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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하며 사랑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바라보며 먹고 삽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6:35절 말씀)
1. 의미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선언하시며, 그에게 나아오는 자는 결코 굶주리지 않고,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생명의 떡"은 단순히 육체적 배고픔을 채우는 빵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근원적 존재를 의미합니다. "오는 자"라는 표현은 단발적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 관계를 나타내며, 예수님과의 신앙적 관계를 통해 영적 만족을 얻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영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인간이 느끼는 영혼의 허전함과 하나님과의 단절 상태를 채워주십니다. 이는 단순히 육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사건은 육체적 배고픔을 채우는 예시이지만, 본 구절은 영적 양식으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신학적 배경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나는…이다" 선언 중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 구절은, 예수님의 신성과 구원 사역을 드러냅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의 하나님 자기 계시("나는 스스로 있는 자")와 연결되며, 예수님이 생명의 근원임을 선포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불신앙을 지적하며, 믿음은 단순한 육안적 인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2. 나는 생명의 밥이다.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분을 소개합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메시아’란 말을 헬라어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이 구원자이고, 구약시대부터 기다려온 메시아>란 말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사역하셨을 때도 그렇고, 2026년 8월 20일 오늘에도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예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정체성 7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① 나는 생명의 떡이다. (요 6:35)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 (요 8:12)
③ 나는 양의 문이다 (요 10:7) ④ 나는 선한 목자다 (요 10:11)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요 11:25) ⑥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 14:6)
⑦ 나는 참포도나무다 (요 15:1). 이렇게 7가지 가운데 오늘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첫 번째 정체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 35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이 말씀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요한복음 6장 앞부분의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앞부분에는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기적을 행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일명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한 아이가 예수님께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 5천 명이 먹었습니다.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모두가 배가 부르게 먹고 남은 것을 거두었더니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사는 문제는> 사람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대선이나, 총선을 할 때마다 국민이 가장 바라는 것이 <경제 문제>입니다. 우리를 지금보다 잘 먹고 잘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줄 후보에게 내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잘 사는 지금도 먹고사는 문제가 사람의 관심사이니, 하루에 두 끼 먹고 살았던 예수님 당시 사람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진짜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 어려운 시절에 예수님이 이적을 행하여 5천 명을 먹였으니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에게 쏠리게 된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반응이지요. 예수님에게 시선이 쏠린 이유를 하나 더 말씀드리면, 당시 랍비들이 백성들에게 구약시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내려서 먹어준 것처럼, 앞으로 메시아가 오시면 메시아가 매일 매일 이적을 행하여 먹거리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메시아가 오셔서 먹는 것을 해결해 주시면 <씨를 뿌리지 않아도 되고, 풀을 메지도 않아도 되고, 추수하지도 않아도 되고, 무화과 포도를 따지도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게 살아가던 백성들에게 메시아는 어려운 생활에서 해방시켜 줄 유일한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 눈 앞에 메시아와 비슷한 한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을 먹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군중들이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께 당돌하게 말합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는 표적을 또 보여달라는 것입니다. 군중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예수님의 지적 사항 2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준 것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었다. 이것은 모세가 행한 이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한 이적이라는 것입니다. ② 만나는 하늘로부터 온 참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지만, 만나를 먹은 사람들은 때가 되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어서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참 떡이고, 인간의 진정한 굶주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참 떡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35절 말씀이에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이 말씀을 읽는 분 가운데는 <나는 배고프지 않아요, 나는 목마르지 않아요>라고 속으로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집에 먹을 것이 충분하고, 마실 물이 충분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는 굶주림과 목마름은 여러분의 육체적인 굶주림과 목마름만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는 <몸, 마음, 정신, 영혼>의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겪는 굶주림과 목마름에는 <몸의 굶주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굶주림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진리에 대한 굶주림’, ‘의에 대한 굶주림’, ‘평화에 관한 굶주림’ ‘기쁨에 대한 굶주림’ ‘영적인 만족에 대한 굶주림’, 이 외에도 다른 일들로 주려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다고 지금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이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는 말씀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떡”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예로 들어 지금 맛있게 보이는 떡 사진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떡은 주식입니까? 부식입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떡”을 부식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떡은 주식을 먹고 한 후에, 부식으로 먹는 떡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주식을 말합니다. 우리의 주식은 <밥>이지요.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떡”이라고 하지 않고 “빵”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이 말씀을 받아들일 때는 우리의 주식인 밥을 생각하면서 “나는 생명의 밥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나는 생명의 밥이다”라고 예수님이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3. 밥의 특징 4가지
1) 밥은 “생명을 위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합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하고 싶었던 말씀은 <예수 자신이>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고 사는 것이 달린 존재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예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내려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 힘으로 돈 벌어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사고, 먹거리도 살 수 있다. 나에게는 좋은 직장도 있고, 아내와 가족도 있다. 그러니 예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에게 제가 한 가지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답변을 해 보세요.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구비되어 있다 할지라도. 오늘 밤 여러분의 생명을 잃는다면 여러분의 영혼은 어떻게 됩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예수님입니다> 내가 너희들의 육신의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는 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지 주저하지 말고 <생명을 주는 밥, 나를 먹어라>는 것입니다.
2) 밥은 “누구에게나 다 적합합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는 없습니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들은 단것을 마음껏 드실 수 없지요. 어떤 사람은 해물을 드시지 못하는 분도 계세요. 반대로 육류를 드시지 못하는 분도 계십니다. 내일부터 한 주간 성전봉헌식에 참여하는 안강중앙교회 장로님은 <육고기>를 전혀 먹지 못하신다고 합니다. 하지만 “밥”을 못 드시는 분은 없지요. 밥은 누구나 다 먹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필요에 완전히 맞으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 건강한 사람, 아픈 사람 그 누구에게도 적합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누구든 입만 열고 그분을 먹고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3) 밥은 “매일 먹어야 합니다.”
어제 고급식당에서 푸짐하게 음식을 대접받았다고 해서, 오늘 저녁까지 배부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배부르다면 병원에 가보셔야 합니다. 어제 배불리 밥을 먹어도, 오늘 또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밥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매일매일 예수님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먹어야 하루를 살 힘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4) 밥은 “우리를 자라게 합니다.”
우리나라 성인이 1년간 밥을 섭취하는 밥양이 얼마나 될까요? 하루 350g을 먹는다고 계산하면 1년에 128kg의 지은 밥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를 쌀로 환산하면 약 58kg 정도 됩니다. 이렇게 매일 먹는 밥은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자라게 합니다. 아이들 크는 것 보세요. 깜짝깜짝 놀랄 만큼 잘 자라지 않습니까? 분명 아버지 보다 키가 작았는데, 어느 순간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아버지 어깨에 손을 얹어서 아버지보다 키카 크다고 자랑을 합니다. 밥을 잘 먹으니, 그렇게 자란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먼저 믿은 우리는 모두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꿈은 밥 되신 예수님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4가지 밥의 특징을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역할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 어떠한 경로를 거쳐 밤이 되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쌀을 뜻하는 한자 쌀 미(米)를 파자[破字 - 한자의 자획을 풀어서 나눔] 하면 ‘팔(八)+십(十)+팔(八)’로 풀어 한 톨의 쌀을 얻기까지 농부의 손길이 88번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5년부터 8월 18일 “쌀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대충 생각해도 우리가 밥을 먹기까지는 - 볍씨를 뿌리고, 모내기, 김매기, 약 치고, 벼가 있으면 추수하고, 탈곡하고, 쌀을 씻어서 압력밥솥에 앉혀야 하고, 뜨거운 압력을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서 뜸이 들고 후에 밥그릇에 담겨야 합니다. 예수님도 여러분에게 생명을 주는 밥이 되시기까지 그런 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떠나셔서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3년 동안 공생애 사역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고, 병든 자를 치유하셨고,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내가 달려야 할 자리에 죄 없으신 예수님이 달리셨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이 상하신 것입니다. 내가 받아야 할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의 불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였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예수님은 그 힘든 모든 과정을 통해 구원의 길을 완성하시고 <따뜻한 밥>이 되셔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초청하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밥을 먹기만 하면 됩니다.> 먹는다는 말은 35절에 “믿는 자는”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결코 주리지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문제는 차려진 밥상을 <우리가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명이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썬다 싱(1889-1929)이 있습니다. 한 번은 썬다 싱이 기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요한복음으로만 된 쪽 복음을 나눠주며 전도를 했습니다. 한 불신자가 요한복음을 받자마자 곧 갈기갈기 찢어 창밖으로 내 던져 버렸습니다. 기차 안의 상황은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차 밖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며칠 뒤인지 모르지만 어떤 사람이 그 철길을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철길 옆으로 흩어진 종잇조각을 발견하고 한 장을 주웠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의 떡”이란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궁금하던 차에 자신이 발견한 그 책이 성경이란 것을 알고, 성경을 한 권 샀습니다. 그리고는 “생명의 떡”이란 말이 어디 있는지 찾기 위해서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어 가는 가운데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인도의 중부 지방에서 복음 전도자로 활약을 했다고 합니다. 이 예화에서 나온 두 사람 중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나는 생명의 밥이다”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살아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믿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바라는 것은, 오늘부터 밥을 드실 때마다, 예수님이 생각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영육의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영적 굶주림과 목마름에서 완전한 만족을 얻을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진정한 만족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 조건입니다. 완전한 회복과 행복의 길인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