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악(약)산 흑룡폭포, 자연 속에서 폭염을 즐기는 노인네들
이원근(수필가)
◉ 2026.8.5
◉ 표충사→옥류동천→청아암→국가생태탐방로→흑룡폭포전망대
아열대기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연일 숨 막히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청도 대비사가 꽝철이의 고향이라서 그런지, 영남지방은 장마철에도 비다운 비 한 번 내리지 않았다. 곳곳에서는 수은주가 40℃를 넘나들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휴대전화를 울린다. 이런 날이면 대부분 에어컨 바람 아래로 숨어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예임회 선후배들은 오히려 밀양 표충사 옥류동천을 따라 재약산 흑룡폭포를 찾았다. 올 2월에는 재약산과 나란히 선 천황산에서 매서운 동장군에게 호되게 혼이 났으니, 오늘은 그 두 산 아래 옥류동천 계곡에서 염장군과 한판 승부를 겨뤄 보기로 한 것이다.
표충사 경내에 들어서자, 사천왕문에서 만일루와 대광전에 이르는 길목마다 백일홍이 진분홍 꽃송이를 탐스럽게 피워 우리를 맞이한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이 살아 있는 사찰이다. 표충서원과 국보 청동은입사향완, 보물 삼층 석탑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를 품고 있으며, 한여름이면 절집을 수놓는 백일홍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재약산의 푸른 산자락을 병풍처럼 두른 배롱나무는 잎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꽃을 피워 여름의 절정을 온몸으로 품고 있었다. 굵게 비틀린 줄기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어려 있고, 회색 기와와 단청의 푸른빛, 붉은 기둥, 진분홍 꽃송이가 서로 어우러져 절집의 고즈넉함과 한여름의 생동감을 한 폭의 채색화처럼 펼쳐 놓는다. 백 일 동안 꽃을 피운다는 이름처럼 화려하면서도 의연한 모습은, 말없이 흐르는 사찰의 시간마저 더욱 깊게 만드는 듯했다.
흑룡폭포로 향하는 길은 표충사 일주문 오른편에서 시작된다. 옥류동천 구름다리를 건너 재약산 생태탐방로를 따라 오르면 흑룡폭포와 구룡폭포, 층층폭포를 지나 천황산과 재약산, 사자평으로 이어진다. 사계절 내내 많은 등산객이 즐겨 찾는 길이지만, 특히 한여름에는 숲과 계곡이 더없이 고마운 길이다.
옥류동천 계곡은 이름 그대로 옥구슬이 흐르는 듯 맑았다. 계곡물은 폭염의 기세를 잠시 잊게 했고, 숲은 뜨거운 햇살을 기꺼이 품어 주었다. 우리는 더위를 피해 숨으러 온 것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계절을 온몸으로 만나러 왔다. 물소리를 벗 삼아 숲길을 걷고, 구름다리를 건너며 흘린 땀방울조차 여름이 건네는 훈장처럼 느껴졌다.
흑룡폭포 전망대로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팔순의 발걸음에도 큰 무리가 없었다. 에어컨 바람만 찾아 집 안에 머무르기보다 계곡 바람을 맞으며 숲길을 걷는 것이 훨씬 시원하고 건강한 피서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절벽 끝에 매달린 듯한 전망대에 올라 발 아래 협곡을 내려다보니 울창한 숲과 거대한 암벽이 빚어낸 풍광은 이름 그대로 절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굉음을 내며 쏟아져야 할 흑룡폭포는 계속된 가뭄 탓인지 물줄기가 너무 빈약했다. 이름에 담긴 위용을 기대했던 터라 다소 아쉬웠지만, 폭포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계곡을 감싼 숲과 협곡이 품은 원시의 고요였다.
전망대 직전의 계단 구간만 제외하면 크게 힘든 곳도 없었다. 숨이 찰 만큼 오르지 않아도 깊은 숲과 맑은 계곡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길은 한여름 최고의 트레킹 코스라 할 만하다.
여름은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만 보내기에는 너무 아까운 계절이다. 땀은 흘려도 계곡물에 씻어 내리면 되고, 뜨거운 햇살은 숲이 넉넉한 그늘로 받아 준다. 집 안에서 더위를 탓하기보다 숲과 계곡을 찾아 자연과 벗하는 일이야말로 여름을 가장 건강하게 즐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 같아서는 층층폭포를 지나 관음봉 기슭을 돌아 표충사까지 원점 회귀하고 싶었다. 그러나 산은 언제나 다시 찾을 이유를 남겨 두는 법이다. 오늘은 이쯤에서 욕심을 접는다.
오늘도 예임회 선후배들은 폭염에 굴복하지 않았다. 염장군과 맞서 흘린 땀방울은 계곡 바람에 식어 갔고, 마음은 숲의 푸르름만큼 맑아졌다. 살아 있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라 계절을 기꺼이 맞이하는 일이다. 무더위 속에서도 자연을 찾아 나서는 걸음이야말로 삶을 더욱 젊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옥류동천은 다시 한번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흑룡폭포 전망대 ▲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흑룡폭포 전망대에 서니 오금이 저리다. 수량이 풍부하지 못해 아쉬웠다.
재약산과 재악산 ▲ 모두 이 산의 이름이다. 과거 흥덕왕의 아들이 병에 걸려 전국의 약수가 다 소용이 없었는데 이곳 약수를 마시고 병이 나아지자, 이 산을 재약산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대웅전과 대광전 ▲ 보통 대웅전은 석가모니(또는 삼존불)를 모시고 대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경우가 많다. 비로자나불은 보통 가슴 앞에서 오른손이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감싸 엄지와 맞닿는 지권인을 취하며, 부처와 중생·미혹과 깨달음이 하나라는 진리를 상징해요. 반면 석가모니불의 대표 수인(손가락 모양)인 항마촉지인은 오른손으로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무릎 위에 두는 형태로, 깨달음의 순간 번뇌를 이겨냈음을 상징한다.
첫댓글 연일 40도를 상회하는 폭염의 기승에도 불구하고 산행을 강행하신 이고문님과 친구분들 정말 대단들 하십니다.
흑룡폭포에 발을 담그고 여름을 제대로 즐기시는 모습이 부럽기만 합니다.
수고많으셨어요. 화이팅!!!
응원. 고마버요.
다시 찾을 이유 하나 남겨두고 왔시유. ㅎㅎ
ㅡ 이규섭
⛱️ 폭염에 수동적으로 지치기보다 더위에 맞서서 흑룡계곡을 도전하신 예임회원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 오늘도 더위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취미나 활동에 깊이 몰입하여 더위에 도전하고 극복하는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ㅡ 이상백
보기 좋아요 .감사합니다 .어디서 그런힘이 나오시나요 !
ㅡ 하종배
이 더위에도 변함없이
일정들을 지속적으로
소화하시는 모습들~
존경스럽습니다
화이팅입니다 ^~*
ㅡ 석정규
더운 날씨에 대단들 하십니다
열정에 박수 보내 드립니다 ^*^
ㅡ 여인태
영감님들 더위에 조심하세요. 할배분들 건강이 최고입니다
ㅡ 김진호
이 불볕더위에 재악산 폭포를 찾은 분들 대단합니다.
노익장 앞에 폭염이 무색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ㅡ 김종철
예임회 회원님들의 여름 맞이는 제대로 이십니다. 계절을 맞이하는 자세가 더위를 이겨내는 비결 같습니다.
늘 존경하며 안산 즐산 하소서.
ㅡ 면사또
어휴 잘봤어요
이형! 나도 가고싶다. ㅎㅎ
ㅡ 정규린
대단하십니다.
더위에 건강조심 하세요.
“살아 있다는 것은 나이를 먹는 일이 아니라 계절을 기꺼이 맞이하는 일이다”라는 말씀이 참 좋네요. 역시 나이는 숫자일 뿐, 마음과 발걸음이 젊어야 진짜 청춘인가 봅니다^^
현역 청춘들의 무더위 속 멋진 여름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안산·즐산 하십시오! ^^
다정한 댓글 감사합니다.
말씀처럼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계절을 반갑게 맞이하는 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자연 속을 걸으며 오늘을 즐길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 잘 챙기며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이어가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 되십시오.^^
ㅡ 정문희
참 대단하신 분들입니다.
폭염속에 등산^^
이열치열인가요?
공곡님의 산사랑
정말 훌륭하십니다.
권기호님도 보이네요.
더위 먹지마시고 ~~~~
늘 건승을 빌게요.
10년 전이었으면
따라다닐 수 있었을건데ㅎㅎ
이젠 맘뿐입니다
아~^~세월이여
ㅡ 안민수
感謝 합니다. 산행 後記를 읽을 때 마다. 특이하게 서술하여 중앙문단으로 활동함이 至堂합니다.늘 건강 祈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