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 12지문 종주기
지난 2월 초 인사동에서 북한산과 한양도성전을 할 때 고양시청 문화유산관광과 과장과 학예연구사가 관람을 한 후 올해 꽃 박람회 기간에 고양시에서 북한산 그림들을 전시해 줄 수 있느냐고 했다. 평소에 고양시에 사는 사람들과 예기를 하다보면 북한산 지역의 70%가 고양시에 속한다며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몇 일전 전시 장소에서 회의를 갖고 전시를 갖기로 했다. 담당자는 특별히 고양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북한산성의 세계문화유산등재와 관련하여 북한산성의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길 원했다. 그리고 전시는 고양시 600년 기념 전시관내 한 쪽에서 하기로 했다.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북한산성에 더 중시되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북한산 전체를 아우르는 그림들을 많이 그려 와서 준비된 그림들이 많지만 전시 의도에 맞춰 다시 한 번 북한산성의 실체를 뚜렷이 의식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북한산성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일기예보에 토요일에 비 소식이 있어서 신경이 쓰였는데 새벽에 그치고 점차 맑아지는 것으로 예보되어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연무가 끼어 있었다. 이것저것 정리하다 출발이 늦어진 사이 햇살이 났다. 이 시각 이후로는 날씨가 맑아질 것 같았다. 구파발역에 내려 밖으로 나가다 아이젠을 하나 산 다음 704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 정류소에 내려 김밥을 한 줄 사서 배낭에 챙겨 넣고 원효봉을 오르는 지점으로 걸어갔다.
10시 54분 북한산 둘레길 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길에 들어섰다. 길 입구 옆에 설치된 벽면에 빈 액자 두 개를 걸어 놓고 “북한산이 가장 아름다운 명작입니다.” 하는 글씨가 보였다. 새벽까지 내린 비로 개울에 물이 흐르고 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주말인데 오르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간혹 위쪽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지나치게 되었다. 11시 5분 시구문에 닿았다. 이번에 12성문과 성곽들을 자세히 보며 사진에 담아두려는 생각을 했다. 시구문 쪽에서 양쪽 성벽을 길게 파노라마로 담으려다 핸드폰 작동이 안 되어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이 시간이 지체된 듯 하여 성곽을 따라 난 등산길을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아까 올라올 때 인사를 하고 지나쳐 왔던 여자 분이 앞서 오르다 공터에 머물러서 다시 인사를 했다. 원효사를 지나 우측으로 꺾어 올라가는 길에서 다시 성곽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어서 원효봉 앞 암봉을 넘어설 것이 걱정이 되었다. 화판을 들고 있어서 바람에 날릴 위험이 있었다. 잠시 후 그 암봉 앞에 도착해 바람이 조금 잦아드는 때를 포착해 조심조심 봉우리를 넘어갔다.
11시 41분 원효봉에 올랐다. 고양이 때가 먹이를 주는 남자분 앞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간간히 약한 눈발이 내렸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래도 조금 있다 개이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거기 서서 웅장하게 솟아 보이는 백운대 정상을 스케치 했다. 부부가 사진을 찍고 내려가다가 전에 여성봉에서 스케치 한 분 아니냐며 반가워했다. 다른 분은 스케치하는 모습이 멋있다며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했다. 괜찮다고 하면서 나도 사진을 부탁했다.
잠시 후 북문에 도착했다. 성루가 없이 성채만 남아서 성문 앞뒤 쪽의 홍예가 덩그렇게 허공에 걸쳐 보였다. 북문 사진을 안팎에서 찍은 다음 한 손에 김밥을 들고 먹으며 계곡쪽 내리막길을 걸었다. 대동사 앞을 내려가 계곡지점에서 쉬고 있는 부부에게 따뜻한 물을 한컵 얻어 마셨다. 다리를 건너 백운대쪽으로 올라갔다. 경사가 심하고 거리가 긴 편이라 힘이 드는 곳이다. 오르는 동안 점차 눈발이 굵어지며 길에 눈이 쌓이고 있었다.
1시 12분 위문에 도착하니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다. 거센 바람이 좁은 문을 통과하면서 폭풍이 되어 빠져 나갔다. 위문 바깥에서 사진을 찍고 안쪽으로 들어와 얼굴 사진을 찍으려니 눈을 뜨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올라온 사람들이 계곡 쪽에서 부는 바람을 피해 성문 바깥쪽 벽에 붙어 바람을 피하고 있었지만 눈이 펑펑 쏟아져서 모두 몸을 웅크린 채 눈을 맞고 있었다.
순간 더 이상 진행이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심해서 화판을 든채 이동하 어려울 것 같았다. 북한산은 대부분 길이 험한 편인데 바람에 휩쓸려 눈길에 사고를 당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옆에 선 다른 사람에게 “날씨 상황으로 보아서 포기하는 게 낳을 것 같지요?” 하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은 나 자신에게 묻는 말이기도 했다.
12성문 종주 계획을 포기하고 백운산장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그 길도 군데군데 쇠난간이 설치된 험한 길인데 눈이 쌓여 미끄러웠다. 아가씨들이 나에게 길이 어떤지 물어서 군데군데 철 난간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1시 23분 백운산장에 닿았다. 산장 문이 닫혀 있었다. 문 겉면에 기부체납을 하여 국가에 귀속되었고 국립공원북한산사무소에서 수리를 한 후 다시 개방하겠다고 했다.
인수봉 야영장이 있는 안부 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동쪽 하늘이 맑게 개이며 파란 하늘이 보였다. 이제 날씨가 완전히 맑아질 것 같았다. 거기서 발걸음을 돌려 다시 위문을 향했다. 내려오는 사람 중에 나를 알아본 사람이 다시 오르느냐고 했다. 날씨가 좋아져서 계획대로 갈 생각이라고 하니 위문 너머에는 바람이 심하게 분다고 했다.
1시 40분 위문에 올라 대동문 쪽으로 향했다. 그 사이 30분이 지체되어 있었다. 눈이 그치고 하늘이 맑아보여서 날씨가 갠 줄 알았는데 조금 누그러진 채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사이 앙상한 가지에 상고대가 피어 있었다. 계곡쪽 하산길로 조금 내려가서 노적봉과 만경대 사이로 지나는 길에 접어들었다. 지축동과 은평뉴타운 쪽에서 항상 올려 보이는 장면이라 친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곳도 길이 험한 편이라 조심조심 걸었다.
노적봉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지나다 보니 노적봉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거기서부터 완만해진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2시 8분 용암문에 닿았다. 용암문 뒤쪽으로 북한산사무소 직원이 성벽 길을 막으며 플래카드를 치고 있었다. 하늘이 다시 어둑해져 있었다. 도무지 날씨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용암문을 지나 오름길을 걷다 뒤돌아보니 용암봉, 만경대, 백운대등 북한산 정상부와 성벽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보여 사진을 찍었다. 거기서 동장대 사이에는 일출봉, 월출봉, 기룡봉이 놓여 있다. 월출봉을 넘어가다 내리막 지점에 좌측으로 돌출된 성벽을 돌며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 돌출된 지점이 기룡봉 같았다. 돌출된 지형대로 치처럼 성벽이 둘러쳐져 있는데 안쪽이 병목처럼 좁게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해 보였다.
그동안 칼바위 능선에서 바라본 북한산 정상을 많이 그렸는데 걷고 있는 곳이 바로 그릴 때 보이던 장소였다. 그림을 그리며 바라볼 때는 동장대와 정상부가 가깝게 보였는데 실제 걷다보니 몇 개의 봉우리가 겹쳐 있어서 시간이 걸렸다. 지나면서 지형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쌓여진 성벽의 조형미를 담으려고 군대군데 사진을 찍었다. 아까 원효봉을 오르는 구간은 여장이 없었는데 이쪽은 모두 여장이 북원 되어 있었다.
2시 37분 동장대에 닿았다. 1층 3칸 2층 단칸으로 된 그 건물은 층별로 체감 변화가 커서 독특한 조형감이 느껴졌다. 거기서 큰 돌이 비석처럼 서 있는 지점과 치처럼 돌출된 성곽을 지나갔다. 시단봉 부근을 지날 때 담장 너머로 칼바위 능선이 펼쳐 보였다.
2시 46분 대동문에 닿았다. 대동문 안쪽은 장소가 넓어서 편안한 느낌이 든다. 얼마 전 전시장을 방문했던 고양신문의 이대표도 그 예기를 했었다. 북한산을 매우 좋아하고 자주 찾는 분이다. 대동문 안쪽과 바깥쪽 사진을 찍고 보국문쪽으로 향했다. 날씨가 흐려서 발고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지만 평소 대하기 어려운 날씨의 표정과 설경이 담겨지게 되었다.
칼바위 능선과 만나는 산봉우리(복덕봉)를 넘어 3시 5분 보국문에 닿았다. 그 문은 암문이어서 성루가 없이 성채만 있다. 성문 바깥으로 나가 바라보니 나무로 된 현판이 걸려 있었다.
다시 성덕봉, 화룡봉을 넘어 3시 31분 대성문에 도착했다. 성문 바깥으로 나가 전경을 담다보니 우람한 성문의 맵시가 보였다. 좌우측 봉우리 지형과 성곽이 한 몸체처럼 자연스레 결합되어 보였다.
거기서 큰 봉우리(잠룡봉)를 하나 넘어 3시 46분 내남문에 도착했다. 그 곳은 현재 보수 공사중이라 성문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울타리 틈으로 안을 바라보니 루가 완전히 헐려나가 있었다. 용암문에서 그 곳까지 성곽의 여장이 복원되어 있고 거기서 문수봉을 오르는 구간은 여장이 헐려나간채로 있었다.
그 곳을 지나 3시 55분 문수봉에 올랐다. 사방으로 북한산 정상과 보현봉, 그리고 비봉 능선 너머 시가지 까지 넓게 바라보였다. 거기서 사진을 찍으려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핸드폰이 바위에 떨어지고 화판이 저만치 날아가 버렸다. 문수봉을 지나 의상능선에 접어들었다. 지나는 길이 험한 곳이라 조심스러웠다. 문수봉 뒤쪽을 돌아 가는 길에 쌓인 눈이 얼어붙고 있었다.
산기슭으로 난 길을 가다 4시 1분 청수동 암문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앞에 놓인 상원봉(716m)을 올랐다. 다시 봉우리에 오르고보니 바람이 세차게 불어 긴장이 되었다. 내리막 눈길을 딛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안되겠다 싶어 아이젠을 찼다. 내리막 길을 가다보니 능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조금 전 정상부에서 길을 잘 못 들어 안 쪽을 향하고 있었다. 상원봉에서에서 북한산성 남장대와 행궁지 쪽으로 뻗친 그 능선도 기세가 커 보인다. 발길을 돌려 상원봉으로 돌아와 바깥 길로 접어드니 다음 봉우리와 연결된 성곽의 뿌리가 바라보였다.
쇠난간을 잡고 암릉을 내려가 나한봉, 나월봉을 지났다. 그 곳을 지나는 성곽도 여장 없이 성채만 남아 있었다.
4시 49분 부왕동 암문에 도착했다. 재작년 여름에 이 곳을 그리기 위해 이 곳으로 올라와 의상봉을 넘어간 일이 있는데, 그 때는 기록적인 폭염이 닥친 해여서 오르는 동안 땀범벅이 되었었다. 부왕동 암문 주변에는 여장이 복원되어 있었다. 그 곳 사진에 담고 용출봉쪽으로 봉우리를 넘어 내려서다 보니 좌측에 성랑지 발굴 현장이 보였다. 그 주변 성곽도 여장이 없었다. 거기서 진행방향 쪽에 큰 바위로 된 중취봉이 놓여 있었다. 아래에는 동굴처럼 된 곳도 있었다. 나무를 쪼는 소리가 나서 두리번거리다 보니 큰 나무 위에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고 있었다. 거기서 좌측 바위 위로 쇠난간을 잡고 올라갔다. 날이 맑아졌지만 바람은 여전히 세차게 불었다.
5시 9분 용혈봉(581m)에 오르니 주변경관이 시원스레 펼쳐보였다. 용혈봉을 내려가는 동안 용출봉과 의상봉이 가깝게 어우러져 보여 사진에 담았다. 거기서 수직으로 솟아보이는 용출봉이 매우 험하게 보였다. 그 정상부로 오르는 철게단에 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그 용출봉 측면에서 북한산 정상부를 보며 그린 그림이 있다.
5시 20분 용출봉(571m)에 도착했다. 거기서 의상봉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매우 험했다. 심한 경사 암릉에 군데군데 쇠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직 바람도 세차게 불고 있었다. 이제 그 안부 지점에 놓인 가사당 암문과 대서문만 보면 12성문을 다 돌아보게 된다. 거기서 국녕사로 내려가 대서문을 보고 마칠 생각을 했다. 의상봉을 넘는 길이 빠르지만 그리로 내려가면 대서문쪽으로 다시 올라와야 한다.
조심조심 봉우리를 내려가 5시 31분 가사당 암문에 도착했다. 별도 안내 표시가 없어 성문 위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성문 아래로 내려가 앞뒤로 사진을 찍고 내려가서 5시 45분 국녕사에 도착했다. 그 곳은 거대한 대불이 유명한 곳이다.
국녕사를 지나 북한산 계곡으로 내려섰다. 거기서 북한산성 입구까지는 거리가 멀지만 예전에는 그 곳까지 음식점이 즐비하게 있었다. 몇 해전 그 건물들을 철거하고 지금은 북한산성 입구쪽에 집단 상가를 설치해 놓았다.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다 보니 숲 너머로 지는 해가 붉게 보였다. 6시 15분 대서문에 도착했다. 마지막 햇살의 기운이 성벽을 비추고 있었다. 성벽 좌측이 사유지라서 그런지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어 둘러 보기 어렵게 되어 있었다.
대서문을 끝으로 12성문 종주를 다 마쳤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날씨를 만나 위문에서 종주를 포기 했다가 다시 오르면서 더 길고 힘든 일정이 되고 말았다. 예상보다 시간도 많이 결렸다. 원효봉을 오르는 입구에서 시작한지 7시간 20분이 지나 있었다. 그래도 험한 날씨에 무사히 다 마친 것이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북한산성의 실체가 더 생생히 느껴졌다. 대서문에서 북한산성 입구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의상봉을 오를 때 자주 들어섰던 길 입구가 보였다.
아래쪽 상가의 들꽃 식당에 들러 식사를 했다. 오후에 다른 약속을 했었는데 예상치 못한 날씨에 늦어져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메시지로 사정을 전하고 귀가했다.
(2020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