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르트문트와 전북의 친선 경기가 1월 15일 두바이에서 열린다.)
두바이에서 열리는 전북현대모터스와 보루시아도르트문트의 친선 경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도르트문트는 이번 시즌 분데스리가 2위를 달리고 있는 강팀으로서, 지난 시즌 K리그 왕좌를 차지한 전북이 얼마나 강한지 알아볼 기회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번 경기에서 전북이 K리그의 강함을 증명해주길 바라고 있다. 전북의 선전을 바라는 것은 K리그 팬으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기대와 바람이 그렇게 건강해 보이지 않아 걱정이 든다.
동-서양의 관계를 고찰한 명저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란 책이 있다. 서양은 동양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스스로를 규정하기 위해, 동양을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오리엔탈리즘'은 객관적 '인식'이라기보다 하나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오리엔탈리즘'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특히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로 전락한 '동양'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고 인식의 객체인 동양 스스로가 자신을 지배하는 서양의 인식 방식을 통해 자기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동양 스스로가 서양이 부여한 일종의 편견을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예컨대, 서양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이지만, 동양은 비합리적이고 열등하고 비도덕적이라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인식하게 생각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는 기준이 자신에게 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우리 축구계와 팬들도 그런 함정에 빠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축구는 유럽이 본고장이고 현재도 축구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당연히 우리에겐 '축구의 오리엔탈리즘'이 있다. 우리 스스로의 축구를 즐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럽과의 격차를 확인하고 싶어한다. 팬들은 도르트문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전북으로 대표되는 K리그의 위상을 느껴보려고 하는 것 같다. 전북은 지난 몇 시즌 동안 경기력으로 그들이 아시아와 K리그에서 손꼽는 최고의 팀임을 스스로 증명했지만, 우리는 도르트문트에게 얼마나 전북이 선전할 수 있을지가 보고 싶은 것 같다.
특히 중계를 맡은 SBS 스포츠 채널의 행태를 보면 그런 경향이 짙게 느껴진다. SBS 스포츠 채널은 축구 중계를 열심히 해주는 채널이지만, 지난 해 K리그 경기는 거의 중계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로 다루는 것은 프리미어리그와 UEFA챔피언스리그이다. 덕분에 유럽의 선진 축구를 즐기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지만, 스포츠 케이블 채널로서 자국 리그 중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순 없다. 그런 SBS 스포츠가 비시즌에 열리는 전북의 일개 친선 경기를 중계해준다는 사실은 K리그를 아끼는 이들에겐 땅을 치며 통탄할 일이다. 물론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대한 일정 정도의 책임은 수요자인 우리 축구팬에게도 있다. 전북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도르트문트'와 싸우는 전북이 보고 싶은 것이다. 이 쯤 되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서 '축구 사대주의'는 아닌지 모를 일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하다. 이번 도르트문트와의 평가전이 즐거운 이벤트인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로 도르트문트와의 경기 결과를 통해 우리 K리그의 수준을 가늠하진 말자는 것이다. 그리고 전북이 진다고 해도 전북은 절대 약한 팀이 아니고, 전북이 도르트문트를 꺾는다고 해도 분데스리가에서 2위를 달릴 전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일회적인 결과일 수도 있고 장기전인 리그에서 똑같이 결과를 내리란 보장도 없다. 즉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우리 스스로의 기준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전북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경기력 자체의 '평가전'으로 삼아야지, K리그 수준을 평가하는 자리로 삼아서는 곤란하단 말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전북이 도르트문트에게 경기력에서 밀렸을 때 '역시 K리그는 안 돼.'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전북은 지금 한 시즌을 준비하는 시점으로, 시즌 중에 전지훈련을 떠나와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도르트문트와 달리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과정에 있다. 새롭게 영입한 선수들도 팀에 적응하는 중이다. 당연히 도르트문트에게 고전할 것이고 전북이 선전하는 것은 의외의 일이 될 것이다. 이번 평가전을 K리그가 유럽 리그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수준일지 정하는 평가의 장으로 삼는다면 K리그에 오히려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도르트문트를 상대로 선전할 수 있다면 국내의 축구팬들에게 즐거운 일임엔 분명하다.
전북이 도르트문트를 크게 이긴다고 해도 사실 변하는 건 없다. 전북이 아무리 잘해도 K리그 소속이고,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 소속이기 때문이다. 전북이 유럽에 가서 리그를 치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릴 순 없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도르트문트가 꼭 K리그에 있어야 할 필요도 없다. K리그를 좋은 리그로 만들고 맘껏 즐기는 주체는 유럽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의 축구팬이다. 이번 친선 경기는 친선 경기로서 즐겁게 즐기자.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K리그를 맘껏 즐기자. 우리가 사랑하는 팀과 리그에 대한 평가를 다른 이들에게 맡기지 말자.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 우승할 때 나누는 즐거움이 이다지 큰데, 도르트문트와의 경기 결과가 뭐 그리 중요할까. 출처:전북현대모터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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