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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성경본문: 시편16:1-11
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4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그들이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10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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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제게는 참으로 편안한 날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말이 다가오면 그래도 좀 긴장이 풀리고 쉼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오르시겠지만, 저 같으면 주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점점 더 긴장이 됩니다.
특히 주일에 해야할 설교에 대한 부담은 목회를 하면 할수록 더 많이 지는 듯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지난 주일에는 공동예배며 오후 예배 설교를 모두 다른 목사님들이 하게 되어서 저는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설교 준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난 편안함이 좋아서 '종종 이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목사님 그러다가 아주 백수가 되는 수도 있으니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저 아직은 백수가 되기 싫거든요...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리기로 하였습니다.
모처럼 설교 준비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났던 토요일 저녁! 부천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음악회가 있었습니다.
<부천시립 교향악단>이 <부천제일교회>에서 모차르트의 마지막 곡인 <레퀴엠>을 연주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다른 곳에서의 연주였다면 갈 생각도 안 했을 텐데, 교회에서 한다니까 좀 구미가 당겼습니다.
음악회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망설이다가 '그래 내일은 설교도 없는데... 이런 기회가 또 있을라구...' 이렇게 생각하면서 차를 몰았습니다.
'올해가 탄생 250주년이 된다는 모차르트가 나를 부르는 구나...'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정말 모차르트가 아니면 구태어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세상의 모든 음악가들 중에서 모차르트의 곡만큼 많이 들어 본 음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까닭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깊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한없이 투명하고... 밝고... 경쾌한 듯 하지만, 다시 들어보면 그 속에는 깊은 슬픔과 우수가 배어 있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모차르트를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깊은 감동입니다.
그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삶이란 참으로 깊고 신비한 것이며...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감동으로 충만한 것임을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많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영화를 통해서 접했던 모차르트의 음악 중에서 가장 극적인 감동으로 와 닿은 것은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입니다.
은행원으로 행복하게 살던 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아내를 살해한 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은행원으로서의 특성을 살려서 교도소 소장의 탈세를 도우면서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그는 교도소 방송을 통해서 전혀 색다른 음악을 틀어 놓습니다.
이 때에 나오는 음악이 바로 모차르트입니다.
그가 작곡한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에서 '저녁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라는 여성 이중창의 아리아인데... 그 음악이 확성기를 통해서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시끄럽게 운동장에서 떠들던 죄수들은 갑자가 조용해지고 그들의 눈과 귀는 저절로 확성기를 향해서 집중됩니다.
어떻게 이런 음악을 이 대목에서 사용할 생각을 했는지... 그 때에 제가 느꼈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이 들 정도였습니다.
지금도 그 음악을 방송을 통해서 듣게 되면 그 영화장면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날 밤에 있었던 음악회도 참 좋았습니다.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잘 훈련된 합창단원과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중심으로 엮어내는 연주는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것을 통해서든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 이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고, 세상을 오래 살면 살수록...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무미건조해지기 마련인데... 그런 중에서도 우리들의 마음 속에 삶에 대한 감동만 살아 있다면... 우리들의 삶은 항상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들은 참 많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들이며, 사람들의 따듯하고 아름다운 선행들이며, 어린 아이의 웃음 같은 것들...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요소들입니다.
그 외에도 나를 감동시키는 것들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겠지요.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에서도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감동시키는 분은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감동! 그것은 다른 모든 감동을 뛰어 넘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느끼는 감동이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감동을 힘입어서 그 누구보다도 가치 있고, 존귀하며 희망에 가득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 성경은 바로 하나님을 체험한 사람들의 감동이 글자 하나하나 속에 녹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들의 감동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흘 후... 날자로 치자면 세 번째 날이지만, 시간으로 치자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난 시간으로부터 48시간도 채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이제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지난 금요일 저녁 무렵에 예수님의 장례를 안타깝게 지켜보면 세 여성은 예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누가 무덤을 막고 있는 그 큰돌을 옮겨 줄까? 걱정하며 갔는데... 이미 그 돌은 치워졌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 속에서 보았던 것은 흰 옷을 입은 청년이었는데, 그들은 그 청년을 통해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누워 계시던 자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는 청년의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갑자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하더라...'(마가16:8) 성경은 그 때 그들의 반응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날 그들이 무덤에서의 경험은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느끼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렇듯 하나님 앞에서 느꼈던 감동이 세상을 이기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때부터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렵지 않았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지치거나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항상 기뻤고, 감사와 희망으로 가득한 삶을 그때부터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물론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세상을 살았던 한 사람의 잘 정돈된 신앙의 간증과도 같은 말씀을 함께 읽었습니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알고 믿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4절을 보면 그도 한 때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믿던 신을 섬겼던 것 같습니다.
그 대상이 누군 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다른 이들이 섬기는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열심히 그 신을 믿고, 그에게 예배하고, 열심히 그 이름을 부른 듯 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어쨌든 그는 이제껏 자기의 삶 속에서 자기를 지켜 주시고 인도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지금도 내 곁에 계셔서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보호자가 되신다는 것...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중 제게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8절의 후반부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쉽사리 자기를 드러내시지를 않습니다.
우리를 지독하게 사랑하시면서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웬만해서는 이렇게 말로는 표현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 생각할 때도 많지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서도 '얘야 그것은 내가 한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법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때에 무엇을 성취하고 나서도 헷갈릴 때가 참 많습니다.
'이게 내가 잘해서 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혠지...' 이것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분들을 주변에서 종종 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이 나를 아시기는 하시는 건지... 내가 어디 있는지.. 지금 내가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때 하나님은 이런 나의 현실이나 고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발견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쩌다가 오랫만에 펼쳐든 책갈피에서 돈이 한 10만원쯤 든 봉투가 툭 떨어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말 행복한 발견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우편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진정 우리의 행복하면서도 감동으로 가득한 인생은 바로 이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이 놀라운 사실을 죽기 전에 발견했다고 하지요.
인생의 종말에 다다라서 그는 자기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손에 잡힐 듯 자기의 발자국이 선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발자국 옆에는 다른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아! 주님이 함께 하신 길이었구나...
그는 두 발자국을 바라보다가 문득 주님께 물었습니다.
편안할 때에는 발자국이 둘이었지만, 자기의 인생 길이 힘들고 험난할 때면 슬그머니 한 발자국은 사라지고 하나만 남곤 하였습니다.
'주님 늘 저의 곁에서 함께 걸어오신 것은 참 감사하지만,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면 주님은 저를 피하곤 하셨지요. 그것은 너무 섭섭한 일입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는 겁니다.
'얘야! 무슨 말이냐? 네가 어려울 때마다 내가 너를 업고 다니지 않았니?' 그러시면서 당신의 발을 보여주시는데 그 발은 온통 상처와 핏자국으로 얼룩져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 사람은 주님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지금 나의 곁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하나님이 피곤한 나의 여정 속에 동행해 주시며, 내가 위험하고 곤고한 길을 걸어 갈 때에는 아예 나를 업고 다니신다는 것! 생각해보면 이것처럼 놀랍고 감동적인 일은 없습니다.
이야기 속의 그 사람은 죽기 전에야 이러한 것을 깨달았지만..
만약에 우리가 오늘부터 이런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항상 빛과 희망으로 충만한 삶이 될 것입니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내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더 알게 되었다는 것!
이것으로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관계 된 것이라는 것! 그 하나님이 항상 나를 지켜보시고 내가 가는 길마다 함께 하신다는 것! 이것을 알게 될 때에 그 때부터 우리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495장에는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예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전에는... 나의 인생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세상은 항상 어둡고 슬픔과 절망으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나서는... 그가 내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에는 그토록 문제 많고 힘들던 세상이 천국으로 바뀌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무엇이 달라진 것입니까?
나를 둘러싼 세상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슬프고 고통 많고 별 희망이 없습니다.
달라진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과 눈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항상 내 우편에 계시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그가 우리에게 고백하고 간증하려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시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나의 인생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v.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그는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나의 산업'이란 내가 이 땅에서 하는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잔의 소득'이란 일의 결과로 얻어지는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일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주시는 분이시며, 그러한 일을 통해서 열매를 거두도록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이지요.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는 그의 월급이 얼마나 되는 지... 그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지금 자기가 일을 통해서 받게되는 자신의 분깃, 자신의 몫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 진정한 삶의 기쁨과 풍성함이 있는 것이지요.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자부심을 가지고 그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지금 자기가 거두어들이는 열매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저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이런 믿음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그것이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믿음으로 일한다면... 지금 내가 거두어들이는 소득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받는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v.6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여호와께서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 그것은 바로 지금 내가 직면한 삶의 환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만족하십니까?
이렇게 묻는 다면 만족하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더 넓고 편안한 환경이나 삶의 조건을 원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 사람도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가? 이런 불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이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는 지금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금 내가 사는 이 곳이.. 지금 내가 직면한 현실과 삶의 조건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때부터 그는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가 있게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며 산다는 것 속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오늘 내가 직면한 삶의 환경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 그것은 내가 누구보다도 좋고 편안한 환경 속에서 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 이 곳이 하나님께서 살도록 친히 줄로 재어준 구역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이 자리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등지고 미디안으로 피신하여 양을 치다가 하루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모세는 지금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불만이 참 많았습니다.
자기는 이렇게 양떼나 몰고 다닐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모세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오늘 그가 직면한 현실! 지금 그가 딛고 서 있는 그 땅! 지금 네가 선 곳이 바로 거룩한 땅이라는 것! 여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삶의 길은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직면한 현실이 어떠하든지.. 그것은 바로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줄로 재어준 구역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일로부터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v.7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찌라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특별히 '밤마다 내 심장이 나를 교훈하도다...' 라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밤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낮에 잘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시간입니다.
어 떤 때에 우리는 잠자리에 눕지만 잠이 잘 들지 않을 때, 아주 사소한 소리도 듣게 되지요. 예를 들면 시계 소리 같은 것들... 우리는 그 소리가 그렇게 큰 것이지 낮에는 잘 느끼지 못합니다.
때로는 나의 숨쉬는 소리가 잠을 방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얼마나 예민한지... 밤이 되어서 모든 것들이 조용해질 때면 아마도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심장의 고동을 느낄 수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이렇듯 끊임없이 뛰는 심장의 고동을 느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한 신비감인 것이지요.
그는 다른 어떤 외부적인 것이나 삶의 조건 때문이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께서 나의 심장을 뛰게 하셨다는 것...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 나의 생명이 다름 아닌 하나님의 섭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진정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동으로 가슴 뭉클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요.
영어 단어에서는 공교롭게도 “오늘(present)이라는 말과 ”선물(present)이라는 말의 단어가 똑같습니다.
이것을 착안해서 우리가 보내는 오늘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나의 심장이 쿵쿵 고동치고 있고, 지금 나의 가슴이 하나님의 호흡을 호흡할 수 있다는 것!
지금 내가 누리는 생명! 지금 내가 보내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에 우리는 항상 감동이 넘치고 기쁨으로 가득한 그러한 삶을 누릴 수가 있게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무엇을 바랄 것이 있을까요?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웰 빙(well being)”이지요. 마음이 기쁘고... 영혼이 즐겁고... 몸이 건강할 때... 우리에게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음을 아는 사람들...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지금도 자신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 이들이 누리는 포괄적인 행복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분복을 지키는 자의 복
(시 16:1-11)
어떤날 한 남자가 유명한 가이드 포스트지의 창시자 인 노만 핀센트 빌박사님을 찾아 방문했다고 합니다.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혀 서 얼굴도 초췌하고 아주 얼굴 표정 자체가 마치 당장 죽을것 같은 그런 사람 이 찾아와서 자기 사정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제 는 끝장이 났습니다. 사업 에 실패하며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라고 말 했답니다.
그때에 빌박사님께서는 종이를 하나 꺼내 들고 당신 이 지금 모든 것을 잃었다 고 했는데 그래도 조금 남 은 것이 있을것 같은데 그 남은 것을 제가 물어 볼거 니까 대답을 하시고 여기다 가 한번 적어보도록 하십시 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부인 있습니까? 네 제 아내는 참 착하고 좋은 사람 입니다. 자녀가 있습니까? 셋이 있습니다. 아주 이쁘 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제 뜻을 잘 알아 주는 몇사람 친구가 있습니다. 건강은 어떻습니까? 아 그저 아직 까지 건강은 괜찮습니다. 이렇게 말을 해 나가다가 이 남자 스스로 하는 말이 어쩌면 내 사정이 그리 나 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다 잃어버린줄 알았는데 아직도 가진것이 많구만요. 고 맙습니다. 그리고 물러 갔다는 얘깁니다.
불행은 여기에 있습니다. 가지고 싶은 것을 못 가지 고 있다는 것에 있는게 아 니고 가지고 있는것을 모른 다는 것에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을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찾아 보세 요. 다 잃어버린것 같으나 아직도 가지고 있는게 많습니다.
가지고 있는게 더 큰겁니다. 더 근본적이고 더 소중한 것입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 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졌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 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입니다. 아는것이 없어서 불행한 것 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것을 실천하 지 못하기 때문에 불행한 겁니다. 더 많은 것을 알 려고 들지 말고 아는대로 살아 보세요. 넉넉합니다. 하나님은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소원은 성취하지 못한데서부터 불행이 오는것 이 아닙니다. 현실에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문젭니다. 사람은 항상 흑자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서 적자만 계산합니다. 무엇을 잃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몰두합니다. 아니올시다. 그러한 가운데도 얻은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잃어버리 고 저것을 얻었습니다. 건 강을 잃어버리고 믿음을 얻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 리고 겸손을 얻었습니다. 얻은게 많습니다. 얻은 것, 이 흑자쪽으로 평가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사람은 항상 흑자결론을 내립니다. 그 사람에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이 무엇입니 까? 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입니까?
최근 심리학에서 이런 말을 주로 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존재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기는 생각하는 만큼의 세 계를 산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변화하는대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고 생각하는 대로 변화하는 존재란 말입 니다. 여러분 환경이 달라져서 사람이 달라질줄 알지만 천만의 말씀이요.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달라질수 없는 사람은 못 달라집니다. 촌사람은 항상 촌사람이요. 덜된 사람은 항상 덜된 사람이요. 욕심쟁이는 항상 욕심쟁이요. 불평하는 사람은 끝없이 불평합니다. 그건 불평하다가 줄을 사람이지 그 사람의 불평을 끌 수 있는 환경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대로 변화가 옵니다. 그 변화된대로 내 존재는 결정되는 것이올시다. 오늘 본문 성경에 보면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복에 대해서 소중한 말씀을 합니 다. 언제 읽어보아도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귀한 간증이 담겼고,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거룩한 시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그래서 하나님 자신이 내 복의 근본이다. 하나님과 의 정직한 관계가 바로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물질이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태평성대가 복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가 나의 복입니다. 그로부터 복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을 다시 들어 보십시다.
시편 37편에서 보면은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나 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여호와를 기뻐할 때 그가 내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거예요. 그것이 복의 길이요. 잠원 16장 1절, 9절 보면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한때 잘못 생각하고 잘못 말한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면된다. 안되면 되게 하라. 건방진 소립니다. 해도 안되는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안될건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것을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 잘살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왜냐 하면은 하나님께서 인도하 시는 방향이 있어요. 하나님을 찾도록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실 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낯을 떠나 서 복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치고 발광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길을 떠나서 복된 길은 없다. 이 간단한 진리를 오늘 우리가 배워가고 있는 것이 올시다. 언제 읽어도 아브라함 링컨에 대한 이야기는 참 부럽습니다. 세계가 존경하는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그 기도선언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을 일으켜 놓고 7년동안 강이 피로 물들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을 때 그는 괴로웠습니다. 1862년
4월 30일 전국에 금식기도일을 선포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명한 연설을 하는데 2대 링컨의 연설중에 하나입니다. 그 연설문에 중간에 이런말이 나옵니다. 미국의 비극은 미국의 비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길은 오직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 아가는것 뿐입니다. 이 비극의 원인은 너나할 것 없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 이백성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 같은 비극이 있는 겁니다. 그런고로 다 같이 하나님께 로 돌아가십시다. 이렇게 연설하는것을 볼수 있어요. 저는 이런 연설문을 볼때마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언제 이런말 할 때가 있을까 참으로 부럽습니다. 참으로 부럽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길 외에 다른길이 없습니다. 온세계를 향해서 손을 내민다고 해결되는게 아니예요. 빚갚기 위해서 또 빚을 내야 하는 이 답답한 사정 어쩌다 이모양이 된 것 같습니까?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떠났기 때문이요. 그리고 오만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떠났기 때문이요. 우상숭배를 하고 지금도 묘지를 잘써서 됐다나. 이래서 묘지를 옮기고....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묘지를 옮긴 사람이요 이 지방에서 서울로 사방에 좋은자리로 옮긴다고 옮기고 오만비나 됩니다. 그래가지고 이렇게 된거예요. 도대체 언제나 정신을 차릴겁니까? 요새 는 아주 점쟁이 집이 성시를 이룬답니다. 이래가지고 우리 나라가 어디로 가는겁니까? 여호와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과의 정직한 관계를 이룰생각을 못합니 다.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다면 그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복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 외에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것은 분복의 뜻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분깃이 있고 분복이 있고 줄로 재어준 구역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다 가질수도 없고 다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에게 맡겨주는 만큼의 분복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으로 보아도 성서학적으로 깊은 말씀입니다만은 생각해 보세요. 바울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예수를 믿고 사도가 됐을 때에 그때 바란게 뭐냐하면 민족에 대한 간절한 열망입니다. 자기 동족 유대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그는 어느지방에 가서 선교하든지 유대 사람의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 합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도전합니다. 유대사람들 한테 지긋지긋하게 쫓기면 서도 계속 유대 사람들을 구원해 볼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이건 번번히 실패입니다. 상당한 기간이 흐른 다음에야 깨달은 것 같애요. 하나님의 부르심은 적어도 이 사도 바울의 부르심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른겁니다.
갈라디아서1장에서 그는 고백합니다. 어머니 의 태로부터 택정함을 입어 이방인의 사도가 됐다. 진작 그렇게 생각할 것이지 그의 사명은 그에게 그에게 맡겨진 분복은 이방사람에 게 복음 전하는 것이지요. 유대사람을 상대로 하는게 아니었더라는 겁니다. 누구에게나 맡겨진 분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 보면 은요 돈 잘 벌게 생긴 사람 들 있어요. 제가 하두 답답해서 옛날에 관상학을 좀 보았어요. 그래서 조금 봅니다 관상을. 이사람은 밥술이나 먹게 생겼고 아주 기업가로 생겼어요 관상이. 그런데 이사람이 돈좀 벌어 놓고는 중간에 목사하겠다고 그래요. 그것 나이도 많았는데 이제와서 신학을 한다...
아 교역자가 됐지요. 교회부흥 안되더라구요. 교회 부흥도 장사하는 식으로 하거든요. 교회학적으로 해볼려고 하니 되겠습니까? 체질상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본인도 고생이고 교인들도 고생이예 요. 그래서 제가 이분은 팔자를 잘못 짚었다. 그래 생각을 해요. 여러분 분복이 있음을 잊지 마세요.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 있어요. 예술성이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분복이 있어요. 뭐 물질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해요. 그 달란트 비유를 보세요.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한달란트
얼마를 버느냐에 심판의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겼느냐 못남겼느냐? 얼마나 작은 일에 충성했느냐 고것만 묻는거예요. 그러니까 물량적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내게 맡겨진 분복을 소중히 여기는게 중요합니다. 꼭 많이 가져야 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옛날에 유학할 때 미국과정에 참 부자집에 초청을 받아 가봤습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집들이라고 뭐 자기네들은 큰집 세워 사는거라고 생각하는가 본 데 외국사람들의 저택에 비하면 이거는 이건 아주 사랑방도 안됩니다. 엄청난 저택에 공원에 그리고 좌우 간 집을 이쪽에는 여름에 이쪽에는 겨울에 따로 따로 해놨드라구요. 엄청난 저 택을 한번 쭉 돌아보는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지드만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놀란것은 침실이예요. 침실도 가보자고 그래서 가 봤는데 넓다란 침실에 한구석에 침대를 놓고 그 위에 다가 요렇게 동굴처럼 뭘 씌워 놨더라구요. 요거이 제 문제에요. 그래 제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건 왜 이렇게 씌워 놨습니까? 했더니요 방이 넓으면 사람은 원래 동굴문화에 살았기 때 문에 잠이 안 온답니다. 그러니까 침실 크게 하는 사람은 멍청한 사람이죠. 그러니까 허황한 꿈만 꾸죠. 원래 어짜피 자는데는 요만 큼 자면 되는거예요. 이게 커야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거거든요. 제발 욕심도 부 리지 맙시다. 이제는 생각 좀 고칩시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그렇게 저택이 클 필요도 없고, 그렇게 굉장 한 침대 놀 필요도 없어요. 제가 언젠가 한번 마닐라 빌빈에 갔다가 거기에 옛날에 그 수상이 뭐 한참 화려 하게 살때에 있던 침대 하나 구경을 했어요. 마닐라 인가 미넬라인가 하는 양반 자던 침대를 한번 들여다 봤는데 아 대개 크데요. 그래 제가 생각했어요. 여기 가만히 보니까 충분히 여섯사람은 자겠드만요. 여기 부부싸움하고 자기 딱 좋겠더라구요. 하나는 여기 자고 하나는 저기 자고. 무슨 쓸데없는 짓
입니까? 이게 다 한심한 일이요. 생각이 이정도밖에 안되는 거예요. 분복이 있어요. 다 먹을 수도 없고 다 가질 수도 없고. 어짜피 나는 요만큼 살다가 요렇게 가는 거예요. 분복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현실이라는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과거도 미래도. 어느 구두수선도 하고 구두닦이를 하면서 거리에서 일을 하는 청년이 하나 있었는데 이 양반이 이 내가 이 천한 일을 언제까지 해야하나? 늘 마음에 괴로웠어요. 그래서 다달이 나오는 복권을 샀어요. 한번 맞아 떨어져라. 그리고 열심히 사서 긁었는데 이게 일억원짜리가 나왔답니다.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에이 다시는 이놈의 구두닦이 안한다. 그리고 구두닦이 하는 괘짝을 들고 나가서 한강에 가서 이제는 내가 영원히 이 지긋지긋한 구두상자 내 버렸답니다. 버리고 생각 해 보니까 자기 습관대로 그 복권을 그 상자속에 넣어 놨단 말입니다. 기가막혀서 자살해 죽었답니다. 복이 그거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제는 시기 하지도 말고 질투하지도 맙시다. 남 잘사는거 부러워 할 것 없습니다. 질적으로 평가하세요. 누가 행복한 지는 노바디노스. 누가 잘 사는지는 나만이 아는거요.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도 말고 나 처한 처지 외에 처지를 구하지도 맙시다. 이게 분복이요. 분복이 있음을 알아야 해요. 또한 오늘 성경에 가르켜 주는 교훈은 또한 그 분복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예요. 감사하고 아름답다. 줄로 재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실로 아름답도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수용적 자세가 중요합니다. 분명히 한게가 있습니다. 범위도 있습 니다. 방향도 있습니다. 지식도 능력도 건강도 한계가 있어요. 여러분 혹 날씬하십니까? 날씬하고 자 그마하거든 아담하게 보고, 좀 뚱뚱하십니까? 넉넉하게 봐 주세요. 나를 보던 남을 보던 남 부러워 하지 마세요. 그대로가 바로 하 나님께서 내게 주신 걸작품 이니까요.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문제입니다. 아름답게 보면 다 아름다운 것이구요. 삐뚤어진 사람 의 마음에는 그 누구도 아 름다움이 없습니다. 그 어 떤것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내게 주신것 아름답습니다.
늘 얘기합니다만은 우리 여 집사님 한분이 그런 얘기를 해서 제 마음을 참 즐겁게 해준 일이 있습니다. 목사 님 제가 목사님의 은혜를 받고요. 설교와서 은혜 받 고, 아 어느날 마음이 변화 됐는데 이는 눈이 확 돌아 가는데 이상합디다요. 이 십년동안 산 남편이 뭐 그리 이쁘겠습니까만은 남편 의 얼굴이 이뻐지기 시작하는데 정신 못차리겠더래요. 너무너무 예뻐서 밤에 불을 끄는게 싫어가지고 이런 불평을 했대요. 하나님 왜 하나님은 밤에 잘때 눈을 감게 자게 만들었습니까? 요 예쁜 얼굴좀 보면서 자게 만들지. 그래 제가 그 집사님하고 악수를 하면서 당신이 최고요. 우리 교인들 가운데 일등교인이라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왜요? 그거 잘 믿는거에요. 돌아가 보세요. 사모님이
이뻐요. 아이들이 이뻐요. 하루하루 사는게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당신이 일들 크리스챤이요. 언제, 왜, 하나님은 하필이면 저런 남자 웬수와 더불어 한평생을 살게 만들었을까? 아이구 참 주여 언제 이루어 주십니까? 어느때까지 입니까? 이따위 교인은 소망교회 교인 아닙니다. 이름을 보세요. 소망교회인데... 됐나. 그렇지 않습니까? 나에게 주어진 구역은 아름답습니다. 직업도, 가정도, 먹는 것도, 내 얼굴도 아름답습니다. 그것입니다. 아릅답게 보는 것입니다.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복이요. 그 시각이 그것이 복이요 그 마음이 그게 바로 복의 근본이란 말입니다. 그 미국에요하는 기관이 있는데 미국정신 건강협회 뭐 이렇게 번역하는데 여기에서 행복에 대한 다섯 가지 써제션이 있습니다.
권고하는 말이 있는데 행복하려면 첫째 너 그러워야 된다.
-7- 너무 까다로우면 안되요. 너그러워야 된다. 그 다음에 두번째가 중요합니다.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참 중요한 일입니다. 사실을 인정하세요. 퇴직된거는 퇴직된거고, 늙은건 늙은거고, 없는건 없는거고, 사실을 사실대로 현실적으로 평가하는 시각을 가져야죠. 그래야 행복합니다. 또 자부심을 가지세요. 왜요? 아직도 난 소중하니까요. 자기가 자기를 소중히 여기지 않은데 누가 나를 소중히 여깁니까?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를 통하여 나는 소중한 존재라는걸 알아야 하구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묻지 마세요. 최선을 다했다고 하는 그것으 로 만족해요. 그리고 행복해요. 그리고 항상 명랑하게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교훈입니다만은 우리 한국 사람들의 만족도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최근 세계 연구 이것을 연구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65% 라고 합니다. 조사한 18개 국중에 최하위, 최하위요 가졌던 못가졌던 우리는 스 스로 불행해요. 행복할 줄을 몰라요. 일본사람이 77% 그리고 영국사람은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운데도 95%, 뭘 말하는 것이냐 하면 우리는 행복할 줄을 모른다는 거에요. 가져도 못가져도 끝까지 불만 밖에 없어요. 짜증으로 터지고 이거는 참 문제올시다. 그런고로 이 만족도 그것과 소유하고는 절대로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모든것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습 니다. 그런고로 감사하십시다. 모든것 안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이 있습니 다. 조용히 말씀을 들으십시다. 모든 일에 하나님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인도 하심이 있습니다. 그가 인도하시는 길로 조용히 순종해 나가십시다. 내게 준신 분깃, 내게 주신 분복,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고 나갈때 하나님께서는 더욱더 크고 높고, 귀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