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경 중에 제 입술이 말씀드리고
제 입이 아뢰었던 것을 채우오리다
(시편66,14).
시인은 약속에 대한 책임을 강조한다.그는 서원을 바칠 때의 상황을 설명한다.말하자면“곤경 중에”,곧 기도하고 희망을 갖도록 한 고통의 압박 속에서 서원을 바쳤다.“입술”과“입”은 대구를 이룬다.시인이 자신의 입술 입으로 말했다는 것은 강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천명한 것임을 보여준다.하느님께 바친 서원은 비록 압박의 시기에 한 것이더라도 알맞은 방법으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루스페의 풀겐티우스).신명기에도 하느님께 서원한 것은 미루지 말고 채워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신명23,22).그리고 코헬렛에서는 서원을 하고 채우지 않는 것보다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한다(코헬5,4).
시편 66편의 전체적 의미:시편 66편에는 공동체적 찬양과 개인 감사 기도가 포함되어 있다.이것은 예배에서 공동체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경험이 분리되지 않음을 암시한다.개인의 신앙은 공동체를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특히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종교생활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운명이 하나로 이해되었다.또한 찬양과 감사도 이질적인 두 가지 태도가 아니었다.하느님을 찬양하는 데 감사 기도는 근본이 된다.감사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시인은 온 세상이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요청한다.심지어 원수들까지도 하느님의 능력에 복종하도록 부름 받는다.하느님은 위기에 처한 시인의 공동체를 구원하고 영원히 다스리는 분이시다.또한 하느님은 공동체를 단련시키는 분이시다.시인은 자신의 공동체 겪은 시련을 하느님의 단련이라고 받아들인다.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에 개인적으로 감사를 드린다.특히 그가 곤경 중에 바쳤던 서원을 채우고자 한다.이 시편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기도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곧 그는 우리로 하여금‘하느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갖도록 이끌어 준다.이런 믿음과 확신이 있을 때 찬양과 감사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하느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희망을 안겨준다.또한 그는 우리의 기도가 순수하고 진솔해야 함을 상기시킨다.그에 따르면‘내 마음속에 죄악이 들어있으면 주님께서는 들어주시지 않으신다’(18절)결국 이 시편은,거룩한 기도는 올바른 찬양과 감사의 근본이 돤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2 시편42-89편/바오로딸)
Ⅴ.보편적 친교
89. 이 세상의 피조물들에 주인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모든 것이 당신의 것입니다”(지혜11,26).이것이 한 분이신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일부로서 우리는 모두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고,일종의 보편 가정,거룩하고 사랑이 넘치며 겸손한 존중으로 우리를 채우는 숭고한 친교를 함께 이룬다는 확신의 근거입니다.여기에서 저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하느님께서는 우리 육신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긴밀하게 결합시켜 주셨습니다.그리하여 우리는 토양의 사막화를 마치 우리 몸이 병든 것처럼 느끼고 동식물의 멸종을 우리 몸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느낍니다.”
90. 이는 모든 생명체를 동일한 수준에 두는 것도,엄청난 책임이 따르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빼앗는 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또한 지구와 협력하고 지구의 취약함을 돌보는 소명을 빼앗는 지구의 신격화를 의미하지 않습니다.그러한 생각은 결국 새로운 치우친 생각을 낳아 우리에게 당면한 현실에서 도피하도록 이끌게 됩니다.때때로 인간의 그 어떤 뛰어남도 부인하려는 강박이 일어납니다.그리고 모든 인간이 동등하게 누리는 존엄을 수호하는 것보다 다른 생물종들을 보호하는 것에 더욱 열정을 쏟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다른 생명체들을 무책임하게 다루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들 가운데 존재하는 엄청난 불평등에 분개해야 합니다.우리가 여전히 어떤 이들이 자신을 다른 이들 보다 더 존귀하다고 여기는 것을 묵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어떤 이들은 비참한 곤경에 빠져 거기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없는 반면에,또 다른 이들은 자기의 재산을 주체할 수 없어 하며,허영에 빠져 잘난 척합니다.그리고 만약 이런 일이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면 지구를 파괴하는 엄청난 쓰레기를 만들어 냅니다.실제로 어떤 이들이 자신을 마치 더 많은 권리를 지니고 태어나 다른 이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로 여기는 것이 여전히 묵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91. 인간에 대한 온유,연민,배려의 마음이 없다면 자연의 다른 피조물과도 깊은 친교를 올바로 느낄 수 없습니다.인신매매에 완전히 무관심하며,가난한 이들을 배려하지 않고,맘에 들지 않는 이들을 해치려는 마음을 지니면서,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 생물종들의 매매와 맞서 싸우는 것은 분명히 모순입니다.이는 환경 보호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일입니다.프란치스코 성인이 피조물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저의 주님,찬미받으소서.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용서하는 이들로 찬미받으소서.”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환경 보호는 인간에 대한 참된 사랑과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92. 또한 보편적 친교에 마음을 열면,이러한 형제애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제외되지 않습니다.그러므로 이 세상의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무관심이나 잔혹함은 언제나 어느 모로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우리의 마음은 하나여서 동물을 학대하도록 이끄는 비열함은 곧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나타나게 됩니다.그 어떤 피조물에 대한 것이든 모든 학대는“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것”입니다.만약 우리가 현실의 그 어떤 측면이라도 소홀히 한다면,우리가 큰 사랑을 한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평화와 정의 그리고 피조물 보호는 서로 철저하게 연결된 주제입니다.이를 분리하여 개별 주제로 다루면 결국 환원주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모든 것은 서로 관련됩니다.모든 인간은 하느님 사랑으로 서로 엮여서 형제자매로 일치되어 멋진 순례를 하고 있습니다.이 사랑은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으로,우리를 형제인 태양,자매인 달,형제인 강,어머니인 대지와 온유한 애정으로 하나가 되게해 줍니다.
Ⅵ.재화의 공통적 목적
93. 오늘날 우리는 신앙인이든 아니든 모두,지구가 본질적으로 공동 유산이므로 그 열매는 모든 이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합니다.신앙인들에게 이는 창조주에 대한 충실의 문제가 됩니다.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따라서 모든 생태적 접근은 가장 취약한 이들의 기본권을 배려하는 사회적 관점을 포함해야 합니다.그래서 사유 재산이 재화의 보편 목적에 종속된다는 원칙,그리고 이에 따른 공동 사용 권리는 사회 활동의‘황금률’이고 “윤리적 사회적 질서 전체의 제1원리”입니다.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거나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모든 형태의 사유 재산의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였습니다.성 요한 바오로2세 교황께서는 이 가르침을 강조하시며“하느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땅을 주시어 아무도 제외되거나 특권을 누리지 않고 그 모든 성원들의 생계를 유지하게 하셨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이는 매우 의미 있고 강력한 말씀입니다.교황께서는“인격적 사회적 권리,경제적 정치적 권리,그리고 국가들과 민족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고 신장시키지 않는 개발 유형은 진정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것이 못된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사실 교회는 사유 재산의 합법적권리를 옹호합니다.그러나 또한 분명히 모든 사유 재산에 대한 사회적 부채가 있다는 사실도 언제나 가르칩니다.재화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보편적 목적에 이바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이 선물을 소수를 위하여 사용한다면 하느님의 계획에 맞갖지 않은 것입니다.”이는 인류의 일부 불의한 이들의 습관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94. 부유한 이와 가난한 이는 동등한 존엄을 지닙니다.“이들을 모두 지으신 분은 주님”(잠언22,2)이시기 때문입니다.“작거나 크거나 다 그분께서 만드셨고”(지혜6,7),“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마태5,45)하십니다.이는 파라과이 주교들의 말처럼 실질적인 결론을 낳습니다.“모든 농민에게는 땅을 적당히 분배받아, 그 땅 위에 자신의 가정을 꾸미고,가족을 부양하며 생존을 보장받아야 하는 자연권이 있습니다.다시 말해서 이러한 권리는 허상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적으로 행사하도록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농민들은 땅문서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기술 훈련,대출,보험 가입,시장 거래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95. 자연환경은 모든 인류의 유산이며 모든 사람이 책임져야하는 공공재입니다.그 가운데 어떤 것을 사유화해도,모든 이의 이익을 위하여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생존을 부인하며 우리의 양심을 거스리게 됩니다.이러한 까닭에 뉴질랜드 주교들이,“세계 인구의 20퍼센트가 가난한 나라와 미래 세대의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훔치면서까지 자원을 소비하고 있을”때,“사람을 죽이지 마라.”라는 계명은 어떤 의미인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개정판)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이것은 비밀.
(풀꽃2/나태주)
늘 행복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