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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1 (성엄스님ㆍ대만불교)|* 화엄경 녹취(문수경전)
釋대원성 | 조회 133 |추천 1 |2015.08.15. 09:41 http://cafe.daum.net/yumhwasil/Gnl1/263
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1 (2015. 8. 3.)
上講禮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 心 頂 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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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 龍樹菩薩略纂偈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主河神衆主海神 主水神衆主火神
主風神衆主空神 主方神衆主夜神 主晝神衆阿修羅
迦樓羅王緊那羅 摩喉羅伽夜叉王 諸大龍王鳩槃茶
乾達婆王月天子 日天子衆兜利天 夜摩天王兜率天
化樂天王他化天 大梵天王光音天 遍淨天王廣果天
大自在王不可說 普賢文殊大菩薩 法慧功德金剛幢
金剛藏及金剛慧 光焰幢及修彌幢 大德聲聞舍利子
及與比丘海覺等 優婆塞長優婆夷 善財童子童男女
其數無量不可說 善財童子善知識 文殊舍利最第一
德雲海運善住僧 彌伽解脫與海幢 休舍毘目瞿沙仙
勝熱婆羅慈行女 善見自在主童子 具足優婆明智士
法寶?長與普眼 無厭足王大光王 不動優婆遍行外
優婆羅華長者人 婆施羅船無上勝 師子嚬伸婆修密
?瑟?羅居士人 觀自在尊與正趣 大天安住主地神
婆珊婆演主夜神 普德淨光主夜神 喜目觀察衆生神
普救衆生妙德神 寂靜音海主夜神 守護一切主夜神
開敷樹華主夜神 大願精進力救護 妙德圓滿瞿婆女
摩耶夫人天主光 遍友童子衆藝覺 賢勝堅固解脫長
妙月長者無勝軍 最寂靜婆羅聞者 德生童子有德女
彌勒菩薩文殊等 普賢菩薩微塵衆 於此法會雲集來
常隨毘盧遮那佛 於蓮華藏世界海 造化莊嚴大法輪
十方虛空諸世界 亦復如是常說法 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世主妙嚴如來相 普賢三昧世界成
華藏世界盧舍那 如來名號四聖諦 光明覺品問明品
淨行賢首須彌頂 須彌頂上偈讚品 菩薩十住梵行品
發心功德明法品 佛昇夜摩天宮品 夜摩天宮偈讚品
十行品與無盡藏 佛昇兜率天宮品 兜率天宮偈讚品
十廻向及十地品 十定十通十忍品 阿僧祗品與壽量
菩薩住處佛不思 如來十身相海品 如來隨好功德品
普賢行及如來出 離世間品入法界 是爲十萬偈頌經
三十九品圓滿敎 諷誦此經信受持 初發心時便正覺
安坐如是國土海 是名毘盧遮那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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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湘祖師 法性偈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意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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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 17권 점안 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서문을 천천히 크게 한번 읽는 것으로 점안 식을 대신하겠습니다.
서 문
과연 무엇이 진정한 청정범행입니까?
청정범행이란 진실로 존재하는 것입니까?
경에 말씀하시기를,
“만일 몸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선하지 않은 것이며,
법답지 않은 것이며, 혼탁한 것이며,
냄새나는 것이며, 부정한 것이며,
싫은 것이며, 어기고 거역하는 것이며,
잡되고 물든 것이며, 송장이며,
벌레 무더기인 줄을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라.”
“만일 말이 범행이라면
범행은 곧 음성, 숨, 입술, 혀, 목구멍, 뱉고 삼킴,
막고 놓음, 高低(고저), 淸濁(청탁)일 것이니라.”
“만일 부처님이 범행이라면 色蘊(색온)이 부처님인가,
受蘊(수온)이 부처님인가, 想蘊(상온)이 부처님인가,
行蘊(행온)이 부처님인가, 識?(식온)이 부처님인가,
32相(상)이 부처님인가, 80種好(종호)가 부처님인가,
신통이 부처님인가, 業行(업행)이 부처님인가,
果報(과보)가 부처님인가?” 라고 하였습니다.
존재의 현상에서 보면 분명히 더러운 몸이 범행이며,
허망한 말이 범행이며, 외형적인 오온과 상호와 업과 과보인 부처님이 범행이지만 존재의 본질에서 보면 그 무엇도 범행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텅 비어 공한 범행과 그대로 나타난 범행에 걸리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을 가장 높이 찬탄합니다. 보살행 실천이 불교의 근본 종지이기 때문입니다.
그 보살행의 실천은 菩提心, 즉 佛心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보리심을 처음으로 발하는 사람의 공덕은 실로 한량이 없습니다. 그 한량없는 공덕을 한량없이 설명한 것이 곧 初發心功德品입니다.
중생의 마음 작용 다 헤아려 알며
국토의 미진도 또한 다 알며
허공의 끝까지를 헤아린다 해도
초발심한 공덕은 측량하지 못하리.
2014년 11월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17권은 범행 품하고 초발심공덕 품이 한 권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품 내지 세 가지 품이 한 권에 들어있을 때, 서문을 이렇게 같이 표현하기가 아주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데까지 했습니다.
범행 품은 아주 기상천외한 고차원적인 그런 안목으로 이야기를 해서, 잘못하면 사람이 넘칠 수가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화엄경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범행에 대한 화엄경적인 그런 아주 높은 안목도 이럴 때 우리가 한 번 경험 해야지, 언제 또 따로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이런 차원 높은 화엄경을 제 8 아뢰야식에 이렇게 한 번 심어둔다고 하는 것, 이것은 대단한 인연 공덕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공부하기 좋도록 책을 만들었으니까 갖다 쌓아놓지만 말고, 한 열 번씩 읽도록 그렇게 하시고, 또 여러분 법회 할 때에 교재로 좋잖아요. 이것만 펴놓고 그냥 법회하면, 얼마든지 하고도 남는 그런 좋은 법회교재가 됩니다. 이 보다 더 좋은 교재는 없습니다. 이 훌륭한 부처님이 만든 교재를 두고, 요즘 학자들이 그냥 머리로 짜내서 짜깁기 식으로 만든 불교 입문서니 개론서니 하는 것, 그것 전혀 안목 없는 사람들이, 불법에 대한 안목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는 그 용어들을 갖다가 그냥 짜깁기 식으로 한 것을 소위 그 불교대학이라든지 교리 강좌시간이라든지 이런데서 강의 교재로 삼는데, 그것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다못해 ‘천수경ㆍ반야심경ㆍ예불문ㆍ금강경ㆍ초발심자경문. 이런 것을 가지고하는 것이 오히려 훨씬 감동이 있고 가슴에 와 닿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 화엄경을 가지고 만약에 여러 스님들이 각자 사찰에서 전법의 교재로 삼는다면 더 이상 덮을 것이 없지 않겠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또 오늘 “눈 속의 발자국” 이라고 하는 책을 한 권씩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는데요.
제가 108자재어를 작년 10월부터 지금까지 5만부를 찍어서 법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또 5천부를 지금 찍고 있고요. 그래서 서울에 있는 어떤 스님에게 그 108자재어를 한 권 줬더니, 나가면서 “아 이거 성엄스님 책이네요.”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성엄스님을 아느냐 하니까, 성엄스님 책이 몇 가지 나와 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네가 서울에 있으니까 있는 대로 사서 부쳐라 그랬더니, 성엄스님 책을 몇 가지 사서 부쳤어요.
탐구사에서 주로 거의 다 이 스님 책을 내는데, 이 책 저책 읽다가 보니까 禪偈(선게). 신심명이라든지 증도가라든지, 이 스님이 선을 좋아하셔서 선에 대한 禪詩(선시)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참 읽을 만한 그런 내용인데, 그 중의 한 권이 “눈 속의 발자국” 이라고 하는 이 책은 당신 자서전입니다.
자서전이야 모두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한 가지가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읽다가 재미도 있고, 감동도 되고, 교훈도 되고 여러 가지 아주 가슴에 와 닿는 것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읽으면서, ‘아, 이것을 범어사 강원에, 거기 율원도 있고 하니까 스님들에게 한 권씩 법공양해야 되겠다.’ 하고 100권을 샀습니다. 그러니까
그 다음에 여기 또 우리 문수경전연구회가 사실은 인연이 제일 깊은 곳인데, 여기를 빠뜨릴 수가 없어서 또 100권을 샀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전국 강원에 있는 스님들도 역시 내 새끼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무려 1000권을 사서 이것을 전국강원에 다 돌렸습니다. 108자재어도 법공양을 많이 했지만, 108자재어 한 권 덕택에 이렇게 여러분에게 올리게 됐습니다.
“이 스님이 어떤 스님이냐?”
한 마디로 이 시대에 있어서 제가 제일 존경하는 스님이고,
중국과 대만. 동양권에서 제일 존경받는 스님입니다.
이 스님은 여기 자서전에도 나와 있긴 하지만, 책을 통해서 제가 이 스님 사이트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법문을 많이 접하다 보니까 108자재어가 항상 한쪽 구석에 떠요. 그만치 ‘그 스님의 평생수행의 엑기스가 108자재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고, 수천 명 모이는 아주 큰 회관에서 아주 대형법회를 대만에서 여러 번 했고, 또 미국에서도 포교를 많이 했습니다.
한 가지 가슴에 남는 것은 일본 가서 박사학위를 받고,
불교 공부를 아주 철저히 했습니다. 또 6년간 폐관이라고 해서 무문관 턱인데요. 거기 들어가서 일본에 가기 위해서 일본어를 마스터하고, 8만 대장경을 다 독파를 했어요.
그런 이야기하며, 또 머리가 나빠서 도대체 안 외워져서 새벽에 500배ㆍ저녁에 500배, 관세음보살에게 기도를 그렇게 해서 3개월 만에 툭 터져서 그 다음부터는 보는 족족 다 외워지더라는 그런 이야기가 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지금까지 포교에 성공한 것도, “전부 나는 관세음보살님 덕택이다. 거기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런 말도 써 놨습니다. 그런 것 하며, 또 미국 가서 대각사 라고 하는 절을 창건해서 포교를 하다가 대만에 잠깐 와있는 동안에 어떤 스님이 그 절을 맡았는데, 나중에 미국에 또 갔어요. 자기가 조그만 선방을 열어놓고 참선하려고, 참선법회를 열었는데 방석이 없어서 대각사에 가서 방석을 좀 빌려달라고, 옛날에 자기가 주지할 때 만든 방석인데, 그것을 거기 들어온 스님이 안 빌려줘서, 거기서 그 스님이 또 “아~~ 내가 크게 깨달았다.” 하면서 거기서 또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만든 절, 자기가 만든 방석을,
“잠깐만, 한 번만 빌려 달라. 우리가 쓰고 갖다 주겠다.”
했는데, 새로 온 스님이 안 빌려줘서 그 때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서 또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겁니다. 이런 내용들 하며, 아주 너무 재미있어서 저는 지금 읽고 또 읽고 합니다. 참 좋은 책이고, 또 이것을 마침 우리가 대만에 성지순례를 가는데, 법고산사에 가서 법고산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자서전을 한번 꼭 읽고 가면 더욱 깊이 이해할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대만은 불국토입니다.
완전히 불국토이고, 우리가 한국에서 생각하는 이상으로 거기는 전혀 새로운 불교입니다. 전혀 다른 불교입니다.
이 지상에서 제일 성공한 불교ㆍ제일 모범적이고ㆍ제일 이상적인 불교가 대만불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늘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선전한 불교단체가 거기 있지요? 자재공덕회!
그런데 또 자재공덕회는 자재공덕회대로 특징이 있고, 법고 산사는 이 스님이 워낙 훌륭하게 해서 승려 중심으로 교육을 그렇게 하고, 또 정작 제가 본받는 일은 정공법사라고 주소만 가르쳐주면 전 세계를 컨테이너로 하나 씩 그냥 보내주는 그런 스님이 또 계십니다. 정공법사! 그런데 또 제가 최근에 인연을 맺은 海雲법사라고 하는 한 60대 전후의 스님이 있습니다. 그 스님은 대 화엄사라고 하는 절을 근래에 창건해서 화엄경만 전문으로 펴는 스님입니다. 그런데 벌써 전 세계에 지부가 몇 곳이 있을 정도입니다. 얼마나 포교 활동을 그렇게 잘하는지, 그만치 당신이 잘 하니까 그렇겠지요. 그런데 그 스님이 제가 화엄경을 좋아하는 줄 알고, 화엄경을 그냥 막 얼마나 보내왔는지 몰라요.
그런 정도로 대만불교는 부처님하고 통화한 적도 없고,
서로 얼굴 한 번 대면한 적도 없고 아는 사이도 아닌데,
신심이 날 곳만 발견을 하면 그렇게 신심을 표현하는 겁니다. 신심이 그야말로 넘쳐흐르는 그런 불국토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참 불국토 같습니다. 거기 법고산사에는 우리나라스님도 세 분이 가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마침 불광대학에서 공부하시는 스님이 여기 동참을 하셨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불교국가라고 하는 것.
거기는 사찰에서 무슨 일을 한다. 불사를 한다. 하면 전부 관청에서, 市(시)든 어디서는 전부 도와주려고하지, 조금이라도 브레이크를 걸거나 그런 일이 없습니다.
왜냐? 불사하기 이전에 스님들이 국민들을 위해서 이미 봉사활동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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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2 (十無盡藏品-功德林菩薩說十藏法)|* 화엄경 녹취(문수경전)
釋대원성 | 조회 124 |추천 1 |2015.08.16. 10:20 http://cafe.daum.net/yumhwasil/Gnl1/264
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2 (2015. 8. 3.)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一
十無盡藏品 第二十二
三. 功德林菩薩의 說十藏法
6. 施藏
(4) 內施 (5) 外施
(6) 內外施 (7) 一切施
또 구호활동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스님들이 뭘 한다. 하면 그저 손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하는 그런 국토입니다. 그런 나라예요. 우리나라는 스님이 어디 가서 허가 한번 얻으려면 스님체면에 손이 발이 되도록 가서 빌어도 허가를 잘 못 얻고 하는 그런 사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 나라는 그런 데가 아닙니다. 스님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도와주고 싶어서 그저 안달을 하는 그런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불사도 잘되고 교육도 잘되고 또 모범생활을 하고요.
또 아까 이야기가 조금 있었지만, 거기는 신도님들이 전부 신자아닙니까? 전체의 80%가 불자이고, 그 80%가 되는 불자가 전부 신자아닙니까? 스님들. 여기 이 모습 이대로만 갔다 오면 ‘아무 탈 없다.’고, 그 말 한 마디만 기억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요. 제가 그동안 화엄경을 늘 법공양을 하지만, 또 염화실지도 늘 법공양 하지만, 이 성엄스님을 스님들에게 이렇게 소개할 수 있는 것이 아주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스님의 장례식. 2009년도에 열반하셨는데, 우리나라 신문에도 크게 났었습니다. 장례식 그 사이트가 있습니다. 그것 한 시간짜리인데 제가 그것을 보다가 울었습니다.
우리나라 스님들 열반해서 그 자리에 직접 참석해도 한 번도 슬픈 생각 가져본 적이 없고 눈물 흘린 적이 없는데, 그냥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 스님 장례 치르는 것, 그것도 전체 다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 짜깁기해서 쭉~~ 해놨는데, 얼마나 감동적인지 그것 보고 제가 눈물 흘렸다니까요. 장례식을 어떻게 치르는지 그런 것들을 그냥 환하게 알 수 있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뜻만 있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 들어가면 다 있어요. 뭐든지 다 있으니까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근래에 이 스님 법문을 제일 많이 듣고 있습니다.
여러 수 100가지 종류의 법문이 다 올라있습니다.
밑에 전부 자막으로 한자가 나오기 때문에 10분의1 만 우리가 읽어도 충분히 소득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고 우리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
75쪽, (4)內施(내시)라고 되어있는데요.
왼쪽 페이지 제일 위에 보면 施藏(시장)이라고 있습니다.
이것은 10무진장 품이지요. 열 가지 무진장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여섯 번째 施藏. “보시의 무진장이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10종 보시가 있는데요. 그 밑에 보면,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施藏이냐?
이 보살이 열 가지 보시를 행하니 이른바 분감시ㆍ갈진시ㆍ내시ㆍ외시ㆍ내외시ㆍ일체시ㆍ과거시ㆍ미래시ㆍ현재시ㆍ구경시. 이렇게 열 가지 보시를 쭉~~ 이야기해 오는데요. 마침 오늘은 네 번째 내시에 해당됩니다.
內施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몸과 마음을 가진 내 자신이 중심이다 보니까 이것이 내가 되고, 그 다음에 나에게 딸린 부귀공명이라든지 명예라든지 재산이라든지 이것은 外施(외시)가 됩니다. 일단은 몸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보시입니다.
(4) 內施
云何爲菩薩의 內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年方少盛에 端正美好하며
香華衣服으로 以嚴其身하고
始受灌頂轉輪王位하야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時或有人이 來白王言호대
大王아 當知하라 我今衰老하야 身?重疾하고
?獨羸頓하야 死將不久어니와 若得王身의
手足血肉과 頭目骨髓인댄 我之身命이
必冀存活이로소니 唯願大王은 莫更籌量하야
有所顧惜하고 但見慈念하야 以施於我하라하면
爾時菩薩이 作是念言호대今我此身이 後必當死라
無一利益이니 宜時疾捨하야 以濟衆生이라하고
念已施之하야 心無所悔하나니 是名內施니라
內施(내시)
云何爲菩薩(운하위보살)의 內施오?
어떤 것이 보살의 안 보시냐?
佛子(불자)야
此菩薩(차보살)이, 이 보살이
年方少盛(연방소성)에, 방년 16세.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네요. 나이가 바야흐로 젊고 아주 성한 그런 때에,
端正美好(단정미호)하며,
아주 단정하게 생겼고 아주 아름다우며, 그리고
香華衣服(향화의복)으로 以嚴其身(이엄기신)하고,
향화의복으로써 몸을 장엄하고 있어요. 또 거기다가
왕자입니다.
始受灌頂轉輪王位(시수관정전륜왕위)하야,
비로소 전륜왕위를 관정해요. 전륜왕위를 관정해서,
받게 됐다.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젊고 아리따운 그런 모습. 꽃다운 나이에 왕이 됐어요. 그러니
七寶가 具足(칠보구족)하야 王四天下(왕사천하)어든,
사천하를 왕 노릇 한다. 다스린다. 이 말입니다.
사천하를 다 다스려요. 그런 지위에 있을 때,
時或有人來(시혹유인래), 그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白王言(내백왕언)호대, 왕에게 고해 말하기를,
뭐라고 하는가 하니
大王(대왕)아 當知(당지)하라.
대왕이여 마땅히 아십시오.
我今衰老(아금쇠노)하야, 나는 지금 쇠노 했습니다.
늙고 병들었습니다. 늙었습니다. 그리고
身?重疾(신영중질)하고,
몸은 아주 연약해요. 그리고 중병을 앓고 있어요.
그런데다가 그 다음에
?獨羸頓(경독리돈)하야,
? = 외로울 경ㆍ獨 = 외로울 독. 외롭고 외로우며,
羸 = 파리할 리ㆍ頓 = 무너질 돈. 아주 여위고 파리해서
몸이 지금 막 그냥 무너지려고 하는 그런 상황이다. 그래서
死將不久(사장불구)어니와,
오래지 않아서 곧 죽게 될 그런 처지다. 말입니다.
若得王身(약득왕신)의, 만약 왕의 몸에 있는
手足ㆍ血肉(수족혈육)과 頭ㆍ目ㆍ骨髓(두목골수)인댄,
이런 것을 주어서 내가 얻게 된다면,
我之身命(아지신명)이, 나는 내 신명이
必冀存活(필기존활)이로소니,
반드시 살아남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말입니다.
세상에 왕한테 어떤 걸인이 가서 당신의 손 발 다 주고,
피도 주고 골수도 주고 머리도 주고, 그러니까 장기기증이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화엄경에서부터 일찍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례가 없으면 아마 이런 것 쓰지 못했을 겁니다.
꼭 왕의 장기를 얻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그 당시 장기를 주고받는 것이 아마 일반화 됐을지도 몰라요.
唯願大王(유원대왕)은, 오직 원컨대 대왕께서는
莫更籌量(막갱주량)하야, ‘더 이상 생각하지 말라.’
이런 말까지 덧붙입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또
有所顧惜(유소고석)하고, 돌아보지도 말고, 이 말입니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더 돌아보지도 말고,
但見慈念(단견자념)하야, 다만 그저 자비스러운 생각만해서 以施於我(이시어아)하라하면,
나에게 보시하십시오. 라고, 이렇게 한다면,
爾時菩薩(이시보살)이, 그때에 보살이
作是念言(작시념언)호대, 이런 생각을 하되,
今我此身(금아차신)이, 지금 나의 이 몸은
後必當死(후필당사)라. 뒤에 반드시 죽게 된다.
누구든지 生者必滅이니까요.
無一利益(무일이익)이니, 하나도 이익 될 것이 없다.
이까짓 아껴둬 봐야 이익 될 것이 없다. 말입니다.
宜時疾捨(의시질사)하야,
마땅한 때에 빨리 이것을 보시를 해서
以濟衆生(이제중생)이라하고, 중생을 건져야 될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몸인데 사람하나 건지고 가는 것이 낫지, 이런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장기기증을 할 수 있는데 까지 해야 됩니다. 저는 시신 기증등록을 10년도 더 전에 했는데요. 그런데 요즘은 시신이 아무 필요도 없고, 아주 짐만 된다.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나중에 1년 후에 다시 돌려준대요. 그래서 아주 불편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것을 취소를 하든지 무슨 방법을 해야 되겠어요.
그런데 장기기증 계약서는 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시신 기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장기기증. 만약에 불시에 몸을 버리게 되면 쓸 만한 장기는 얼른, 그 시간이 있어요.
뭐는 몇 시간ㆍ뭐는 몇 시간. 몇 시간 안에 그것을...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쭉~~ 있거든요. 눈이든 뭐든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으면 그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뭐 이 내용하고 관계없이요. 유사한 것이 나왔으니까 하는 소리입니다.
念已施之(염이시지)하야,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반드시 바로 베풀어서
心無所悔(심무소회)하나니,
마음에 아무 것도 후회하는 바가 없나니
是名內施(시명내시)니라. 이것이 내시다. 그런 말입니다.
(5) 外施
云何爲菩薩의 外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年盛色美하야 衆相具足하며
名華上服으로 而以嚴身하고
始受灌頂轉輪王位하야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時或有人이 來白王言호대
我今貧?하야 衆苦逼迫이로소니 惟願仁慈는
特垂矜念하사 捨此王位하야
以贍於我하소서 我當統領하야 受王福樂이라하면
爾時菩薩이 作是念言호대 一切榮盛이
必當衰歇이라 於衰歇時엔 不能復更饒益衆生이니
我今宜應隨彼所求하야 充滿其意라하고
作是念已하고 卽便施之하야 而無所悔하나니
是名外施니라
外施 = 부귀ㆍ공명ㆍ지위. 이런 것을 말합니다.
云何爲菩薩의 外施오?
어떤 것이 보살의 외시냐?
佛子야
此菩薩(차보살)이, 이 보살이
年盛色美(연성색미)하야,
나이가 왕성하고 육신은 아주 아름다워서
衆相具足(중상구족)하며,
여러 가지 아주 아름다운 모습을 구족해서
名華上服(명화상복)으로,
아주 이름 있는 꽃과 좋은 옷으로써
而以嚴身(이이엄신)하고, 몸을 장엄하고,
始受灌頂轉輪王位(시수관정전륜왕위)하야,
드디어 전륜왕위의 관정을 받았다. 전륜왕위의 관정을 받아서, 왕위를 막 받았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七寶具足(칠보구족)하야, 칠보가 구족해서
王四天下어든, 사천하의 왕 노릇을 하거든.
時或有人이 來白王言호대,
그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왕에게 고해 말하되,
我今貧?(아금빈구)하야,
貧 = 가난할 빈ㆍ? = 가난할 구.
나는 지금 아주 몹시 가난합니다. 그리고
衆苦가 逼迫(중고핍박)이로소니,
온갖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핍박하는데,
惟願仁慈(유원인자)는,
오직 원하옵노니 어지시고 자비로운 분께서는,
特垂矜念(특수긍념)하사,
이 矜자는 기독교에서 잘 쓰는 글자지요?
긍휼이 여긴다. 불쌍히 여기는 생각을 드리우사,
捨此王位(사차왕위)하야, 이 왕위를 버려서
以贍於我(이섬어아)하소서. 나에게 주십시오.
贍자는 나를 넉넉하게 해주십시오.
“그 왕 그만하고 나 좀 주면 안 됩니까?” 이 말입니다.
我當統領(아당통령)하야,
그러면 내가 마땅히 나라를 잘 거느려서 = 다스려서
受王福樂(수왕복락)이라하면,
왕의 그 복락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이렇게 할 것 같으면,
爾時菩薩(이시보살)이, 그때에 보살이
作是念言호대, 이러한 생각을 짓되,
一切榮盛(일체영성)이,
일체 모든 영화롭고 아주 왕성한 그런 것들이
必當衰歇(필당쇠헐)이라.
지금 아무리 왕 노릇을 하고 떵떵거리고 호령을 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쇠하고 마칠 때가 있다. 이 말입니다.
진시황도 60도 못 살고 그렇게 돌아가시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차지하려고 했던 그 자리도, 그리고 근래에 문제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 5대 기업 중의 하나인 그 무슨 그룹도 지금 형제가 서로 피터지게 싸움을 하는 그런 상황이잖아요. 하물며 벼슬이야 더 할 것도 없는 겁니다. 그래도 기업주는 오래갑니다. 자기가 아등바등해서 이룩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국회의원이다. 장관이다. 왕이다. 대통령이다. 하는 그것은 하루아침 꺼리밖에 안 돼요.
一切榮盛이 必當衰歇이라.
於衰歇時(어쇠헐시)엔, 쇠하고 끝날 때에, 쉬게 될 때에
그 때는, 대통령하다가 대통령 모가지 날아갈 때 되면,
반장도 말 안 들어요. 그 때는 청소부도 말 안 듣는다고요. 야~~ 신기하지요. 사찰의 주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지 할 때 공양주가 말 듣지, 주지 내놓고 뒷방에 앉아 있으면 조실 말 절대 안 들어요. 그래서 어떤 조실 스님은 자기 상좌한테 주지 물려놓고, “야, 한 달만 내가 주지 더하자.” 한 달만 주지 더하게 해 달라고... 제가 잘 아는 절이지만, 어느 절이라고 제가 말은 못하겠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한 달만 주지 더하자고... 조실 되니까 부목도 공양주도 주지말만 듣지, 말 안 듣는 겁니다. 그러니까 주지보고 한 달만 내가 주지 더하자고 사정사정하는 겁니다.
여기 보십시오.
不能復更饒益衆生(불능부갱요익중생)이니
끝날 때는, 끝날 때는 중생을 이익하게 하려고 하더라도 안 된다. 이 말입니다. 중생을 요익하게 하지 못함이니,
我今宜應隨彼所求(아금의응수피소구)하야,
내가 지금 왕 노릇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마땅히 지금 저 사람이 구하는 바를 따라서
充滿其意(충만기의)라하고,
그 사람의 뜻을 충만하게 해준다. 이렇게 하고, 그러니까 뭘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이 돌아간다고요
作是念已하고, 이 생각을 지어마치고,
卽便施之하야, 곧 베풀어서
而無所悔하나니, 아끼는 바가 없나니
是名外施니라. 이것이 외시라. 이 말입니다.
왕위든 뭐든 주지든 그룹회장이든 달라하면 그냥 줄 생각을 하고 있어야 됩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와서 달라고 하더라도 줄 생각을 하고 있어야 되는데... 화엄경은 그렇습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와서 달라고 하더라도 줄 생각을 하고 있어야 되는데... 그 다음 말은 안 해도 알겠지요. 허허허 요즘 워낙 문제가 되고 있는 일이라서...(롯데)
(6) 內外施
云何爲菩薩의 內外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如上所說하야 處輪王位하야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時或有人이
而來白言호대 此轉輪位에 王處已久나
我未曾得이로소니 唯願大王은 捨之與我하시며
幷及王身이 爲我臣僕하라하면 爾時菩薩이
作是念言호대 我身財寶와 及以王位가
悉是無常敗壞之法이어늘 我今盛壯에
富有天下하니 乞者가 現前에 當以不堅으로
而求堅法이라하고 作是念已하고 卽便施之하며
乃至以身으로 恭勤作役호대 心無所悔하나니
是名內外施니라
云何爲菩薩의 內外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이 보살이
如上所說(여상소설)하야,
如上所說이라고 하는 것은 젊은 때 왕위를 이어 받아서,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생략하고
處輪王位(처륜왕위)하야, 전륜왕의 지위에 처해서
七寶具足하야, 칠보가 구족해서
王四天下어든, 사천하를 왕 노릇을 하거든,
時或有人이 而來白言호대,
그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고해 말하되,
此轉輪位(차전륜위)에, 이 전륜왕위에
王處已久(왕처이구)나.
왕이 처한 것이 이미 오래 됐지만,
我未曾得(아미증득)이로소니,
나는 한 번도 일찍이 얻어 본 적이 없다. “왕은 왕 노릇 오래 했잖아, 나는 한 번도 못했다.” 말입니다.
唯願大王(유원대왕)은, 오직 원하옵노니 대왕은
捨之與我(사지여아)하시며,
왕위를 버리고 나주십시오. 라고 하며,
幷及王身(병급왕신)이, 그리고 王身이
爲我臣僕(위아신복)하라하면,
나를 위해서 신하가 되고 종이 되라. 이렇게 하면
爾時菩薩이, 그때에 보살이 作是念言호대,
我身財寶(아신재보)와, 나의 몸과 재보와
及以王位(급이왕위)가, 그리고 왕위가
悉是無常敗壞之法(실시무상패괴지법)이어늘,
무상하고 패하고 무너지고, 머지않아서 다 없어져 버리는 그런 법이거늘,
我今盛壯(아금성장)에,
나는 지금 아주 성하고 젊은 때에
富有天下(부유천하)하니,
부하기가 천하를 다 가지고 있으니
乞者現前(걸자현전)에,
구걸하는 사람이 내 앞에 지금 나타났는데,
當以不堅(당이불견)으로 而求堅法(이구견법)이라하고,
이 여덟 자 중요한 일입니다.
마땅히 견고하지 아니한 것으로써 견고한 법을 구한다.
우리가 이야기할 때 흔히 그러잖아요.
온갖 재산과 명예와 부귀공명은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唯有業隨身(유유업수신)이라. 오직 업만 그 사람의 다음 생을 따라간다. 지은 공덕만 따라가고, 나쁜 짓하면 나쁜 업만 따라간다. 唯有業隨身이라. 불교에 아주 참 너무나도 무서운 교훈 있지 않습니까? 가져가는 것 아무것도 없지요. 정말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못 가져갑니다.
그런데 다만 우리가 금생에 지어놓은 공부한 것만 따라가고, 공덕지은 것만 따라가고, 나쁜 짓 한 것만 따라가는 겁니다.
그 업이 따라와서 지금 이렇게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겁니다. 과거 생에 그래도 뭔가 이런 공부할 인연을 지어놨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이렇게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좋은 인연 자꾸 지어야 됩니다. 견고하지 아니한 것으로써 견고한 법을 구한다. 얼마나 아주 근사한 말입니까?
作是念已하고, 이러한 생각을 짓고 나서
卽便施之(즉변시지)하며, 곧 바로 보시를 하며,
乃至以身(내지이신)으로, 내지 몸으로써
恭勤作役(공근작역)호대,
공손하고 부지런히 부역을 하되, 말하자면 일을, 왜냐하면 이 위에 뭐라고 했는가 하면 왕이 臣僕. 나를 위해서 신하가 되고 종이 되어 달라고 했으니까요. 왕이 도리어 어떤 낯선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아주 공손하고 부지런하게 종노릇을 하는 겁니다.
이것 역사에 더러 있는 일이지요.
특히 유명한 이야기가 越王勾踐(월왕구천). 吳王闔閭(오왕합려). 오나라와 월나라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臥薪嘗膽(와신상담)이니 하는 그런 말도 거기서 나왔고요.
월나라 구천이 오왕 합려에게 종노릇을 합니다.
그 나라를 정복을 했는데 그 나라는 그냥 두고, 五胡十六國(오호십육국)시대에 그 당시 상황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런 사례가 꾀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왕을 데려다가 종을 시키는 겁니다. 어디 가는데 말몰이꾼하고, 말여물주고 말 키우고 청소하고...
그것이 상대방의 왕에게 수모를 주는 겁니다.
상대방의 왕에게 아주 수모를 줄만치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참고ㆍ참고ㆍ참고해서, 그 일을 묵묵히 참으며 몇 년간 다 하고나서 나중에 자기 나라로 도망을 가게 돼서 결국은 그 나라에 가서 복수를 하는 그런 이야기지요. 아주 대단한 이야기가, 그리고 吳越同舟(오월동주)니 그런 말이 거기서 다 나온 말이지요. 오나라ㆍ월나라의 이야기가 그런 내용들이 되겠습니다. 정말 여기 화엄경의 이야기대로 왕이 상대방의 왕에게 가서 종노릇을 합니다. 말을 몰고 마굿간을 청소를 하는 그런 일들이 실지로 있었습니다.
기록이 그대로 있습니다. 중국에는 거기에 대한 소설ㆍ영화. 그런 것들이 무수히 나와 있습니다.
心無所悔(심무소회)하나니,
마음에 조금도 所悔, 뉘우치는 바가 없으니,
是名內外施니라. 이것이 내외시다.
안과 밖으로 전부다 보시 하는 것이다. 그런 말입니다.
(7) 一切施
云何爲菩薩의 一切施오
佛子야 此菩薩도 亦如上說하야 處輪王位하야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時有無量貧窮之人이
來詣其前하야 而作是言호대 大王名稱이
周聞十方하야 我等이 欽風일새 故來至此라
吾曹가 今者에 各有所求로소니 願普垂慈하사
令得滿足케하라하고 時諸貧人이 從彼大王하야
或乞國土하며 或乞妻子하며 或乞手足과
血肉心肺와 頭目髓腦하면 菩薩이 是時에
心作是念호대 一切恩愛가 會當別離하야
而於衆生에 無所饒益이니 我今爲欲永捨貪愛하야
以此一切必離散物로 滿衆生願이라하고
作是念已하고 悉皆施與호대 心無悔恨하며
亦不於衆生에 而生厭賤하나니 是名一切施니라
云何爲菩薩의
一切施(일체시)오? 모든 것을 보시하는 것이냐?
佛子야
此菩薩도, 이 보살도
亦如上說하야, 또한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아서
處輪王位(처륜왕위)하야, 전륜왕의 지위에 처해서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를 왕 노릇 하거든,
時有無量貧窮之人(시유무량빈궁지인)이,
그 때에, 한량없는 빈궁한 사람들이 와서
來詣其前(내예기전)하야, 그 앞에 나아가
而作是言호대, 이러한 말을 하되,
大王의 名稱(대왕명칭)이 周聞十方(주문시방)하야,
대왕의 이야기가 시방에 아주 두루두루 퍼졌습니다.
我等이 欽風(아등흠풍)일새, 우리들이 그 덕풍을,
훌륭하다고 하는 그 말씀을 흠모한다. 공경할세.
故來至此(고래지차)라.
그래서 당신이 훌륭하다는 소문 듣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吾曹가 今者(오조금자)에, 우리들이 지금에
各有所求(각유소구)로소니, 각각 구하는바가 있으니,
누구는 마차가 필요하고, 누구는 집이 필요하고, 누구는 쌀이 필요하고, 누구는 금이 필요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왔으니까요. 願普垂慈(원보수자)하사,
원컨대 널리 垂慈하사, 자비를 드리우사,
令得滿足(영득만족)케하라하고,
하여금 만족케 하라하고,
時諸貧人(시제빈인)이,
그때에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從彼大王(종피대왕)하야, 저 대왕으로부터
或乞國土(혹걸국토)하며,
혹 어떤 사람들은 국토를 구걸 하고,
或乞妻子(혹걸처자)하며, 혹은 처자를 구걸해요.
或乞手足(혹걸수족)과, 혹은 수족을 구걸해요. 그리고
血肉心肺(혈육심폐)와, 혈과 육과 심장과 폐를 구걸해요.
頭目髓腦(두목수뇌)하면,
머리와 눈과 髓腦 = 골수와 뇌를 구걸하게 된다면,
菩薩이
是時에 心作是念호대,
이때에 마음으로 이러한 생각을 짓되,
一切恩愛(일체은애)가 會當別離(회당별리)하야,
일체 은애가 모이면 마땅히 이별하게 돼.
會者定離(회자정리) 生者必滅(생자필멸)이요 =
會當別離라. 모이면 마땅히 별리하게 되어있으니,
而於衆生(이어중생)에 無所饒益(무소요익)이니,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애착하는 모든 것들은, 아무 이익 될 바가 없으니,
我今爲欲永捨貪愛(아금위욕영사탐애)하야,
내가 지금 영원히 탐심과 애착심을 버려서
以此一切必離散物(이차일체필리산물)로,
반드시 떠나게 될, 떠나게 되고 흩어 질 물건으로,
구절ㆍ구절이 아주 참 심장을 찌르는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必離散物입니다. 반드시 떠나야 되고, 흩어 질 물건들입니다. 그런 것으로써 滿衆生願(만중생원)이라하고,
중생의 소원을 만족케 할 것이다. 라고하고,
형제들 저렇게 싸우는데요.
나도 아버지 나이가 될 테고, 또 머지않아 죽을 것인데
이럴 때 잘 됐다고 가지시라고 하고 썩 내놓는 사람이 만약에 있다면, 아~~ 참, 박수 받지요. 참, 박수 받아...
얼마나 근사하겠습니까? ‘야~~ 그 집안 괜찮은 집안이다.’그렇게 될 텐데, 끝까지 저렇게 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는지 너무 안쓰러운 겁니다. 뉴스 잘 들어서 잘 아시지요?(롯데) 남의 집안 싸우는 뉴스가 뭐 하려고 왜 그렇게 많이 하는지?
作是念已하고,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는
悉皆施與(실개시여)호대,
있는 대로 전부 다 베풀어준다 말입니다.
心無悔恨하며, 마음에 회한이 없어요.
亦不於衆生에 而生厭賤(이생염천)하나니,
또한 중생에게 염천을 내지 아니해요. ‘싫다.’ 아니면 ‘아이 저~’ 구걸하러 오는 사람들 대개 보면 천하거든요.
요즘은 제가 전국구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그 전에는 더러 했지요. 전국구 보면 웬일인지 이상하게 천하게 보여요.
참 신기하지요.
그러니까 평소에 옷을 풀을 빳빳하게 하고, 다림질도 좀 하고 좀 깨끗하고 단정하게 그렇게 해서 다녀야지요.
저는 우리 절에 낯선 사람이 마당 앞을 지나가는데,
‘저 사람이, 웬 전국구가 지나간다.’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까 무슨 소임자입니다. 요즘 소임 맡아도 와서 인사 안 해요. 낯선 소임 자더라고요. 지금도 사는데, 그 사람 볼 때마다 저 사람은 그 전에 전국구 했던 사람 아니냐고, 옷을 너절하게 해서...
그런데 중생에게 그런 생각을 안낸다. 이 말입니다.
亦不於衆生에 而生厭賤.
싫어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생각을 내지 아니해요.
是名一切施니라. 이것이 일체시다.
이왕 보시 할 바에는, “아이, 고맙습니다. 내가 가서 드려야할 판인데, 여기까지 와서 달라고 하니까, 여기까지 와서 나보고 복지으라고 하니까 너무 고맙습니다.” 하고 이렇게, 속은 아주 아니라도 말로라도 그렇게 하고 주는 것이 복이 많이 됩니다. ㅎㅎㅎㅎㅎㅎ 이왕 주는데, 만원 여비 주려면 거기다가 말을 10만원어치 딱 보태서 주면 11만원이 되잖아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10만원 차비 주면서 거기다가 말로 한 20만원ㆍ30만원 마이너스해서 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나가면서 뭐라고 하겠습니까? 이런 것들도 우스갯소리가 결코 아니고, 실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불교는 한 마디로 보시입니다.
딱 보시 하나입니다. 그래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 보살의 여섯 가지 덕목도 첫째가 보시고요.
우리가 그동안 화엄경 봤지만 전부 중생을 위하는 일이고, 중생을 위하는 일의 제 1조는 보시입니다. 금강경도 보시를 가지고 이야기했지, 다른 6바라밀 가지고 그렇게 많이 이야기 안 했거든요. 그런데 뭘 가지고 보시할 것이냐? 제가 가끔 이야기하지만 공식적인 것이 우리가 法施ㆍ財施ㆍ無畏施ㆍ無財七施해서 열 가지 보시를 제가 딱 정해놓고 이야기하잖아요.
법시ㆍ재시ㆍ무외시ㆍ무재칠시.
재물이 들지 않는 일곱 가지 보시, 그렇게 딱 알면 그것이 진짜 불교입니다. 아주 고준한 그런 선문답 같은 것, 서로 알지도 못하면서 주고받으면서 그것이 최고인양, 뭐 누구는 대답 못했는데 나는 대답했다. 그것 뭐하자는 겁니까?
그것이 뭐 국 끓여 먹는 겁니까? 무슨 된장 끓이는 겁니까? 사실은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선문답에 대답했는데 그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알 바도 없고, 맞은들 그것 뭐하는 거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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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3 (十無盡藏品-功德林菩薩說十藏法)|* 화엄경 녹취(문수경전)
釋대원성 | 조회 104 |추천 1 |2015.08.17. 14:47 http://cafe.daum.net/yumhwasil/Gnl1/265
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3 (2015. 8. 3.)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一
十無盡藏品 第二十二
三. 功德林菩薩의 說十藏法
6. 施藏
(8) 過去施 (9) 未來施
아무 의미 없는 겁니다. 아무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지금까지 이 밝은 세상에 그것을 가지고 계속 그렇게 읊조리고 있는다는 것은, 이것 참 깨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자재공덕회를 그렇게 이야기 많이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근래에 오마이 갓 이라고 하는 프로그램 봤어요? tv에 신부ㆍ목사ㆍ스님.
신부하고 목사하고 월호스님하고 세 사람이 나와서 로마 교황청에 가서도 찍어서 방영했고, 그 다음에 자재공덕회에 가서 찍어서 방영했어요.
제가 그동안 자재공덕회에 대해서 알고 있던 것은 벌써 옛날 정보입니다. 저는 맨 처음에 500만 명 봉사자가 있는 것을 알았거든요. 그래 500만ㆍ500만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700만입니다. 700만ㆍ700만 했는데, 거기에서 신부ㆍ목사들이, 증엄스님도 그 자리에 나왔어요. 여기에 왔던 하는 그 사람도 나왔어요. 증엄스님의 한국의 제 1 제자라고 하면서 몇 달 전에 인사한적 있었지요? 그 사람도 거기에 동참을 했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에서 정식으로 밝히기를 전 세계적으로 봉사자가 1000만 명이래요. 이제 1000만 명까지 됐어요. 자재공덕회에서 북한을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지, 북한은 가난한 나라잖아요.
기본적인 세 가지. 뭐냐? 기본적인 의료. 수술하고 이런 것 말고 아주 기본적인 의료. 그 다음에 기본적인 교육.
최소한도 초등학교 교육. 그 다음에 먹고 굶지 않는 것.
먹는 것과 기본적인 의료와 기본적인 교육. 이 세 가지가 가장 우선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부족한 나라가, 물론 아프리카 같은데도 있지만 북한입니다. 이웃나라 북한이라고요. 그런데 그런 상황을 알고 자재공덕회에서 엄청 도와줬습니다.
북한에서, 그 없는 나라에서 자재공덕회에 와서 큰 벽에다 모자이크로 부처님불상을 만들고 부처님이 빛을 쏘아서 지구를 밝히는 그런 모자이크를 큰 벽에다 그렇게...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와서 했다더라? 상당히 많은 기술자들이 와서, 예술가들이 와서 그렇게 해놓고 갔다고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저는 모르지요. 신부 목사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신부 목사들이 하는 소리요. 그 이야기를 듣고 신부가 감동을 해서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자재공덕회에서 보살행을 얼마나 잘하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는 신부가 거기서 우는 겁니다.
또 목사는 “아~! 진짜 기적을 보았다. 기적ㆍ기적했는데 진짜 기적을 보았다.” 이 스님이 한일이 진짜 기적이지,
뭐가 기적이냐 말입니다. 하늘에서 방광하고 무지개 뜨고, 그것이 무슨 쓸데없는 기적이냐 말입니다.
아~, 이제는 그런 이들도요? 상당히 깨어났습니다.
깨어나서 ‘아~! 그것이 진짜 기적이다.’ 그리고 저는 교회 두채 지어줬다고 늘 노래 불렀지요. 제가 아는 정보는 아주 옛날 정보입니다. 천주교 교단을 세 채 지어줬고, 조사해서 알고 그 사람들 입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교회를 두채 지었고, 회교를 한 채 지어줬어요. 회교교단을요. 회교 믿는 사람들 집, 기독교 믿는 사람들 집, 천주교 믿는 사람들의 집을 수 천 채 지어줬어요.
부처님 눈에는, 관세음보살의 눈에는 불쌍한 중생이 있을 뿐이지, 기독교인이다. 불교인이다. 그것 없습니다.
그냥 불쌍한 중생이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
예배 볼 수 있는 기독교성당을, 천주교 성당을 세 채 지어주고, 교회를 두채 지어주고, 회교성당을 한 채 지어주고 그랬다고 오마이 갓 이라고 하는 신문에... 그 내용을 지금도 유튜브에 치면 바로 뜹니다. 그것을 얼마 전에 방영을 했습니다. 신부ㆍ목사ㆍ스님. 세 분이 나오는 그 프로그램 유명하니까 알지요? 거기 아주 똑똑한 사회자 한사람 하고 네 사람이 나와서 하는데... 그런 내용입니다. 여기 보시이야기가 길게 나와서 덧붙여서 말씀드립니다.
제가 감동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도 자주했어요.
또 현시, 우리 시대에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고요.
옛날에 전설 속에 어떻고, 영험록이 어떻고, 그것은 제가 본적도 없고 옛날이야기고, 실지로 있었는지 그것도 알 수도 없고, 그래서 현재 우리가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사실들이니까 그래서 감동하는 겁니다. 이 소리가 퍼져나가서 신기하게도 대만에서 듣고는 증엄스님의 한국 제자가 여기 왔었잖아요. 우리는 불교주의자이지 민족주의자는 아니니까요.
꼭 우리나라 남의 나라, 그런 것 따질 일이 아니고 불교주의자입니다. 불교 하는 사람들입니다.
(8) 過去施
云何爲菩薩의 過去施오
此菩薩이 聞過去諸佛菩薩의 所有功德하고
聞已不着하야 了達非有하야 不起分別하며
不貪不味하며 亦不求取하며 無所依倚하나니
見法如夢하야 無有堅固하며 於諸善根에
不起有想하며 亦無所倚하고 但爲敎化取着衆生하야
成熟佛法하야 而爲演說이니라
又復觀察호대 過去諸法을 十方推求하야도
都不可得이라하야 作是念已하고 於過去法에
畢竟皆捨하나니 是名過去施니라
過去施(과거시)
云何爲菩薩의
過去施오? 과거시냐?
此菩薩이, 이 보살이
聞過去諸佛菩薩(문과거제불보살)의,
과거 모든 부처님과 보살들의
所有功德(소유공덕)하고,
불보살이 가지고 있는 공덕을 듣고,
하~~ 불보살에 대한 공덕이 얼마나 근사합니까?
얼마나 많습니까?
聞已不着(문이불착)하야,
듣고 나서는 거기에 대해서 집착하지 아니하고,
了達非有(요달비유)하야, 있지 아니함을 요달해요.
화엄경이니까 이런 소리 하는 겁니다. 아 불보살공덕에 좀 집착하면 어때서요. 그런데 집착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그것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을 요달해서
不起分別(불기분별)하며,
우리는 증엄스님의 자재공덕회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분별심을 일으킵니까?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不起分別.
不貪不味(불탐불미)하며,
탐하지도 아니하고 거기 맛들이지도 아니해요.
亦不求取(역불구취)하며,
또한 구하지 아니하고 취하지도 아니하며,
이것은 차원이 아주 한참 높은 차원입니다.
無所依倚(무소의의)하나니, 의지하는 바가 없나니,
見法如夢(견법여몽)하야, 법을 보기를 꿈과 같이 보아요.
보살들의 법도 꿈과 같이 본다. 이 말입니다.
無有堅固(무유견고)하며, 견고함이 없으며,
於諸善根(어제선근)에, 모든 선근에
不起有想(불기유상)하며,
있다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해요.
일체 선근에 대해서도 그런 생각을 안 일으키는 겁니다.
亦無所倚(역무소의)하고, 또한 의지하는 바가 없으며,
但爲敎化取着衆生(단위교화취착중생)하야,
但爲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에게만 집착한다. 이 말입니다.
그것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에게만 집착해서
成熟佛法(성숙불법)하야, 그들에게 불법을 성숙케 해서
而爲演說(이위연설)이니라. 그들을 위해서 연설한다.
그렇지요. 그것이 取着衆生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디 취한다고, 집착한다고 할 것은 아니지요. 그런 차원입니다.
차원이 영 아주 확 다릅니다.
又復觀察(우부관찰)호대, 또 다시 관찰하되,
過去諸法(과거제법)을 과거의 모든 법을
十方에 推求(시방추구)하야도,
시방세계에 구한다 하더라도
都不可得(도불가득)이라하야,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얻을 수가 없다. 해서
作是念已하고, 이 생각을 짓고는
於過去法에, 과거의 법에 대해서
畢竟에 皆捨(필경개사)하나니, 과거에 어떤 부처님이,
천불 만 불 억 만 불을 이야기를 하더라도 거기에 대해서 다 버려버려요. 아~~ 차원 높은 이야기입니다.
是名過去施니라. 이것이 과거시다.
과거를 다 버려버리는 과거석가모니부처님이 어떻고,
비로자나불이 어떻고, 육조대사가 어떻고, 원효의상이 어떻다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은 과거이야기지요.
그것 그렇게 매달리고 집착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싹~~ 없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그 대신에 현재에 충실 하는 것이지요. 현재에 아주 충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시다.
(9) 未來施
云何爲菩薩의 未來施오
此菩薩이 聞未來諸佛之所修行하고 了達非有하야
不取於相하며 不別樂往生諸佛國土하야
不味不着호대 亦不生厭이라 不以善根으로
廻向於彼하며 亦不於彼에 而退善根하야
常勤修行하야 未曾廢捨하고 但欲因彼境界하야
攝取衆生일새 爲說眞實하야 令成熟佛法이니라
然此法者는 非有處所며 非無處所며 非內非外며
非近非遠이니라 復作是念호대 若法非有인댄
不可不捨라하나니 是名未來施니라
未來施(미래시)
云何爲菩薩의
未來施오? 미래시냐?
此菩薩이, 이 보살이
聞未來諸佛之所修行(문미래제불지소수행)하고,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이렇게ㆍ이렇게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법화경 같은데, 얼마나 많습니까?
사리불은 미래에 몇 억 겁 지난 뒤에 어떻게ㆍ어떻게 할 것이다. 하는 그런 구체적인 이야기로부터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了達非有(요달비유)하야, 있지 아니함을 요달해요.
이것 무서운 소리입니다. 차원이 다른 겁니다.
不取於相(불취어상)하며, 상을 취하지 아니해요.
不別樂往生諸佛國土(불별락왕생제불국토)하야,
제불국토에 가서 왕생하기를 즐기지도 아니해요.
서방정토 극락세계 가기를 얼마나 바랍니까? 그것도 왕생하기를 즐겨하지도 아니고, 不味不着(불미불착)호대,
맛들이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아니하되
亦不生厭(역불생염)이라.
그렇다고 그것을 특별히 싫어하는 생각을 내지도 아니해요. 싫어하는 마음도 내지 아니하고,
不以善根(불이선근)으로, 선근으로써
廻向於彼(회향어피)하며, 거기에 회향하지도 아니하며,
不以善根으로 廻向於彼입니다.
亦不於彼(역불어피)에 而退善根(이퇴선근)하야,
또 그렇다고 선근에서 물러서지도 아니해요.
常勤修行(상근수행)하야, 항상 부지런히 수행해서,
未曾廢捨(미증폐사)하고, 일찍이 廢捨하지도 않고,
但欲因彼境界(단욕인피경계)하야, 다만 저 경계를 인해서
攝取衆生(섭취중생)일새. 중생을 섭취하고자 할세. 그래서
爲說眞實(위설진실)하야, 위하여 진실을 이야기해서
令成熟佛法(영성숙불법)이니라.
불법을 성숙하는 것이니라.
然此法者(연차법자)는, 그러나 이 법이라고 하는 것은,
非有處所(비유처소)며, 처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非無處所(비무처소)며, 처소가 없는 것도 아니며,
非內非外(비내비외)며,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니며,
非近非遠(비근비원)이니라.
가까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니라.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다시 이러한 생각을 하되,
若法非有(약법비유)인댄, 만약 법이 있는 것이 아닐진댄,
不可不捨(불가불사)라하나니,
있는 것이 아니라면 법에 대한 관념은 불가불 버려야 됩니다. 是名未來施니라. 이것이 미래시다.
여기 화엄경에는 존재의 실상이라고 하는 그런 말을 굳이 쓰지는 않으면서도 모든 존재의 실상. 그리고 모든 법은 中道(중도)로, 중도의 원리로 존재한다. 라고 하는 것이 화엄경 전편에 아주 쫙 깔렸습니다.
그래 中道라고 하는 것이 뭐냐?
제가 중도에 대해서 가끔 이야기했지만, 여기에 보면 상반된 이야기를 하잖아요. 무엇이든지 과거법이나, 과거 부처님법이라든지 미래의 부처님법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전부 중생을 성숙 교화하기 위한 그런 조건 하나일 뿐이지,
그것을 꼭 있다고 집착해도 안 되고, 과거불법이나 미래의 불법이나 있다고 해도 안 되고, 그렇다고 없다고 해도 안 된다. 이것은 세속논리로는 엉터리거든요.
있다고 해도 안 되면 그러면 없는 것이냐? ←이렇게 나가야 세속논리인데요.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겁니다.
그것이 불교를 이해하려면 그런 中道논리에 밝아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가장 가까운 이야기가 남자ㆍ여자. 또 속인ㆍ출가인.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내용을 가지고 우리가 보더라도, 남자ㆍ여자하더라도 남자가 계속 남자노릇만 할 수 없잖아요. 여자 하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요즘은 또 그런 사람들이 많지요.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대통령도 하고 온갖 것 다 하잖아요. 옛날에는 어림도 없었지요.
거기에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서로가 걸리지 않아야 됩니다. 고집하고 집착하고 치우친 어떤 소견을 가지고 “이래야 된다.” 라고 이렇게 고집하지 않는 것. 그리고 원융 자재한 것. 상황 따라서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어야 그것이 존재의 실상입니다.
모든 것은 존재의 실상이라고요. 예를 들어서 분필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판서하는데 사용하지만, 말 안 듣고 잠자는 학생들 때리는 무기도 되는 겁니다. 학생을 깨우는 무기도 되지만 또 학생을 가르치는, 학생의 지혜를 열어주는 판서하는 좋은 도구도 되는 겁니다. 이렇게 원융 자재해야 되는 겁니다.
일체사가, 일체법이 다 그렇게 존재하고 있고, 그렇게 존재하고 있음으로 우리는 그렇게 융통자재하게 살아야한다. 라고 하는 것이 화엄경의 논리이고, 그것이 중도논리입니다. 그것이 中道입니다. 그것을 中道狂(중도광)이라고 하는, 성철스님법문 녹음 들어 보면 성철스님은 스스로 중도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나보고 중도광이라고 하는데...” 하시면서 아주 기뻐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중도광이라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중도를 논리적으로 내세우는데요.
雙遮雙照 遮照同時(쌍차쌍조차조동시).
그 스님이 中道에 대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그것입니다. 쌍으로 부정하고, 쌍으로 긍정하고, 그리고 부정과 긍정을 함께한다. 동시에 한다. 그러니까 남자를 두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또 여자를 두고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다. 그러면서 남자이고 여자이고요.
여자에게도 남자이면서 여자이고, 남자에게도 여자이면서 남자이고 그래서 여자와 남자를 동시에 표현하는 것.
그렇게 해야 세상 살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세상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러고 딱~~ 고집만 부려서 그러면 그것은 불안정한 집이지요. 모든 존재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는 겁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스님은 꼭 雙遮雙照 遮照同時 이것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읊조리는 소리를 여러 수 천만번을 들었으니까요. 중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中論(중론). 그 다음에 중론에서 八不中道(팔부중도)가 있는데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은 제가 그 전에(16강) 나눠드린 적이 있는데 永明延壽禪師(영명연수선사)의 萬善同歸中道頌(만선동귀중도송). 제가 그 글을 하도 좋아해서 이번에 사경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 그것을 한 번씩 쓰면서 그것을 익숙하게...
법공양 실에 있습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어떤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 우리가 예불하고 꽃을 올리고 부처님 앞에 공양을 올리고 또 불상을 모시고하는 것.
이런 모든 것에 대해서 중도적인 안목으로 해야 된다는 그런 내용이 거기는 아주 제대로 표현되어있어서 중도를 설명하기가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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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4 (十無盡藏品-功德林菩薩說十藏法)|* 화엄경 녹취(문수경전)
釋대원성 | 조회 107 |추천 1 |2015.08.18. 14:51 http://cafe.daum.net/yumhwasil/Gnl1/266
화엄경산림 대법회 66강-4 (2015. 8. 3.)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一
十無盡藏品 第二十二
三. 功德林菩薩의 說十藏法
6. 施藏
(10) 現在施 (11) 究竟施
7. 慧藏
(1) 如實知義 (2) 自利
(3) 利他 (4) 十種不可盡
(5) 慧藏의 利益
(10) 現在施
云何爲菩薩의 現在施오
此菩薩이 聞四天王衆天과 三十三天과夜摩天과
兜率陀天과 化樂天과 他化自在天과 梵天에
梵身天과 梵輔天과 梵衆天과 大梵天과 光天에
少光天과 無量光天과 光音天과 淨天에 少淨天과
無量淨天과 ?淨天과 廣天에 少廣天과
無量廣天과 廣果天과 無煩天과 無熱天과
善見天과 善現天과 色究竟天하며
乃至聞聲聞緣覺의 具足功德이라도 聞已에 其心이
不迷不沒하며 不聚不散하고 但觀諸行이
如夢不實하야 無有貪着이로대 爲令衆生으로
捨離惡趣하야 心無分別하며 修菩薩道하야
成就佛法하야 而爲開演하나니 是名現在施니라
現在施(현재시)
云何爲菩薩의
現在施오? 현재시냐?
此菩薩이, 이 보살이
聞(문), 들을 聞자를 저 밑에 가서 새깁니다.
四天王衆天(사천왕중천)과,
三十三天(삼십삼천)과 夜摩天(야마천)과
兜率陀天(도솔타천)과 化樂天(화락천)과
他化自在天(타화자재천)과 梵天(범천)에
梵身天(범신천)과 梵輔天(범보천)과 梵衆天(범중천)과
大梵天(대범천)과 光天(광천)에 少光天과
無量光天(무량광천)과 光音天(광음천)과 淨天(정천)에
少淨天과 無量淨天과 遍淨天(변정천)과 廣天(광천)에
少廣天과, 이것이 아마 정천에 소정천이 있고, 광천에 소광천이 있고, 그런가 봐요. 그래서 토를 이렇게 미세하게 달았습니다.
無量廣天과 廣果天(광과천)과 無煩天(무번천)과
無熱天(무열천)과 善見天(선견천)과
善現天(선현천)과 色究竟天(색구경천)을 들어서,
그런 데에 대한 이야기를, 예를 들어서 보살이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하늘은, 화엄경에 근거하면 무수히 많은 하늘이 있고, 또 요즘은 다중우주라. 우주도 多重(다중)으로,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 같은 것이 수없이 많다고 해서 다중우주론이 많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데에 비춰 봐도 이런 하늘이 있다 없다 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늘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乃至聞聲聞緣覺(내지문성문연각)의
具足功德(구족공덕)이라도, 내지 성문ㆍ연각의 구족 공덕을 들을지라도, 천상의 이야기를 들으나 성문이나 연각들의 공덕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지라도,
聞已에 其心(문이기심)이 不迷不沒(불미불몰)하며,
듣고 나서는 그 마음이, 거기에 대한 = 천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음이 미혹하지도 않고 그것이 없어지지도 아니하며 不聚不散(불취불산)하고,
굳이 이것을 모으려고 하지도 않고 흩으려고 하지도 아니해요. 그리고
但觀諸行(단관제행)이 如夢不實(여몽부실)하야,
다만 거기에 대해서 ‘아 그런가 보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럼 무엇을 관찰하느냐? 諸行이 如夢不實이라.
제행이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않다. 우리 육신도, 또 내가 처해있는 확실한 이 지구도 如夢不實입니다. 똑 같습니다.
꿈과 같아서 실답지 아니함을 관찰해서
無有貪着(무유탐착)이로대, 탐착할 것이 없음이로되,
육신도 그렇고 우리 절도 그렇고 우리가 처해있는 이 지구도 그렇고 마찬가지다. 이 겁니다.
우리가 눈이 짧으니까 현재 내 몸과 내가 사는 이 주변 환경과 지구까지만 보이는 것이지, 여기에 수없이 소개된 이 많고 많은 하늘들을 우리 안목이 지금 부족해서 모르지 그것이 있다 없다 굳이 그렇게 따질 일은 아니다. 이 것이지요. 탐착할 것이 없음이로되,
爲令衆生(위령중생)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捨離惡趣(사리악취)하야, 악취를 떠나게 해서,
心無分別(심무분별)하며, 마음에 분별이 없게 하고,
修菩薩道(수보살도)하야, 보살도를 닦게 해서,
成就佛法(성취불법)하야, 불법을 성취하여,
而爲開演(이위개연)하나니, 열어서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더라도 불법을 깨닫게 하고 보살도를 닦게 하는 그런 뜻에서 이런 이야기도 필요하면 무수한 화장장엄세계도 이야기도 한다. 이 것이지요.
是名現在施니라. 이것이 현재시다.
(11) 究竟施
云何爲菩薩의 究竟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假使有無量衆生이 或有無眼하며
或有無耳하며 或無鼻舌과 及以手足이라
來至其所하야 告菩薩言호대 我身이 薄祜하야
諸根殘缺이로소니 惟願仁慈는 以善方便으로
捨己所有하야 令我具足케하라하면
菩薩이 聞之하고 卽便施與호대 假使由此하야
經阿僧祗劫토록 諸根不具라도
亦不心生一念悔惜하고 但自觀身이 從初入胎로
不淨微形과 胞段諸根이 生老病死하며 又觀此身이
無有眞實하고 無有?愧하야 非賢聖物이라
臭穢不潔이며 骨節相持요 血肉所塗며 九孔常流에
人所惡賤이라하야 作是觀已하고
不生一念愛着之心하며 復作是念호대
此身이 危脆하야 無有堅固하니
我今云何而生戀着이리오 應以施彼하야
充滿其願하고 如我所作하야 以此開導一切衆生하야
令於身心에 不生貪愛하야
悉得成就淸淨智身이라하나니 是名究竟施니
是爲菩薩摩訶薩의 第六 施藏이니라
究竟施(구경시), 마지막 최고의 시.
云何爲菩薩의
究竟施오? 구경 시냐?
佛子야
此菩薩이, 이 보살이
假使有無量衆生(가사유무량중생)이
或有無眼(혹유무안)하며, 혹 어떤 이는 눈이 없고
或有無耳(혹유무이)하며, 혹은 귀가 없고,
或無鼻舌(혹무비설)과, 혹은 코와 혀와,
及以手足(급이수족)이라. 그리고 수족이 없는데,
來至其所(내지기소)하야, 그곳에 와서
告菩薩言(고보살언)호대, 보살에게 고하되,
我身(아신)이, 내 몸이 지금
薄祜(박호)하야, 박복하고, 이것도 복 호자니까요. 박복해서, 諸根이 殘缺(제근잔결)이로소니,
모든 근이 구족하지 못하고, 손도 떨어져 나가고 눈도 멀고 귀도 어둡고 그렇다 이 말이지요. 그러니
惟願仁慈(유원인자)는,
오직 원하옵노니 어진 분께서는,
以善方便(이선방편)으로, 좋은 방편으로써
捨己所有(사기소유)하야, 당신 것을 버려서,
令我具足(영아구족)케하라하면, 나로 하여금 구족하게 하라. 그러니까 ‘장기기증 좀 하십시오.’ 이 말입니다.
장기기증 좀 하라. 그러면
菩薩이 聞之(보살문지)하고, 보살이 그 말을 듣고는
卽便施與(즉편시여)호대, 곧 보시를 하되,
假使由此(가사유차)하야, 가령 이것을 말미암아서,
經阿僧祗劫(경아승지겁)토록, 아승지겁을 지날 때까지,
諸根이 不具(제근불구)라도, 모든 근이 불구하더라도,
亦不心生一念悔惜(역불심생일념회석)하고,
한 생각도 뉘우치거나 아까워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但自觀身(단자관신)이,
다만 스스로 관하기를 이 몸이,
從初入胎(종초입태)로, 처음 입태할 때로부터
不淨微形(부정미형)과, 아주 부정하고 아주 보잘 것 없는,
그것 핏덩어리지요? 不淨微形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핏덩어리와
胞段諸根(포단제근)이, 세포지요.
세포덩어리지요. 세포덩어리의 모든 근들이
生老病死(생로병사)하며, 생 노 병 사함을 관하며,
그런 것을 관찰한다. 이 말입니다.
又觀(우관), 또 관찰한다.
우리 몸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지금 이 정도 늙었지요?
此身이 無有眞實(차신무유진실)하고,
이 몸이 또 진실이 없어요. 그리고
無有?愧(무유참괴)하야,
진실한 것이 없으므로 ?愧할 것도 없어요. 그리고
非賢聖物(비현성물)이라.
賢聖의 물건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臭穢不潔(취예불결)이며,
아주 냄새 투성이고 불결해요. 그리고
骨節相持(골절상지)요.
뼈마디가 서로 서로 보고 서로 의지하고 있고요.
血肉所塗(혈육소도)며, 피와 고기 덩어리로써 발려서
얼기설기 묶여있는 것이 우리 육신이다. 이 말입니다.
九孔常流(구공상류)에,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물이 흘러서
人所惡賤(인소오천)이라하야,
사람들이 아주 싫어하고 천하게 여기는 바다. 라고 이렇게 관해서
作是觀已(작시관이)하고, 이러한 관을 짓고 나서는,
不生一念愛着之心(불생일념애착지심)하며,
일념도 애착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
復作是念(부작시념)호대, 또 다시 이런 생각을 하되,
此身이 危脆(차신위취)하야, 이 몸은 危脆하여
脆 = 연할 취 자입니다. 아주 위태롭고 연해서 조금만 칼끝에 찔리거나 바늘 끝에 찔려도 바로 피가 나고 상처를 입고 교통사고가 나면 사정없이 몸뚱이가 부서지고 그렇잖아요. 그야말로 危脆입니다. 위치해서,
無有堅固(무유견고)하니, 견고함이 없으니,
我今云何而生戀着(아금운하이생련착)이리오?
내가 지금 뭐하려고 이렇게 애착하느냐? 말입니다.
喫甘愛養(끽감애양)하여도 此身(차신)은 定壞(정괴)요
着柔守護(착유수호)하여도 命必有終(명필유종)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우리가 외우고 듣던 이야기지요?
애착하고 그리워 할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我)應以施彼(응이시피)하야,
내가 응당히 저 사람에게 보시를 해서,
充滿其願(충만기원)하고, 그 원에 충만하고,
如我所作(여아소작)하야, 내가 지은 바와 같이해서
以此開導一切衆生(이차개도일체중생)하야,
일체 중생을 잘 가르쳐 개도해서,
令於身心(영어신심)에 不生貪愛(불생탐애)하야,
몸과 마음에 탐애를 누리지 않게 해서
悉得成就淸淨智身(실득성취청정지신)이라하나니,
모두가 청정한 지혜의 몸을 얻도록 한다. 이 말입니다.
이 값어치 없는 이 고기 덩어리, 보시하고 그 대신에 지혜의 몸, 아주 뛰어난 지혜의 몸. 淸淨智身 = 청정한 지혜의 몸을 얻을 것이다. 라고 이렇게 하노니
是名究竟施니, 이것의 이름이 구경시다.
是爲菩薩摩訶薩의 第六 施藏이니라.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6 시장이니라.
10무진장 가운데 여섯 번째 시장 이야기까지 마쳤습니다.
7. 慧藏
(1) 如實知義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慧藏고
此菩薩이 於色에 如實知하고 色集에 如實知하고
色滅에 如實知하고 色滅道에 如實知하며
於受想行識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集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滅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滅道에 如實知하며
於無明에 如實知하고 無明集에 如實知하고
無明滅에 如實知하고 無明滅道에 如實知하며
於愛에 如實知하고 愛集에 如實知하고
愛滅에 如實知하고 愛滅道에 如實知하며
於聲聞에 如實知하고 聲聞法에 如實知하고
聲聞集에 如實知하고 聲聞涅槃에 如實知하며
於獨覺에 如實知하고 獨覺法에 如實知하고
獨覺集에 如實知하고 獨覺涅槃에 如實知하며
於菩薩에 如實知하고 菩薩法에 如實知하고
菩薩集에 如實知하고 菩薩涅槃에 如實知하나니라
慧藏(혜장). 지혜 혜ㆍ감출 장. 지혜의 무진장이지요.
如實知義(여실지의). 여실하게 안다는 뜻. 이 말입니다.
여실하게 안다는 뜻. 사실과 같이, 존재의 실상과 같이 안다. 이 말입니다.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慧藏고? 지혜의 무진장이냐?
此菩薩이, 이 보살이
於色(어색)에 如實知하고, 色 = 물질, 이 몸뚱이를 여실하게 안다. 실상과 같이 안다. 사실대로 안다. 이 말입니다.
아주 허망하지만 또 이렇게 분명히 있고, 분명히 있으면서도 사실 순식간에 사라질 그런 허망한 몸뚱이다.
그 양쪽을 어디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제대로 아는 것이 여실히 아는 것, 중도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아까도 중도 이야기를 했지만 여실히 안다는 것이 중도적으로ㆍ사실대로ㆍ실상대로 안다는 것입니다.
몸에 너무 집착할 것도 아니고, 또 그렇다고 몸뚱이를 너무 함부로 할 것도 아니고요. 그것이 중도입니다.
몸에 대한 中道적 觀念. 이것이 중도한 겁니다. 사실 몸을 막 함부로... 제가 그전에 봉암사 선방에 있을 때 어떤 수좌가 대중들이 공양할 때는 공양을 안 하고 있다가, 나중에야 꼭 설거지 할 때 가서 공양하는 겁니다. 다 남은 것만 먹고요. 또 지난 음식, 어제 먹던 것만 거둬서 먹는 겁니다.
마음이야 참~ 오죽 좋습니까? 막 그냥 천하게 먹고 입고하는 것을 자기 몸을 아주 생각하는 겁니다. 몸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좋은 일만 한다고 그렇게 하는 스님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또 송광사 선방에서 같이 또 있었는데 화두가 제대로 안되니까, 제가 관음전 부전을 했는데 거기에 와서 법당 마루에다 대고 머리를 쾅쾅 찧어서 머리에서 막 피가 나고, 그렇게 성의를 다해서 아주 열심히 정진하고 그러더라고요. 요즘도 그런 사람들이 더러 있는가 모르겠네요.
이 육신에 대해서, 색에 대해서 여실히 알고,
色集(색집)에, 이 육신이 모인 그 원인이지요.
集은 육신의 원인이니까요. 거기도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色滅(색멸)에, 이 육신이 소멸하는 데 대해서도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色滅道(색멸도)에,
색이 소멸하는 데 대한 그런 道. 여기에 대해서도
如實知하며, 여실히 알고,
於受想行識(어수상행식)에,
색수상행식을 쭉~ 이야기합니다. 수상행식에 대해서도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受想行識集에 如實知하고,
수집에 대해서도 여실히 알고.
受想行識滅에 如實知하고,
수멸에 대해서도 여실히 알고,
受想行識滅道에 如實知하며,
수멸도에 대해서도 여실히 안다. 이런 뜻입니다.
여기에 나오네요.
受想行識集에 如實知하고
受想行識滅에 대해서도 如實知하고
受想行識의 滅道, 색수상행식을 소멸하는 도.
팔정도라고 할까요? 거기에 대해서도 如實히 알며,
於無明(어무명)에 如實知하고,
無明集에 如實知하고,
無明滅에 如實知하고,
無明滅道에 如實知하며,
於愛(어애)에 대해서 如實知하고,
愛의 集에 대해서 如實知하고,
愛의 滅에 대해서 如實知하고,
愛의 滅道에 如實知하며,
於聲聞(어성문)에 如實知하고,
聲聞法에 대해서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聲聞集에 대해서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聲聞의 涅槃(열반)에 대해서 如實知하며,
於獨覺(어독각)에, 연각에 如實知하고,
獨覺法에, 연각법에 如實知하고,
獨覺集에, 연각집에 如實知하고,
獨覺涅槃에, 연각 열반에 如實知하며,
於菩薩에, 보살에 대해서도
如實知하고, 여실하게 알고,
菩薩의 法에 대해서도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菩薩集에, 보살이, 보살이 되게 된 원인.
그것이 集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도
如實知하고, 여실히 알고, 결국
菩薩의 涅槃에 대해서도 如實知한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지혜의 藏.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自利를 이야기하는데요.
(2) 自利
云何知오 知從業報諸行因緣之所造作은
一切虛假하야 空無有實하야 非我非堅固며
無有少法可得成立이니라
自利(자리).
云何知오? 어떻게 그럼 여실히 안다고 하는 것이냐?
아는 것을 여기 이야기 해놓았습니다. 이 두 줄이 중요합니다.
知從業報諸行因緣之所造作(지종업보제행인연지소조작)은, 업보와 모든 행위의 인연으로 조작 한 바 지은 바는,
一切虛假(일체허가)하야, 일체가 다 헛것입니다.
일체가 다 거짓입니다. 그리고
空無有實(공무유실)하야,
空無해서 실다운 것이 없습니다.
텅 비고 없어서 실다운 것이 없다. 왜냐? 업보이고, 모든 행위이고, 그리고 인연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ㆍ인연으로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一切虛假다. 空無有實이다.
실다움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非我非堅固(비아비견고)며, 아도 아니고, 견고함도 아니며
無有少法可得成立(무유소법가득성립)이니라.
조그만 법도 가히 성립될 것이 없다. 이 말입니다.
뭐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러면 뭐가 제대로 된 것이냐?
제가 늘 이야기를 하지요? 이런 이야기를 듣는 當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ㆍ僧도 아니고 俗도 아니고, 그런 모든 것을 초월하면서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있는 참사람ㆍ차별이 없는 참사람. 승이다 속이다. 남자다 여자다.
그런 차별이 전혀 없는 당체! 그것이 차별 없는 참사람,
無位眞人(무위진인). 제가 늘 이야기를 하지요.
그것이 주체입니다. 그것이 주인공입니다. 그것은 조작이 아닙니다.
그것을 참나 라고 하고, 참사람이라고도 하고 참마음이라고도 하고 진여자성이라고도 하고요. 이것은 조작한 것이 아닙니다. 인연으로 생긴 것도 아니라고요. 인연으로 생긴 것은,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연으로 생긴 것은, 어차피 인연의 힘이 다하면 없어집니다. 하늘을 향해서 화살을 되게 힘을 줘서 당겨서 쏘았어요. 10미터 올라가고 20미터 올라가고 30미터 내지 100미터를 올라간다 하더라도 여기서 화살을 당겼던 그 인연의 힘이 끝나면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 가지고는 답이 없다니까요.
아무리 좋은 일을 하고, 무슨 일을 해서 쌓는 것은 답이 없고, 그야말로 조작을 떠나고 인연을 떠나고 업보를 떠난 참사람, 차별 없는 참사람, 지금 아무 조건과 차별 없이 이 말을 듣고 있는 그 當體ㆍ實體. 불교는 이것 하나가지고 큰소리치는 겁니다. 특히 선불교는 이것 하나가지고 큰소리는 겁니다. 이것 하나 가지고요. 어느 종교 어느 철학도 이것 가지고 그렇게 큰소리치는 종교나 철학은 없습니다.
당장에 눈앞에 있잖아요. 어디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서방정토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우리 눈앞에서 이렇게 역력하잖아요. 그야말로 歷歷孤明(역력고명)한 겁니다.
여러분, 이제 49재 지내는 철인데요. 49재 왜 지내느냐?
바로 歷歷孤明한 그 한 물건 때문에 지내는 겁니다.
그 나머지는 전부 허망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因緣ㆍ業報, 온갖 修行. 그리고 모든 행의 인연으로 조작된 것은 一切가 虛假다. 空無有實이다. 공해서 실다운 것이 없다. 非我非堅固 無有少法可得成立이라.
조그마한 것도, 먼지만한 것도 성립될 것이 없다. 그런 말입니다. 그러나 歷歷孤明한 그 한 물건은 이 우주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주를 꽉 채우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3) 利他
欲令衆生으로 知其實性하야 廣爲宣說하나니
爲說何等고 說諸法不可壞니라
何等法이 不可壞오 色不可壞며
受想行識이 不可壞며 無明이 不可壞며
聲聞法獨覺法菩薩法이 不可壞니라
何以故오 一切法이 無作無作者며 無言說無處所며
不生不起며 不與不取며 無動轉無作用이니라
菩薩이 成就如是等無量慧藏하야 以少方便으로
了一切法호대 自然明達이요 不由他悟니라
利他(이타).
欲令衆生(욕영중생)으로, 중생으로 하여금
知其實性(지기실성)하야, 여기 實性이 나오네요.
실다운 성품을 알아서,
廣爲宣說(광위선설)하나니,
널리 宣說 = 설명한다. 이 말입니다.
제가 늘 걸핏하면 無位眞人 = 차별 없는 참사람 가지고 이야기 하듯이 참마음ㆍ참나ㆍ참사람ㆍ진여자성ㆍ법성ㆍ불성. 같은 의미지요. 쉽게 말하면 한마음. 다 같은 의미입니다. 그 實性을 가지고, 실성을 알아서 廣爲宣說. 널리 설명하나니,
爲說何等(위설하등)고? 무엇을 이야기하느냐?
說諸法不可壞(설제법불가괴)니라.
제법은 가히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다.
何等法이 不可壞오?
무슨 법이 무너뜨리지 못하는 것이냐?
色不可壞며,受想行識이 不可壞며, 無明이 不可壞며,
聲聞法ㆍ獨覺法ㆍ菩薩法이 不可壞니라.
이것은 또 어떻게 알아야 되느냐? 바람이 불어서 바다에 무수한 물결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그 물결의 모양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그리고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방울의 물을 떠서 보면 물이라고 하는 그 실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不可壞입니다.
물결은 순간순간 변해서 무상하기 이를 데 없지만, 물이라고 하는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하는 그것이 不可壞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색수상행식이니, 성문ㆍ연각ㆍ보살법이니 하는 것이 불가괴라고 하는 것은 그 실체,
그 실상을 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이 어떻게 생겼다.
파도가 크다 작다 세수 대야에 떠있는 물이다. 컵에 떠있는 물이다. 이것을 가지고 논할 것이 아니고, 컵의 물이나 세수 대야의 물이나 양동이의 물이나 전부 물이라고 하는 실체에 대해서는 이것은 변함이 없는 것이고, 영원한 것이고,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何以故오 一切法이
無作無作者며, 지음도 없고 짓는 자도 없으며,
無言說無處所며,
不生不起며, 생기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아니하며,
不與不取며, 주는 것도 아니며 취하는 것도 아니며,
無動轉無作用(무동전무작용)이니라.
菩薩이
成就如是等無量慧藏(성취여시등무량혜장)하야,
이와 같은 한량없는 지혜의 무진장을 성취해서,
以少方便(이소방편)으로, 작은 방편으로써
了一切法(요일체법)호대, 일체 법을 요달하되,
自然明達(자연명달)이요.
일체 법을 알되 자연히 저절로 깨달아 아는 것이고,
不由他悟(불유타오)니라. 이것 중요한 말입니다.
了一切法호대, 일체 법을 요달하되,
自然明達이다.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고, 자기 속에서 알아지는 것이다. 남이 아무리 귀가 닳도록 천번 만번 억 만 번을 이야기해줘도 그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작은 인연은 될 수가 있어도,
결국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 속에서 느끼고 알고 깨닫는데 있다. 이 말입니다. 不由他悟다. 다른 이의 깨달음을 말미암지 않는다. 다른 이를 말미암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말입니다. 자기 속에 답이 다 있습니다. 자기 속에 답이 다 있어요.
야~~ 불교 가르침 참 위대합니다. 이런 것이 위대한 겁니다. 了一切法호대 自然明達이요 不由他悟라.
다른 이를 말미암아서 깨닫는 것이 아니다.
(4) 十種不可盡
此慧無盡藏이 有十種不可盡일새
故說爲無盡이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多聞善巧가 不可盡故며
親近善知識이 不可盡故며
善分別句義가 不可盡故며
入深法界가 不可盡故며
以一味智莊嚴이 不可盡故며
集一切福德에 心無疲倦이 不可盡故며
入一切陀羅尼門이 不可盡故며
能分別一切衆生語言音聲이 不可盡故며
能斷一切衆生疑惑이 不可盡故며
爲一切衆生하야 現一切佛神力하야 敎化調伏하야
令修行不斷이 不可盡故니 是爲十이니라
十種不可盡(십종불가진). 열 가지 다함이 없는 내용.
此慧無盡藏이, 이 지혜의 무진장이
有十種不可盡일새,
열 가지 가히 다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故說爲無盡이니, 그래서 無盡이라고 말한다.
何等이 爲十고?
所謂多聞善巧(소위다문선교)가 不可盡故며,
많이 듣는 능력, 많이 듣는 기술, 많이 듣는 善巧방편,
많이 듣는 어떤 능력이라고 보면 됩니다. 많이 듣는 능력이 不可盡이다. 우리가 들으려면 얼마든지 듣지요.
多聞이 참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다문이 첫 째 온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더운 날에 뭘 한마디라도 주어 들으려고 꾸역꾸역 먼 길을 이렇게 오시는 것 아닙니까?
다문이 제일 중요하다고요. 三慧가 聞ㆍ思ㆍ修잖아요.
듣고, 사유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 修는 반복하는 겁니다. 그래 문ㆍ사ㆍ수입니다.
親近善知識(친근선지식)이 不可盡故며,
선지식을 친근 하는 것이 不可盡이다. 선지식도 궁극의 선지식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이 화엄경 같은 것이 참 중요한 선지식이고요. 자기 자신 다음으로는 화엄경 같은 이런 가르침이 훌륭한 선지식이고요.
善分別句義(선분별구의)가 不可盡故며,
句義를, 경전의 한 구절ㆍ그 구절에 담겨 있는 뜻.
이것을 잘 분별하는 것이 不可盡이다.
入深法界(입심법계)가, 깊은 법계에 들어가는 것이
不可盡故며,
以一味智莊嚴(이일미지장엄)이,
한 맛의 지혜로 장엄한다. 전부 지혜로 장엄한 것. 좋지요.
뭐 다른 것, 복덕이니 유루복 그까짓 것, 복이 좀 있다한들 몇 푼어치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간혹, 생활하는데ㆍ사는데 약간 편리해요. 호텔에서 잘 것을 여관에서 자면 됩니다. 아주 좋고 비싼 차타지 말고 중고차 그저 1500cc쯤 타면 되고, 그것도 저것도 아니면 그냥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됩니다.
거기에 찔리고 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대신에 지혜로 무장해야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이 지혜로 무장해놓으면, 지혜로 장엄. 저는 무장이라는 말을 가끔 쓰는데요. 무장했다기 보다는 장엄이 더 좋네요.
지혜로써 장엄해 놓으면 그것은 참 아름답기 이를 데 없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요. 以一味智莊嚴이 不可盡故며,
集一切福德(집일체복덕)에 心無疲倦(심무피권)이,
일체 복덕을 모으는데 있어서 마음에 전혀 피로함이 없는 것이 不可盡故며,
入一切陀羅尼門(입일체다라니문)이,
일체 다라니 문에 들어가는 것이 不可盡故며,
能分別一切衆生語言音聲(능분별일체중생어언음성)이,
중생의 일체 語言音聲을 분별하는 것이 不可盡故며,
중생의 온갖 음성을 다 분별하는 것. 무슨 4개 국어, 5개 국어가 문제가 아니고, 닭소리ㆍ새소리ㆍ개소리도 다 알아듣는다. 이 겁니다. 뭣 때문에 정오에는 닭이 울고 저녁에는 왜 울고, 닭은 닭대로 뜻이 있을 테니까 그것까지도 다 알아듣는... 그런 소리를 하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벌써 눈치 챘겠지요?
能斷一切衆生疑惑(능단일체중생의혹)이
일체 중생들의 의혹을 능히 끊는 것이 不可盡故며,
爲一切衆生하야, 일체 중생을 위해서
現一切佛神力하야, 일체 불신력을 나타내서
敎化調伏(교화조복)하야, 교화하고 조복해서
令修行不斷(령수행부단)이,
하여금 수행을 끊지 않게 하는 것이 不可盡故니
是爲十이니라. 이것이 열 가지다.
(5) 慧藏의 利益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七慧藏이니 住此藏者는
得無盡智慧하야 普能開悟一切衆生이니라
是爲菩薩摩訶薩의 第七 慧藏이니,
이것이 보살마하살의 제7 혜장이니
住此藏者는, 이 慧藏. 지혜의 장에 머무는 자는,
得無盡智慧하야,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어서
普能開悟一切衆生(보능개오일체중생)이니라.
결국은 내가 얻자고 하는 것은 일체 중생을 능히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선행을 했다든지, 깨달음을 얻었다든지 이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동참하게 하고, 이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108자재어의 제일 뒤에 보면 “선행을 하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ㆍ 알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相낸다고 자꾸 그런 오해를 해서 그러는데,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알리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보를 받는 것은, 보상을 받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말입니다. 그 대신 널리 알려라. 알려서 동참하게 하고, 널리 알려서... 우리가 여기 공양 들어온 것을 자꾸 알리잖아요. 알리는 것은 좋은 겁니다.
극구 못 알리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알리는 것은 좋은 겁니다. 알려서 다른 사람들 동참하게 해야지요. 다른 사람들도 환희심을 내게 하고요. ‘아~ 그것 참 참 훌륭한 일이다.’ 하고, 환희심을 내게 하는 것.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내가 공양 얼마 냈으니까 나를 대접해주세요’ 이것이 아니거든요. 절대 그것이 아니라고요. 그런 말이 끝에 있습니다. 그래서 ‘야~ 이것 참, 우리가 너무 잘못 알고 있었구나.
알리는 것을 相낸다. 라고만 편협하게 알고 있었는데,
결코 상내는 것이 아니고,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안 된다고 그랬습니다.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에 여러 사람에게 알려서 같이 환희심을 일으키게 해주는 것, 같이 동참을 불러일으키는 것,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라고 권했습니다. 알리라고... 그러니 소문을 많이 내세요. 좋은 일하면 “아~ 내가 이번에 이것을 했다.” 하고 꼭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고 좋은 일 조금 해놓고 상냈다.’ 라고 이렇게 볼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좋은 일 해놓고 대가 바라고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그냥 알릴뿐입니다. 그런 내용입니다. 날씨도 더운데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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