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이 되어 결실을 맺는 세 가지 조건(눅 8:15)
2026.9.6, 김상수목사(안흥교회)
네팔의 히말라야 계곡에서 일어난 빙하홍수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고 실종되었다. 한국인 실종자 9명도 계속해서 찾고 있는 중에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실종자들이 살아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TV뉴스를 보면, 이번에 거대한 홍수와 토사들이 밀려 내려오는 속도가 무려 시속 180km이었다고 한다. 이 정도 속도면 누구도 피하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홍수를 피해 도망치던 사람들이나 건물들이 순식간에 거대한 물결에 뒤덮이는 장면들이 보도되었다.
그 장면들을 보면서 누구나 그렇겠지만, 마지막 날은 언젠가는 나에게도 생각지 않은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죽음(死)이라는 글자 자체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뜻하는 말이다.
사(死) = 하나 일(一) + ‘저녁 석(夕) + 비수 비(匕)
(죽음은 한 밤중에 갑자기 날아오는 비수(화살)처럼 피할 수 없다)
그러면서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의 물결이 나를 덮친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준비된 죽음이 될 수 있도록 지금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았다(“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오늘 이 시간에는 바로 이 점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오늘 본문 말씀에 한정하여 함께 나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자(눅8:1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오늘 말씀은 네 가지 밭(길가, 돌짝, 가시덤불, 좋은 땅)의 비유 중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에 대한 비유이다. 여기서 결실은 ‘말씀의 결실’이다(눅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주님은 앞의 세 가지 밭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는 원인을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 말씀인 좋은 땅에 뿌려진 씻앗에 대해서는 결실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 주셨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은 네 가지 밭의 비유의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예수님은 이처럼 우리들이 말씀의 결실을 풍성하게 이뤄내는 좋은 땅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하셨다. 그 세 가지는 1)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 2) 말씀을 지키는 것, 3) 인내의 덕목이다. 그렇기에 우리들도 주님이 제시하신 이 세 가지를 믿음으로 준행해서, 언제든지 마지막이 다가와도 부끄럼 없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좋은 땅이 되어서 풍성한 말씀의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강조점이자 오늘 설교말씀의 결론이다.
1.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말씀의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첫 번째 조건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듣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는 “말씀을 듣고”라는 말씀 뒤에 “깨닫는 자니”라는 말씀이 더 추가되어 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in an honest and good heart)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마 13:23)
이 말씀에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라는 표현은 단지 심성이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숭고한 목적(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 영혼구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개인적인 사욕이나 선입견이나 심사위원같은 태도를 내려놓으려는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 이처럼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비로소 그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과 뜻이 깨달아 지고(“아하~”), 그 말씀을 자신의 가치관과 사상과 추구해야할 인생의 푯대(목적)와 방향으로 삼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므로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말씀을 열매를 많이 맺고, 언제 하나님 앞에서 선다 해도 부끄럼 없는 거룩한 신부의 모습으로 준비되기를 힘쓰자.
2. “지키어”
말씀의 결실을 풍성하게 맺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말씀을 듣고 깨달은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and hold it fast)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무엇으로부터 말씀을 지켜야 할까? 앞의 세 가지 밭(길가, 돌짝, 가시덤불)에서에서 나왔던 말씀의 결실을 막는 요소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것들은 곧 말씀을 빼앗고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간계(길가, “이에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눅 8:12)와 시험이나 박해로 대표되는 각종 어려움 등과 같은 외적인 고난들(돌짝) 그리고 자신의 내적인 염려와 근심, 재물의 유혹 등과 같은 내적인 갈등(가시떨기)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마귀의 공격이나 시험과 박해와 같은 시련이 반드시 바윗돌 같은 큰 시험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돌부리 같은 작은 시험이 더 위험할 수 있다.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바윗돌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 때문이다. 특히 혀의 돌부리를 조심해야 한다. 이외에는 분주함과 피곤함도 있다. 얼마나 다들 분주한지 심지어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분주함과 피곤함이 쌓이면 만사가 귀찮아 지고, 언행이 신경질적이 되기 쉽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게 된다(“다음부터~”, “좀 한가해지면~”).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몇 주나 몇 달 또는 몇 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음을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 중에 하나가 생선을 말리는 장면이다. 그 장면들을 보면 모기장 같은 틀 속에 넣어서 덮어 놓거나 책상(좌판) 위에 생선을 널어놓고 전기의 힘을 이용해서 긴 막대기 같은 것을 빙빙 돌리기도 한다. 왜 이렇게 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갈매기들이나 파리 같은 것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함이다.
우리도 그렇다! 말씀을 빼앗으려는 마귀의 간계와 어려운 상황들 그리고 이로 인한 내적인 갈등으로부터 내 마음에 뿌려진 말씀들을 지켜야 한다. 피곤해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고(마26:41),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고(엡6:13-17), 말씀의 검을 손에 가져야 한다(엡6:17). 역설적으로 말하면, 분주해서 시간이 없고, 피곤해서 기도하기 싫을 때, 그때가 바로 기도가 더 필요한 때인 것이다(“너무 바빠서 기도 합니다”, 빌 하이벨스).
3.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말씀의 결실을 풍성하게 맺기 위한 마지막 조건은 인내의 덕목이다. “인내로 결실”한다는 것은 곧 참고 견디면 반드시 추수의 때가 온다는 말씀이다.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고(전3:1), 기다림이 필요하다(애3:25-26). 들은 말씀을 지킬 때가 있다는 것은 곧 거둘 때도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이 땅에서 우리의 생명은 단 한번 뿐이고,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한 밤중의 비수처럼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날아오는 도중일 수 있다. 지금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라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처럼 말씀의 결실을 풍성하게 맺는 삶을 살아가기를 힘쓰자. 이를 위해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을 굳게 지키며, 인내의 결실을 맺자.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럼이 없고, 거룩한 성도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