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반가의 꽃으로만 바라보던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편협한 신분 사회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주어진 삶을 책임감 있게
열정적으로 살다 간 모습의 현대적 여성으로 재해석하였다.”
‘조선 현모양처의 대명사’, ‘구국의 어머니’, ‘위대한 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조선시대 유명 여류 화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신사임당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들이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사임당 신씨에 대하여 이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또 당연히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선 시대의 유교적 이념에 맞게 포장된 그녀의 모습들이다. 조선 후기 대표적인 문신이자 학자였던 송시열이 그녀의 작품에 발문을 넣으면서 시작된 가부장적 사회 제도에 걸맞은 사임당의 모습인 것이다. 사임당의 학식과 재주는 오롯이 율곡 이이를 위해 준비된 것이라는 송시열의 말. 이후 유교적으로 이념화된 그녀의 모습들은 일제 강점기와 경제개발 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굳어지게 된다.
사임당 신씨, 즉 ‘신인선’은 매우 주체적인 삶을 살다간 여인이었다. 반가의 자제로 태어나 조선 사회의 순리에 역행하지 않고 살았으나 예술가로서 작품 활동도 활발히 한 매우 열정적이고 지적인 여성이었다. 송시열의 말대로, 학식이 뛰어나고 곧은 성품의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 온 율곡 이이였기에 그가 그렇게 위대한 학자가 될 수 있었음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오로지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그녀를 바라본 편협화된 시각이며,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신인선’을 제대로 관철하지 못한 결과다.
이 작품 속에서 저자는 사임당의 모습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모양처’나 ‘위대한 예술가’로서 보지 않는다. 흔히 우리와 같은 삶의 희로애락에 대한 평범한 감정을 지닌, 한정된 주변 여건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다독이며 주체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 16세기 조선 시대에 살았던 21세기형 현대 여성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위인전 속에서의 사임당처럼 근엄하거나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정겹고도 친근하게 다가오는 ‘신인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한 ‘신인선의 사랑’에 대해서 작가는 당돌한 해석을 내놓는다. 작가는 사임당의 결혼생활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과연 여자로서 만족할 만한 사랑을 남편에게 받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다. 실제 신사임당의 남편이자 율곡 이이의 아버지였던 이원수는 첩살림을 했고, 사임당 사후 바로 행실이 바르지 못한 주모였던 권씨를 새 부인으로 맞이하여 율곡 이이가 사춘기를 방황하며 보내는 데 일조를 한다. 이런 사실에 기인하여 작가는 ‘현모양처’로서의 신사임당이 아닌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내이자 자식을 위해 여인으로서의 사랑을 내려놓는 어머니’의 입장에서 신인선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하였다. 아마 이러한 부분에서 다양한 연령층의 많은 여성들이 작가의 생각에 공감할 것이다.
요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또 다른 해석을 하는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름답든 추하든 제대로 그 인물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숨겨진 모습들을 들추어내는 작업들이 활발하다. 이 작품 역시 ‘신사임당’을 현대적 여성으로서 재해석하는 데 작은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가의 꽃으로만 여인을 바라보는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의 관점에서 벗어나, 편협한 신분 사회 속에서 자신을 사랑하고 주어진 삶을 책임감 있게 열정적으로 살아간 그녀의 모습을 부각시킨 작가의 시도가 앞으로 더 많은 페미니즘적 해석을 자극시키길 기대해 본다.
<줄거리>
지리한 장마가 시작되어 절로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무더운 여름, 이순이 다 되어 가는 아지는 운종가의 후미진 기방에서 아침부터 기녀와 말싸움을 벌이다 찬간으로 들어가 아픈 다리를 주물러 댄다. 이원수의 새로운 후처 권 씨의 눈 밖에 나 기방에 팔려 온 그녀는 오랜만에 들른 이원수의 사별한 전처 사임당 신씨의 맏딸 매창을 보자 살아생전 신인선이 환생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어머니의 삼년 시묘살이가 끝났음에도 아직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동생 이이를 걱정하는 매창, 아지는 시원한 식혜 한 그릇으로 그녀를 위로해 줄 수밖에 없음이 안타깝고 가슴 아플 뿐이다.
허망하게 가 버린 어머니를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매창을 위해 마음속 꾹꾹 숨겨 놓은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하는 아지. 한평생 사임당 신씨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본 아지의 이야기 속에서는 타고난 현모양처와 같은 사임당 신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여인에게만 더 높았던 내실(內室)의 담장이 감춘 문과 재를 두루 갖춘 호방한 조선 여인, 신인선만 있을 뿐이다. 열정적인 의지와 화려한 감수성과 더불어 명석함을 두루 갖춘 그녀는 여느 사내 못지않게 고달픈 삶을 뜨겁게 살아 내었다.
조선 최고의 학자인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명망 높은 사임당 신씨로 알려진 신인선,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조심스럽게 펼쳐진다.
<차례>
1장 백운(白雲), 슬픈 사모곡
프롤로그
매화의 눈물
2장 매(梅), 눈 속에 숨어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봄의 설렘
어린 예인
호기어린 장난
지리한 인연
3장 난(蘭), 아름다운 향내로 마음을 사로잡는 고요한 열정
광통교의 첫 운명
아름다워서 더 서러운
운명의 첫 회오리
영원한 이별의 시작
4장 국(菊), 차디찬 서리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강인한 절개
어긋난 두 인연
자신만의 길을 가다
슬픈 재회
꽃이 지다
5장 죽(竹), 영원히 남겨질 그 고귀한 푸른빛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