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9nrcNNp0jSU
2014년 우크라이나 내 민족 갈등 및 국지적 충돌로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전면전으로 비화되던 때, 로완 윌리엄스 전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님이 한 BBC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로완 전 대주교님은 러시아 정교회를 세계 교회 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에서 출교시켜야 할 "근거(case)"가 "확실하다(strong)"고 말씀하셨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로완 전 대주교님은 정교회를 비롯한 동방 교회의 영성과 전례에 깊은 애정을 가진 분으로서 "성공회의 옷을 입은 정교회"라는 평가도 받았던 분입니다. 21세기에 이르러 서방에 동방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영성을 알림과 동시에 동방과 서방의 대화와 화합에 있어서 그만한 공헌을 하신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해당 방송 인터뷰 발언은 정교회에 대한 당신의 오래되고 애정어린 관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기에 더욱 당혹스러웠습니다. 러시아 정부 및 군부의 행동과 러시아 내에서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그것이 대중적 차원이든 제도권 교회의 차원이든)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과 오랫동안 러시아 국민들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를 모어로 사용해온 상당수 주민들의 정신 문화와 깊게 연계된 러시아 정교회에 대해 물리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러시아의 국가 체제 및 이념과 정신 문화로서 러시아 정교회가 여러 측면에서 연계되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흑백논리가 횡행하던 냉전기에도 냉전 종식 이후에도 세계 교회 협의회는 비록 한계가 없지는 않았으나 국경과 민족, 진영, 정치적 이념의 경계를 넘어 정교회와 성공회, 구 가톨릭 교회, 많은 개신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만나 같은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확인하고 고백하면서 세상과 이웃을 위한 협력을 도모하는 기구로 기능해왔습니다. 그러한 세계 교회 협의회에서 러시아 정교회를 출교시킨다는 것은 이미 신냉전 구도 속에서 갈라지고 분열된 세계의 상처를 더욱 깊게 할 뿐일 것입니다. 로완 전 대주교님의 선술한 발언은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2024년 말에 이른 현재, 전쟁은 러시아 본토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미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평화 정착을 기원한다면 세계 교회 협의회의 러시아 정교회 출교 조치나 러시아의 문화콘텐츠 및 러시아와 관련된 문화 행사 축소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러시아 정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하고 합의해나가려는 노력을 계속 해 나가야 하며,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서 차이코프스키와 쇼스타코비치, 타르코프스키에 이르는 위대한 러시아 문화예술을 평화와 사랑, 사해동포주의의 차원에서 재해석하고 재평가해야 합니다. 또한 러시아 국민들과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의 역사적, 문화적 친연성을 지속적으로 환기시키야 하며 양국에 정교회로 뿌리내린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은 자비와 사랑, 평화에 있음을 강조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러시아 국민과 우크라이나 국민들 사이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푸틴도, 젤렌스키도, 서방의 나토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도, 러시아 연방의 애국주의도, 그 어떤 "가치"에 따른 동맹도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대한 믿음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각 교회 사이에서 자주 나타나는 긴장되고 정치화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성전을 가로지르는 장막에 너무나 집착한 나머지 성전의 모습과 헤루빔 사이에서 옥좌에 앉으신 예수님, 성모님의 무릎 위를 옥좌로 하여 앉아계신 예수님의 모습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 모습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고 이해하는 방식에 경이롭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과 더불어 하느님의 영광이 인간 존재 안에서 완전하게 살아계신다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로완 윌리엄스, <Ponder These Things : Praying with Icons of The Virgin>, p.67 중
(*번역은 제가 했습니다. 퍼가실 때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