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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17일 토요일
[(백)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안토니오 성인은 3세기 중엽 이집트 중부 코마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날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마태 19,21)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감화되어, 자신의 많은 상속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는데, 많은 사람이 그를 따랐다. 그는 세상의 그릇된 가치를 거슬러 극기와 희생의 삶을 이어 갔으며, ‘사막의 성인’, ‘수도 생활의 시조’로 불릴 만큼 서방 교회의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356년 사막에서 세상을 떠났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사울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사람임을 깨닫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며, 당신께서는 죄인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분명하게 밝히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람, 사울이 그분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9,1-4.17-19; 10,1
그는 벤야민 사람으로서 힘센 용사였다.
2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3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암나귀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키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하였다.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찾아보아라.”
4 사울은 종과 함께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돌아다니고,
살리사 지방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알림 지방까지 돌아다녔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벤야민 지방을 돌아다녔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다.
17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18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견자의 댁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19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 선견자요. 앞장서서 산당으로 올라가시오.
두 분은 오늘 나와 함께 음식을 들고, 내일 아침에 가시오.
그때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일도 다 일러 주겠소.”
10,1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 『대중 라틴 말 성경』에 있다.
복 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에페 6,10-13.18)와 복음(마태 19,16-26)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사제로 살아가며 제가 느끼는 가장 큰 보람 가운데 하나는 고해성사 안에서 진정으로 회개하며 눈물 흘리는 교우를 만날 때입니다. “저는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자격도 없습니다.”라며 흐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도 회개해야 하는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저 또한 하느님의 자비에 의지해야 하는 죄인입니다. 죄인임을 고백하는 제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저에게 맡겨 주신 사제직의 은총 안에서 가능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라는 주님의 말씀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큰 희망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 여기며 하느님을 등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길이 멀리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성찰하고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돌아오는 사람에게 주님의 용서와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 희망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회개하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사랑의 관계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고해성사의 참뜻입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주님의 뜻에 맞갖게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이 결심을 실천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우리는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가 우리를 회개로 초대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에 임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받아 주십니다. 참된 회개의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잘 준비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온전히 체험하면 좋겠습니다.(이철구 요셉 신부)
나는 잠시도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네 모습, 네 고통을 낱낱이 보고 있었단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오늘은 공동 수도생활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입니다. 그는 사막의 교부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아빠스’란 용어가 조금 생소할 수 있는데, 주로 베네딕토 수도회 회칙을 따르는 수도회(베네딕토, 시토, 카말돌리, 트라피스트)의 최고 장상을 말합니다. 주교님들처럼 머리에 아빠스 관도 쓰며, 주교 예절에 따라 전례도 거행합니다.
안토니오 아빠스의 생몰 연대를 보면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가 고행에 단식, 극기를 거듭한 그였지만, 105세까지 장수를 누렸습니다. 당시 평균 수명이 40도 안 되던 때였는데, 백 세를 넘겼다니 엄청납니다.
장수의 비결은? 일상적 자기 비움과 진지한 성찰,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 자선과 이웃 사랑의 실천, 결국 종합해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고 의미있는 일, 하느님의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였습니다.
탄탄하고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었던 안토니오는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삶을 살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찌감치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아가고 있던 그에게 복음 말씀 한 구절이 마치 천둥처럼 그의 귓전을 때렸습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마침 그 무렵 안토니오의 부모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유산을 여동생에게 넘겨주고, 정든 고향을 떠납니다. 그리고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기도와 노동 속에 하루 하루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물론 악마가 안토니오를 절대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이런저런 유혹의 손길을 건네는데, 가장 큰 도전은 이런 사막 생활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게 주님의 뜻일까? 차라리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 거기서 사람들 사이에서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었습니다.
유혹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더 영적 생활에 정진했던 안토니오였기에 마침내 어느 순간, 그는 더이상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쁘기도 하고, 오랜 세월 모르는체 하셨던 주님께 서운하기도 하고 해서, 하루는 안토니오가 주님께 단단히 따졌습니다.
“주님, 제가 그토록 처절하고도 혹독한 유혹을 당하는 동안 대체 당신께서는 어디 계셨습니까? 어찌하여 저를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토니오야, 나는 네가 유혹을 당하는 동안 잠시도 네 곁을 떠나지 않고, 네 모습, 네 고통, 네 노력을 낱낱이 보고 있었단다. 너와 함께 하고 있었단다. 너를 응원하면서. 이제는 안심하거라. 앞으로 다시는 마귀가 너를 유혹하는 일이 없을 것이란다.”
안토니오가 깊은 사막에서 살았지만, 자연스레 그의 거룩함과 명성은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 위해 줄을 섰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었기에, 홀로 수도 생활을 하는 것 보다, 함께 수행하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는 마음에 정주 수도 공동체를 설립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무렵, 그를 따라 세상을 떠나온 사람들이 5천 명이 넘을 정도였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1991년 8월 23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사제품 전례의 정점은 ‘성인 호칭기도’입니다. 제대 앞에 엎드린 서품 자들을 위해서 교구장과 사제들 그리고 전례에 참석한 모든 교우가 무릎을 꿇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기도하며, 성인들의 전구를 청합니다. 서품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부족한 나를 하느님의 제단에 불러주시는 하느님과 교회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의 정점은 교구의 주교님과 사제들이 새 사제를 위해서 주는 안수입니다. 비로소 서품자는 교구 사제의 일원이 됩니다. 이렇게 서품식이 끝나면 주교님께서 인사이동 서류와 ‘전국 교구 사제 특별 권한’을 줍니다. 서품식으로 사제가 되었지만 사제로서의 권한은 ‘전국 교구 사제 특별 권한’을 통해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습니다. 손과 발이 몸의 지체이고 머리가 손과 발을 이끌 듯이, 사제는 교구 공동체에 속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품받은 사제 또한 교구에 속해야 합니다.
2023년 뉴욕에 있을 때입니다. 서울교구로부터 달라스 교구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으로 파견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11월 30일에 달라스 교구는 제게 달라스 교구 사제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메일로 보내 주었습니다. 저는 아직 뉴욕에서의 직무가 있었지만, 달라스 교구의 뜻에 따라서 2023년 12월 1일부터 달라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본당 신부의 직무가 시작되었습니다. 가장 큰 직무는 성사 집전 권한입니다. 성체성사, 세례성사, 병자성사, 혼인성사, 고백성사를 집전할 수 있습니다. 본당의 재정 관리입니다. 본당의 모든 지출은 본당 신부의 결재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교우들이 정성껏 봉헌한 헌금과 교무금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매월 지출해야 할 비용을 제외하고는 이자가 높은 적금으로 옮겼습니다. 직원 관리입니다.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본당의 시설을 관리해야 합니다. 사목회를 구성하고, 재정 평의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본당 공동체가 친교와 나눔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말씀이 살아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가 달라스 교구로부터 받은 권한입니다.
‘전화위복,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는 말도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울은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암나귀를 잃어버린 것은 큰 손실입니다. 비록 암나귀를 찾지는 못했지만, 사울은 그 길에서 사무엘을 만났고,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너무 성급하게 판단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두 부류의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의인으로 여겨지던 바리사이파와 율법 학자 그리고 죄인으로 취급당하던 세리와 레위입니다. 의인으로 여겨지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의로움은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표징과 권위는 마귀에게서 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죄인으로 여겨지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놀라운 눈으로 보았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에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원 없이 풍족하게 살았던 부자는 죽어서 어둠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았던 라자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빛의 세계로 들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성심껏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그 직무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 하루, “지금 내가 맡은 직무는 무엇인가?”를 묵상하며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당신처럼>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마르 2,14)
누구에게든
보이고 싶으나
아무도
보지 않는
사람을 보시는
당신처럼
보게 하소서
누구에게든
불리고 싶으나
아무도
부르지 않는
사람을 부르시는
당신처럼
부르게 하소서
누구든
함께하고 싶으나
아무도
함께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하시는
당신처럼
함께하게 하소서
오늘의 성인
성 안토니오(Anthony)
신분 : 수도원장, 수도승
활동지역 : 이집트(Egypt)
활동연도 : 251-356년
같은이름 :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는 수도 생활의 창시자로 공경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가 처음으로 은수자들을 한데 모아서 다소 산만한 형태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들에 대하여 어떤 권위를 행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은 고독하고 한적한 독수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251년 이집트 중부 코마나(Comana)의 부유한 그리스도교 가정에서 태어난 성 안토니우스는 20세 되던 해에 부모가 사망하였는데, 하루는 부자 청년에 관한 복음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자기에게 남겨진 유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남부 이집트의 고향 근처 산을 찾아다니면서 은수자의 지도를 받으며 독수 생활을 시작하고, 기도와 연구 및 자급자족을 위한 노동을 했다. 그러다가 그는 맹렬한 영적, 육적인 유혹으로 한 동안 고생하였으나 끝내 이를 극복한 뒤에 그 주위에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한다.
312년에 그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기슭에 있는 빈 무덤 동굴에 거처를 마련하고 15년 동안 노동과 기도 그리고 성서 읽기에 전념하며 엄격한 독수 생활을 했다. 그 후 나일 강 끝에 자리한 피스피르(Pispir) 산에 들어갔다가 텅 비어 있는 성채를 발견하고, 입구를 막아 찾아오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 약 20년 동안 또다시 독수생활을 했다.
이 때 그의 뛰어난 성덕과 수많은 기적에 관한 소문을 듣고 여러 가지 소망을 지닌 사람들이 성 안토니우스를 찾아와서 충고를 청하고 또 어떻게 사는지 살피러 왔다. 제자가 되기를 원하였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은수자들의 집단이 여러 곳에 생겨났는데, 그 중 니트리아(Nitria)와 스케티스(Scetis)가 유명하다. 이들은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고 각자 움막에서 살면서 주일이나 축일에 성체성사를 거행하고 영적 스승인 성 안토니우스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성 안토니우스는 독수자로서 더욱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 홍해 근처에 있는 콜짐(Kolzim)이라는 높은 산으로 들어가 은둔소를 정하고 기도와 수덕 생활에 열중하였다. 성 안토니우스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옹호해 달라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의 청을 받고 알렉산드리아로 간 일 외에는 죽을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만일 전승이 옳다고 한다면 그는 356년 10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성 안토니우스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가 전해진 이유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지내던 성 아타나시우스가 기록한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사막의 은수자들이 환상이나 혹은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람임과 동시에 학문이 뛰어났으며 하느님을 섬기는 생활이 엄격하였다고 한다.
성 안토니우스는 생전이나 사후나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에 대한 공경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일시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하느님의 종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성 안토니우스는 '사막의 교부', '모든 수도자들의 원조', '은수자들의 아버지'로도 불린다. 그의 휘장으로 묘사되는 그림은 돼지와 종이다
성 술피치오 (Sulpici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부르주(Bourges)
활동연도 : +647년경
같은이름 : 술피치우스 술피키오 술피키우스
프랑스 파리(Paris)에 있는 성 술피스 신학교는 오늘 기념하는 성 술피키우스(또는 술피치오) 성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성 술피키우스는 624년 성 아우스트레지실루스(Austregisilus, 5월 20일) 주교를 계승하여 아키텐(Aquitaine) 지방 부르주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한없이 자애롭고 너그러웠던 만큼 신자들로부터 한없는 사랑과 존경을 받은 이상적인 목자였다.
또한 그는 메로빙거 왕조 왕들의 폭정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유일한 방파제 역할을 했던 국민적 영웅이었다.
성녀 로셀리나 (Roseline)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빌르너브 (Villeneuve)
활동연도 : 1263-1329년
같은이름 : 로쎌리나 로셀린
카르투지오회 수녀인 성녀 로셀리나(Roselina)는 하느님께 봉헌한 삶을 살기 전에 부모로부터 강력한 반대를 받았다.
그녀는 성녀 클라라회 수녀들로부터 교육을 받았으나 자신은 카르투지오회에 대한 성소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25세 때에야 비로소 도피네(Dauphine) 지방 알프스(Alps)의 베르토(Bertaud)에 있는 카르투지오회 수녀원에 들어간 것 같다.
성녀 로셀리나는 모든 음식물을 일체 먹지 않고 일주일씩 단식하기가 예사였고, 스스로 더욱 엄격한 규율을 만들어 순종했고 하루에 3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다.
성녀 로셀리나의 제자들이 그녀에게 어떻게 하는 길이 천국으로 오르는 제일 빠른 길이냐고 물었을 때 “그대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녀는 자주 환시와 탈혼에 빠졌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은혜도 받았다.
성녀 로셀리나의 유해는 죽은 후에도 살아 생전처럼 아름다웠고, 부패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5년 뒤까지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만인의 공경을 받았다.
성녀 로셀리나는 로살리나(Rosalina) 또는 로솔리나(Rossolina)로도 불리며, 1851년 그녀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교회미술에서 성녀 로셀리나는 흔히 치마에 장미꽃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는 그녀의 어린 시절에 일어난 일에 근거한 것이다.
즉 성녀 로셀리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양식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어느 날 그 광경을 본 집안사람이 그녀의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어느 날 평소처럼 성녀 로셀리나가 자신의 치마에 빵을 가득 담고 나가다가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그녀의 치마에 담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성녀는 놀라서 장미꽃이라고 대답했다. 아버지가 어린 로셀리나의 치마를 펼쳤을 때 그 안에는 실제 장미꽃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