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숨어있는 고향
(조순환)
고향을 떠나 객지에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들에게 유년기의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다. 숨바꼭질 술래가 절대 찾지 못하던 짚더미속의 편안함처럼 고향은 어느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쉼터 같은 곳이라서 잠시 생각만해도 마음이 편안해 지곤한다.
수십 년을 떠나 있으면서도 찾아가면 언제라도 반겨주는 이 있을 것 같고 사는 일들이 무거운 짐으로버거울 때면 훌훌 벗어버리고 돌아갈 수있을 것 같은 귀향본능은 부모 형제들과 친구들이 모여살던 유년기 시절의 추억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리라.
거기에는 그리운 부모형제가 모여있고 산과 들 푸른 강가에 묻어있는 코흘리게 친구들과 뛰놀던 동화같은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아주 오래전부터,나는 이 낯선 도시에서 남편과 아버지, 영리한 도시인으로 길들여져 살아오면서때로는 내 존재가 가족안에서도 문득문득 낮선 이방인처럼 느껴질때가 있는데 그럴때마다 까까머리 소년으로 되 돌아가 아무도 찾지 못하던 그 짚더미속에 숨어있곤 했다.
그렇게 과거로의 짧은 여행은 내가족과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내 삶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 나를 가누고 추슬리게 한다.중년의 가장들에게는 숨어있는 눈물이 있는 듯 하다.세상 살면서 때로 힘든일이 생겨 주책없이 눈가에 눈물이 배일라치면 멋적어 고개 돌리고 하늘 쳐다볼 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고향마을 앞산에 잠들지 않고 서성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는 혀끝을 차며 측은해 하고 나를잡아 일으켜 세우곤 한다. 늦둥이에 대한 사랑이 남달리 애절하셨으니 오죽하겠는가.살아 계실 적에는 막둥이 장가가는거 보고 죽으면 원이 없다 하셨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서울에서 공직에 들어온 후 결혼날짜를 받아놓자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고향집에서 외롭게 돌아 가셨으니 막둥이가 눈에 밟혀 어찌 눈을 감았을까 싶다.
작년 여름부모님 산소라도 돌아보고 와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고 뒤늦게나마 자식들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져서 훌쩍 고향을 찾아갔다. 과거에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다도해를 돌고돌아 2시간 남짓 내려가야 했던 멀고도 깊은 섬마을이였지만 지금은 교통사정이 좋아져서 고속도로를 타면 한나절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울퉁불퉁하던 신작로가 모두 포장도로로 바뀔 만큼 천혜의 관광지로 개발이 된 섬이다.차창밖으로 낮익은 풍경들이 지나칠때마다 까까머리 초등학생때부터 장발을 위아래로 흔들거리며 밤마실을 돌던 청년시절의 기억들이 화들짝 놀라 나를 반겼다. 마을이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가노라니 갑자기 마음이 숙연해졌다. 앞산에 잠든 아버지께서 벌떡 일어나 마중을 나오는 듯 하여 눈이 시려 오는 것이였다.
넓고 크던 동네는 정적에 쌓인 산촌처럼 조용하고 동네 한가운데 공회당은 왜 그리 작고 초라하기만 할까 ? 비 오는날 양철지붕밑에서 우산을 들고 서있던 단발머리 여학생은 어디로 갔을까 ? 사춘기의 추억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날라왔다.친한 친구집에 짐을 풀었으나 편하지가 않았다깨끗하게 개조한 양옥집이 웬지 낮선 이국에 온것만 같고 침대와 현대식 욕실은 오히려 나를 낯선 손님으로 밀어 내는 것만 같았다.학교에서 받은 개근상 정근상장이 누런벽에 더덕더덕 붙어있고 천장에 메주덩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그 옛날의 정취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어 마치 낮선 여관방에 갇혀있는듯한 느낌뿐이였다.
짐을 풀고 문밖을 나와 내가 살던 옛집을 찾아가 보았다.뛰놀던 마당에는 왜이리 잡초가 무성할까 ? 하늘을 찌를 듯 하던 담장 옆 단감나무는 왜이리 작아졌을까? 화단 한켠에는 어린시절 깊은 산 바위틈에서 캐다가 심었던 회양목 한그루가 나를 반긴다. 세월만큼이나 허리가 휘고 굵어져 늙은 고목이 되였지만 그 옛날 고사리같은 손으로 흙덮고 물 떠다 주던 옛주인을 알아보는 듯 동그란 잎새를 팔랑거렸다.지금껏 살아 있었다니...나를 잊지 않고 알아보는 화단의 추억,실로 얼마만에 만나는 어린 소년과의 해후인가?
그것은 내가 객지에서 늘 마음속에 오랫동안 꾸며온 내안의 뜨락이었다.화단가에 가지런히 쌓아놨던 조약돌무덤은 늘 내 삶속에서 보석처럼 반짝거리곤 했으니까.산소를 들러 돌아오는 길은 예전에 없던 새로 난 포장도로였다커다란 대나무 막대기를 휘젖고 다니며 개구리를 때려잡고 비개인 날에는 앞산에 뜬 무지개를 쫓아가던 푸른 들녘,그 한가운데를 반토막으로 잘라 닦아놓은 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니 내 추억의 반토막도 같이 잘려 나가는 것 같아 가슴이 베인 것처럼 아려왔다.
옛친구들과의 기대했던 만남도 어색하기만 했다.젊은 시절에 육지로 나가 살던 친구는 낯선 객지에서 둥지를 틀지 못한 것일까? 다시 돌아와 사는 것을 보니 부럽기도 하고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나보다 두 살이나 더많은 동창생은 성씨 항렬이 높은 나에게 깍뜻하게 삼촌이라 부르며 존댓말을 해대는 바람에 이미 친구가 아닌 낮선 사람일 뿐이었다.
차츰 시멘트벽에 갇혀가는 소중한 추억들,그러나 도회지로 가져오면 사라지는것들, 산과들 아무도 찾지 못하는 구석구석에 숨겨두고 언젠가 다시 돌아와 마주하리라 다짐을 하며 마을을 나섰다.차창 뒤로 멀어져가는 버스정류장 한켠에 말뚝처럼 서 계시는 아버지의 환영이 나를 돌아보게 하는데 어여 어여 돌아보지 말고 가라고만 한다.
도데체 어디로 가란 말씀인가 다시 찾아오라는 부름인가?찿아가면 반기는 숨어있는 고향은 언제나 내 삶의 한켠에 작은 뜨락으로 남아 나를 불러 쉬어가게 할 것이다. 그곳에는 언제나 목마름을 적셔주는 푸른 강물이 흐르고 있을 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