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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탁월한 에세이스트 박연준 시인이 풀어놓는 마음 관찰기
흔한 일상의 소재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우아한 사색
특유의 진솔하고도 우아한 사색이 돋보이는 통찰력과 매력적인 감각으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아온 박연준이 신작 에세이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을 창비 에세이& 시리즈로 선보인다. 산문 읽는 즐거움을 독자에게 한가득 안겨주는 탁월한 에세이스트 박연준 시인이 이번에는 그만의 우아한 사색이 담긴 필치로 일상과 맞닿은 ‘마음’을 관찰한다.
총 3부로 구성한 이 책은 달력, 편지, 발레, 풍선, 새벽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하나의 명사에서 시작하여 그 단어에 얽힌 추억과 자신만의 정의를 풀어놓으며 흔하디흔한 매일의 반복을 특별한 순간으로 탈바꿈한다. “나에게 있던 흔한 것들이 어느새 ‘유일한 것’으로 달라져 있”(추천사 요조)는 독서의 감각을 선사하는 이 글들은 지루한 일상을 반복하며 더께가 내려앉아 소란하고도 혼탁해진 마음을 맑게 정화하며 독자에게 질문 하나를 남겨놓을 것이다. 나의 마음은, 또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냐고. 마음에 밑줄을 긋는 이 산뜻하고도 사려깊은 에세이는 읽는 이의 일상을 다정하게 마중하며 “존재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어가며」)들에 대한 특별함을 찾게 한다.
목차
들어가며| 다락은 높고 마음은 낮은
1부 마음을 보려고 돋보기를 사는 사람처럼
새벽은 사라지기 위해 태어나는 것 같다 - 새벽
그곳에 한참을 서 있던 아이 - 유실물
비밀은 ‘멈춤’에 있다 - 멈춤
혼탁한 마음 관찰기 - 마음
‘노닐 소逍’에 ‘바람 풍風’ - 소풍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에고이스트 - 고양이
너무 많은 풍선 때문에 울어버린 이야기 - 풍선
한자리에서 곱게 늙어버리겠다 - 다락방
아름답고 스산한 - 적산가옥
2부 마음을 마중하는 사람
당신에게서 내게 건너온 마음들 - 선물
무거운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그릇 - 편지
그곳은 높은 곳에 있었다 - 스카이라운지
나는 그의 등을 외웠다 - 달력
미처 몰랐던 맛 - 맥콜
그곳에 가고 있는 기분을 사랑하니까 - 발레
뼈 헤는 밤 - 몸
누가 작은 망치로 밤을 두드리는가 - 불면
깨어 있다는 착각 - 숙면
3부 작은 마음의 책
귀가 싫어하는 말 - 말하기
귀가 사랑하는 말 - 듣기
이런 상상은 불온한가? - 상상
아름다운 시절이 떠내려가는 속도 - 화양연화
인생을 여러번 살 수 있는 가장 쉬운 길 - 소설
내리는 눈처럼 무구히 시작하는 태도 - 메리 루플
하루치 질문 - 질문
나오며| 계절 - 겨울에서 봄으로
세밑 풍경 - 12월
새해 풍경 - 1월
봄을 여는 열쇠를 품은 달 - 2월
생강나무에 생강꽃, 매화나무에 매화꽃 - 3월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 박연준 (朴蓮浚)
파주에 살며 시와 산문을 쓴다. 시, 사랑, 발레, 건강한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2019년 5월 『아무튼, 비건』을 읽은 후 비건을 지향하는 인간이 되었다. 일단 시작하면 꾸준히 한다. 사랑하면 믿는다. 분방하고 충동적이지만 (이상하게도) 수련과 수양을 좋아하는 타입이다. 무지몽매해서 늘 실연에 실패한다. 무언가를 사랑해서 까맣게 타는 것이 좋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과 산문집 『소란』,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내 아침인사 대신 읽어보오』,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모월모일』, 동화 『정말인데 모른대요』를 펴냈다.
책 속으로
매 순간 성실히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잃어버린 줄도 모른 채 잃어버리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물건만이 아니다. 물건을 둘러싼 생각, 기억, 추억을 잃어버렸다. 시, 사람, 기분을 잃어버렸다. 기쁨, 슬픔, 사과해야 할 타이밍, 포옹과 눈빛을 나누어야 마땅했을 인사를 잃어버렸다. 휘파람, 라일락, 고백을 잃어버렸다. 어려움 없이 누리던 모든 ‘첫’, 순수한 호의, 갈망, 몸에 내려앉은 떨림을 잃어버렸다.
--- p.18
소풍은 여행보다 가볍고, 마실보다 무겁습니다. 외출은 외출이지만 목적이 있는 외출은 아니지요. 여행이 휴가를 얻어 일정을 짜고 먼 곳으로 다녀오는 ‘사건’이라면, 소풍은 ‘느슨한 일상’입니다. 풍선 같은 걸음으로 나가서 휘파람을 불며 돌아오는 게 소풍입니다. 여행이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라면 소풍은 한자리에 머무는 일입니다. 여행이 후유증과 추억, 피로나 여흥을 남긴다면 소풍은 별다른 것을 남기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바람 냄새 정도를 머리카락에 묻혀올까요? 소풍은 쉬었다는 기억을 남깁니다.
--- p.41
가장 좋은 선물은 바란 적 없는데 ‘톡’ 주어지는 선물이다. 아무 날도 아니고 아무 일도 없는데 당신이 내미는 선물이 좋다. 머리 위로 도토리 한개 떨어진 듯 ‘어맛’ 하고 놀라며 받을 수 있는, 가볍게 건너오는 선물이 좋다. 꽃, 쿠키, 피겨, 핸드크림, 책 등이 가벼운 선물로 알맞겠다. 신나는 기분과 즐거운 기분이 합쳐져 ‘작은 환희’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다. 환희-고요한 마음에 환타를 콜콜콜 부어주는 것 같은 기분! 누군가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그를 좋아하는 것이다.
--- p.79
편지는 무거운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그릇이다.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멀리서 걸어오는 누군가의 마음을 마중하는 사람이다. 누가 그 정갈한 기대를 탓할 수 있을까? 소중한 사람이 있다면, 자주 볼 수 없지만 그와 마음으로 연결되는 친밀감을 간직하고 싶다면 편지를 써야 한다. 구체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그 관계는 깊고 두터워질 게다.
--- p.89
이 글을 쓰는 도중에 깨달은 한가지!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은 잠을 양껏 잘 자는 사람, 자신에게 혹독한 기준을 들이대는 사람(자신과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은 잠을 못 자는 사람, 자신에게 관대하지도 혹독하지도 않은 사람은 잠을 적당히 자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잘 자는 사람은 자신에게,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 관대한 사람이 분명하다.
--- p.141
잠을 잘 자기 위해서라도 자신에게, 자신의 생활에 관대해야 한다. 싫은 사람은 안 보고 살면 그만이지만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하면 사는 게 고역이다. 눈떠서 잠들 때까지 좋아하지 않는 주인공을 데리고 영화를 찍어야 하는 감독처럼 지겨울 게 아닌가. 아, 도대체 누가 그런 영화를 보고 싶어한단 말인가?
좋은 잠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잠이다. 잠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나’를 잊어버리는 잠이다. 장자가 말한 좌망(坐忘) 같은 잠! 앉아서 나를 잊어버리는 일이 매일 밤 나에게 와주길 바란다. ‘나’를 지나치게 붙들고 살지 말자. 들들 볶지 말자. 잠시라도 나를 좀, 잊자!
--- p.142
모든 좋은 시는 첫 줄에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때의 떨어짐은 밀리거나 고꾸라져 떨어지는 상태가 아니다. 두 발이 땅 위에 붙은 채로 어떤 웅덩이나 절벽 없이, 한자리에서 아래로 사라지듯, 떨어지는 일이다. 어느 날 심장이 무릎 아래로 툭, 떨어져버리듯이.
--- p.168
소설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숟가락으로 떠먹여주는 일과는 다르다. 그보다는 자갈이 섞인 모래사장을 오랫동안 혼자 걷는 일, 걷다가 ‘새로운 돌’을 찾는 일이다. 새로 찾은 돌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들여다보다 감정이 치밀어올라 침잠하는 일이다. 살아온 삶을 멈추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 p.176
세상엔 두 종류의 작가가 있다. 자신의 헝클어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와 없는 작가. 메리 루플은 전자다. 자신의 말이 진실에 가깝다면, 산발한 채 퀭한 얼굴로 침 흘리며 울부짖는 모습을 얼마든지 보일 수 있는 작가다. 독자들은 영리해서, 그리고 영리하므로 이런 작가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는 메리 루플의 글을 ‘사랑하므로’ 읽는다. 사랑하여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눈물 닦고 눈곱 떼고 머리 빗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생을 이야기하는 작가는 근사할 순 있지만 사랑하고 싶어지진 않는다. 이상한 일이지. 우리는 때로 누군가의 흠결에 매혹된다. 흠결이야말로 그 사람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 p.188
출판사 리뷰
"당신의 기적을 당신이 찾기에도 좋을 때지요"
마음을 돌보려는 사람은 일상을 돌보아야 한다
1부 ‘마음을 보려고 돋보기를 사는 사람처럼’에는 ‘새벽’부터 ‘적산가옥’까지 아홉개 명사에 얽힌 추억과 사유를 담았다. 그중 ‘고양이’ 관찰기를 담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에고이스트」는 박연준 산문의 매력을 십분 보여주는 글이다. “상자는 고양이의 외투다. 몸에 맞아 아늑하다면 벗으려 하지 않는다”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때는 서로 다른 명사를 연결하는 명랑한 상상력에 웃음을 짓게 하고, “고양이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지금’이라는 기나긴 생에 화답한다”와 같은 문장을 읽을 때는 이 짧은 글에 담긴 깊이를 가늠하며 사색에 잠기게 한다. 시인의 반려고양이 ‘당주’와의 생활을 담은 귀여운 에피소드는 그 덤이다. ‘마음’에 대한 글 「혼탁한 마음 관찰기」에는 “조금만 돌보지 않아도 안팎을 할퀴어놓고 여기저기 흠집을” 내는 마음을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에 대한 시인만의 방법이 담겼다. 한때 자신은 “마음을 보려고 돋보기를 사는 사람처럼 어리석었”으나 “마음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솔직하게 쓰다보면 마음과 몸 둘 다를 볼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직시하며 일상을 돌볼 수 있을 때 뻣뻣하게 굳은 몸과 마음도 부드럽게 풀릴 수 있다.
2부 ‘마음을 마중하는 사람’에는 타자에 대한 좀더 내밀한 이야기가 모였다. ‘선물’에 대한 글 「당신에게서 내게 건너온 마음들」과 ‘편지’에 대한 글 「무거운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가장 가벼운 그릇」은 엄마에게 편지를 받는 아이이고 싶었으나 “엄마의 편지는커녕 그냥 ‘엄마’를 갖는 일도 요원해 보이던” 어린 시절을 무엇으로 보듬으며 성장했는지 그 귀한 깨달음을 풀어놓는다. 타인에게 받아온 조건 없는 호의가 선물처럼 주어졌고, 그들이 보내준 편지에 담긴 “이쪽에서 저쪽으로, 마음을 보내려는 이의 의지”는 시인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한편, 시인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했던 순간과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준다. 시간이 두려워서 하루 종일 벽을 보고 잠만 주무시던 아버지와 그런 그의 등을 “외웠다”라고 고백하는 「나는 그의 등을 외웠다」는 ‘달력’을 통해 아버지와의 일화를 끄집어내는 글이다. 그러면서 시인은 달력을 보며 “자명하고 야멸차다. (…) 하루가 ‘하루’이리라는 약속, (…) 그 속에서 우리는 먹고 자고 일하고 싸우고 울고 웃고 외롭다”라는 서늘한 발견을 하기도 한다.
3부 ‘작은 마음의 책’에는 책과 언어, 문학에 대한 글을 묶었다. 이 책에 배치된 순서대로, 말하고(「귀가 싫어하는 말」) 듣는(「귀가 사랑하는 말」) 일을 거쳐 상상(「이런 상상은 불온한가?」)과 질문(「하루치 질문」)에 이르는 이 일련의 과정은 지금까지 박연준이 펼쳐온 문학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그 시작을 목도하게 한다. 또한, 대학 시절 시와 인생을 가르쳐주었던 은사 김사인 시인에 대한 글 「아름다운 시절이 떠내려가는 속도」는 “암울했던 20대 시절 내 행운은 그를 만난 것, 그에게 시를 배운 것”이라는 문장에 실린 무게만큼 묵직한 감동을 준다. 은사에게 쓰는 편지 뒤에 꼬박꼬박 ‘made in 김사인’이라고 붙였다던 에피소드는 웃음을 주는 동시에 타인과 관계를 맺는 그만의 방식을 보여주는 일화이기도 하다.
“당신에게서 내게 건너온 마음들.
그건 힘들 때 바라보고 싶은 작은 화단이 되어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다락방에서 생각하기’라는 제목으로 창비 연재플랫폼 ‘스위치’에 연재되었다. 시초는 ‘다락방’이라는 공간이었다. 높고 깊고 아득해 세상과 떨어진 채 무엇이든 굽어볼 수 있는 아늑한 장소에 있다는 상상을 하며 시인은 이 글들을 써냈다. 하여 시인은 서두를 이렇게 뗀다. “고양이에게 ‘높이’라는 숨숨집이 필요하다면 인간에게는 ‘다락’이라는 은신처가 필요하다.” 이제는 사라진 공간 다락에서 시인은 자연스럽게 낡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해 사색한다. 그 사색은 결국 추억을 떠올리게 하며 그 추억 속에 존재했던 ‘당신’들의 환대를 오래 들여다보게 했을 것이다. 그 ‘마음’을 발견하는 일. 글을 쓰면 직시하게 되고 직시하면 치유된다던 문장은 이렇게 한권의 책이 되었다. 이제 다음은 이 책을 읽는 독자가 발견할 차례다. 힘들 때 바라보고 싶은 작은 화단이 되어줄 그 귀한 마음을 말이다.
추천평
매일이라는 반복이 바람〔風〕으로 기능할 때가 있다. 그러면 풍화가 시작되고 나의 일상 하나하나가 조금씩 낡고 닳고 푸석해진다. 나는 그럴 때 박연준 시인의 글이 꼭 절실해진다. 그의 글은 언제나 정비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이 책도 그렇다. 그가 고양이를 이야기할 때, 나의 고양이가 정비된다. 그가 운동을 이야기할 때, 나의 운동이 정비된다. 그가 ‘나’는 틀렸다고 이야기할 때, 나의 틀림이 정비된다. 그에게 있고 나에게도 있는 지극히 평범한 것들에 대해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나에게 있던 흔한 것들이 어느새 ‘유일한 것’으로 달라져 있다.
독자로서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와 만날 약속 장소가 불쑥 생겨나는 일 같다. 다만 작가와는 만나기도 하고 못 만나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못 만나는 독서를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나는 약속 장소가 아닌 나도 모르는 어딘가에 홀로 당도하곤 한다. 그러나 박연준 시인의 책을 펼치면 그와 나는 반드시 만난다.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이 ‘둘의 감각’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 요조 (가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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