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본능 1. 어둠 속에 잠긴 용인 별장의 홀에 샹들리에 불빛이 환하게 켜져있는 가운데 정각 10시에 권의원과 유여사가 홀로 들어오는 것을 끝으로 장과장과 초대객들이 모두 모였다. 장과장은 양복 차림의 권의원과 악수를 나눈 다음 그를 오른쪽 테이블의 빈 의자로 안내했다. 남형사는 장과장의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경찰차 안에서 조박사와 박만하를 감시하고 있었고, 윤형사는 이층 응접실에서 장미꽃이 그려진, 윤보혜양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있었다. 어느 사이에 홀 임구에는 정복 차림의 순경 두 명이 열중 쉬엇 자세로 입구를 지켜서 있었고, 초대객들을 모두 두 개의 원형 테이블로 안내한 장과장은 감청색 싱글 차림의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중앙 홀에 섰다. "저희가 여러분을 최초의 살인이 발생한 이곳에 모여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린건, 여러분들이 모두 모여있는 자리에서 두 미스코리아의 죽음과 연박사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드릴까해서입니다." 장과장은 오랜만에 맨 넥타이가 거북한듯 한쪽으로 조금 돌리고 나서 다시 초대객들을 바라보았다. 왼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여자 초대객들과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 초대객들은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마실 생각도 않고 긴장된 눈빛으로 장과장의 여유있는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장과장은 초대객들을 바라보기보다는 허공을 향해 천천히 무거운 침묵을 깼다. "마술과 완전범죄의 공통점은 관객들과 형사들을 감쪽같이 속이는데 그 승패가 달려있는 것입니다. 십원짜리 동전이 백원짜리 동전으로 둔갑하든, 살인을 할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백리 밖에 떨어져 있는 사람의 칵테일 잔에 독극물을 타넣어서 독살시키듯이 불가능한 살인을 하든, 거기에는 반드시 평범한 사람의 두뇌로는 풀수 없는 교묘함이 숨어있기 마련입니다.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에는 속임수라는 껍데기로 평범한 눈동자들을 가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을 안대로 가려버린다는 것, 그것만큼 살인을 성공시키는데 완벽한 조건은 없지요. 이 용인별장에서 발생했던 윤보혜양의 독살 살인, 이 살인은 마술처럼 불가능에 가까운 독살이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을 감쪽같이 죽일수 있었을까요? 그 전에, 마지막 살인이라 할 수 있는 청평 별장에서의 연박사님 살인부터 거꾸로 풀어나가보죠. 두 번 되풀이해서 말할 필요없이 연박사님은 볼룸댄스를 추다가 쓰러져서 숨졌습니다. 그러나 연박사님은 수면제의 인체 반응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건네준, 즉 범인이 건네준 술잔 속의 수면제를 마신 후에 춤을 추다가 쓰러진 겁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강한 수면제였습니다. 그러나 그 수면제만으로는 연박사님을 저 세상으로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쓰러진 염박사님에게 그림자처럼 다가가서 목덜미에 주사바늘을 꽂으면 그 즉시 즉사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의학 상식이 별로 없는 분들은 마취제 이름 자체가 생경하고 생소하겠지만 그쪽 일에 종사하고 있는 마취전문의들한테는 갑순이 갑돌이라는 이름처럼 귀에 익은 마취제들이겠지요. 의사들도 마찬가지겠지요. 여러분, 이 그림을 한번 보시겠습니까?" 장과장은 싸인펜으로 크게 그려진 달력같이 큰 종이를 순경에게 들고 서있게 하고는 초대객들을 한번 쳐다보았다. "연박사님이 숨지기 전에 앉았던 좌석 위치도입니다. 장기자랑이 끝나고 나서부터 앉았던 위치도입니다. 자, 보시지요. 연박사님이 술잔에 몰래 타넣어진 수면제를 마신건 이 시간대입니다. 그러나 이 위치도는 그렇게 중요한 그림은 되지 못합니다. 다만 위치도로 봐서는 누가 가장 연박사님의 술잔에 수면제를 탈 수 있었을까 하는 가능성 높음의 한 예라 할까요. 마찬가지로 이곳 용인 별장에서 사용되었던 칵테일 잔이 청평 별장에 나타난 희안한 상황, 이 매직 역시 범인이 누군가를 화살표 해주고 있지요. 이 사라졌다가 나타난 칵테일 잔의 신비스러움은 사실 투명글씨의 원리처럼 그렇게 환상적이지 못합니다. 범인은 칵테일 잔을 이용해서 연박사님이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기정사실화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던 칵테일 잔이, 귀경하는 도중에 차창 밖으로 던져버렸다는 칵테일 잔이 멀쩡하게 청평 별장에 나타났다면 윤보혜양을 독살한 진범이 연박사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식의 공동체를 만들어낼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반대로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짙어진다면 그 모든 눈총은 유여사님에게로 쏠려집니다." 그러자 초대객들의 시선이 불안에 떨고 있는 유여사에게로 향해졌다. 오직 한 사람만은 장과장의 실눈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진숙 여사님, 여사님은 이 별장에서 있었던 독살 계획에서 사라진 칵테일 잔과 마찬가지로 범인의 계산 속에 넣어져 있지는 않았습니다. 단지 춤을 추지 않았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몰린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청평 별장에서의 연박사님 살해 계획에는 여사님이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대상으로 점찍혔습니다. 다만 청평 별장에서도 불운하게 연박사님의 파트너가 되는 바람에 변명조차 할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이었죠. 흔한 표현으로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억세게 재수없는 생일파티였죠." 초대객들의 의혹에 찬 시선을 의식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유여사는 샹들리에의 밝은 불빛이 눈에 들어오는듯 환한 표정을 지으면서 뒷짐을 지고 중앙 홀에 서있는 장과장에게 신뢰의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마술의 트릭을, 아니 이제 완전범죄의 허상을 낱낱이 벗겨내기에 앞서서 제 가슴 속에 숨겨진 두 가지 성격을 범인에게 선전포고하듯이 알려드리고 싶군요. 난 두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인이 발생하면 난 약자가 되어버리지요. 반대로 범인이 누군가를 알게 되는 순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강한 인간이 되어버리지요. 어떤 표현이 정확할까, 그렇군요. 지금의 내 성격은 쥐를 잡은 고양이의 손놀림, 발놀림, 몸놀림이랄까요. 한끼의 포식을 앞둔 생쥐와의 일방적인 워밍업이라고 할까요. 솔직히 난 지금 즐기고 있습니다. 범인은 지금 속으로 생각하시겠지요. 자백만 하지 않으면 구속시킬수 없을거라구요. 그래서 태연하게 용인 별장으로의 초대를 원하셨겠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겁니다. 자, 여러분. 이제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유여사님이 윤보혜양의 독살과 연박사님의 죽음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면 결국 범인은 이 용인 별장에서 볼룸댄스를 추고 있던 분들 중에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 초대객들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면서 서로의 얼굴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자, 이제부터 진실의 핵심으로 들어가기로 하지요. 용인 별장에서의 윤보혜양 독살과 L호텔에서의 성주라양 살인, 그리고 청평 별장에서의 살인은 같은 살인으로서 시리즈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주라양 살인의 경우, 범인과 정체가 밝혀진 니시무라 다니구찌와의 사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관계가 이 세상 누구한테도 드러나지 않고 둘만의 관계로만 유지되어온 상태였습니다. 사실, 공범자의 제보가 없었으면 성주라양 살인은 범인의 계획대로 영원한 미궁에 빠질 뻔했습니다. 연박사님의 오랜 친구이자 의대 동창생인 조박사의 전화는 연박사님을 두 미스코리아 살해범으로 기정사실화시키려는 사전 의도에서 이루어진 계획적인 제보였지만, 포기상태에 빠져있는 우리 수사진에게는 일대의 전기를 마련해준, 범인과 조박사로서는 악수를 둔 결과였습니다. 정말 그 제보전화는 훌륭했습니다.연박사님이 두 미스코리아을 살해한 진범이라는걸 우리 경찰에게 알려주기 위한 계략은 뛰어난 것이었습니다. 조박사의 거짓 진술을 믿고 체포영장을 청구해서 발부받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김순경!" 장과장은 오른쪽 입구에 서있는 순경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김순경은 명령을 떨어지자마자 밖으로 나가서 앞으로 수갑이 채워져있는 조박사를 데리고 들어왔다. 고개를 푹 떨구고 있는 조박사 옆에 다가선 장과장은 미소를 흘리면서 테이블의 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제 옆에 서있는 분은 조박사라는 분입니다. 연화병원의 부원장이지요. 이 사람이 미국으로 도피해버리면 범인은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겠지요. 아마 범인으로부터 피하라는 전화를 받고 공항으로 달려갔을 겁니다. 조박사님, 성주라양하고는 어떤 관계였죠?" 장과장은 냉혹한 얼굴로 물었다.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그럼 범인과는 어떤 관계죠?" "......" 조박사는 실어증에 걸린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말씀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차피 잠시 후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테니까요." 장과장은 조박사를 홀 끝에 앉히게 하고는 다시 테이블을 보았다. "성주라양 살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박사님에 의해서 성형수술이 이루어졌고, 수술자국이 아문 후에 L호텔로 옮겨져서 조박사에 의해 살인이 자행되었습니다. 여기서 알수 있듯이 조박사의 자백이 없으면 범인은 무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연박사의 살인은 어떻게 된걸까요? 좌석 위치도를 보셨으면 알겠지만, 박사님의 술잔에 수면제를 타넣을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강여사님과 박윤성 회장님으로 샌드위치처럼 연박사님 좌우에 앉아있었습니다. 연박사님에게 수면제를 탄 술잔을 마시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요. 아무도 몰래 자기 잔에 수면제를 타서 한잔 하라고 건네줄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 적당한 기회에 수면제를 타넣으면 되겠지요. 문제는 수면제를 어떻게 타느냐보다는 수면제를 먹인 후에 어떻게 행동을 하느냐는 점이었지요. 그러나 범인이 용의자 그룹에서 벗어나는건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습니다. 연박사가 수면제에 의해서 쓰러질 때까지 테이블에 그대로 앉아있으면 범인은 홀로 나가서 춤을 추면 되었고, 연박사가 홀로 나가서 춤을 추면 테이블에 앉아서 그가 쓰러질 때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사기를 꽂을 기회만 노리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연박사님은 블루스곡이 흘러나오자 춤을 추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약효에 의해 쓰러졌고, 범인은 쓰러진 연박사에게 다가가 기회를 엿보았습니다. 그 연박사의 주위로 모여있던 초대객들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테이불로 하나 둘씩 돌아가앉자 범인은 찬스를 맞게 되었습니다. 목덜미에 주사기를 푹 찌르고 일어났을 때 범인은 테이블에 등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범인의 주사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설사, 최악의 경우 누구한테 들켰다 하더라도 마침 주사기가 나한테 있어서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면서 한번 주사기를 사용해본거라고 그럴듯하게 둘러대면 무사하게 넘어갈 수도 있는거지요. 그리고 30분 후, 우리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고, 시신에 주사 바늘 자국이 있는 걸 발견한 우리 경찰은 여러분의 양해와 협조를 얻어서 소지품 검사에 들어갔지요. 그러나 몸수색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찾아낼 수는 없었어요. 그러나 이 주사기를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청평 별장 빈 양주병 속에서 뒤늦게 찾아낼 수 있었죠. 고동색으로 된 외제 양주병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범인의 지문을 발견해내지는 못했습니다. 범인에게는 무척 다행한 일이겠지요. 위기일발의 순간을 극적으로 모면했으니까요." 장과장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에 싸인 볼펜보다 조금 작은 주사기를 꺼내보이고는 다시 여유있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김순경." 장과장의 명령을 받은 김순경은 부동자세를 풀고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에 남형사가 수갑을 채운 박만하를 데리고 홀로 들어왔다. "박만하씨, 당신을 왜 이 별장으로 데리고 온지 아십니까?" 장과장이 묻자 박만하는 방울뱀처럼 고개를 쳐들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초대객들을 보며 말했다. "모르겠는데요." "모를수밖에." 장과장은 비꼬는 말투로 한 마디 내뱉고는 권의원에게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의원님, 여기 서있는 자로부터 어떤 협박이나 공갈 같은거 받지 않으셨나요?" "내가요? 천만에." "그렇습니까? 그럼 유여사님은요?" 왼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유여사가 장과장과 박만하를 차례로 쳐다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그런 일이 없는데요." "네, 잘 알았습니다. 박만하씨, 그럼 당신은 누구에게 공갈 협박을 했습니까?" "전 공갈 협박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강여사님한테 불타는 마음 좀 잘 헤아려 달라고 부탁을 한 것뿐입니다." "어떤 부탁을요?" "윤보혜양과 즐거운 시간을 갖게끔 자리 좀 마련해달라고 부탁을 한 것밖에 없습니다." "강여사님, 박만하씨 말이 사실입니까?" 장과장은 2보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곱게 화장한 얼굴로 박만하를 노려보고 있는 강여사에게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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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44. 무서운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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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3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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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청풍
08.05.30 11:10
첫댓글
사건을 푸는것도 기술이군요..
흐르는추억
08.05.30 16:31
오, 내일편 기대 만땅~!
미혜
08.06.09 08:47
감사히 잘보구 있읍니다~!
판대목
14.04.21 10:13
감사
김성갑
17.11.24 10:10
감사
고바우영감
21.08.11 14:23
♡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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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건을 푸는것도 기술이군요..
오, 내일편 기대 만땅~!
감사히 잘보구 있읍니다~!
감사
감사
♡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