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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옹주 묘 written by 한국의 능원묘 |
▲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과 정화옹주(貞和翁主 - 선조의 서10녀) 묘역 원경 |
정화옹주(貞和翁主, 1604년~1667년)는 조선 제14대왕 선조의 막내딸이다. 어머니는 온빈 한씨이다. 선천적으로 말을 못하는 벙어리로 태어났고 병에 자주 걸렸다고 한다. 부왕 선조가 사망할 때 겨우 4살이었다. 인조 8년(1630)에 동지중추부사 권익중(權益中)의 아들 동창위(東昌尉) 권대항(權大恒)에 하가하였다. 향년 64세에 졸하였는데 슬하에 자식이 없어 조카 한산군수 권덕휘(權德徽)를 후사로 삼았다. |
▲ 묘역 입구 좌우측에 홍살문과 비각(신 신도비)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권대항(權大恒, 1610년∼1666년).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응정(應貞). 1630년(인조 8) 선조의 딸 정화옹주(貞和翁主)와 혼인, 이듬해 동창위(東昌尉)에 봉하여졌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하였으며, 곧 금군청부총관(禁軍廳副摠管)이 되었다. 성품이 곧고 모든 일에 매우 신중하였으며, 친족 가운데에서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돕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
▲ 비각 앞에서 바라 본 묘역과 관곡재사 |
▲ 묘역 하단에 위치한 애마총(愛馬塚) |
- 이하 권대항 신도비 내용 발췌 -
권씨(權氏)는 본래 신라의 후손이다. 시조인 태사(太師) 행(幸)은 고려를 섬겨 권씨를 사성(賜姓)1)받았다. 자손이 존귀하고 현달하여 영도첨의(領都僉議) 부(溥)에 이르러 그 세대가 더욱 커졌는데, 공에게 11세(世)가 된다. 공의 이름은 대항(大恒)이고 자는 응정(應貞)이다. 증조 할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영의정 동흥부원군(東興府院君)에 추증된 상(常)이다. 효도로써 특히 소문이 나서 지금까지 5세 100년 동안 훈도(薰陶)2)가 마을에 남아 있고, 집에는 효자 정문(旌門)이 있다. |
▲ 동창위 권대항·정화옹주 묘역 전경 |
할아버지는 행 도승지를 지냈고 우의정에 추증된 희(憘)인데, 역시 소경(昭敬 : 선조) 때의 명신(名臣)으로, 태사(太史)에 관한 일을 하였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고 이조 참판에 추증된 익중(益中)으로, 대대로 독실한 생활을 하여 수직(壽職)3)으로 귀하게 되었다. 어머니인 정부인(貞夫人) 조씨(趙氏)는 한양(漢陽)이 본관으로, 양절공(良節公) 온(溫)의 8세손이며 현감 서(瑞)의 딸이다. |
▲ 구 신도비와 석물 모습 |
만력 38년(1610, 광해군 2) 경술 10월 19일에 태어나 순효대왕(純孝大王 : 인조) 8년(1630) 정화옹주(貞和翁主 : 선조의 딸)에게 장가들어 예(例)대로 동창위(東昌尉)로 봉작되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임금을 호종(扈從)한 공로로 자의대부(資義大夫)로 승진하였다. 두 번 금병(禁兵)4)을 맡아 부총관(副摠管)이 되었다. |
▲ 권대항·정화옹주 묘역 전경 |
성품이 충실하고 소박하며 성실하고 신중하였으며, 검소함을 좋아하고 평소에 선행을 하였으며, 남과 더불어서는 겸약(謙約)하고, 공손하여 존귀한 듯이 처신하지 않았다. 부모가 연로하게 되니 공도 이미 쇠약해졌으나 성실히 봉양(奉養)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매번 명절과 생신에는 친척과 손님이 모여 장수를 빌며 술잔을 올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기쁨을 드렸다. 인애(仁愛)가 돈독하여 사촌형제 가운데 빈한한 자들이 공을 기다려 불을 지피는 것이 함께 밥을 지어 먹는 사람 같았다. |
▲ 동창위 권대항과 선조의 서10녀 정화옹주 합장묘 |
임금님 재위 7년(1666, 현종 7) 병오 정월 4일에 공이 별세하니 향년 57세이다. 임금께서 부의(賻儀)를 하사하니 예법과 같았다.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장사지내도록 하였으니 예(禮)이다. 다음달 양주 어등관암(於登寬岩)의 언덕에 묻으니, 외조·증조의 분묘가 이곳에 있다. 조씨의 제사는 공이 사후의 일을 맡았기 때문이다. |
▲ 권대항·정화옹주 묘역 후경 |
옹주는 소경대왕의 딸로 온빈 한씨(溫嬪韓氏) 소생이다. 한씨는 중고(中古)에 임금의 총애를 받은 재상인 계순(繼純)의 6세손이다. 옹주는 소경대왕이 승하하기 4년 전인 갑진년(1604, 선조 37) 2월 22일에 태어나 다음 갑진년 4년 후인 정미년(1667, 현종 8) 9월 24일에 별세하니 향년 64세였다. 다음해 3월 같은 언덕에 함께 묻었다. 자식이 없어 형의 아들 덕휘(德徽)를 후사로 삼았는데 지금 한산 군수(韓山郡守)가 되었다. |
▲ 묘역 우측에 위치한 관곡재사 |
제14대 선조대왕(宣祖大王) [1552 ~ 1608] 가계도
정비 의인왕후 박씨(懿仁王后 朴氏) [1555 ~ 1600] :소생 없음
제1계비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 [1584 ~ 1632]
서1남 임해군(臨海君) [1572 ~ 1609] (공빈 김씨) |
정화옹주 묘역 위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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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우측 중앙의 화살표 부분이 관곡재사, 위의 봉분이 권대항·정화옹주 묘역입니다. 소재지 : 경기 양주시 덕정동 1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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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우측 중앙의 화살표 부분에 권대항·정화옹주 묘역이 있습니다. 덕정역을 기준으로 위치를 가늠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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