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님’
몇 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 나는 친구와 같이 우리들의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늦은 봄인 데도 그날따라 갑자기 우박이 오고 바람이 매서워 방안까지 덜컹이는 소리가 들려오곤 했었다.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이야기가 한참 농익어 있을 무렵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일까? 문을 열어보니 잿빛 승려복의 스님 한 분이 몹시 추워보이는 채로 바랑을 걸머지고 서 있었다.
“웬일이세요. 스님------.”
“그냥 한 번 들려보았습니다.”
나는 순간적으로 지금 스님이 몹시 춥고 배고픈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웬일인지 요즈음 흔하게 만나게 되는 묘한 땡중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것도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었을까.
“좀 들어오세요. --- 스님.”
“나무관세음보살”
합장을 하고 스님은 우리집의 문턱을 성큼 넘어서고 있었다. 마침 더운 밥이 있어서 식사를 차려드렸다. 사양할 것도 없이 스님은 맛있게 식사를 했다.
“요기를 잘 했으니 그냥 갈 수는 없지요. 사실 소승은 제대로 된 중도 못됩니다. 어디 사주나 한 번 보아드릴까요.”
친구와 나는 서로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맞든지, 안맞든지 한 번 보아드릴테니 나이와 생일 생시를 대시지요.”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친구가 말을 했다. 스님은 종이를 꺼내더니 천천히 무언가를 풀어나갔다. 손금도 보고 얼굴도 바라보았다.
“핏덩어리 였을 적에 모친이 아기를 산내기 끈(짚으로 모아 만든 끈)으로 엮어 가지고 다닌 일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때 죽었지요. 그리고 뒷머리 둥치 끝에 평생 없어지지 않은 흉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은 어떻고, 무엇은 저렇고 등등 나는 그날 스님이 바람과도 같이 휭하니 가 버린 방에서 어이 없어 하며 정말 친구의 뒷머리 둥치 끝에 흉이 있는 것을 보았고, 그때까지도 알고 있지 못했던 친구의 아버지가 의붓아버지였다는 것도 스님의 말로 알게 되었으며, 사실이었으면 귀신이 곡할, 친구가 갓난아기였을 적에 찢어진 헌가마니로 다시 싸서 끈으로 동여매어 젊은 어머니가 들고 가는 정경을 친구를 통해서 들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그때 친구는 만주에 있었고, 어머니는 연년생의 애기가 셋이나 있었고, 남편은 전쟁에 끌려 나가고 옆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어서 생각 끝에 한 아이는 걸리고, 한 아이는 등에 업고 가장 어린 나의 친구인 간난아기를 가마니로 싸서 끈으로 묶어 들고 갔다고 했다.
피난 길이라 오랜 시간을 도저히 아기를 안고 걸어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어 커가면서 친구는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기가 막히게 알아맞힐 수가 있었을까------.
나는 이 맘 때면 그때의 스님을 가끔씩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도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를 알고 있는 그 스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시는지.
*조수미 ; 1942년 전북 이리에서 출. 숙명여대 졸업.
1961년 ‘자유문학’에 소설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장편, 내가 죽으면 달이 뜨게 하련다. 낮달을 마시는 새, 등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