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쌈을 싸 먹으면서 TV에서 생생정보통을 보았다.
<이피디 어디로> 라는 코너
이피디가 두메산골을 찾아 다니면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삶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전북 순창 신월마을 편
이피디가 깊고 깊은 두메산골 신월마을 가장 꼭대기에 사는 집에 들이닥쳤다.
목소리도 걸걸한 마치 여장군 같으신 할머니가 나왔다.
-이 산골짝가기 와 왔소?
좀 있다 인기척에 할아버지가 나왔다.
다소곳하니 말끔하시다.
이 두 어르신의 티격태격하시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는데
상추쌈 싸먹던 남편과 나는 히히덕 웃음이 터졌다.
피디: 할아버지 연애하셨어요? 중매하셨어요?
할아버지: 연애했지. 처음에 버스에서 만났어.
할머니: 연애는 웬 연애요? 영수가 중매했지. 그라고 언제 버스에서 첨 만났대요?
허걱~!!!!!
피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다음 씬
두 어르신 소쿠리 하나 들고 마을길을 따라 어디론가 간다.
할머니가 앞서고 할아버지가 뒤에 따라온다.
피디: 왜 나란히 가지 않으세요?
할머니: (마지못해 뒤돌아보며 소리친다) 어따 퍼뜩 이짜 붙어 오시오~~
할아버지 마지 못해 엉거주춤 따라 붙는다.
다음 씬 뽕나무밭
-여가 전부 다 우리 오디밭이라요. 올해 오디가 요렇게 마니 열렸소
할머니가 자랑스레 말한다.
뽕나무 가지마다 휘어진채 까맣게 익은 오디를 달고 있다.
이피디: 좀 다정하게 오디 따는 모습 좀 보여주세요
그러자 할머니가 크고 잘 생긴 오디를 따서 할아버지 입에 넣어준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썩은 오디를 따서 할머니 입에 들이민다.
-와, 내한테는 썩은 오디를 주는 거요~(약간 역정을 내신다)
피디 : 크으으으ㅡ~~~
두 분의 티격태격은 귀엽기까지 하다.
갑자기 장면이 바꿔 할머니가 감자를 들고와 가마솥에 삶으신다.
-여곳 시골은 간식이 감자지요. 맛나게 삶아줄테네 먹어봐요
군말없이 묵묵히 가마솥에 불을 지피는 할아버지
가마솥에 김이 솔솔 나는데
갑자기 침이 꿀꺽~~ 감자가 먹고 싶다~~
동시에 우리 부부가 그 생각을 하는데 어디선가 감자 익는 내가 솔솔 났다.
아니??
머지않은 미래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장미꽃이 나오면
꽃 향기를 시청자나 관객이 맡을 수 있다고 했는데
벌써 우리나라 티비방송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다니~~
속으로 엄청 놀랐다.
할머니가 김이 모락모락나는 감자를 소쿠리에 담아내는 장면에서는
아까보다 더 짙은 감자내음이 팍 팍 팍~~ 코를 쥐어짜는듯 했다.
할머니가 감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할아버지와 나란히 맛나게 먹었다.
근데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아까보다 더 짙은 감자내음을 넘어 이제는 감자 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여보, 어디서 감자 타는 냄새가?
-글쎄, 저기 화면에 할매와 할배 한테서 나나?
계속 상추쌈을 싸먹으면서 우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아, 근데 갑자기 우리 눈 앞에 연기가 흐릿하게 보였다.
이거 웬 연기야?
내가 소리치며 연기가 달려오는 쪽을 봤더니 아뿔싸!!!!
주방 가스렌지 위에 얹어둔 남비에서 연기가 풀 풀~~ 나면서
뭔가 타는 냄새가 쏟아졌다.
옴마야~ 이를 어째~~~
남비속 감자가 숱댕이가 되어 있었다.
아참, 이제 생각이 났다.
아침에 먹다 남은 밥이 저녁으로 좀 적다 싶어 감자 여섯 알을 삶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테레비에서 감자 삶는 장면이 나와 정신이 팔려버렸던 것이다.
아아, 생생정보통 티격태격 할배 할매 땜시 우리집 감자만 홀라당 다 타버렸다.~~
첫댓글 우연의 극치 정말재밋는 상황입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홀라당 타버린 냄비를 ~~~~허걱~~~~~~~~~~ 허탈하게 바라보는 경험이 있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