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들의 기부정신
제주의 묵은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수많은 공덕비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는 제주 남원 출신인 재일동포 아무개가 헌금한 것에 대한 감사하는 공덕비들이 마을마다 하나 이상 있어 한편으로 놀라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남원읍내에 세워진 것만 하더라도 남원 2리의 ‘향리 출신 재일동포 송덕비, 태흥리의 ’태흥출신 재일동포 공덕비‘, 위미리의 ’위미 전기기금 재일동포 희사금 공덕비‘, 하례리의 ’재일동포 전화개발 후원회 공적비‘, 하례리에 재일교포가 기금을 낸 ‘문화관 건축 기념비’, 신흥리의 ‘재일동포 독지기념비’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을 만큼 많다.
남원읍사무소 관계자는 이런 비가 어디에 또 있는지 신기해하고 묻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며 준비해 놓은 ‘재일동포 기부자에 대한 공덕비(송덕비)현황‘이란 명단을 복사해서 제공한다. 자료에 나온 공덕비가 무려 24곳이나 되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은 육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공동체의식을 심어주었을까? 필자는 본향당 신앙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영혼의 주민센터인 이 본향당은 제주인들의 마음의 고향이라고 보는 것이다.
지금 오오사가에 있는 재일동포 대다수가 제주도 출신이다. 일본 토오꼬오 대학 인류학과의 이즈미 세이이찌가 1950년에 발표한 ‘토오꾜오에 있어서의 제주도인’이라는 논문이 주목을 끌었다. 발표자가 토오꾜오 X지구 한 곳을 면접조사할 때 지역에만도 제주인이 500세데 2000명이 살고 있었단다.
이들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와 1948년 4.3 때 그야말로 혈혈단신 거친 바다를 건너 일본에 가서 새 삶을 꾸려간 사람들이다. 이들이 어쩌다 고향에 찾아오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본향당이었다. 본향당에서 할망에게 신고할 때 없는 사람은 소지에 촛불 하나만 가지고 오는 것이 허용되지만 있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할망이 보답을 해줄 리가 없다는 믿음이 지금도 제주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다.
그들에게 오색천을 가져오라, 색동옷을 해오라는 것은 할망이 그것을 입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부자는 부자답게 행동하라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의 지침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활의 인이 박힌 제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기부정신을 익혔던 것으로 보는 것이다.
제주 남원읍 의귀리 중산가지대에서 1만 마리의 말을 키우던 제주의 부호 김만일은 임진왜란 때 기르던 말 500두를 국가에 기증하는 등 여러 차례에 걸쳐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말을 기증한 獻馬功臣으로 의귀리에는 있는 그의 묘소도 부자답게 먼저 살다간 제주인이 보여준 기부정신을 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제주에는 지난 1월 중순께부터 꽁꽁 얼어붙었던 땅을 뚫고 봄까치꽃(큰 개불알꽃)과 봄별꽃을 비롯한 풀꽃들이 피어 본향당 할망의 신앙과 새봄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참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흥준)
첫댓글 제주도로 옮겨가 사는 내륙인들 얘기로는 제주도 사람이 너무 배타적이고 타지 사람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 힘들다고들 하는데 천규 덕분에 제주도민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