며, 국가로부터 소외당한 쓰라린 경험조차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을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합의의 대상으로 보고, 그들의 삶의 가치를 무시하고 회유와 협박으로 합의를 종용한 일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진심 어린 대화와 설득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밀양에서 벌어진 비극은 언제 어디에서고 반복될 것이다. 주민들의 억울한 마음을 보듬는 것도 마땅히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밀양송전탑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은미희의 신작 중편소설 「마고할미가 울었어」는 지리산 일대에서 건설 중인 골프장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수십만 평의 대지에서 수백 종의 식물을 모두 제거해야한다. 잔디를 깔기 위해서는 40센티미터에서 70센티미터의 흙을 거둬내야 하는데 흙 1그램에는 1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헌데 그런 흙을 파내고 생명체가 거의 없는 모래나, 마사토나, 인공의 흙으로 덮은 후 잔디와 벤트그라스를 심는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그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데, 실제로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농약은 해마다 늘고 있다. 골프장의 농약사용으로 인해 심각한 식수의 오염은 물론이고 양식장 피해와 기형아 출산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골프장의 농약 사용으로 인해 심각한 식수의 오염은 물론이고 양식장 피해와 기형아 출산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골프장은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함으로써 농업용수의 고갈을 불러오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는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숲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숲이 사라지면 맑은 공기를 제공하고 자연재해를 줄여줄 자연 방어의 기능도 사라진다. 기후변화로 인해 갖가지 재앙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요즘, 환경생태의 변화는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은미희는 「마고할미가 울었어」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갖가지 재앙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 골프장 건설 등 생태계의 파괴는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기본정보
ISBN 9791189171827 | ||
발행(출시)일자 2024년 12월 31일 | ||
쪽수 338쪽 | ||
크기 152 * 225 mm판형알림 | ||
총권수 1권 | ||
시리즈명 소설로 읽는 한국문화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