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평가
3부 이행기에 놓친 것들: 장소들과 기억들
14장 국가 없는 국가. 왜 벨기에가 중요한가 ?
벨기에의 평판은 나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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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당대 강국들(프랑스, 프로이센, 영국)의 지원으로
네널란드에서 독립 (신교인 네널란드에 비해 카톨릭이 중심)
벨기에 국민 정체성은 다소 불확실
ž 지역
사회에만 일체감을 느낌
왈로니아 : 당시 공업지대로 더 부유했고 빠르게 프랑스화, 프랑스어 사용
플랜더스 : 네널란드어 사용
18세기 오스트리아 지배(프랑스어) à 워털루 전투 후 (네널란드어) à 벨기에 독립(프랑스어) à 플랜더스의 반발 à 1913년 플랜더스 지역에서 네널란드어 공인
1. 후원제도
2. 언어라는 단층성
2차 세계대전에서 극단적인 분리주의를 표방했던 플람스 민족연합의 나찌
협력
경제적 부의 역전 : 왈로니 지역의 탄광업, 제철업 등의 경제 쇠퇴. 플란더스 지역은 서비스와 상업의 성장으로
번창 à 네널란드어 사용자가 많고(3:2) 경제력도 우월해짐 à 경제적 우위에 걸맞는 정치적 이득 요구 à 연방 체제로
바뀜
플란더스와 왈로니에 각 5주씩,
10개 주 존재 à 행정과 통치의 기능을 갖고 있지만 실제의 권력은 지역이나 언어 공동체에 있음.
플란더스 주민들은 세금과 사회보장, 사법에 관한 권한을 지역에 이관하라고 요구 à 단일 국가는 사실상 사라지게 될 것임
모든 주류 정당들은 언어와 공동체의 노선에 따라 분열
언어의 균형을 요구 à 프랑스어/네널란드어 사용 장관 균형,
총리는 두 언어 사용 가능해야. 중재재판서에서도 언어적 평등을 요구. 정치와 행정의 전 차원의 언어적 균등을 요구 à 하나의 나라인가 ?
오늘날 벨기에를 묶어주는 것 : 국왕과 통화, 공채, 그리고 현재대로 계속 갈 수 없다는 고통스러운 집단적 의식뿐
à 최근의 선거를 보면 지역 문제나 언어 문제가 최우선 관심사가 아님.
무엇이 벨기를 하나의 나라로 유지시킬 것인가 ? 한가지 해답은 번영.
벨기에는 너무 약한 국가를 가질 수 도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유익한 사례
15장 역사와 유럽사이에 선 루마니아
2000년 12월 선거에서
일리에스쿠가 투도드를 이기고 승리. 두 사람 모두 1989년
이전 차우세스코 정권에서 정치에 깊이 관여했던 인물들. 왜 루마니아에서만 이와 같은 사람들이 성공했나 ?
루마니아는 유럽의 변방. 경제력은 최하.
2차 세계대전에서 안토네스쿠 군사독재 시절의 루마니아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음.
통상적인 견해는 안토네스크가 루마니아의 유대인을 구했다는 것이지만 계획적으로 유대인을 학살 à 루미니아화 à 국가정체성 문제를 해결하는 열쇄로 봄
루마니어어는 수백년간 존속했지만 루마니아 국가는 늦게 출현함
수백년 동안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음. 1859년 몰다비아와 왈라키아가
오스만제국의 쇠퇴와 러시아의 크림 전쟁 패배에 편승하여 연합공국으로 통합, 1861년에 루마니아로 개명, 1878년 독립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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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 후인 1920년에
베사라비아, 부코비나, 트란실바니아, 북부 불가리아의 일부를 획득 à 대 루마니아의 꿈 실현 (영토, 인구가 2배 이상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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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민족적으로 동질적인 국민 국가로 규정할 것을 고집. 루마니아인이 아닌 거주자들은(7명중 2명 비율) 외국인이었음 à 정체성의
특징으로 정교회를 강조.
1950년대 이후 루마이나의 공산독재자(게오르기우데지, 차우셰스쿠)에
대한 서방의 입장 à 반소련의 입장에서 지원. 국내의 잔인한 억압을 외면.
2007년 1월 불가리아와
함께 유럽연합에 가입. 루마니아는 유럽연합의 진정한 시험대. à 주변부이며, 유럽의 나머지 국가가 덕 볼 것이 없어 보인다. 유럽연합 밖에 있으면 골칫거리는 되겠지만 결코 위협은 되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
아닌 나라들을 유럽으로 만드는데 도움이 되려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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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사악한 승리. 이스라엘의 6일 전쟁
마이클 오런의 6일 전쟁에 대한 서평
1967년 여름, 이스라엘은
지역 내 강국인 이집트와 시리아, 요르단의 연합군과 대적하여 승리했고,
그 결과 중동과 그 밖의 많은 지역의 정치를 재편
키부츠 제도 : 마르크스와 크로포트킨의 불가능할 것 같은 결합이 낳은
이상한 공동체적 소산. 자급자족적인 평등주의적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개척 농민이라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의
이미지.
편협하고 청교도적인 논조가 지배적.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관계는 그다지 크게 논의되지 않았음
유럽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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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수에즈 전쟁 :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대한 이집트와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 간의
전쟁
1960년대 초 시리아가 주적으로 등장. 시리아와 전쟁하기 위해서는 이집트의 위협을 무력화해야 함
시리아와의 분쟁 → 이집트의 시리아 지지, 가자 지구에서의 국제연합군 철수 요구 →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에서의 국제연합군 철수 → 이집트의 티란 해협 봉쇄 → 이스라엘의 기습
전쟁 결과 향후 책임 있는 아랍 지도자는 누구도 다시는 유대인 국가의 군사적 파괴를 진지하게 기도하지 않게 되었음
오런의 책이 가진 장점은 분쟁의 국제적 차원을, 특히 두 초강대국의
관심과 활동을 충분히 논의한 것
중동 현대사의 가장 결정적이었던 한 주가 초래한 장기적인 귀결을 다루지 않았다.
아랍인 평자들은 대체로 미국과 영국이 이스라엘을 도왔다고 확신했고, 이러한
생각은 지역 전역에 반미 정서가 중대하게 확대하는 길을 열었다.
1967년 6월 미국의
공식적인 이스라엘 지지는 미온적이었지만 이후 가까워짐
국제 사회 지지 여론이 감퇴
1960년 말과 1970년대
초의 신좌파 : 착취당하는 노동자보다는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의 희생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됨
이스라엘의 오만
새 세대의 열성적인 이주자 : 해방과 구원, 공동체라는 주제가 아니라 성경과 지도를 갖고 들어옴 → 공격적 민족주의
이스라엘이 닥친 위험 : 시오니즘이 자기숭배와 배제의 이데올로기와
수사법이 되었을 뿐이라는 데 있다.
첫댓글 아쉽슴다~
제가 좋아하는 유럽사의 일부분인데 발제문만 보고있네요~ㅋ
얼릉 시험끝내고 발제하고 싶어요 ㅋㅋ
냐하~~~ 배경지식까지 챙겨 주시구~!!
좋네요~~^^
와우~
한눈에 쏘옥 들어옵니다
지도로 보는 세계사였던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을 읽고 이스라엘의 장벽에 분개했던 기억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