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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황상민
‘셜록황’이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대한민국 대표 심리학자.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대학교 사이언스센터와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인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 것’과 ‘통념’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10여 년에 걸쳐 연구한 끝에 한국인의 성격 및 라이프스타일을 진단해주는 도구 ‘WPI(Whang’s Personality Inventory)’를 개발했다. 저서로 『어쨌거나 내 인생』 『황상민의 성격상담소』 『마음 읽기』 『한국인의 심리코드』 『짝, 사랑』 『대통령과 루이비통』 『독립 연습』 『디지털 괴짜가 미래 소비를 결정한다』 『대한민국 사람이 진짜 원하는 대통령』 『사이버공간에 또 다른 내가 있다』 등이 있고, 교육학 박사 이은주 선생과 함께 쓴 『공부, 삽질하지 마라』 가 있다. 현재 〈황상민TV〉 〈황심소(황상민의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면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대중의 마음과 날마다 새롭게 만나고 있다.
📜 목차
저자의 말
프롤로그_짐작과는 다른 일들
사건사고의 원인은 조현병이다? | 문제는 아픈 마음이야
세션1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떤 젊은이의 만들어진 병
그때, 왜 그랬니? | 사람들이 날더러 조현병 환자라고 하네 | 알고 보면 사실은 | 당신의 뇌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철군 이야기
철군 입원 일지 | 철군 상담 사연과 경과 설명 | 처음 철군이 찾아왔을 때 | 두 번째 철군과의 상담 | 철군과의 세 번째 상담 | 조현병 환자로 변신한 철군과의 네 번째 만남
하니 이야기
약으로 마음을 죽이다 | 그림으로 마음을 살린다
세션2 약물 치료의 신화
조현병 치료
조현병 치료 활동에 던지는 질문들 |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 조현병을 진단하는 기준 | 정신과 의사의 조현병에 대한 믿음
믿음의 시작
조현병은 뇌 이상(beyond or above the brain)이다 | 도파민 가설 | 정신과 의사는 어쩌다 그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 무엇을 병이라 하는가? | 마음 치료 과정의 모순 | 예후가 좋으니 약으로 치료하자는 함정
정신 치료 약물
나의 조현병은 약으로 나았다 | ‘마음의 병’에 대한 사회·국가의 인식 | 정신 치료 약물의 탄생? 발견!
세션3 정말로 필요했던 치료는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들에게 진짜 필요했던 것 | 인식의 변화 | 국가의 인식과 대책
광기의 역사
폐쇄 정신 병동의 시초 | 이렇게 된 까닭은? |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 | 정신 건강 분야에 적용된 자본주의 마인드 | 대화요법으로 조현병에서 벗어난 조앤
세션4 마음 탐구와 심리 치료의 역사
마음아, 네 주인은 누구니?
마음이란 무엇인가 | 아픈 마음은 질병일까?
정신병과 심리 치료의 역사
병, 경련이 알려주는 ‘사로잡힘’의 정체 | ‘원시’ 심리 치료의 등장 | 상상과 암시의 힘: 경련과 발작 그리고 최면의 효과 | 심리 치료 효과의 의학적 발견 | 히스테리와 뇌, 그리고 신경계에 대한 암시 | 히스테리의 정체 | 뇌, 신경계 탐색과 절제를 통한 정신병 치료의 역사 | 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 행위의 시작 | 조현병 치료, 광기의 치료 역사 | 신경 절제술을 통한 정신병 치료의 역사
에필로그_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조현병과 청와대 | 약으로 수행하는 현대판 마녀사냥 | 모든 꽃이 장미라면 | 괜찮아 사랑이야 | 같지 않은 것을 ‘병’이라 부르지 마라
📖 책 속으로
의학에서는 보통 병명을 붙일 때 어떤 신체 부위에 어떤 증상이 일어나는지를 웬만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울하면’ 우울증, ‘배가 아프면’ 복통, 머리가 아프면 ‘두통’, 위가 쓰리면 ‘위궤양’ 등이다. 그런데 조현병의 경우는 병명에 얽힌 이야기가 조금 특이하다.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라는 영어 병명은 ‘찢어진 또는 깨어진 마음’을 뜻했는데 뜬금없이 언제부터인가 ‘조현병(調絃病, 현을 조절해야 하는 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의학계에서는 “영어의 뜻을 그대로 번역한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이 부정적인 인상을 주기에 좀 더 나은 뜻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말한다. 정신 즉 ‘마음’과 관련된 병이라는 뜻이 나쁜 인상을 주기에 좀 더 나은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기로 했다는 말은 바로 이 병은 ‘이름 붙이기’에 따라 ‘그 무엇’으로 만들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보통 신체 부위나 증상을 나타내는 단어로 병의 이름을 부르는 규칙을 적용해보자면 이 병은 단순히 ‘악기의 현을 조율한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마치 ‘엿장사 마음대로’라는 말처럼, 이 병은 의사가 ‘붙이기에 따라’ 그냥 진단될 수 있는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조현병’이라는 병명은, 마치 이 병의 증상을 보이는 환자처럼, 자신의 증상을 잊어버린 병이 된 듯하다. 이제 이름만으로는 그 정체조차 알 수 없게 된 병, 대중과 언론에 대표적인 정신병으로 언급되는 이 병은 그러나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신경계의 이상과 같은 신체의 변화에 의해 생겨난 병이 아니다. 이 병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될 때, ‘자기 마음의 상실’ 혹은 ‘관계의 문제’로 쉽게 표출하는 우리 삶의 아픔이다._〈프롤로그〉 중에서
K군의 경우, 스스로 자신이 겪고 있는 경험이나 상황을 판단하거나 생각해보는 것이 어려웠다. 사고나 인지 기능에 장애가 있어서가 아니라 부모에게 의존적이며 또 아주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너무나 착하고 감성적인 아이였던 탓이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상담은 K군이 자신의 상황을 ‘성찰’하면서,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관리하고, 또 부모와 조금 더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심하게 마음의 아픔을 겪은 K군은 이것을 자신의 ‘몸’의 문제로 규정하는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당시의 상황에서 K군의 상태는 약에 의해 몸의 많은 기능이 좌우될 뿐 아니라 약의 부작용 때문에 다양한 신체 증상마저 보이고 있었다. 어떤 증상이나 상황이 약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또 과거 조현병 증상이라고 의사에 의해 진단되었던 행동들이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이유로 도출된 것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이 전체 상황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 정신병이라 진단받고 나름대로 마음과 몸의 아픔을 모두 겪고 있는 사람의 문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런 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파악하는 것이다._〈조현병 치료 활동에 던지는 질문들〉 중에서
퇴마의식은 그러나 18세기 이후 점점 사라지면서 이런 사람들을 ‘정신병자’, 즉 자신의 마음을 잃은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을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17세기 이후 ‘이성’이라는 개념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 분석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단순히 바보로 취급되고 사회에서 배제되는 정도로 관리되던 정신질환자들이 반이성적 존재, 위험한 존재로 간주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권 의식이 증대하기 시작했다는 근대 사회는 이들을 치안을 위협하는 사람들로 취급하여 격리·감금하기 시작했다. 17세기 유럽을 구시대에서 벗어난 새로운 혁명의 시대라고들 말하지만, 다른 이들과 달리 ‘이성’에서 벗어났다고 여겨진 사람들에게는 이 시기가 ‘대감금(great confinement)의 시대’로 정의되기도 한다. 18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절대 권력자에 의해 정신질환자로 규정되어 수용소로 끌려가 감금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들을 담당했던 정신의학자들은 권력의 하수인으로 치안 확보의 기능을 담당했다. 당시에는 정신병원을 ‘어사일럼(asylum)’이라 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이들을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하여 치료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 또는 ‘요양원’이라 한다. 정신질환자 보호시설이나 정신과 의사들의 숫자를 더 늘리겠다는 21세기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이 ‘이성의 시대’라는 18세기 유럽에서 ‘사회치안 확보’라는 이유로 정신병동이 폭발적으로 확대된 이유와 같다는 사실이 참 흥미롭다._〈폐쇄 정신 병동의 시초〉 중에서
프로이트 박사가 의사로 활동하기 이전에도 유럽에서는 현재의 정신병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마음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수용소나 병원에서 ‘히스테리’라는 병명 아래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치료받고 있었다. ‘목욕’ ‘사우나’ ‘마사지’ ‘신체 노동’, 심지어 ‘신체 학대’나 ‘고문’ 등과 같은 거의 모든 방법이 문제가 되는 환자의 증상을 멈추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효과가 있을 거라는 이유로 진행되었다. 당시 ‘히스테리’라는 이름으로 진단되는 병은 의사들에게 아주 이해하기 어렵고 치료하기 까다로운 병이었다. 병의 원인이 막연히 뇌에 의해, 뇌의 신경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수준이었을 뿐 정작 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러한 증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도 몸과 마찬가지로 병들 수 있다. 몸의 아픔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병을 인식하고 또 이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분명 프로이트 박사의 공이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이런 ‘마음의 아픔’이 신체의 질병처럼 병으로 진단될 수 있고, 또 그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는 매우 획기적이고 혁명적이었다. 왜냐하면 당시까지만 해도 여전히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 쉽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몸과 분리된 ‘마음’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이 정상의 상태가 아닌 병든 상태로 있을 수 있음을 뚜렷하게 확인하고 이것을 몸의 병을 치료하듯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프로이트의 새로운 시도였다._〈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 행위의 시작 〉 중에서
뇌, 신경, 그리고 신체의 학대를 통한 정신병 치료의 참혹한 의학의 역사는 20세기 과학이 발달하면서 더욱더 강화되었다. 1935년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에가스 모니즈(Egas Moniz, 1874~1955)는 행동이 난폭하고 감정의 변화가 심했던 침팬지의 전두엽 신경을 절제 하는 수술 후에 극단적인 행동 통제가 가능해졌다는 예일 대학의 신경학자 존 풀턴(John Fulton, 1899~1960)의 보고서를 읽게 된다. 그 후 모니즈는 이 방법을 정신질환자 즉 ‘사람’에게 적용하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모니즈와 그의 동료였던 외과의사 페드로 알메이다 리마(Pedro Almeida Lima, 1903~1985)는 1년간 약 20명의 우울증, 정신분열병, 조증, 공황장애로 의심되는 환자를 대상으로 전두엽 절제술을 시술한다. 이 시술을 좀 더 쉽게 시행하기 위해 모니스와 리마는 아홉 번째 수술 환자부터 자신들이 직접 개발한 류코톰(leucotome)이라는 기구를 이용했다. 류코톰은 길이가 11센티미터이고 직경이 2센티미터인 송곳형 막대기인데 모니즈와 리마는 매 시술 시 이것으로 환자의 눈꺼풀 여섯 군데를 찔러 뇌까지 관통시킨 뒤 전전두엽(prefrontal lobe)에 에탄올을 주사했다. 정신질환과 연관되는 것으로 추정된 뇌신경 섬유를 파괴한 것이다. (……) 결과는 참담했다. 정신병으로 인해 뇌시술을 받은 환자들은 전두엽 기능의 영구적 손상으로 넋이 나간 듯 주변에 무심해졌으며, 언어구사 능력을 상실했다. 감정 표현이 줄었고 자발성과 독립적 판단 능력이 사라졌다. 심한 공격성은 없어졌을지 몰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호전현상은 없었다. 어떤 환자는 오히려 전보다 더 나빠졌다. 전두엽 절제술이 비윤리적이며 뇌에 비가역적 손상을 입힌다는 점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의료진은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즈음 우연히 나타난 경험적 치료의 또 다른 방법이 바로 약물 치료다. 심한 초조감이나 폭력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장소 격리 및 신체 강박과 더불어 파라알데히드(paraldehyde: 최면제·진정제), 바르비투르(barbiturate: 진정제·최면제), 하이오신-아포모르핀(hyoscine-apomorphine: 진통제·수면제) 등을 혼합해서 투여했다. 심지어 조현병 의심 환자들에게 고농도 망간(Mn)을 투여하기도 했다. 망간은 주로 건전지나 표백제, 소독제, 냄새 제 거제로 사용하는 은백색의 중금속 원소다._〈신경 절제술을 통한 정신병 치료의 역사〉 중에서
현재 조현병 치료에 대한 의료계의 성공적인 성과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걸까? 질병관리본부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을 보면 조현병 환자로 진단받은 후에 첫 입원 치료 후 5년에서 10년 추적 관찰한 연구의 결과가 나오는데, 대개 10~20퍼센트에서 좋은 결과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좋은 결과’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게 문제다. 만일 이것이 적어도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뜻이라면 믿어도 좋을 것이다.
🖋 출판사 서평
조현병 환자? 아이고 무서워라,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거야?
조현병과 조현병 환자에 대한 인식, 조현병의 치료 방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해와 통념 파헤치기
한동안 저녁 뉴스 시간을 달구었던 소식들 가운데 “40대 조현병 환자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하다 정면추돌 사고를 냈다.” “조현병을 앓는 60대 남성이 자신을 비방한다는 환청을 듣고 이웃을 숨지게 했다.” 등이 있다. 당시 보도된 비슷한 유형의 사건사고에 정점을 찍은 것은 ‘고 임세원 교수’ 사건과 ‘진주 방화’ 사건이다. 임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의과대학 교수로서 2018년 12월 31일 재직 중이던 강북삼성병원에서 자신이 담당하던 환자에게 피살되었는데 범인은 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전해졌다. 한편 2019년 4월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에서는 안 모 씨가 방화 후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8명의 사상자를 냈다. 주민들은 “안씨가 과거 조현병을 앓은 것으로 안다”고 하면서 “경찰과 보건당국의 대처가 허술했다”라고 지적했다. 그 뿐이 아니다. 얼마 전(2020.06.22.)에는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자신의 회고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비핵화 구상을 겨냥해 ‘조현병 환자 같은 생각’이라는 얼토당토않은 비유를 하여 논란을 빚었다. 이에 청와대는 ‘조현병 환자? 볼턴이 그럴 수도’라며 반격을 가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는 물론 각국의 내로라하는 인물들마저 ‘조현병’이란 단어를 쉽게 언급하는 걸 보면,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조현병 환자’를 ‘호랑이 곶감 대하듯’ 무서워하는 걸 보면, 21세기는 가히 ‘조현병 포비아 시대’인 듯하다. 그런데 모두가 이토록 두려워하는 조현병(調絃病)의 정체는 정확히 무엇일까? 정말로 이 병은 뇌에 이상이 생겨서 나타나는 걸까? 20세기 초 의사들처럼 환자의 전두엽을 절제하면 이 병이 깨끗이 낫는 걸까? 아니면 의사의 지시대로 약물을 복용하다가 증세가 심해지면 전문병원에 입원시키면 되는 걸까? 답은 분명하다. “조현병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지만 아무도 정확하게 그 원인을 밝히지 못한다. 조현병은 뇌기능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태 가장 중요한 마음을 간과해왔다.”라는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이 조현병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인간의 마음이 무엇인지, 마음의 정체는 무엇인지, 마음의 주인은 누구인지 묻는 배경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닐 때 만들어지는 병, 조현병』은 인간의 상처 받은 마음이 ‘약에 의해 다스려지고 회복되기는커녕 어떻게 파괴되는지’, 그리고 유사 이래 인류가 ‘조현병으로 대표되는 마음의 문제를 안은 이들을 얼마나 끔찍한 방법으로 다루었는지’를 고발하는 책이다. 따라서 책의 초반부는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약’으로 고칠 수 있다는 착각에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할애한다. 중반부와 후반부는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인류가 ‘신의 은총’ ‘치료’ ‘과학’ 등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어떤 폭력을 가해왔는지를 심리학의 역사 및 정신병 치료의 역사와 함께 톺아본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조현병은 화공약품인 ‘항정신병약’에 의존해서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그런 약품은 오히려 마음의 주인인 인간을 파괴한다.”고 강조하면서 그간 상담해온 내담자 세 사람의 경우를 예로 제시한다. 섬세하고 유약하며 고민과 열정이 많았던 젊은이들이 주변인에 의해 혹은 의료진에 의해 어떻게 ‘조현병 환자’로 변해가는지 그 실례를 제공한 것이다. 내담자 본인의 기록과 저자와의 상담,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그린 12장의 그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은 약물과 입원 과정에서 조현병 환자로 변신하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저자의 말처럼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의 마음이 약과 함께 몸속에서, 아니 몸과 더불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가’를 증명한 사례라 하겠다. 그리고 해외 사례로서는 매우 드문 성공사례이긴 하지만 ‘대화요법’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한 조앤의 스토리를 소개한다.
이 책이 시종일관 강조하는 것은 “조현병을 정말 ‘병’이라 할 수 있다면 그 병의 치료는 ‘약’으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병 환자에게 ‘뇌의 손상’ 때문이라고 할 게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잃고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먼저 이해하고,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노력과 지원활동 및 치료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는 점이다. 저자 황상민 박사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한 오랜 연구의 첫 번째 결과물로 〈만들어지는 병, 조현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온라인상에 공개했다(이 영상은 ‘황상민TV’와 ‘황상민의 심리상담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척박한 환경에서 오직 한국인의 마음을 연구하기 위해 외길을 달려온 저자가 ‘조현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더는 두고볼 수 없다’는 마음으로 연구·집필한 이 책이 독자 여러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특히 조현병으로 고생하는 당사자와 가족들, 정신의학분야에서 일하는 의료진들과 국가차원의 의료정책을 구상하는 전문가들, 그리고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이들에게 실용적인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어. 그런데 마음이 아플 땐 뭘 먹지?
의사들은 대개 몸의 ‘아픔’을 ‘병’이라 여겨 ‘치료’하려 한다. 이 치료의 목표는 대개 ‘일상생활이나 삶으로 복귀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의사들은 병의 치료가 마치 고장 난 기계의 부속품을 바꾸듯이 수술을 하거나 약을 복용하게 하여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활동을 막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그렇게 하면 아픔이 치유될까? 마음은 몸과 다르다. 따라서 마음의 병을 몸의 병 치료하듯이 할 수는 없다. 해서도 안 된다. 이런 곤란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신의학자’들은 심지어 마음의 존재를 부정하고, 마음의 이상에 의해 일어나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들을 모두 ‘뇌의 이상’ ‘신경전달물질의 이상’ 혹은 ‘신경회로의 이상’이라 주장한다. 즉 ‘마음의 병’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뇌라는 신체 장기, 그 장기의 고장으로 나타난 병’으로 단정해버린 뒤 뇌에 영향을 주는 화학약품을 ‘약’이라는 이름으로 처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마음의 아픔은 약 복용으로 나아지지 않는다. 그저 ‘증상이 잠잠해진 것처럼 보일’ 뿐이다. 치유되는 게 아니라 수면 아래 가라앉을 따름이다. 몇 년 동안 복약해도 구체적인 효과가 없다고 여겨지거나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물며 약은 음식도 아니지 않은가?
조현병은 어떻게 삶의 상처가 되는가?
조현병(調絃病)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매우 모호하지만) ‘현을 고르는 병’일까, 스키조프레니아(Schizophrenia)라는 원어 그대로 ‘마음이 찢어지는 혹은 깨지는’ 데서 비롯된 어떤 증상일까? ‘병’이란 단어가 붙은 걸 보면 몸이 아픈 것 같은데……. 비단 일반인의 시각만 이러한 게 아니다. 조현병을 다루는 전문가들의 소견도 각양각색이다.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가능하다.” “(뇌의 이상이므로) 약만 잘 먹으면 된다.” “당뇨병보다 관리하기 쉽다.”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다. 인류가 조현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내놓은 대안을 살펴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고대에는 주술사(呪術師)가 중세에는 퇴마사(退魔師)가 의사 역할을 했다. 자아 인식이 싹튼 근대부터는 ‘정신’ ‘마음’ ‘영혼’의 존재위치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론 및 주장하면서 각종 치료법을 고안해냈다. 자석·에테르·동물자기장 등을 이용한 최면요법, ‘히스테리’라는 병명 아래 사람들을 수용소나 병원에 가두고 목욕·사우나·마사지·신체노동·신체학대·고문 등의 방법을 쓰기도 했고, 20세기 초에는 전두엽 절제술이라는 매우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어떤 방법에 의해서든 그들이 ‘병’으로 진단한 그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상흔은 오래 남아 각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아픈 마음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조현병은 전문가들에게도 이해하기 어렵고 치료하기 까다로운 것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병의 원인이 무엇인지 속 시원하게 밝혀내지 못한 채 막연히 ‘뇌에서 일어나는, 뇌신경의 이상으로 일어나는 문제’라고 생각하여 비상직적인 방법, 어이없는 방법, 때로 끔찍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프로이트 박사 및 여러 심리상담가들이 사용한 ‘대화요법’이 각광을 받았으나 이 역시 유일한 심리상담이나 심리치료 방법이 될 수는 없다. 만일 누군가 이렇게 단정한다면 이는 정신과 의사들이 “조현병에는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 외에 다른 치료 방법이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은 총 4개의 세션으로 이루어졌다. 세션1에서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조현병 환자가 ‘되어버린’ 세 젊은이의 사례가 나온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매우 가슴이 아프다. 독자 여러분은 이 세션에서 조현병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는 통찰을 얻게 될 것이다. 세션2와 세션3, 그리고 세션4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이 아픈 마음 때문에 고통 받는 동료 인간들에게 치료와 치유의 이름으로 어떠한 악행을 저질렀는가 하는 광기의 역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