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에 서울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를 연결하는 너비 10m, 길이 1,400m의 단순 장대교량이 건설되었다. 이 교량의 상부구조는 포스트텐셔닝 공법을 이용한 29.8m의 단순 PSC 거더로 이루어졌으며, 특히 유심부 구간은 선박 의 왕래를 위해 경간길이를 40m의 강판형으로 시공하였다.
하부구조의 기초공은 우물통 공법을 채택하였고, 교각공은 유속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지름 2.5m로 구성된 T형 교각으로 시공하였다. 서울의 서부지역과 경기도 서북부를 연결하는 이 다리는 한강횡단교량으로는 천호대교에 이어 열 번째로 가설되었다.
1978년에 준공된 행주대교는 교량의 노후화로 인하여 1992년부터 10톤 이상의 차량에 대한 통행제한을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주변에 시가지 개발이 활발해짐에 따라 증가하는 교통량을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교통난을 해소하기 위하여 1987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에 완공할 목표로 신교 건설공사를 시작하였으나, 구조상의 문제로 1992년 7월 31일 일부 구간이 무너져 내려 복구공사를 실시한 후 1995년 5월에 하류쪽(북단에서 남단 방향) 교량을 완공하였다. 상류쪽 교량은 2000년 12월에 완공되었다. 이렇게 해서 행주대교는 왕복 6차로의 교량이 되었다. 그리고 구 행주대교는 폐쇄되었다.
신행주대교는 원래 교폭 14.5m, 전체길이 1,460m이고, 모든 기초를 바렛트 파일(barrette pile)로 하고, 상부구조는 콘크리트 박스거더를 ILM(incremental launching method) 공법을 사용하여 시공하고, 중앙경간의 320m는 콘크리트 사장교로 설계되었었다.
1992년 7월 31일의 붕괴사고는 공사진척도 85%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발생하였다. 원인은 공사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주탑 주변에 교각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콘크리트 사장재 4개를 세워 놓고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해오다 하중을 못이긴 상판과 교각이 무너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교량 상판의 이음새 부분에 대한 설계및 시공이 허술한 데서 비롯된 사소한 잘못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신행주대교는 연속압출공법과 콘크리트 사장재공법을 함께 적용하면서 건설되었는데 이 공법을 함께 적용하면서도 설계 또는 시공과정에서 이음면의 전단내하력(외부하중에 견딜 수있는 힘)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붕괴된 것으로 보았다. 또한 4번째 임시교각 남쪽 상판은 가장 큰 하중이 걸리기 때문에 상판을 요철형태로 연결해야 하는 데도 설계를 맡은 한국종합기술이나 시공업체인 벽산건설이 이를 무시하는 바람에 사장재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려 결국 8백m구간의 상판과 교각, 주탑이 연속적으로 붕괴된 것으로 분석했다.[
붕괴 이전에는 어떤 특별한 이상의 징조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그 날 6시 30분경 교량에서 작업을 하였던 16명 전원이 철수한 후에 사고가 발생하여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복구공사에서는 당초 설계에 미비하였던 많은 점을 보완토록 하였고, 특히 콘크리트 사장재를 케이블 사장재로 변경하여 시공성을 높이고 사하중을 경감시켰다. 또한 사장교 구간을 연속 PSC 박스거더에서 강합성 교량으로 변경하여 재사용하는 주탑의 부담을 줄였고, 기초 파일도 복구 부분에서는 All Casting 공법 현장타설 말뚝을 사용토록 했으며 교각에 격벽을 추가하고 단면도 증가시켰다.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을 천만 다행으로 생각 하지만
처음부터 튼튼한 설계를 하여야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였다
첫댓글 사진에서
전체적으로 힘이 느껴집니다.
운동은 물론이고
사진도 힌빼는 것이 기본인데
사진가가 힘을 빼야만
사진에 무게감과 힘이 생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