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작된 장맛비. 중단됐다가 하루 종일 내리다가 하는 단속성을 보인다.
하늘은 잿빛이지만 열기는 좀 가셨다.
밤이 되자 또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는데 창문을 여니 시원한 밤 공기가 방안으로 들어온다.
더운 날엔 창문을 조금 열고 기도하는 습관이 생겨
11시 쯤 방문을 닫고 불을 끄고 열린 창문 가까이 자리를 잡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런데 창 밖에서 "똑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린다.
내가 사는 빌라 위층에는 창틀 위에 빗물 막이를 설치해두었기에
위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거기에 부딪쳐 나는 소리였다.
빗방울 충돌음이 그렇게 밖으로 흩어져 소멸되어버리지 않고 내 안으로 공명했다.
그 리듬이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주님 빗방울 소리가 아름답습니다. 행복합니다."
내 입에서 조용히 이런 말이 나가면서 이 말과 함께 마음에는 평온함이 밀려들었다.
그때 내 마음을 감동시킨 것은 빗방울 소리였을까, 아니면 그런 빗방울 소리를 주님께 아뢴 그 독백이었을까?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이른 봄 길 야지나 돌 틈에서 조그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민들레,
도서관 꽃밭에서 만난 웃고 있는 조그만 팬지나 국화. 그때 나도 모르게 "예뻐요!"라고 할 때,
들길에 서있는 강아지풀을 쓰다듬으면서 걸어갈 때, 눈송이가 귀엽게 착지하는 것을 볼 때...
거대한 주제에 관한 생각이나 심각한 주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말고도 이런 순간들.
돈이 들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 없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 세상에 진정 위대한 것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원칙 하에서 일어난다.
비록 인간은 타락했지만 이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세계라는 전제 하에서
경건한 신앙으로 자신이 존재하게 된 세계를 바라보고 통찰한다면
하나님의 진실과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소리 없이 공명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두 종류의 귀가 필요하다.
하나는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의 물리적인 소리를 듣는 귀,
또 하나는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의 내부적 의미를 듣는 귀.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의 내부적 의미는 대부분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소리의 종류에 치이면서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내부적 의미를 분별하는 우리의 영적 촉수는 심각하게 마모되어버리고 만다.
쉽게 말하면 TV 홈쇼핑이나 영화나 이 세계 뉴스의 떠들썩한 소리에 길들여져 버리면
사물의 바탕에 놓여있는 의미의 세미한 소리는 들을 감각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매일 진리를 향해 열린 마음으로 진실 앞에 서보자.
빗방울 소리, 바람이 풀잎 위를 스치는 소리, 창가에 떨어져 살포시 내려 앉으며 부서지는 눈의 소리,
이른 아침 창가 주변 은행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참새 소리,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우수수' 소리, 겨울 바람이 벌거벗은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가는 소리,
그보다 기도 속에서 내 몸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생명의 소리.
돈이 들지 않는다, 노력이 필요 없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존재는 진실하고 진실한 것은 신비를 머금고 있다.
그리고 이 신비 저편에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이시다.
2020. 7. 12
이 호 혁
첫댓글 맞습니다. 행복은 소소한 것들에서 느끼지요. 일상적인 것들 중, 행복을 느낄수 있는 것이 참 많습니다. 단, 마음만 열려있다면..
이런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정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