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1 08:53
한민의 문화등반 30
내가 사는 도시 대전은 별명이 있다. 일명 노잼도시. 재미가 없는 도시라는 뜻이다. 울산과 더불어 전국 2대 노잼도시로 꼽히는 대전은 과연 노잼도시일까. 가만있다가 끌려들어온 울산에게 미안하지만 대전이 노잼도시인가 아닌가는 중대 사안이다. 난 이 도시에서 10년째 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살 예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일단 대전은 할 게 없단다. 터미널이나 대전역에서 친구를 픽업한 뒤 대략 동쪽에 사는 사람들은 은행동, 대략 서쪽에 사는 사람들은 둔산동으로 데려가 밥을 먹고 술 한 잔 하는데 그걸로 끝. 기껏해야 대전역에 있는 성○당 분점에서 튀김소보로나 한박스 사 들려서 보내면 더이상 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전이 노잼도시라는 건 서울의 연남동이나 압구정 로데오 거리, 대구 동성로, 경주 황리단길처럼 대전하면 생각나는 핫플레이스도 전주 비빔밥, 언양 불고기, 부산 돼지국밥 등 대전을 대표할만한 딱히 특별한 메뉴도 없다는 뜻이겠다.
하지만 대전도 소위 핫플레이스가 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장소들이 있다는 얘기다. 전통의 은행동이나 둔산동도 그렇고 온천이 있는 유성 쪽에도 중심가가 있다. 예술의 전당과 미술관도 있고 국립 과학관도 있으며 최근에는 엑스포 공원 자리에 큰 쇼핑몰도 들어왔다. 그리고 대전엔 대학이 많아서 대학가 앞에는 유학생들이 즐겨 찾는 이국적인 음식점이나 젊은이들 취향의 상점들이 나름 있다. 이런 데가 핫플레이스가 아닐 이유는 또 뭔가.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한빛탑과 둔산 도심, 엑스포 다리, 철도기관 공동사옥, 갑천과 대덕연구개발특구, 대전광역시청과 정부대전청사 주변 모습이다. 사진=위키백과
대표 음식도 없는 게 아니다. 칼국수와 두부 두루치기 외에도 냉면, 순대국밥, 석갈비 등 조금만 찾아보면 오래되고 유명한 맛집들이 많다. 그것들이 대전의 오리지날이 아니라고? 각 도시의 시그니쳐 음식들 중 그 동네에서만 파는 게 몇 개나 될까?
그래도 대전이 노잼이라면 유잼 도시에서는 뭘 그리 대단한 것들을 하는가 생각해보자. 핫플레이스를 거닐다가 유명한 식당에서 밥 먹고(먹기 전에 사진찍어 인스타에 올리고) 술집 가서 술한잔 하면서 이야기하고 나면, 밤을 새거나 하룻밤 묵어갈 거 아니면 막상 그렇게 특별한 것도 없다.
게임방? 오락실? 클럽? 공연? 도예 체험? 낚시? 사냥? 공연이나 클럽은 유잼도시에서도 큰 맘 먹고 가는 곳이고 도예 체험 같은 액티비티는 축제나 만나야 할 수 있는 일이며 낚시나 사냥은 그냥 웃으시라고 넣어봤다. 그 외의 것들? 대전에서도 다 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전은 노잼도시란다. 심지어 노잼도시라는 별명에 최후의 못을 박는 이들은 대전 사람들이다. 오래 산 사람일수록 ‘대전에 뭐 볼 거 없어~’, ‘먹을 거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심지어는 성○당 빵도 맛이 없단다.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이 대한민국에서 재미있는 데가 있을까? 누군가는 대전이 재미없는 이유는 사람을 확 끄는 매력이 없는 데 있다고 말한다. 좋은 말씀이다.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역사성과 스토리텔링은 현대 도시 개발과 관광의 키워드다.
그런데 그걸 만들어 가야 할 사람은 대전 사람이다. 대전에 역사가 없나 스토리가 없나. 남들이 노잼노잼 한다고 해서 나도 노잼 대열에 동참했다가는 그나마 있는 역사와 스토리도 묻힐 판국이다.
대전 이야기가 길었지만 이건 사실 대전 이야기가 아니다. 대전(그리고 울산)을 노잼도시로 만드는 사람들의 행동에는 우리의 행복에 대한 생각이 반영돼 있다. 내가 사는 동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못 찾는 행복을 어디 가서 찾겠단 말인가. 행복은 긍정적인 정서라고,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고, 감사해야 한다고, 가까이 있다고,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연구자들이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면 뭐하나. 실천을 않는데.
대한민국이 행복지수가 낮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발에 채일 정도로 널려 있는 행복 레시피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른 동네의, 다른 도시의, 다른 나라 사람들의 행복만 부러워하며 오늘도 지루함, 부러움, 짜증 등의 부정적 정서를 적립하는 마음의 습관은 그중에서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할 만하다.
글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대전 지역 관광 홍보가 아니라 행복을 내 삶으로 가져오는 법이다. 본인은 대전시청으로부터 어떠한 요청이나 금품도 받은 적이 없음을 밝힌다.
한민 문화심리학자
문화라는 산을 오르는 등반가. 문화와 마음에 관한 모든 주제를 읽고 쓴다. 고려대에서 사회및문화심리학 박사를 했다. 우송대 교양교육원 교수를 지냈다.
첫댓글 한교수님 한번 뵈면 좋겠네요. 언제 울림에서 초대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