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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윤공 종사(判尹公 宗嗣)
* 작년에 판윤공파보에 실려져 있는 내용을 정리하여
'익재공의 제향'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을 때
'한성판윤 유허비명' 등 판윤공파보에 실린 몇 가지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이해하면 안 된다는 이유를 알려 준
모 종친께서 보내주신 메일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기에 정리하여 올립니다.
내용 중에 잘못된 표현은 지적하여 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올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래도 우리 판윤공 후손들이
정확히 알아 두어야할 내용이기에 올립니다.
이해에 도움이 될까하여 자세하게 써서 올렸더니
더 이해하기가 어려우신 것 같아 많이 줄여서 다시 올립니다.
○ 중조 21세 판윤공(휘 지대)의 종사(宗祀)를
장자 22세 부사공(휘 점)이 잇게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부사공께서 3남을 두셨는데 23세 장자 석림(碩林. 참군공).
차자 원림(元林. 태안 군수. 태안공. 군수공). 삼자 형림(亨林)을 두었다.
장자인 참군공(휘 석림)께서 적손(嫡孫)이 없는 고로
차자 군수공(휘 원림- 태안 군수)이 판윤공 종사를 받들었다.
25세 가선대부(휘 승형升亨. 진주진 병마절도사. 병사공)께서
26세 장자 통정대부 휘 몽룡(夢龍), 차자 참판공 휘 몽기(夢麒. 수문장),
3자 참의공 휘 몽성(夢星. 사복시 판관), 4자 주부공 휘 몽걸(夢杰)을 두었다.
26세 장자 통정공(휘 몽룡)이 무후(无后)라
판윤공 종사가 차자인 참판공(휘 몽기)에게로 이어진다.
* 1987년 발간 경주 이씨 대종보 권4의 익재공파보에는
통정공(휘 몽룡) 계대가 근(謹)→ 영진(榮振). 득남(得南)→ 문숙(文叔)...
등으로 계대가 이어지는 것이 기록되어 있으나
2000년도 발간 판윤공파보에는 '子 夢龍' 아래에 무후(无后)라고 기록되어 있다.
(?) 1987년도 발간 대종보 익재공파보에는 통정공(휘몽룡 장자) 계대가 있는데
2000년도 발간 판윤공파보에는 이 계대가 모조리 빠지고
'子 夢龍' 아래에 무후(无后)라고 되어 있으니 궁금증이 많다.
왜 통정공 계대가 이어져 있는데 무후라고 했는가?
여하간 참판공(휘 몽기) 계대로 종사가 이어지고
28세 조산대부공(휘 시훈時薰)에 와서 후사가 없다.
이에 26세 참의공(휘 몽성. 휘 참판공 몽기의 동생)의 증손인
28세 휘 지훈의 차자 29세 휘 침(琛)이
조산대부공 휘 시훈의 계자(양자)가 되어 종사를 이었다.
* 참판공(휘 몽기) 계대에서 29세에 자손이 많은데 그 자손들은 제껴두고
참의공(휘 몽성) 계대에서 29세 휘 침이 조산대부공(휘시훈)의 양자가 된다.
29세 휘 침(琛)이 또한 후사가 없으니 생가(生家. 친가- 참의공 휘 몽성 계대) 동생인
29세 호군공 휘 선(璿)의 차자 30세 휘 명석(命錫)을 계자로 들였다.
* 29세 휘 침께서 후사가 없으니 원줄기인 참판공(휘 몽기)계대에서 양자를 들이지 않고
또 참의공(휘 몽성) 계대의 30세 휘 명석을 계자로 들였으니 판윤공 종사는 참판공(휘 몽기)
계대에서 모셔야 되는데 계속 동생인 참의공(휘 몽성)계대의 후손이 종사를 모시는 결과를 빚는다.
지금의 후손으로 보면 큰 집의 제사를 작은 집에서 빼앗은 것 같아 불쾌하지만
엄연히 동생 후손이 양자로 들어와 정식으로 종사를 이어받은 만큼 어쩔 수 없는 것이다.
33세 휘 복진(復震)이 34세 휘 영발을 두었다.
34세 휘 영발(英發)께서 후사가 없어
32세 사헌부 장령 덕봉공(휘 진택. 휘 몽성 계대)의 손자인 휘 의발(宜發)의 3자
35세 휘 징인(徵仁)을 계자로 후사하였다.
*34세 휘 영발 조상께서 후사가 없다.
양자를 또 참의공(휘 몽성) 계대의 덕봉공(휘진택) 증손자 35세 징인 조상을 계자(양자)로 들인다.
판윤공 종사를 담당할 인물을 3차례에 걸쳐 참의공(휘 몽성) 계대에서 데려온다.
이유가 나변에 있을까? 궁금증이 더해진다.
세보엔 휘 인영(仁榮)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중조 35세이며
이는 항열에 따라 휘 징인((徵仁)에서 휘 인영(仁榮)으로 바뀐 것이다.
○ 여기에서 판윤공 종사를 이어온 34세 휘 영발의 후사를 이은
35세 휘 징인(徵仁- 인영仁榮) 조상이 누구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의공(26세 휘 몽성) 계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26세 참의공(휘 몽성)은 참판공(휘 몽기)의 바로 아래 동생이다.
참의공(휘 몽성)의 종사를 잇는 29세 장자인 호군공(휘 진)은
30세 장자 휘 윤석과 차자 휘 만석을 두었는데 두 사람이 모두 후사가 없다.
이에 장자 휘 윤석은 교감공파에서
31세 성옹공 휘 운배(생부 재희 후)조상을 계자(系子)로 들인다.
* 멀고 먼 교감공파 후손을 판윤공 종사도 잇고 참의공 종사도 이을 양자로 들인 것이다.
핏줄은 핏줄이지만 종사를 잇는 양자를 직계도 많은데
왜 먼 일가친척중에서 데려왔느냐가 문제이다.
당시의 양자제도가 그랬다면 당시 후손들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고 지금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되고보니 멀고 먼 교감공파 후손이 참판공(휘몽기)의 종사를 이어
판윤공과 참판공과 심지어 참의공의 종사까지 모조리 모시고 있는 것 같다.
* 여기서부터 휘 몽성 계대의 종사와 판윤공 종사(휘 몽기 계대에서
휘 몽성 계대로 이어오다 이때부터 판윤공 종사까지)를,
계자로 온 휘 운배 조상과 후손이 모두 잇게 된다.
성옹공(휘 운배)은 32세 장자 휘 상택과 출계한 차자 휘 시현과
3자 퇴우당공 휘 홍택과 4자 휘 익동과 5자 덕봉공 휘 진택을 둔다.
32세 덕봉공(휘 진택- 장령. 승지. 증 비서승)의 손자인
34세 휘 의발은 35세 가의대부 돈령부 도정 휘 우영을 장자로 두고
차자 휘 이영은 휘 가발의 계자로 후사를 잇고
3자 휘 징인(인영)은 34세 영발의 계자로 후사를 잇는다.
판윤공 종사를 잇는 34세 영발(英發)께서 후사가 없는지라
사헌부 당령 진택(鎭宅- 26대 몽성 계대)의
손 의발(宜發)의 3자 징인(徵仁)을 후사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1) 26세 참판공(휘 몽기) 계대에서 이어온 판윤공 종사를 장손 계대에서 후사가 없으므로
계자로 들어온 참의공(휘 몽성) 계대가 잇게 되고 참의공 장손계대에서 후사가 없어
먼 쪽 일가인 교감공파 후손을 계자로 들여 종사를 잇게 된 것이다.
2) 판윤공 종사를 이어온 30세 휘 윤석께서 후사가 없어 먼 일가인
교감공 후예인 휘 운배 조상이 계자로 들어 왔다.
휘 운배 조상은 교감공(19세. 휘 존사)의 후예로 생부(낳아준 아버지)의 휘가 재희이다.
엄밀히 핏줄로 따져 익재공 후예가 아닌 교감공 후예이다.
31세 교감공 후예인 계자 성옹공(휘 운배)께서 휘 윤석 조상의 후사를 잇고
참의공(휘 몽성)의 종사를 잇는 모양새가 되었다.
3) 판윤공 종사를 이어온 34세 휘 영발 조상께서 후사가 없어 35세 징인(인영)을 계자로 하였다.
34세 휘 영발 조상은 26세 참판공 휘 몽기 계대 8대손(실지는 참의공 계대에서 계자로 옴)으로
판윤공 종사를 이어왔지만 딸만 넷이므로
26세 참의공(휘 몽성) 계대에서 휘 징인(휘 인영)을 계자로 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31세 성옹공(휘 운배- 生父 再熙)께서 교감공파에서 계자로 왔고
성옹공의 후손인 34세 휘 징인(인영)께서 판윤공 종사를 이어온
33세 휘 영발의 계자로 들어와 판윤공 종사를 받들게 된 것이다.
26세 참판공(휘 몽기)과 참의공(휘 몽성) 계대에서
판윤공의 종사를 잇는 것은 판윤공의 피가 참판공과 참의공으로 이어지니 의당한 것이나
교감공파의 후손이 계자로 와서 판윤공 종사를 잇게된 것은 뜻밖이다.
* 현재 'DAN' 이니 '유전자'니 하며 핏줄을 따지는 세상에
만약 90%를 닮은 수천 수만의 후손들이 있을텐데
80%를 닮은 먼 일가를 양자로 들임은 오로지 핏줄보다는 종사를 잇고
사손(詞孫)하기 위함인 것 같다.
어떻게 40여 촌이나 되는 사람을 계자로 들여 판윤공의 종사를 잇게된 것인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말을 하면 교감공파 후손이 양자로 들어와 판윤공의 제향을 모시고 있다는 말이다.
○ 요점은 35세 휘 징인께서는 32세 덕봉공(휘 진택)의 증손이고
덕봉공은 31세 휘 운배 조상의 아들이다.
휘 운배 조상은 생부가 휘 재희(再熙)인 교감공파의 후손이다.
익재공의 16촌 형제의 후손을,
30세 휘 윤석 방예 선조대에는 42촌 형제로부터 계자(系子- 양자)를 들여와
판윤공의 사손으로 삼은 것이다.
○ 교감공파는 경주 이씨 대파명이다.
중조 10세에 와서 춘정. 춘림 두 형제에서 휘 춘림 계대로 18세 승(丞) 휘 길상에 와서
장자 양오(직장공파). 차자 존오(석탄공파). 3자 존중 진사공파. 4자 존사를 두고
4자 휘 존사께서 교감공파를 이루는 대파조이시다.
어찌하여 판윤공의 종사를 판윤공의 후손이 아닌 교감공파 후예를 양자로 들여와
판윤공의 사손으로 후사를 이어가는지?
대체로 계자(양자)는 가까운 핏줄에서 찾는다고 알고 있다.
옛날의 법도와 관습이 달랐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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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사(宗嗣)- 종가 계통의 후손.
^사손(嗣孫)- 한 집안의 종사(宗嗣), 즉 계대(系代)를 잇는 자손
^사손(詞孫)- 봉사손(奉祀孫)의 줄임말로 조상의 제사를 받는 사람을 말한다.
^후사(後嗣)- 세계를 이을 자손을 말한다.
^무후(无后)- 후사가 없어 대를 잇지 못할 때에는 무후(无后)라고 쓴다.
무후는 무후(無後)와 같은 의미이다.
^계자(系子)- 양자를 맞아 세계를 이을 때는 계자(系子)라고 써서 적자와 구별한다.
계자의 경우는 세표에 생부(生父)를 기록한다.
또 생가(生家)의 세표에는 출계(出系)라고 쓴다.
양자를 들일 때는 되도록 가까운 혈족 중에서 입양한다.
^부자(附子)- 호적이 없는 자를 입적시켜 세계를 잇게 하는 경우는 부자(附子)라고 쓴다.
옛날에는 적자 이외의 자로 세계를 잇고자 할 때는 예조(禮曹)의 허가를 얻어야 했으며
파양(罷養- 양자 관계의 인연을 끊음)을 하고자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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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세 참군공(휘 석림) 계대는 세보에 24세 김해부사 세헌, 생원 송계, 눌로 계대되고
31세 통정 항일, 32세 유건 유달 유근을 두고 36세 사협에서 계대가 끝이 나고
유달의 후손 40세 선희, 41세 재열로 계대되고 있다.
* 26세 참의공(휘 몽성)의 계대는 31세 농온 운배, 32세 상택이 33세 복인.
34세 원발. 35세 현필. 36세 규태. 37세 종대. 38세 위우. 39세 상목.
40세 창희. 41세 재헌으로 계대 되고 있으며 스스로 파종가라고 하고 있다.
○ 계자(系子- 양자)에 관한 용어
양자(養子)를 의부(養父)나 제3자의 입장에서는 계후자(繼後者), 계후인(繼後人),
계후자(繼後子), 계자(繼子), 위인후자(爲人後者), 계인후자(繼人後者),
계사(繼嗣), 소후자(所後者), 양자(養子), 수양자(收養子), 시양자(侍養子)라 하고,
생부(生父)의 입장에서는 출계인(出繼人), 출계인(出系人)이라 칭하나
양자(養子)라는 어휘는 아주 희소하게 사용되고 있다.
생부(生父)는 지금처럼 생부(生父)라 하였지만 양부(養父)는 소후부(所後父)라 칭하기도 하였다.
입양을 뜻하는 용어에는 계후(繼後), 입후(立後), 위후(爲後), 입사(立嗣), 계후봉사(繼後奉祀),
입후봉사(立後奉祀), 취양(取養), 계종봉사(繼宗奉祀), 정계(定繼)라 하였으며
양자가 다른 집에 들어가는 것을 출계(出繼), 출후(出後)라 하였다.
여러 용어가 있으나 계후(繼後), 입후(立後)라는 용어가 제일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양자 제도는 그리 간단한 제도는 아니었다.
그 당시 사람들은 “하늘도 하나뿐이며 아버지도 하나뿐이다”라고 인식하였는데
아버지를 바꾸는 것은 중대한 일이었으며 원칙적으로 국왕만이 이를 허락할 수 있었다.
첫댓글 무슨내용인지 바로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차근차근 읽어 보겠습니다.계보가 명확하면 좋겠는데 후대에와서 확인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경험한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매우 복잡스럽지요? 필기도구를 준비하여 하나 하나 적으면서 족보를 보유하고 계시면 일일이 확인하여 찾아보면 이해가 되실겁니다. 다시 줄여서 올렸는데 26세 참판공 휘 몽기 할아버님 계대와 동생되시는 참의공 휘 몽성 할아버님 계대만 살펴보시면 될 것입니다.
저도 이 부분을 자세히 좀 봤었는데....결국 병사공의 후세는 휘 몽룡, 휘몽기 계대는 모두 종사로만 이어지고, 휘 몽성 할아버님 계대로만 이어지게되는데요..28세 통덕랑 계대는 30세때 끊어지고, 통덕랑의 동생이신 휘 원훈 할아버님 계대로 혈통이 이어지는게 아닌가 합니다.(종사나 문중을 따지자는게 아니라 그저 혈통이 그렇다는겁니다)
저는 27세 훈도공의 차자이신 휘 원훈 할아버님의 3자이신 민성 할아버님쪽으로 이여져 내려왔습니다..ㅎㅎ
29세 휘 민성할아버지 이후 아마도 포항지역에서 거주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곡(현재 포항공대 자리에 표소가 있었는데 애석하게 다 파묘가 된 상태라고 하시더라구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