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4월4일(월)흐림
아침과 점심은 대충 때우다. 인터넷을 연결하고, 전기세 납부도 이전하다. 정안과 아미화보살님이 배달된 주방기구와 집기들을 정리하다. 목포에서 온 不動거사 김형수의 인사를 받다. 죽향에서 월요 강의하다. 죽향에서 하는 마지막 강의이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나? 연기의 이치와 사성제를 깨달았다. 연생연멸에 대한 이해는 중도와 공에 대한 이해로 직결된다. 선종에서 말하는 殺活살활자재, 從脫종탈자재, 임제4料揀요간과도 연관되며, 환멸연기와 유전연기에 대한 이해는 染연기, 淨연기, 화엄법계연기, 십우도와 관련하여 그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다. 깊고도 넓도다, 연기의 이치여! 모든 현상은 실재하나 실체가 없다. 모든 실재는 현상하나, 실체가 없다. 강의 마치고 30분 아나빠나사띠 하다. 마칠 때 죽향가에 감사함을 전하면서 공덕을 치하하는 시를 쓴 부채를 선물하다.
示 丹松, 文雅 竹香家 단송거사와 문아보살에게 보인다
자유로이 다니던 운수객이여,
머무르지 않더니
飛鳳山 아래
白羽를 접었어라,
晉州城 밖 竹香家를 만난 후
비로소 알았네,
過去生의 法因緣 도반들
다시 만나게 될 줄을
雲水無碍處無住, 운수무애처무주
飛鳳山下收白羽; 비봉산하수백우
城外相逢竹香家, 성외상봉죽향가
方知再會宿世友. 방지재회숙세우
丙申 병신년
春宵一刻 봄 밤 한 자락
道果禪院 도과선원
圓潭 謝而塗. 원담, 감사하며 쓰다.
2016년4월4일(화)맑음
아침 해먹다. 오전에 도시가스 연결하러 오다. 아파트 관리소에서 싱크대 배관에 누수현상이 생겨 검사하러 오다. 호연거사와 소암거사가 와서 액자를 걸어주다. 11:30에 대구 가는 고속버스 타다. 호연거사는 잘 아는 배관공을 불러 누수를 해결하는 공사를 시키고 감독하다. 대구에 1:30pm 관오사에 도착하다. 주지스님이 배려하여 누워서 쉬다. 2:40pm 대구BBS로 걸어가서 녹음하다. 붓다프로젝트를 읽는다. 1회에 13분씩, 4회 한달 치를 녹음하다. 잘 됐는지 못 됐는지 알지 못하겠다. 엉겁결에 시작된 일이 이렇게 벌어졌다. 녹음 끝나고 나오면서 대구불교방송이사 法一스님이 차 한 잔 주신다. 5월6일에 다시 오기로 하고 진주로 돌아오다. 집에 오니 7시. 호연거사와 원정보살님이 저녁을 해놓고 기다린다. 함께 맛있게 저녁을 먹다. 빨래를 하여 널어 말리다. 내일 수요 강의 준비. 제따바나선원의 초기불교대학 강의 준비. 서울BBS 단박인터뷰 녹화준비를 하다.
2016년4월6일(수)흐림
아침에 강변으로 나가 산책하다.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걷기에 아주 좋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왕복 한 시간 걷다. 우체국으로 가서 책 4권을 부치고 죽향에 들러 문아와 점심을 먹다. 경상대병원 진료 갔다 오다. 위내시경 검사와 혈액정밀검사를 해보자고한다.
정안과 아미화보살님 와서 저녁 차려주어서 먹다. 이사한 이래 첫 강의를 하다. 전번에 이어 연기의 이치를 설명하다. 연생연멸. 일체의 현상은 연생연멸이다. 諸法제법이 緣起所生연기소생이다. 현상과 기능은 있되 자성이 없다. 실재하지만 실체는 없다. 제법의 무자성, 무실체를 空性공성이라 한다. 오온은 무자성, 무실체이다. 이것을 색수상행식이 공하다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色卽是空이란 말이 나왔다. 열반과 십우도의 여덟 번째 人牛具忘인우구망, 아홉 번째 返本還元반본환원과 空卽是色, 열 번째의 入廛垂手입전수수와 아라한의 삶과 보살의 길. 오취온에서 오법온으로, 오법온을 향유하는 경지는 법계연기이다. 자애관을 20분 동안 하다. 관오사 주지스님이 준 태국의 에머랄드 호신불을 하나 씩 나눠주다. 오늘 강의를 30분 일찍 끝내고 다과회를 갖다. 떡과 차, 감사와 대화를 나눈다. 송계거사가 공부하는 날 청소를 맡을 조를 짜자고 하다. 책장을 정리하고 자다.
2016년4월7일(목)비온 후 맑음
아침 해먹고 강변 산책하다. 11:30 서울행 버스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다. 덕수궁으로 가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변월룡(卞月龍, Пен Варлен, Pen Varlen, 1916~1990)회고전을 관람했다. 변월룡은 소련 연해주에서 태어나 모스끄바 레핀미술대학을 졸업한 사회주의 리얼리스트 화가이었다. 그는 평생 한국을 사랑하며 고향을 그리워하였으나, 남북한 어디에서 속하지 못한 디아스포라(Diaspora, 흩어짐, 흩어져 사는 자, 흩어진 곳 이란 뜻, 離散) 화가였다. 그는 에칭과 목탄에 능했다. 그래서 한국의 렘브란트라고 불리어진다. 그의 그림으로 한국동란 후의 북한 자연과 인민들의 풍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근원 김용준(近園 金瑢俊, 1904~1967), 민촌 이기영(民村 李箕永, 1895~1984), 한설야(韓雪野, 1900~1976) 등의 문인과 최승희(崔承喜,1911~1969)의 초상화를 보았다. 덕수궁을 나와 돌담길을 걷다가 정동교회 맞은편에 있는 커피전문점에 들러 케냐 커피 한 잔을 하고 책을 읽는데 지월거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대 1번 출구에서 만나 거사 댁으로 오다.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지금 경제구조가 대기업, 재벌이 독식하는 경제시스템으로 가고 있기에 중소기업이 버티기 힘들고, 중간계층(중산층, 증상층 까지를 포함한)까지도 불만을 가질 만큼 악화되어 가고 있다는 말을 한다.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당사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으니 한국경제의 실정이 체감된다. 샤워하고 인터넷을 연결하여 할 일을 마무리 짓다.
2016년4월8일(금)맑음
아침 먹고 양재천 산책하다. 산책로에 벚꽃이 활짝 폈다. 지월거사와 ‘何時尋春好-봄 구경 언제가 좋을까’라는 제목의 한시를 이야기 하다. 윤휴(尹鑴, 1617~1680)는 「만흥(謾興)」에서 ‘花未開時草欲生(화미개시초욕생)-꽃은 피지 않고 풀이 돋으려 할 때이지’라 했지만 나는 ‘花開盡時隨風送(화개진시수풍송)-꽃이 피고난 후 바람에 날릴 때이지’라겠다는 말을 했다. 커피 한 잔을 하고 바로 전철 타고 마포 다보빌딩 17층으로 가다. 김봉래 보도국 선임기자를 만나 인사하고, BBS 단박인터뷰 녹화를 하다. 보도국 문화부장과 대담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을 녹화하다. 끝나고 김봉래씨와 같이 점심을 머고 방배동 제따와나 선원으로 오다. 일묵스님과 차 한 잔 나누고 오후 강의하다. 일묵스님, 종훈스님과 이야기 나누다가 저녁강의에 들어가다. 9시30분에 모두 끝나다. 택시타고 개포동 GS자이 아파트 지월거사 댁으로 돌아오다. 긴 하루였다.
지월거사와 차 한 잔 하다. 과학기술과 공학 연구에서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 하다. 시키는 대로, 가르쳐주는 대로 반응하는 순응적 사고로는 모방과 개량을 할 수는 있어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했다. 공학적 원리나 수학적 공리의 기본 개념을 비판적으로 사유해서 완전한 이해를 갖고 않고 그냥 외워서 적용시킨다면 그 패러다임을 깨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런 담론이 정확히 불교교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교리를 그냥 외워서는 안 된다. ‘五蘊오온’을 예를 들자면, 부처님은 어떤 의도에서 오온이란 法數법수를 창안하셨으며, 오온이란 개념이 불교의 큰 그림 속에서 어떤 위치를 갖고 있는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신 것인지 깊게 사유하여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야 부처님의 교설이 증명된 지혜證智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교리학습이 되고 말 것이다.
2016년4월9일(토)안개 점차로 맑아짐
지월거사 댁에서 아침 먹고 남부터미널에서 버스타고 진주로 내려오다. 주말이라 남행 꽃구경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아 도로가 붐빈다. ‘꽃잎 밟으며 돌아가니 말발굽에 향내 나네 踏花歸去馬蹄香’ 라는 옛 시가 있다. 이 시의 풍취를 묘사하는 그림을 어떻게 그릴까? 한 화가는 달리는 말의 꼬리에 나비가 따라오는 장면을 그렸다는 재치! 그러나 남행 자동차 뒤에는 향기도 없고, 나비도 따라오지 않는다. 산청 대성사에 들러 점심 먹고 사전투표소에서 국회의원 선거 투표를 하다. 그리고 진주로 오다. 30년 전 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동안거를 같이 지낸 동출東出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의곡사 점안불사 참석차 진주에 들렀는데 나를 찾아보러 왔단다. 죽향찻집에서 만나다.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회고하고 불교계의 이런저런 이야기하며 밤늦게 까지 있다가 돌아오다.
2016년4월10일(일)맑음
아침 먹고 강변 산책하다. 왔다 갔다 한 시간정도 걸린다. 연두와 초록의 春一色춘일색이다. 여기는 남강의 하류지점인지 탁류이다. 거기에도 무슨 고기가 산다고 낚시꾼이 한둘 있다. 세상에 다양한 취미활동이 얼마나 많을까 만은 제일 간단하고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낚시인가보다. 낚싯대와 미끼, 고기 담을 통을 등에 메고 물가로 가면 된다. 아무 할 일없이 낚시줄을 던져놓고 바라보고 있으면 된다. 낚시는 가난하거나 인색한 사람들,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 생각하기 싫고, 머리 식히려는 사람, 가족에게서 좀 떠나있고 싶은 사람에게 딱 맞는 취미인 것 같다. 휴일이라 집에 처박혀 잠을 자자니 마누라 눈치가 보여 마지못해 밖으로 나와야 될 때 어디 놀러갈 데도 없고, 같이 놀 친구도 없는데다가 돈도 없을 때 제일로 하기 쉬운 게 뭘까? 영화 보러 극장 갈만한 수준은 안 되고, 산책로를 걷자니 지루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등산하자니 힘든데다가 움직이기도 싫으니, 그럴 때 제일 싸고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낚시다. 한 마디로 낚시는 가장 천박하고 싸구려이며, 널 푼수 없는 방안장꾼들의 최초와 최후의 취미이다. 그것조차 안 하면 무취미, 무활동주의자가 되어 종일 텔레비전만 보는 무뇌아가 되리라. 불쌍하다, 낚시꾼이여! 너도 언제가 낚시를 무는 고기로 태어나서 낚시 바늘에 입이 꿰이는 고통을 맛볼 때가 있으리라. 윤회하는 중생은 모두 낚시에 꿰인 채 살고 있는 고기 신세이다. 정신이 무디어지고 눈이 어두워져 욕계라는 탁류에 빠져 살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이리저리 미친 듯이 헤엄치고 다니면서 제법 팔팔하게 설치고 산다.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벌써 낚시 바늘에 꿰어진 삶이란 걸 꿈에도 모른다. 곧 낚시꾼이 낚싯대를 들어 올리면 대롱대롱 매달려 입이 찢어지고 숨이 가빠지며 숨이 끊어지리라. 빨리 죽는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산채로 토막이 나든지, 살이 베어지든지 구워지거나 삶아지거나 튀겨지든지 해서 염라대왕의 입 속에 들어가 씹혀서 삼켜지리라. 낚시꾼이여, 오늘 너를 보고 호랑이 이빨에 그네를 묶고 그네타기를 즐기는(虎口裏鞦韆) 춘향이의 순진하도록 무지함과 자신이 이미 낚인 것을 모르고 무얼 낚으려는 늙은 낚시꾼 산티아고(Santiago‘노인과 바다’의 주인공)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2016년4월11일(월)흐림
아침 산책하다. 점심 때 우체국 가서 경서에게 책을 부치다. 월요 강의하다. 20명 모였다. 불법에 대한 신심과 선법으로 향하는 열의, 게으름 없는 정진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다. 연기의 이치, 형성된 법은 무자성, 무실체이다. 일체는 형성된 법, 조건 지워진conditioned 것이다. 무아란 자아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dis-identification이다. 사성제와 무아상경을 이야기 하다. 수요강의는 선거일이기에 쉰다고 하다. 자애관을 마치고 초유, 초아, 초연보살님이 가지고 온 딸기와 토마토, 떡을 함께 나누다.
2016년4월12일(화)맑음
경상대 암센터에 가서 전번에 신청한 혈액검사 결과를 보러갔다. 데스크에서 수간호사로 일하는 仁正인정보살님 만나 도움을 받다. 의사선생은 특이한 징후를 감지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다음에 골수검사와 복부CT촬영을 한 번 해보자한다. 그러려면 5월중에 이틀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제따와나 선원 강의 준비하고, 최봉수 교수 강의를 듣다. 저녁 무렵에 무설거사네가 와서 죽향가와 함께 저녁 먹고 돌아오다. 강변을 한 시간 정도 산책하다.
2016년4월13일(수)비온 후 맑음
어젯밤부터 비가 내렸다. 강변 풍경이 비에 젖었다. 물기에 젖어 보이는 것들은 형체가 흐릿해진다. 개별자와 외계와의 경계가 허물어져 개별자의 自相자상이 뭉개져 보인다. 그러나 기억에 조건 지워진 인간의 인식은 뭉개진 自相자상을 보고도 常一主宰상일주재하는 개별자atman가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한다.’라는 게 무엇인가? 인간이 과연 기억된 대로, 학습된 대로가 아닌, 습관과 버릇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지각할 수 있는가? 무엇이든지 조건 지워진 대로 지각한다면, 그런 지각의 산물은 실재가 아니라 조작된 것sankhata이리라. 그것은 구성된 것이며 사실이 아닌 것이며, 과거 기억의 재생이나 변형, 재배치, 복제인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올바른 지각이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것을 인지적 장애상태cognitive disorder所知障, 無明, 無知, 癡心이라고 한다. 인지적 장애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지적 장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인식은 ‘생각한다.’라고 표현하기 곤란하다. 오히려 ‘생각 당한다, 생각 되어지는 대로 생각 당한다.’라고 해야 하리라.
아침을 먹고 고요히 앉아 있으니 아미화보살이 왔다. 차를 타고 문산 정안보살댁을 방문하여 점심을 같이 먹다. 때마침 정산거사가 와서 차를 같이 나누고 진주로 돌아오다. 오후가 되니 점차로 비가 갠다. 물이 불어난 강변을 따라 길게 걷다.
2016년4월14일(목)맑음
아침 먹고 서울 가다. 남부터미널에 내려 예술의 전당 앞 百年屋백년옥에서 순두부를 먹고 예술의 회관 서예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통일전’를 관람하다. 별로 볼 것이 없다. 근처의 <고종의 아침>카페에서 사이공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책도 보고 글도 쓰다.
지월거사 만나 집에서 저녁 먹다. 양재천 산책하다. 반달이 뜬 서울 하늘아래 가로등 불빛을 받은 벚꽃길이 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