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인 아이는 처음으로 영어 학원 입학 테스트를 보았다. 아이가 다녀보고 싶어 해서 왔다는 말에 학원 상담교사는 그런 학생이 흔치 않다며 놀랐다. 영어를 처음 접했던 초등 2학년 때도 아이 손에 끌려 영어 공부 방을 찾았다. 다른 가정과는 조금 다를 수 있는, 느긋한 엄마와 안달 난 아이의 영어 공부 이야기를 소개한다.
“엄마. 영어 학원에서 엄마한테 전화가 갈 거야. 내가 엄마 전화번호 알려줬으니까 그렇게 알아”
‘이게 무슨 말이지? 영어 학원은 뭐고 내 전화번호를 알려줬다는 건 뭐지?’ 초등 2학년이 끝나갈 무렵 하교 후 불쑥 던진 말에 당황스러웠다. 아이는 친구 중에 영어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며 영어를 배워야겠다고 했다. 곧 3학년이니 학교에서 배우면 된다며 아이의 고민을 가볍게 넘겼다. 이런 나의 반응을 보니 아이는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 학교 앞, 영어 학원 전단지를 나눠주러 오신 선생님께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던 것이다. 자신은 영어 학원을 다니고 싶으니 우리 엄마랑 상담 좀 해 달라며. 아... 이쯤 되면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겠구나 싶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영어 공부방을 찾았다. 선생님은 2학년 겨울 방학을 앞두고 ABC를 처음 배울 아이들이 과연 있을지 모르겠다며 4명만 모아오면 반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게 아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랑 친한 친구 한 명과 우리 동네에서 좀 떨어진 곳에 발도르프 혁신 초등학교를 다니는 친구 두 명이 모였고, 그렇게 아이의 영어 공부는 시작되었다.
1년을 다니자 공부방을 그만두고 싶어 했다. 나는 계속 다니길 원해서 설득해 보았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친구들을 기다리는 시간도 길고 혼자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2년 넘게 집에서 하루 30~40분 정도 탭으로 영어 공부를 해오고 있다.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셔서 그동안 공부한 걸 점검해 주신다. 일주일 동안 해야 하는 학습량이 밀릴 때면 학원을 다니는 길 제안했고 때론 영어를 아예 그만두라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고비를 넘기고 나자 이제는 꼬박꼬박 규칙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6학년이 되어서 본 영어 학원 입학 테스트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학원에서 가장 레벨이 높은 반에 등록할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상담하시는 분은 학원 안 다니고 혼자서 꾸준히 공부를 한 결과를 높이 평가했다. 자기 주도 학습이 되는 학생이니 지금처럼 좀 더 놀다가 학원은 천천히 와도 될 거 같다고 했다. 학원은 등록하지 않았다.
자랑을 하려고 이 글을 쓴 건 아니다. 조금 천천히 시작해도 괜찮은 사례로 소개하고 싶었다. 남보다 빨리 출발시켜야 유리할 거라는 생각에 아이 스스로 동기 부여가 되기 전에 부모가 당기면,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게 된다. 엄마 주도에서 학원 주도로 넘어가며 수동적으로 공부하는 경험만 쌓이게 된다. 나는 이런 점을 우려했다. 공부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스스로 하는 거라는 걸 몸에 익히길 바랐다. 물론 혼자 하다 보면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이 두렵진 않았다. 꼼꼼히 준비시키기보단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면 그때 대응하고 해결해 나가는 경험도 필요하다. 초등은 그런 걸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라 여겼다.
학원을 다니지 않은 덕분에 아이는 충분히 놀고 빈둥거리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놀 만큼 놀았던 걸까? 아이는 자신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영어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으며 뭔갈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여유 있는 엄마 밑에서 아이는 자연스레 자기 주도성을 연습할 수 있었다.
아이는 이런 말도 했다. 우리 동네 학원이라서 레벨이 잘 나온 거고 유명한 학원가에 가면 다른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동네 친구들과 너를 비교할 필요는 없고, 네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걸 확인해서 기쁘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첫댓글 딱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