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장투석 합병증으로 투병…향년 92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 인기 남편 신상옥 감독과 납북·탈출·망명
◇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은막의 스타’ 배우 최은희씨가 별세했다. 향년 92. △ 사진: 영화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세상을 떠났다. 한겨레 자료사진
○··· 신장투석과 합병증으로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했던 최씨는 16일 오후 5시30분께 자택인 서울 화곡동 근처 병원에서 돌연 눈을 감았다.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뒤 <새로운 맹서>로 영화계에 진출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으로 스타덤에 오르며 김지미·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불렸다.
△ 사진: 1954년 재혼녀와 총각으로 첫번째 결혼한 고 최은희(왼쪽)·신상옥(오른쪽) 감독 부부의 젊은 시절.
○··· 1953년 신상옥 감독의 <코리아>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신 감독과 결혼했다. 이후 고인은 <무영탑>(1957),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성춘향>(1961) 등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한국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1978년 홍콩을 방문했다 북한 공작원들에게 납치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야 했다. 신 감독 역시 그를 찾아 나섰다가 같은 해 7월 홍콩에서 납북됐다.
북한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탈출기>(1984), <소금>(1985> 등의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86년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 빈의 미국대사관을 통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으며, 10여년의 망명생활 끝에 1999년 귀국했다.
△ 사진: 1978년 홍콩에서 잇따라 납북됐던 최은희(맨 오른쪽)·신상옥(맨 왼쪽) 부부가 북한에서 영화제작 활동을 하던 1984년 무렵 김정일(가운데) 국방위원장과 함께 한 모습이다.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됐다.
○··· 고인은 여성 감독으로도 선구적 기록을 세웠다. 1965년 <민며느리>의 감독 겸 배우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 대표를 맡았으며, 2007년에는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아이를 낳지 않았지만 입양한 아이들과 신 감독이 배우 오수비와 사이에 낳은 남매 등 4남매를 거뒀다.
2006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 2012년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 2014년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 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 신상옥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 중흥기 이끌어…납북됐다 탈출하기도 가입필요 없이 손님께서도 연결에 넣어두고 날마다 볼 수있는, 이 포토뉴스는 DaumCafe: '한국네티즌본부'에서 만듭니다. (저작권 있음)
◇ 최씨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오늘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 사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배우 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61년 신상옥 감독 작품 '성춘향'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최은희 씨. 연합뉴스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산 배우 최은희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을 찍으며 스타로 떠올랐고,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그는 1954년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 신상옥 최은희 부부 영화같은 납북 탈출기가 진짜 영화로 [리뷰] 다큐멘터리 영화 '연인과 독재자' △ 사진: 신상옥과 최은희는 납북된 뒤 김일성과도 만나며 북한 생활에 적응해갔다. 엣나인필름 제공
○··· 고인은 신 감독과 찍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130여 편에 출연하며 은막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인은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 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 故 최은희, 남편 신상옥 감독과 납북 후 탈출 '세상 발칵' △ 사진: 1983년 북한 피납 5년에만 상봉한 최은희·신상옥 부부가 김정일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연합뉴스
○···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신 감독과 이혼한 최씨는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다.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돼있다.신 감독과 최씨는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국 귀국했다.
◇ 원로배우 최은희, 마지막 길 떠나다 19일 발인…신상옥 감독 곁에서 영면 △ 사진: 원로배우 최은희 발인이 19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연합뉴스
○···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12호실 이전 예정)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