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에 정신박약아(精神薄弱兒)가 있었습니다. 말썽꾸러기였지요.
예배시간에도 느닷없이 떠들어 설교를 중단시켰고, 공과를 가르치는 여 교사의 짧은치마를 들 추어 그러잖아도 수줍음을 타는 새내기 여 교사의 울음보를 터트리게 했습니다.
장난이 잦아지자 처음엔 좋아하던 아이들도 침을 흘리고, 어벙하게 ‘히히! 웃는 그 아이가 곁으로 오면 눈살을 찌푸립니다.
하지만 아이는 눈치 없게 자꾸 여 교사에게 안겼고, 기도 중인 선생님 얼굴에 뺨을 갖다 대 기겁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녀석 때 문에 주일학교에 나오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생겨났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고민 고민하다 아이의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는 젊지만 힘들어 보입니다. 멀쩡한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구박받고 아이 때문에 속병을 얻은 모양 인지 가여운 모습입니다. 선생님이 '한번 만나자'고 전화를 해 왔을 때 어머니는 '또 말썽을 부렸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지미 때문에 주일학교가 엉망입니다. 주일학교에 오지 않게 해 주세요."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초등학교에서 추방당한 전력이 있는 아들 입니다. 주일학교마저 나갈 수 없다면 아들이 어디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머니는 왈칵 울음이 쏟아지는 것을 참으며 선생님께 사정을 합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교회 아이들을 좋아해요. 주일이 오기만을 기다린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싫어한답니다."
"잘 타이를게요. 다음부터는 절대 떠들지 않도록 할게요."
얼마나 간절히 사정을 하는지 선생님은 어머니의 동행을 제안합니다. 다음 주일부 터 그 아이는 얌전해졌습니다. 아이가 장난하려면 어머니가 잡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이 돌아왔습니다. 선생님의 '무덤 문을 활짝 열고 부활하신 예수님', 아이는 누구보다도 그 이야기를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은 말했습니다.
"돌아오는 주일은 부활절입니다. 부활을 기념하는 것을 하나씩 가져오세요."
부활주일, 아이들은 저마다 부활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가져왔습니다. 꽃, 계란, 색 계란, 새싹.... 그런데 그 아이는 계란껍질을 내밉니다. 알맹이가 하나도 없는 빈 계란 껍질을, 선생님은 아이를 꾸짖으려다 "왜 이걸 갖고 왔니?" 묻습니다.
"예, 예수님이... 부... 부활하셨...잖아요. 비, 빈 무덤이... 되었.... 되었잖아요. 그 래서 비, 비... 빈 껍질을 가져왔어요."
그 아이는 어렵게 자신의 믿음을 표현했습니다. 선생님은 놀라운 표정으로 아이의 말을 듣다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너무도 아름답고, 순진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빈 계란껍질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신학자의 이론보다 확실한 증거였습니다.
그 아이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아이가 죽었을 때, 아이 무덤에는 일곱 개의 빈계 란껍질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이 갖다 놓은 계란껍질입니다.
다시 부활절을 맞습니다. 빈 계란껍질처럼 아무 것도 없는 환경이지만 비어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다는 소망을 줍니다.
지금 그 아이의 무덤엔 아이들이 놓아둔 계란껍 질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쯤 그 자리엔 아름다운 꽃들이 사랑스레 피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