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호의 디자인 돋보기] 자동차메이커에게 브랜드의 가치는 판매와도 직결되는 중요한 마케팅요소이다. 소비자들은 자동차의 성능과 가격, 디자인 등의 요인과 함께 그 브랜드의 가치를 구매욕구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메이커들이 신차를 발표할 때 그들의 디자인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어필하는 것은 중요한 세일즈 포인트이다. 자동차 회사마다 브랜드의 가치 즉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근의 디자인경향을 보면 라디에이터 그릴,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등은 특히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디자인요소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램프는 LED, 레이저 등 기술 발전과 함께 기능적 안전을 추구하는 동시에 차량의 고유한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적 요소로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이를 ‘라이트 시그니쳐’라는 이름으로 강조하고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을 담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램프디자인을 통해 표현되는 각 자동차메이커들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 캐딜락 라이트 시그니처의 진화
램프로 표현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 하면 캐딜락의 수직형 램프를 떠올리게 된다. 캐딜락의 수직형 램프는 ‘Art and Science’를 표방한 1999년 Evoq 컨셉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이후 2003년 식스틴 컨셉과 2010년 어반 럭셔리 컨셉을 통해 칼날 같은 수직형 클러스트형상의 헤드램프가 선보였다. 그런데 이런 수직형의 강렬함은 LED 기술의 발달로 인해 디자인의 자유도가 증대하고 그에 따라 램프의 디자인에도 다양한 변화의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캐딜락이 2016년 선보인 에스칼라(Escala)를 통해 그 변화를 감지 할 수 있는데 OLED를 사용해 ‘C’자 형상의 새로운 레이아웃을 선보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최근에 등장한 양산차에서는 전통적인 수직형 램프 시그니처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XT4의 램프디자인을 살펴보면 수직을 위주로 한 디자인에서 사선에 가까운 수평의 이미지를 더해 알파벳 ‘L’ 자 모양의 주간주행등으로 새로운 라이트 시그니쳐를 강조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존 캐딜락의 상징이었던 수직의 강인함이 약화된 반면 더해진 수평의 이미지는 차의 폭을 넓게 보이게 하고 자신감 있는 자세를 선보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테일램프 역시 수직에서 벗어나 ‘L’ 자형의 그래픽을 선보이고 있는데 이 또한 차의 폭을 넓게 보이게 하는 디자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 BMW의 라이트 시그니처
BMW의 엔젤아이(Angel Eye), 다른 말로 ‘코로나 링’ 또한 대표적인 라이트 시그니처일 것이다. 2001년 BMW가 E39 플랫폼 베이스의 5시리즈를 통해 새롭게 선보인 헤드램프에 적용된 엔젤아이는 주간주행등의 대표적인 디자인으로 많은 메이커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BMW의 엔젤아이 역시 시대가 흐름에 따라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2014년에 출시된 5시리즈의 엔젤아이는 기존의 원형과 직선의 조화로 보다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로 진화하고 있고 퇴근 출시된 2017년형에서는 보다 유기적인 이미지로 하이테크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자동차 디자인의 트랜드를 채택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면 최근 발표하고 있는 전기차 또한 이런 라이트 시그니처를 적용하고 있을까? 사실 BMW의 전기차의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그에 따른 라이트 시그니처는 확실히 차별화 되고 있다.
2009년으로 돌아가보면 BMW의 ‘Efficient Dynamics Concept’ 가 눈에 들어온다. 저공해와 연료소비의 절감을 위한 제품라인업을 발표하면서 선보인 친환경 컨셉모델인데 이때만해도 헤드램프에 있어서는 변형된 엔젤아이를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곧이어 2011년 발표된 i3와 i8을 통해 BMW 전기차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특히 i3가 선보인 램프의 특징은 더 이상 엔젤아이가 아니었다. ‘U’ 자형의 독특한 이 램프는 2015년 출시된 i8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BMW 전기차의 라이트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BMW i8의 헤드램프는 상향등의 조사거리가 600미터에 달하는 레이져라이트를 세계최초로 양산차에 탑재하고 있는데 ‘U’자형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는 i3에서도 그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BMW가 선보이는 전기차의 라이트 시그니처를 상징하고 있다.
◆ 제네시스의 라이트 시그니처
지난 뉴욕 오토쇼에서 선보인 제네시스의 컨셉카인 에센시아에서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라이트 시그니처를 짐작할 수 있는데 ‘쿼드 라이트’로 불리는 레이져 램프는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고급감과 하이테크의 기술을 상징하는 독창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나타낸다. 이는 GV80컨셉을 통해서 이미 선보인 바 있다. 물론 이런 과감한 시도는 예상되는 기술의 발전에 기인한 것으로 지금까지 살펴 본 변화 또는 진화의 추이라면 양산화에 걸림돌이 될 만 한 것은 없어 보이기는 하다. 다만 라이트 시그니처도 기본적으로 차량 전체의 프로파일과 디자인의 컨셉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최근 열린 중국베이징 모터쇼에는 이름도 알지 못하는 수많은 중국회사들이 저마다의 브랜드를 어필하고 있다. 예전에 알고 있던 짝퉁 회사들이 더 이상 아니라고 생각 될 정도로 디자인과 품질에서 제법 괜찮은 차들이 쉴틈 없이 양산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앞서 언급한 브랜드들이 그들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증명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캐딜락과 BMW의 라이트 시그니처만 하더라도 얼추 20여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진화하고 있다. 싸게, 빠르게 자동차를 만들 수는 있어도 그 가치는 하루아침에 생기지는 않는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