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모든 이를 하나도 만드는 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마태6,33)
우리 모두가 영혼들을 위하여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이 주님의 말씀은 레지오의 사명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레지오는 그 외의 다른 역활도 함께 해오고 있는데,
레지오가 지니고 있는 사회적 가치가 그 한 예이다.
이 가치는 국가적으로는 자산이 되며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정신적인 혜택을 가져다준다.
사회라는 기계가 성공적으로 작동되려면,
일반 기계들이 그렇듯이 모든 구성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며 협동해야 한다.
따라서 기계의 각 부분처럼 각기 다른 역활을 하는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시민들과의 마찰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자신이 맡은 일을 정확히 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불필요한 힘의 낭비가 생겨 균형이 깨어지고
기계의 모든 톱니바퀴들이 서로 어긋나게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장이 원인이나 상태를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므로
수리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게 된다 더욱이 이렇게 얽힌 문제들을 시정하려다 보면,
순수하게 봉사하려는 마음이나 자발적인 협동 정신에 상처를 주게 되어 점점
더 잘못되어 가는 일도 생긴다. 공동체는 그 자체로서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령 구성원의 절반이 제대로 역활을 다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계속 기능을 발휘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체는 엄청난 빈곤과 좌절감, 그리고 불행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또한 힘의 원천이어야 할 구성원들이 제 역활을 다하지 못하게 되므로
그러한 공동체를 제대로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는돈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한다.
게다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많은 문젯거리나 혼란 또는 위기만 가득하게 된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 질서가 가장 잘 잡혀 있다고 하는 나라에서도 흔히 불 수 있는 현상이다
이기주의가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고 증오심은 많은 사람들을
무서운 세력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이에 새로운 나날을 맞이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이 생생한 진리로 떠오른다.
"하느님을 부인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사람이며,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사람들과 만물, 즉 땅 위와 천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브라이언 오히긴스 / Brian O' Higgins)
국가란 개인의 삶을 합해 놓은 집할체일 따름이다.
따라서 각 개인의 삶이 그렇게 잘못되어 있다면,
그런 개인들이 모여 이루어진 나라가 어찌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나라 자체가 위기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그런 나라가 혼돈 이외에 세상에 내놓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런데 이러한 위기의 공동체 안에 남을 위해서 희생하고 이웃을 사랑이라는
이상을 실천하는 한 무리의 새로운 힘이 일어난다고 생각해보라.
이 새로운 정신과 이상이 마치 공기처럼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게 된다면 얼마나 큰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염증은 치유되고 삶은 차원이 달라지게될 것이다.
한 나라가 발전하여 삶의 질이 높아지고, 국민들이 신앙을 행활화하여
모든 문제를 신앙 안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러한 나라는 틀림없이 세상을 비추는 찬란한 빛이 될 것이며,
세상은 그 나라를 본받으려고 몰려올 것이다.
레지오가 평신도에게 신앙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만나는모든 사람들에게 강렬한 이상을 전파하는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레지오는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의 분열과 차별이나 상호 반목을 벗어나 오직 인류를 위하여 일하고
사랑하려는 열망으로 활기를띠게 한다.
이러한 열망은 신앙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므로 단순한 감상에 그치지 않으며,
모든 일을 봉사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만들고
위대한 희생정신을 이끌어 내며 영웅적인 경지에까지 이르게 한다.
이 이상은 어느 순간 갑자기 증발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럴까? 레지오는 단원들의 활동에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모든 힘은 반드시 그 원천이 있다.
그리고 레지오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강력한 동기를 지니고 있다.
이는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일찍이 나자렛 마을의 주민이셨다는 사실로부터 유래한다.
이 두분은 깊은 신앙심으로 자신들의 마을과 나라를 사랑하셨다.
유다 민족에게 신앙과 조국은 신비롭게도 오직 하나로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그 고장의 평범한 주민으로서 모든면에서 어긋남이 없는 생활을 하셨다.
두 분은 고장 사람들과 풍물 하나하나를 모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대하셨다.
예수님과 성모님께서 어느 것 하나 무관심하셨거나 등한히 셨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의 세상은 바로 이 두 분의 나라이며 어느 곳이나 두 분이 사셨던 나자렛 마을이다.
더욱이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는 이 두 분과 주민들과의 관계가 혈육의 관계보다도 더욱 밀집하게 맺어진다
다만 이제는 이 두 분이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 신비체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신비체의 지체들인 우리가 자신의 고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정신을 드러내기만 하면, 예수님과 성모님께서도 우리 고장에 오시어 영혼들뿐만 아니라
모든 주위 환경에풍성하 은총을 내려 주신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눈에 띄게 향상되고 문제는 줄어든다.
이러한 진정한 개선 효과는 예수님과 성모님이 아닌 다른 어느 누구로부터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지역 사회 안에서 믿는 이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마음가짐은 조국에 대한 애국심을 더욱 튼튼하게 만든다.
이 조국이라는 낱말은지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영토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참된 애국심이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세상에는 애국심을 나타내는 지도나 모델이 없다. 애국심과 비슷한 것이라면
전쟁 중에 드러나는 충성과 자기 희생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사랑보다는 미움으로부터 출발하여 파괴를 일삼고 있다고 말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순수한 애국심의 올바른 유형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레지오가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이라는 제목으로 단원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사회 공동체를 위하여 바치는 영성적인 봉사이다.
이러한 봉사는 신앙이 동기가 되어 우러나야 할 뿐만아니라
그 봉사와 봉사를 통한 모든 접촉기회를 신앙심을 높이는 데 애용해야 한다.
물질적인 면에 치중하는 봉사 활동은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의 전체 취지를 그르치게 한다.
그러기에 뉴만 추기경은 이 충성의 근본취지를 말하면서,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물질적 진보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위험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따라서 양자는 반드시 균형을 유지하며 발전해야만한다.
이 주제에 관한 소책자는 꼰칠리움에서 구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여 보라! 레지오야말고 하느님의 숭고한 사업을 위해
모든 사람을 하나되게 하는 신비의 기사단이 아닌가?
레지오는 이 기사단을 언제라도 부릴 수 있게 준비해 두고 있지 않은가?
시인 테니슨은 아더 왕의 무용담에 나오는 기사들의 봉사 정신을 가리켜
"각기 다른 세상의 곳곳에서 기사들을 불러들여 원탁의 기사로 함께 모았네.
영광의 무리, 사나이들의 꽃, 세상을 가꾸는 무리들이 모범이며 한 시대를
여는 보람찬 출발이여!"라고 아름답게 읊었다.
"교회는 '불 수 있는 영적 공동체'로서
전 인류와 함께 같은 길을 걸으며 세상과 운명을 함께한다.
교회는 누룩이 되고자 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하느님의
가족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인류 사회의 영혼이다.
본 공의회는 크리스천들이 하늘나라와 이 땅의 백성으로서 복음 정신에 따라
그들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간곡히 권고한다.
우리는 이땅위에 영원한 나라를 가지지 못했으며 장차 올 나라를 기다리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현세의 임무를 등한시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신앙은 각자가 부여받은 사명에 따라
지상에서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사목 헌장 40, 43)
"공의회 교령에서 강조하는 이러한 필요성과 의무에 대한 실제적인
대답은 1960년에 시작된 '조국에 대한 참된 충성'으로 알려져 있는 레지오 운동에서 불 수 있다.
이 운동은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레지오가 현세에 제공하는 것은 특수한 지식이나 뛰어난 기술이 아니고
일꾼의 숫자가 많은 것도 아니며 오직 영성적인 활력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것이 레지오를 세계적인 단체로 이끌었고 어떤 분야에서 일하는 하느님 백성이라 해도
그들이 레지오를 올바로 이해하는 안목과 양식을 지니고만 있다면,
그들의 명성을 높이는데 레지오를 이용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것은 반드시
레지오에서 정한 규율과 규칙을 지키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레지오는 세속적인 것을 부추기는 일은 모두 멀리하지만,
위에 언급한 공의회 교령의 가르침에 비추어,
세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늘 마음을 써야 한다.
사람은 물질 속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구원도 물질 세계와
큰 관련을 맺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토마스 오프린 신부 / FR.Thomas P.O'Flynn) 꼰칠리움 전 영적 지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