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여류시인 위로한 판결문 (지상현 기자)
김재환 재판장, “삶의 의지 꺾은 피고인들 고통스럽게 만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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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인간에 불과한 피고인들이 아프고 힘겨웠던 날들을 이겨가며 살아가는 여류시인의 생에 대한 의지를 꺾어 버렸기 때문에 생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오로지 참회의 시간만 허용된다.’
대전법원의 한 재판장이 판결문을 통해 20대 괴한에게 피살당한 피해자인 여류시인의 글을 제시하며 피해자와 피고인들을 향한 심경을 토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 재판장인 김재환 부장판사가 그 주인공. 김 부장판사는 지난 25일 강도 살인 및 특수절도,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25)씨와 조모(29)씨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김씨 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것은 이들이 받고 있는 혐의 중 강도 살인에 대한 죄질이 너무 나빴기 때문. 이들은 지난 2월 15일 새벽 3시 30분쯤 대전시 서구 탄방동에서 피해자이자 여류시인인 고모씨가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고씨를 살해하고 현금 4만원과 노트북을 훔친 혐의로 구속 기소됐었다. 또 살해된 고씨를 상대로 성폭행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들에 대한 장문의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들은 사전에 금품을 요구해보지도 않은 채 아무런 방어태세를 갖추지 못한 피해자를 향해 단한번의 주저함도 없이 무참히 살해하는 잔혹함을 보였다”며 “범행 후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자신들이 사용했던 술병과 컵에 묻은 지문을 없애는 등 치밀성까지 보였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했을 뿐 아니라 그 범행의 수법과 내용, 범행 후의 행동도 극히 잔혹하고 끔찍해 필설로 다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껍데기만 인간에 불과한 피고인들과는 달리 피해자는 아프고 외롭고 힘겨웠던 날들을 이겨가며 치열한 삶은 살아가던 여류시인이었다”며 “힘들고 모호한 일상을 거부하고 치열한 삶을 살고자 했던 피해자의 모습은 피해자가 생전에 지은 ‘확인되지 않은 하루’라는 시에도 나타나 있다”고 전했다.
김 부장판사는 “그러나 피해자의 생에 대한 의지는 피고인들에 의해 꺾여 버렸다”면서 “이 사건 이후 피해자에게는 그토록 거부하면서 받고 싶지 않았던 ‘확인되지 않는 하루’가 돼 버렸다. 함부로 남의 생을 접어버린 피고인들의 행위는 인간이 행사할 수 없는 신의 권력을 탐한 것으로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인간의 생명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피해자의 생명의 무게가 피고인들의 생명의 무게보다는 더 무거운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에게는 당연히 그 삶을 박탈하는 형을 고려해보는 것이 마땅한 것으로 보이고 사형제도를 갖고 있다해 비문명 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그러나 법률이 인간의 생명을 영구히 박탈하는 사형을 과할 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허여했다 해서 함부로 이로써 피고인들을 재단할 수는 없다”면서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그들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참회의 시간만이 허용되는 무기징역형을 과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마지막으로 “이 사건 범행 당일이 피해자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확인되지 않는 하루’가 돼 버렸지만 참회하지 않는다면 피고인들은 그들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매일매일이 고통스러운 ‘확인되지 않는 하루’가 될 것이다”고 판결했다.
첫댓글 맘 좋은 친구들을 잘 두었더군요.슬프지만 따뜻한 사례를 보는 것 같았어요.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마침 저도 대전발 다트뉴스에서 이 기사를 읽고 심란해서 올리려던 중이었는데,.^^ 두루 읽게 해주셔서 고요님, 감사합니다. ^^ 고인의 집이 탄방동이라는데, 제 주소랑 같아 더 <확인되지않은 하루>라는 유고시가 충격적으로 맘에 걸리네요. 부디 고이잠드시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 선생님, 같은 주소지에서 발생한 일이라 더욱 놀라고 마음 아프셨겠습니다. 이 시인님, 말씀대로 좋은 친구들을 두었더군요. 유고시집도 친구분들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음이 아픈 사연입니다. 재판장의 판결문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치열한 삷의 끝이 어느 날 문득 참혹하게 잘려나갔지만 재판장의 사려깊은 판결문에 영원히 환생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고요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