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 친필
용과 봉황은 영물이며 음양 관계이다.
본래 용이 상징하는 것은 선천이고
봉황이 상징하는 것은 후천이라고 볼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여의주를 입에 물으셨다. 용을 상징한다.
봉황은 독존석가불을 상징한다.
따라서 봉황은 독존석가불이시고 나반존자이시다.
새로운 도화낙원이 무르익는 봉황이 다스리는 용화세계가 왔음을 알리는
상제님 친필이시다.
3. 절에서의 나반존자
나반존자라는 명칭은 석가모니의 10대 제자나 5백 나한의 이름 속에 보이지 않고,
불경 속에서도 그 명칭이나 독성이 나반존자라는 기록을 찾아볼 수 없으며,
중국의 불교에서도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은 생겨나지 않았다.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민족전래의 신앙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말세중생의 복전(福田)이라고 알려져 있다.
독성(獨聖)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한다.
나반존자님은 나반존자(那畔尊者), 독성(獨聖), 독성님(獨聖任), 독성수(獨聖修), 독성존자(獨聖尊者),
독수성(獨修聖)이라고 하며 스승 없이 홀로 수행하여 깨우치시고 불문에 귀의하신 분이라고 한다.
아침저녁 절에서 예불을 드리는데 예불문에 나오는 '독수성'이 나반존자이시다.
(지심귀명례 영산당시수불부촉 십대제자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천이백제대아라한 무량자비성중....)
나반존자께서는 성격이 급하시고 불같으셔서 복도 화도 빨리 주신다고 알려져 있다.
여하튼 기도효험은 절에서도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재물 운을 담당하신다고 한다.
개태사에 가면 팔각정 안의 나반존자께서는 기도 영험이 많아 감사의 표시로 방석을 놓아 드렸는데
자그마한 석상의 나반존자보다 방석의 높이가 더 높게 놓여있다.
현재에도 대웅전 등의 중심 당우에서보다 독성각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독성각 중 유명한 것은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雲門寺)의 부속암자인 사리암(舍利庵)과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의 삼성암, 남해 무량암 등이다.
청도 운문사 사리암에서 나반존자께 일념으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만큼은 들어준다고 한다.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모시는 암자 인데, 3번은 지성껏 밤 세워 기도해야,
1 번의 소원을 들어 준다는 영험 있는 기도 도량으로 그 이름이 전해져 내린다.
그 연유 인지는 몰라도 이곳은 사업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24시간을 2시간씩 나누어 기도와 휴식으로 스님과 신도들이 수십 년을 계속하고 있다.
하여튼 사찰에서는 독성기도(獨聖祈禱)를 많이 올리고 있는데, 이는 나반존자의 영험이 매우 커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속히 영험을 얻게 된다는 데 기인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보면 독성은 독수선정(獨修禪定)하여 도를 깨달은 자로서,
일반적으로 독성각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만을 봉안하는 것을 통례로 하고 있다.
따라서 이 독성각은 우리나라 사찰 특유의 전각 중의 하나로서 우리의 토속신앙과 접목하여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일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불교가 우리의 고유문화에서 토착화 과정에서 접목시킨 부분을 잠시 살펴보면
우리는 오래전부터 경관이 수려하고 고요한 명당 터에 환인, 환웅, 환검을 모셨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보면 우리나라는 방방곡곡에 당집(사당, 仙皇堂)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불교가 들어오더니 당집을 헐어 절을 지었다는 사실,
그리고 당집을 헐었더니 땅속에서 황금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돈으로 절을 지었다는 등등의 기사가 보인다.
또 같은 <삼국유사>에 보면 절에 원인 모를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자료가 보인다.
불교가 들어오며 그곳 사당들이 부처를 모시는 절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아는 큰 스님이 여기저기 여러 개의 커다란 가람을 창건할 수 있었던 이유다.
절 : 저의 얼, 제얼 즉 나의 얼을 닦는 수도의 장소
대웅전 : 대인 환웅을 모신 곳을 대웅전이라 하였다.
칠성각 : 배달국의 7분의 천신인 환인을 모신 칠성 신앙이 변한 곳.
사월초파일 : 삼국유사, 북부여기, 단군세기, 조대기(朝代記) 등에는 47세 단군 고열가(古列加) 57년 임술년 4월 초8일에 해모수가 웅심산에 하강하여 북부여를 세우고 천제자리에 즉위했다고 전한다. 이날을 기념하고 축하하는 행사로 관등경축이 거국적으로 펼쳐졌다고 한다.
4월8일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천재자인 해모수 단군의 하강 건국기념일로서 원래부터 등을 달고 경축해왔던 민족적인 대축제일 이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이 관등경축(觀燈慶祝)하는 4월 8일은 불교의 도래 이전부터, 천제天帝의 아들[天王郞]인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 단군의 하강일下降日로 우리 민족 전래의 대축제일이었다.( 송호수, 「한민족의 뿌리사상」)
고려 초부터 있었던 불교의 연등회는 본래 음력 정월 보름에 하다가 후에 음력 2월 보름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4월 초파일로 바뀌었다.(「새국어사전」)
당시 낯선 인물인 석가의 생일을 한민족에게 친숙한 해모수 단군의 북부여 건국일과 동일한 날짜로 함으로써 이 땅에 불교를 빨리 정착시키고자 한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민족의 사상과 역사를 밝혀 이어나가야 할 때라고 사료된다.
첫댓글 경산쪽에서 팔공산 들어서는 입구에서 가깝게 불굴사도 나반존자를 모셔놨는데 독성전이라고 하면서 또한 천모를 주장하시 분들 참고 불굴사 경내에는 할머니를 상징하는 갓 부처님도 있습니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은 할아버지로 보시는 분들도 있던데 그래서 음양이라고 하시던데 단 같이 있지는 않쵸 서로 사이가 않좋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