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신사리와 李건희 컬렉션
붓다가 열반한 후에 나온 사리(舍利)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부처님 진신사리에는 신비적 영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리 분배를 두고 여러 부족 간에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시에 가장 신망이 높았던 도나(Dona) 바라문이 분배의 역할을 맡았다.
도나의 중재로 8등분을 하였다. 각기 지역별로 8군데에다가 사리탑을 세웠다. 항아리를 모시는 병탑, 재를 모시는 회탑까지 포함하면 도합 10군데에 탑이 세워졌다. 중재를 맡았던 도나는 사리를 모셨던 항아리를 가졌고, 뒤늦게 현장에 온 모리야족은 화장을 하고 난 후의 재를 가져갔다.
세월이 흘러 8군데 사리탑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은 네팔 쪽에 있는 랑그람의 영탑이다. 붓다의 어머니 마야부인의 친정인 꼴리족이 배분받았던 사리이다. 후일에 랑그람 영탑을 해체하려고 하자 꿈에 용이 나타나 ‘손을 대면 화가 미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탑을 빙빙 도는 ‘탑돌이’를 하는 이유는 탑 속에 모셔놓은 사리의 기운을 받기 위해서이다. 붓다뿐만 아니라 생전에 도가 높았던 고승들의 사리에는 3가지 영험이 있다고 한다. 방광(放光), 은몰(隱沒), 증과(增果)이다. 방광은 사리에서 빛이 나는 것이고, 은몰은 홀연히 사리가 사라지는 경우이고, 증과는 사리가 더 늘어나는 현상이다.
한국 불교 신앙의 중심에는 사리 신앙이 자리 잡고 있다. 불교도들의 대표적인 순례지인 5대 보궁이 그것이다. 통도사 금강계단, 오대산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정암사의 수마노탑, 사자산 법흥사 보궁이다.
고승들은 입적하면서 사리를 남겼지만 이건희는 타계하면서 컬렉션을 남겼다. 세계가 인정하는 미술 작품들은 그 일급 예술가들의 혼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사리와 같다. 세계적인 미술품들은 거기에서 기가 나온다. 작품을 보고 감동받는다는 것은 기를 받는다는 의미이다.
‘李컬렉션’ 가운데 국내 작품은 지방에도 분배를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해외 명품이 문제이다. 모네, 로댕, 피카소 같은 세계적인 작품들도 서울 한군데에다가 몰빵하지 말고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대전, 전주 등 지방 도시에 1점씩이라도 분배했으면 한다.
<조선일보-살롱 칼럼 2021. 5>
[출처] 진신사리와 李건희 컬렉션|작성자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