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뇌아를 낳게 된 부부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그린 영화 '하루'를 연출한 한지승 감독이 얼마 전 작곡가 겸 가수 노영심과 결혼식을 올렸다. 연예계의 소문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식이란 걸 또 한번 보여준 결혼식이었다. 1999년 초 한지승 감독과 노영심의 결혼설이 처음 불거졌을 때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를 부인했다. 그것도 적당히 부인하는 척하는 게 아니라 명예훼손 소송이라도 할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방송의 연예 정보프로그램 등에 출연해서도 민간단체 등의 협조를 얻어 강력 대응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계속 사랑의 밀어를 나눠왔다. 이문세 등 가까운 동료들과 어울려 식사도 하고, 영화도 보고 그랬다. 그러더니만 결혼식을 올린다고 만천하에 알렸다. 전화로 결혼식을 알려온 한 감독에게 “그때는 왜 결혼하지 않는다고 딱 잡아뗐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때는 정말 일 때문에 만나고 있었어요."
한 감독과 노영심은 1997년 영화 '고스트 맘마'의 영화음악 작업 때문에 처음 만났다. 영화작업을 함께 하면서 친해졌고, 급기야 사랑에 빠졌고,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영화계에는 이처럼 영화작업을 함께 하다 엉뚱한 ‘작업’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얼마 전 ‘클럽 버터플라이’란 스와핑(부부교환) 소재의 영화를 제작했던 시네락(주)의 권영락 대표다. 86년 장길수 감독의 조감독으로 있던 권 대표는 당시 장안의 히트곡이었던 ‘청량리 블루스’의 영화화 작업으로 불철주야 뛰고 있었다. 장 감독을 따라서 ‘청량리 블루스’를 부른 가수 명혜원을 만나러 나갔다가 그만 단번에 그녀에게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조감독 신세였던 권 대표로서는 인기가수 명혜원에게 ‘언감생심’ 흑심을 품을 처지가 못되었으나 ‘두드리면 열린다’는 마음으로 집요하게 구애했다. 물론 영화작업을 빙자한 구애였다. 그리고 권 대표의 ‘작업’은 끝내 성공을 거두었다. 재미있는 것은 ‘청량리 블루스’란 영화는 촬영 도중 제작비 조달이 여의치 않아 제작이 중단되고 말았다. 영화는 망가지고 사랑만 남은 셈이다.
임권택 감독이 여배우 채령과 15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결혼에 성공한 것도 영화작업을 빙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그보다 더 앞서 1950년대 후반 ‘황혼열차’란 영화로 은막에 데뷔했던 김지미 역시 나이 차이를 영화 열정으로 극복하고 ‘황혼열차’를 연출했던 홍성기 감독과 결혼했다. ‘쉬리’의 강제규 감독도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다니던 시절 당시 아역배우 출신으로 제법 잘 나가던 탤런트 박성미와 눈이 맞았다. 박성미는 영화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강 감독의 모습에 홀딱 반해 캠퍼스 커플을 자청했다. 심지어 마산에서 올라와 유학 중인 강 감독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다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됐다.
영화감독과 평론가의 부부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박광수 감독이 영화평론가 이연호와 결혼한 것이나 장길수 감독이 역시 평론가인 김홍숙과 결혼한 것도 영화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두 감독은 모두 영화 전문지 기자였던 이연호 김홍숙과 인터뷰 때문에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 케이스였다. 훗날 장 감독은 이혼하긴 했지만. 가끔씩 가십으로 등장하는 영화감독과 여배우의 로맨스도 영화작업을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다. 지금은 멋쩍게 웃고 지나갈 일이지만 배창호 감독이 장미희에게 연정의 시선을 보낸 것이나 이장호 감독이 이보희와 연인 사이로 지낸 추억 역시 영화작업을 하면서 서로에게 뜨거운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기 때문에 생겨난 로맨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