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건입포 동산 위가 금산이었다.
지금은 물 사랑 홍보관과 금산수원지 소공원으로
조선시대 제주목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석성을 둘렀는데 건들개(건입) 포구 위에는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와 나무가 우거져 목성으로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고 있었던 언덕이었다. 제주목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숲이 울창하여 좋기도 하였겠지만 이곳에 나무를 베어내면 화를 입는다고 믿었고 성스러운 장소로 민간인들 출입을 금하여 금산(禁山)이라고 하였다. 이와 유사한 곳은 애월읍 납읍리 금산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 후기 의녀반수 김만덕은 이 병풍바위에 아래 주막을 지어 거상이 되었던 자리다. 세월이 흐르고 문화도 많이 바뀌어 지면서 일제가 점령하였다. 건들개 포구는 넓었지만 수심이 얕고 암초가 있어 큰 배가 들고 나기에 불편하여 준설을 하였고 방파제 시설을 하면서 병풍바위를 부셨고 나무를 잘라냈다.
물홍보관/소공원전경/금산유허비 표지석
금산 아래는 용출수가 많이 흐르는 장소였는데 물 이름이 있다. 금산물은 금산 아래로 흐르는 물이라 하였고, 광대물은 구 화력발전소 남서쪽에 있는 수원지를 금산물이라고 한다. 금산물이 동으로 와서 솟는 샘을 ·지장샘 또는 지장깍물 ·광대물·이라고도 한다. 광대물이 흐르는 지역을 내깍이라 하는데 ·종보탐라지·에 의하면 광대물은 제주읍 건입리 금산 밑에 있다. 물이 좋아 홍종우가 이곳에 영은정(泳恩亭)을 지었으나 지금은 없다.
영은정 표지석/ 금산물줄기
제주는 화산지형이라 물이 고이지 않아서 산간지역 사람들은 빗물을 받아 마셨고 해안 사람들은 용출수를 마셨다. 일제 대도 금산공원에 용출수를 음용수로 활용하였고 해방 후 6.25가 종결되고 금산물을 정비하였고 5.16 후에는 이곳을 정비하여 금산수원지로 성안 사람들에게 마실 물 해결을 하였다. 1960년 중반부터는 제주시 곳곳에 용출량이 많은 지역에는 수원지를 개설하여 물문제를 해결하였는데 서쪽에 외도천 물이 좋아서 외도수원지와 동쪽에 삼양수원지, 사라봉수언지, 오라동 열안지수원지, 노형동에 월산수원지도 만들어 급수문제를 일부 해결한다. 산간지역은 1970년대 한밝저수지가 완공되면서 제주전 지역에 수도가 개설되어 물 걱정에서 해방되었다.
금산수원지 물 사랑홍보관 전시물
필자는 1970~1971년 1년 8개월 정도 제주시청 수도과 업무계에 공직자로 있었다. 당시 수원지에 업무 차 자전거를 타고 출장을 종종 갔었고 수원지 근무지들은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에 참석하여 일지를 점검받고 일주일 내용을 보고 하는 시간도 가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금산수언지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 있어 기에 행정관청에서도 가장 관심이 많은 수원지였다. 이렇게 시민들 사랑을 받던 금사수원지가 지하수가 콸콸 터지고 삼다수가 공급되면서 도내 전 지역에 용출수들은 보수한다고 시설비만 까먹고 폐허가 되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물줄기를 함부로 건들인 죗값이다.
산지천/ 노릿물
2010년 들어서면서 금산수원지를 공원화 작업에 돌입한다. 수원지는 그대로 활용하면서 물 사랑 홍보관으로 바뀌었고 금산주변은 소공원을 만들어 도시민들 휴식공간으로 완전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김만덕기념관 뒤쪽이고 화력발전소 남서쪽에 있어 소공원으로 아늑하고 매력적인데 숨어 있어 시민들도 공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 어린이 집 원아들도 가끔 찾기는 하지만 주차공간이 없어 발걸음이 끊겼다. 김만덕기념관과 연계하여 공간을 같이 관람할 수 있는 체계로 바꾸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김만덕기념관에서 공원으로 나갈 수 있지만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홍비미숙이다. 도시인근에 좋은 공간을 만들었으니 이를 잘 활용하는 것도 우리들 몫이 아닌가 싶다. 물 사랑 홍보관에 찾아가면 공직자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있는데 휴무일에는 관람이 불가능하여 안타깝다. 그래서 해설사를 배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국제부두에서 걸어서 10여 분, 여객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물 사랑 홍보관 금산소공원, 김만덕 객주, 김만덕기념관, 산지천갤러리까지 다 둘어 봐도 1시간이면 족하다. 많이 이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공원 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