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연거 농민은 유서에 '농민시대가 오기를, 농민이 잘사는 농촌으로'라는 말을 남겼다[사진출처:전농]
지난 3월 14일 경북 봉화군 박연거 농민이 농약을 마시고 자살한 데 이어 바로 다음날인 15일 안동에서 또다른 농민이 농가부채로 고민하다 결국 자살했다. "다음부터는 농민시대가 오기를, 농민이 잘사는 농촌으로"라는 농약 묻은 유서를 남긴 채 고 박연거씨가 자살한 14일은 농림부가 "쌀 수매가 2% 인하를 추진하고, 벼 재배면적을 올해 5만 ha 줄이겠다"며 "한칠레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고 협정을 체결하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날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에서 자살한 농민 김 모씨는 "대규모 축사와 소를 사들이는 등 축산부농의 꿈을 키웠으나 수년전 소값 폭락으로 실패한 뒤 최근 농협으로부터 빚 1억5천만원을 갚기를 독촉받아오다 견디지 못해 결국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상, 내무부장관, 농림부장관 등으로부터 수상한 '모범농민'이었던 고 박연거씨는 부채가 너무 많아 친동생이 일단 부채 연체를 막기 위해 4천만원을 농협에 대출신청했는데 그 자금을 대부담당자가 가로채 달아나자 가슴앓이를 해오다 결국 자살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농은 "정부의 농업포기 정책은 봉화 박연거 농민의 자살의 경우처럼 선도농가로서 대통령상까지 수상한 농민조차 희생당하는 현실"이라며 "정부는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체결과 WTO DDA협상을 통해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철페하고 개방을 확대하는 협상을 진행하면서 농민들에게 규모화와 경쟁력 강화를 외치지만 가격이 보장되지 않는 규모화, 경쟁력 강화는 필히 농민들에게 과대 투자를 유도하고 농민들은 부채만 늘어나게 되고 결국 또다시 농민들은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농은 또한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값받고 팔아주어야 할 농협은 오히려 농민에게 빚독촉을 하고 이를 이용해 대출금을 착복해 한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 돈놀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농가부채 해결을 위해 특단의 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전농은 이번 박연거 농민의 죽음을 "한국농촌의 비참한 결과를 웅변하는 정부 농정의 구조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올해 상반기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의 체결, 하반기 DDA협정, 그리고 내년의 쌀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는 절대다수 농민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농 경북도연맹은 이번 사건에 대해 "고 박연거씨의 부채 2억 8천만원 탕감, 농협직원의 횡령사건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실질적 보상, 고 박연거씨 가족에 대한 생계보장, 조합장과 임직원 등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있다.

*여주군 농민회가 한칠레 협정 비준 저지를 위한 삭발식을 하고 있다[사진출처:전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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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 경북도연맹 이윤구 정책부장 인터뷰
Q : 농협 대출 비리사건이 종종 있었다고 들었다.
A : 농협 대출 횡령사건은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고, 농협 대출구조는 부채를 갚을 여력이 되는지 심사도 안할만큼 허술하다. 농협은 이번 사건에 대해 촌사람인 농민들을 위해 만든 조직인데도 '횡령한 사람 잘못'이라며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기고 묵묵부답이다.
Q : 정부는 나름대로 농가부채에 대한 대책을 내오고 있는데.
A : 정부가 정책자금 금리를 1.2% 인하하겠다고 했지만 농민들이 실제로 많이 이용하는 상호금융의 이자는 9-11%에 이르고, 대출이 많을 경우는 12%까지로 오른다. 천원 들여 농사지어 9백원 수입내는 농민들은 결국 이자도 갚기 힘들다.
Q : 농가부채의 악순환에 농협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A : 농협은 작년 7천억원이 넘는 사상최대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이윤을 남기는 신용사업에만 혈안이 되어 농민들의 농산물을 수매하는 등 경제사업은 뒷전이다. 다른 기업들은 많은 돈을 들여 광고도 해가며 상품을 팔려 하지만, 농협은 경제사업에서 적자를 보다보니 이윤을 남기는 신용사업에만 매달려 이제 거의 은행의 역할만 하고 있다.
Q : 한칠레 협정이 비준되면 농가에 타격이 클거라는 걱정이 많다
A :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으로 1천 80여가지의 농산물이 수입되고, 이 농산물들은 2년에서 10년까지 단계를 두어 관세없이 수입되게 된다. '농산물 경쟁력 강화'를 이야기하지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사과, 배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문제는 생산비인데, 우리나라에서 포도한송이 생산하는데 1천원이 든다면 칠레에서는 수입되서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팔리는 가격이 1천원도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해라'고 강요만 한다고 영농의지가 생기는 게 아니다.
Q :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비준되면 특별법으로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실효가 있는지
A : 한칠레 자유무역 협정이 체결되고 비준만 남은 상태인데, 정부에서는 특별법을 빨리 만들어서 피해보상을 지원하면 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보상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대출로 이루어지는 거고,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특별법에 '농업을 포기하고 (폐업) 농촌을 떠나면 보상해주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실질적으로 '농업을 포기할 것'을 유도하고 있는 점이다. 식량자급율이 80-100%인 선진국에서도 자기네 농업보조금을 지키고 심지어 미국에서는 올리려는 시도까지 했었는데 우리나라는 알아서 농업보조금을 낮추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식량자급율은 쌀을 제외하면 5%밖에 되지 않고, 이런 식으로 가다 식량이 무기화되면 쌀이 지금보다 얼마나 오를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공장은 불타면 다시 세울 수 있지만, 농업은 한번 무너지면 몇 세대가 지나도 회생시키기 힘든데 정부는 '개방농정이 대세'라고 하면서 농업 포기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Q : 정부는 한칠레 협정 비준하고 특별법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인데
A :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국회비준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 이번에 그냥 비준되면 이후 예정되어 있는 한멕시코, 한싱가포르, 한호주, 한중국, 한미국 협정 때 다른 나라에서 "칠레하고 똑같은 수준으로 해달라"고 하면 정부는 할수 있는 말이 없다. 칠레는 세계적인 농업강국인 미국도 농업협정을 하지 않으려 하는 막강한 농업강국인데 우리나라는 칠레와 협정을 체결했다. 그대로 비준되면 이후 우리 나라에서 쌀 다음으로 많이 생산되는 마늘 강국인 멕시코와, 돼지와 소 등 축산으로 유명한 호주와 , 채소류에 강한 중국과 하나씩 협정이 체결되면서 마늘, 축산, 채소농가들이 차례차례 망할 것이고, 결국 우리나라 농업은 다 무너진다고 보면 된다. 지금 당장 한칠레 협정 비준을 거부할 수 없다면 적어도 9월달에 있을 DDA 협상 이후로라도 비준을 미뤄야 한다. 모든 농산물의 수입에 대해 결정되는 DDA 협상을 지켜본 뒤로 비준여부를 미루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
Q : 정부에서 농업포기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인가.
A : 정부에서도 공식발표로 '농가소득이 떨어지고 있다, 도시와 소득격차가 계속 벌어진다'고 밝히면서도 오히려 농촌 건강보험료는 더 올리고 있다. 농촌 인구가 계속 줄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살기 힘들어 도시로 떠나고 있는 것이고 농가부채가 해결되면 부채 때문에 못떠나고 있는 농민들도 아마 대거 농촌을 떠날 것이다. 농사지은 만큼 부채가 늘고 있는데 영농의지가 생길리 만무하다.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주소지를 옮기면 쓰레기 봉투를 공짜로 주겠다, 아이를 낳으면 분유값을 주겠다'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Q : 현재 전체 농가부채는 어느 정도 규모인가
A : 정부 공식발표에 따르면 한 농가당 4-5천만원 가량의 농가부채가 있지만, 실제 영농의지가 있는 40대 가량의 농민들이 그 대부분을 차지해 거의 1억원에 육박하는 부채를 지고 있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이제 아예 포기를 해 시설투자를 안하지만, 40대 농민들은 영농의지를 불태우면서 비닐하우스도 세우고, 좋은 농자재도 구입하지만 농사짓는만큼 부채가 늘어 그 총액이 30조원에 이르고 있다.
Q : 농가부채의 해결책은?
A : 30조원에 이르는 농가부채를 단순히 이자 인하해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많은 농가들이 원금상환은커녕 이자도 못갚고 있는데 정책자금 금리 1-2% 인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 해결은 아니지만 지금 당장의 연체 이자는 무조건 탕감해야 한다. 또한 정책자금만이 아니라 상호금융에 대한 금리도 낮춰야 한다. 물론 농가부채를 탕감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개방농정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는 농민들에게 '변해야 된다'고 강변하지만 그 정부의 농정에 따라 움직인 농민들에게 부채가 쌓인다는 건 결국 정부 농정의 실패로 인한 피해가 농민들의 농가부채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그 책임은 농민들이 아니라 그러한 농정을 편 정부에 있는 것이고 거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Q : 전농 경북도연맹의 투쟁계획은?
A : 우선 4월로 예상되는 임시국회 때 한칠레 비준저지를 위한 상경투쟁 등 강한 투쟁을 전개할 것이다. 현재 경북의 국회의원 16명이 비준을 거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대구지역 국회의원 11명은 단 한명도 약속하지 않아 시민단체와의 연대행동을 계획하고 있다. 쌀개방반대투쟁때보다 도시민들의 인식과 지지도 약해서 도시민들에게 선전도 하고, 국회의사당 앞 농성, 농민선봉대인 우리농업지킴이 등을 조직할 계획이다.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현재 농민들은 농가부채 때문에 묶여서 도시로 나가지도 못하고, 아니면 야반도주해 범죄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이런 농민들이 정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도시민들도 농촌, 고향, 정만을 떠올릴게 아니라 농업은 생명산업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농민들을 성원하고 지지해줬으면 좋겠다. 요즘 드라마에서 오렌지를 먹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농민들은 그것만 봐도 속이 터진다. 그런 심정들을 정말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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