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의한 서울성곽의 수난과 훼손,
한국스포츠계의 산실 동대문운동장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1396년 조선시대 개국과 함께 궁궐과 종묘, 6부 등 관청, 도성백성 등을 보호하기 위하여 도읍지인 한양을 둘러싼 도성이다. 전체 둘레는 18.1km에 이르며, 태조, 세종, 숙종 등 시기를 달리하여 수개축을 거치며 조선말까지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였다. 1899년 서울시내에 전차 선로가 개설되면서 성문 주변의 성곽이 일부 헐리게 되어 성곽 연결선이 처음으로 단절되었고, 1907년 성곽처리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도심내부의 서울성곽이 본격적으로 철거되었다. 1925년 10월 일본은 흥인지문과 광희문을 연결하고 있던 서울성곽 자리에 경성운동장을 준공하였다. 이 운동장은 1924년 동궁(훗날 히로히토 천황)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하였다. 광복 이후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동대문운동장 등으로 명칭을 바꾸며 전국체육대회, 고교야구대회, 국제축구대회 등 한국스포츠의 산실로 자리하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맞아 강남에 종합운동장이 건립되면서 주기능을 상실하였다.
서울 도심내부의 대규모 발굴조사와 확인된 조선시대 유적
2006년 서울특별시는 낙후된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이곳에 디자인 정보교육-전시컨벤션시설 등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조성사업을 추진하였다. 조선시대 기록된 각종 문헌과 고지도에는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 건립이전 이곳에 서울성곽이 존재하였고, 조선시대 염초청과 훈련도감의 분영이었던 하도감이 자리하였던 곳으로 기록되어있다.
2008년 운동장 철거와 함께 (재)중원문화재연구원은 사업예정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미 현대화된 운동장이 건립되어 있어 지하에 문화재가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철거가 진행된 운동장에 매장문화재 존재가능성 확인을 위한 시굴구덩이를 설치하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운동장 지하 3~5m 아래에서 조선시대 문화층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여론의 집중적인 관심 속에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대한 확장발굴조사는 2009년 7월까지 총 1년 6개월간 실시되었는데 조사결과 거의 온전한 모습의 이간수문을 비롯한 서울성곽과 함께 조선시대,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등 여러 시기에 걸쳐 당시 역사와 문화상을 밝혀주는 조선시대 관청 건물지 및 무기제조 관련 생산유적, 연못지 등이 확인되었다.
이간수문 등 유적이 주로 확인되는 지역은 동대문 쪽 청계천에 인접한 저지대로, 1925년 일본은 운동장을 건립하면서 주변의 높은 야산의 구릉사면을 삭토하여 그 흙을 이용하여 지형적으로 낮은 이간수문 일대를 그대로 매몰하여 평탄화된 운동경기장을 조성하였다. 발굴은 유적을 덮고 있던 복토층을 제거하는 일이 주안점이었는데, 특히 가장 저지대인 이간수문 일대는 지하 5~7m의 방대한 양의 흙을 제토하면서 매몰되었던 유적을 노출해야만 했다. 이러한 발굴조사는 대규모 인원 및 굴삭기, 덤프 등이 투입되어 토목공사를 방불케 하였는데 투입된 연인원은 조사단 2,000명, 작업인부 13,000여명에 이르며, 제토된 토사량은 약 100,000㎥로 15ton 덤프트럭으로 약 10,000대 분량에 해당된다. 현재 현대화가 이루어진 서울도심에서 궁궐 종묘 등을 제외하고 대규모의 고고학적 발굴조사가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고층빌딩화가 진행되지 않은 동대문운동장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앞으로 사례를 찾기 힘들 것으로 여겨진다.
운동장 아래 그대로 매몰된
이간수문, 치성 등 서울성곽
1925년 경성운동장 건립으로 인해 멸실된 것으로 알려진 서울성곽 130m가 발굴조사를 통해 그 모습이 노출되었다. 확인된 서울성곽은 태조때 축성된 초축구간, 세종·영조 때 각각 개축된 구간이 시기별로 확인되어 조선시대 성곽 축성기술 변화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성벽은 안팎으로 모두 기초지정말목을 박고 그 위에 잡석을 다져 기초를 조성한 후 내외겹축의 석축성벽을 쌓아올렸다. 노출된 성벽의 규모는 높이 외벽 4~5m, 너비 8~9m이다.
이간수문은 홍예돌 상부 일부만 탈락한채 높이 5.4m, 길이 7.4m의 홍예식 아치를 이루는 수문 2칸이 거의 온전하게 발견되었다. 이간수문은 조선개국과 함께 태조 때 건립된 것으로 도성내 남산자락에서 흐르는 남소동천을 성 밖으로 배수하기 위하여 만든 수문이다. 서울성곽에는 청계천에 직접 설치한 오간수문과 함께 이간수문 2곳의 수문을 설치하였는데 오간수문은 청계천 복원공사 당시 기저부가 확인된 바 있으나, 조선 태조 때 쌓은 홍예식 수문이 상단부까지 온전하게 확인된 것은 매우 중요한 발굴성과라 할 수 있다. 수문은 수문 내측에는 하천을 유도하기 위한 날개형 석축시설과 중앙부에 물가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뱃머리 모양의 석축시설이 확인되어 조선시대 당시 수문구조 및 배치를 알 수 있다.
치성은 성벽에 돌출되어 방어상 취약한 곳에 축조된 성곽방어물로 서울성곽에는 문헌기록에 4~6개소가 설치되었던 것으로 전하는데 이번 발굴조사에서 최초로 조선영조 때 축성한 치성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치성의 규모는 남북 10.2m, 동서 8.3m로 평면형태가 방형이다.
염초청 및 하도감 관련 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동대문야구장 부지는 문헌기록에 염초청(화약제조기관) 및 하도감이 자리하였던 곳이다. 하도감은 임진왜란 이후 군사력의 강화를 위해 설치된 훈련도감의 분영으로 수도를 방위하고 왕의 시위와 훈련 및 치안을 담당하였던 기관이다. 규모는 390칸이며, 조총고, 궁전고, 화약고 등 창고시설이 있었으며, 공장 등이 입역하여 이곳에서 무기 및 화약을 제조하였다. 조선말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등 역사적 사건의 주요무대였던 곳이다. 발굴결과 조선시대 중기에서 조선말까지 이르는 하도감 관련 유적이 차례로 조사되었다. 염초청, 하도감의 존재를 증명하는 관련 명문유물과 함께 건물지 유구, 무기 및 화약 관련 제조를 하였던 것으로 여겨지는 철생산 공방시설, 집수시설, 아궁이를 비롯한 소성유구 등 하도감의 시기별 변천과정과 배치, 성격 등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었다.
운동장부지에서 확인된 도성방어 관련
군사시설
동대문운동장 서울성곽 도성내부에서는 조선시대 중기에 경영된 건물지 유구 10개소, 연못 등 집수시설 2개소, 우물지 4개소 등이 조사되었다. 건물지는 지휘소로 여겨지는 주요건물과 추정 무기고가 있으며, 물을 저장하여 유사시를 대비한 석축호안시설을 갖춘 집수시설과 우물 등이 위치하고 있다. 한양도성 방어와 관련하여 성곽에 인접하게 조성한 군사시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훈련원 공원시설
하도감 폐기이후 이곳은 1925년 경성운동장 건립이전까지 훈련원 공원이 존재하였던 곳이다. 야구장 하부에서 훈련원 공원시설인 기와 보도시설과 화단지, 연못지 등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기와 보도시설은 하도감에 사용된 기와를 이용하여 구획선 내에 촘촘히 꽂아놓아 사람이 통행 할 수 있는 보도를 조성하였으며 좌우로 암수키와로 목조기둥 지붕골을 형성하여 물이 흐르게 하여 연못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각 시기에 걸쳐 출토된 유물 약 2,500여점 출토
출토유물은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제작된 기와류, 토기류, 자기류, 철기류, 철기 및 철 관련 공방 유물 등 약 2,500여점에 이른다. 자기류는 고려 상감청자의 여운을 간직하고 있는 흑백상감기법으로 시문된 이른 시기의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조선청자, 무문백자, 청화백자 등의 조선백자류와 근대기 중국 및 일본 자기류 등이 집중적으로 출토되었다. 특히 화려한 문양을 투각과 양각 등으로 표현한 조선청자 돈 1점과 도기 돈 2점이 수습되어 주목된다.
서울 도심내의 조선시대 유적공원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건립은 서울시 주요사업으로 이곳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계속하여 확인됨에 따라 확장 및 연장발굴조사가 계속하여 실시되었다. 따라서 확인된 유적의 문화재 보존대책 수립을 위한 10여 차례의 문화재위원회의 및 현장설명회가 개최되었다.
발굴조사 이후 이곳은 주변 패션몰의 중심지로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가 건립될 예정에 있다. 확인된 조선시대 유적에 대해서는 수차례의 회의결과 현대화된 대형건축물과 함께 조선시대 유적공원이 조성될 계획에 있다.
먼저 이간수문을 비롯한 서울성곽은 조선초기부터 후기까지 축성기술을 구간별로 잘 나타내고 있어 당시 발견된 모습 그대로 정비하여 당시 한양도성의 모습을 관람하게 할 예정이다. 야구장 및 운동장 부지에서 확인되고 있는 조선시대 건물터에 대해서는 초석 및 적심석 등 건물하부구조가 잘 남아있는 일부 하도감 건물지군에 한해 디자인플라자 지하광장에 발굴조사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여 교육전시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며, 그 외 유구 등에 대해서는 시기별, 종류별로 당시 사회문화상을 잘 보여주는 유구를 선정하여 사업예정지 내 유적공원으로 이전 배치하여 보존할 계획에 있다. 또한 유적공원 내에는 유적전시관을 건립하여 발굴조사 출토된 유물과 유적사진 등을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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