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에요
진짜루
그때 학교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일주일 정도 그냥 놔 두었다가 한번 읽어야지 하고
맘 먹고 그날 밤을 새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 군요...
상상력이 많은것-지금은 잡생각이 되었지만....이
여기에 나오는 제제와 많이 닮아 있더라구요...
그때
울었답니다....
뽀루뚜까 아저씨가 죽었을때...
그때 많이도 울었지요...
그냥 이 카페에 오면 글만 읽고 가버리고는 했는데...
오늘은 조금 발자국을 남기고 갑니다...
미카엘라=베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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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및 작품에 대하여(Inter 검색 글임을 밝혀 둡니다.)
바스콘셀로스 (jos`e Mauro de Vasconcelos : 1920~ )
브라질에서 포루투갈계 아버지와 인디언계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매우 가난하게 자랐다.
1962년 42살에<장미, 나의 쪽배>로 `브라질 국민소설`이라 불릴 정도로 호응을 받았고
1968년 48살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로 세계적 작가가 되었다.
이 책은 당시 브라질에서 유례없는 판매기록을 세웠으며
초등학교 강독간의 교재로 사용되는 등 작가로서 불후의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모든 것을 받쳐 버린 작품을 접할 때 (그것이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이든간에) 우리는 감동합니다.
]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메말라 버린 것이 아닐까요.
이 작품은 바스콘셀로스 자신이며 그의 모든 경험과 생각들을 그리고 그 자신을 이 한편의 소설에 전부 받쳐 넣고 짜내어 탄생된 작품 같습니다. 분명 바스콘셀로스는 이 글로 하여금 자신 속의 대부분이 소모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그의 모든 것이 태워지고 빠져나가 이젠 더 이상 이런 명작을 남길 수 없을 것입니다.
불후의 명작은 일생에 한번 밖에 쓸 수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후에는 자기의 대부분이 빠져나가 버려서 그땐 더 이상 그런 힘이 남아 있지 않게 되니까요.
그는 아름다운 인생, 슬픔과 사랑, 동심의 행복에 대해 너무도 아름답게 만들어 냈습니다.
다섯 살 소년의 성장 모습 - 아이 세계의 천진하고 진실된 참된 행복과 아이들의 슬픔, 제제와 뽀루뚜까 (그는 동심을 잃은 어른이 아닌 세월을 지낸 어른이죠)의 진실한 사귐-
인생에 있어서 사랑이 있어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 소박하지만 진실된, 그래서 정말 아름다운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제제는 뽀루뚜까가 사고로 죽게 되자 함께 했던 행복을 잃고 슬픔이란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슬픔이란 사실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며 오렌지나무를 자르고 더 이상 아이가 될 수 없는 사실에 눈물을 흘립니다.
그와 대화하는 라임오렌지나무 -제제와 오렌지나무는 함께 성장합니다. 제제가 어른이 될 무렵 오렌지 나무는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제제가 오렌지나무를 자르는 것은 슬픔을 받아들이는 상징이죠.
이글을 읽으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꽃은 화려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픔을 견뎌 낸 슬픈 눈물이다.'
이글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슬픔을 알게 되어 아름다운 꽃을 잃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 그의 세계, 등장 인물들의 조화롭고 뛰어난 구성과 바스콘셀로스의 동심처럼 아름다운 표현, 그리고 아이의 성장에 맞춰 변한 시간들을 통해 환상적으로, 감동적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 세계에 갈채를 보냅니다.
작품 줄거리..
여섯 살 난 꼬마 제제는 자신의 고민을 마치 친구를 대하듯 밍기뉴라 이름 붙인 라임 오렌지 나무에게 이야기한다.
제제가 별 뜻 없이 하는 행동들은 모두 말썽이 되고 어린이날 선물을 받지 못한 제제는 가난한 아버지를 원망한다.
이런 원망을 아버지가 옆에서 다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안 제제는 아버지에게 사과의 뜻으로 선물을 하려 한다.
제제는 아버지의 선물을 사기 위해 구두를 닦아 돈을 모아 담배를 선물한다. 가족들은 제제의 말썽을 걱정하다가 그를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학교에 간 제제는 선생님의 화병에 꽃을 꽂아 놓을 결심을 하고 선생님을 감동시킨다.
마을에서 제일 좋은 차 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제제는 그 차에 매달릴 궁리를 한다. 뽀루뚜까의 차 뒤에 매달렸다 잡힌 제제는 엉덩이를 맞고는 그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또또형을 위해 황소와 싸움을 해주던 제제는 발을 다친다.
쩔뚝거리며 학교에 가던 제제는 카세트 장사를 하는 장팔도에게 부도덕한 노래를 배우다가 뽀루뚜까를 만나 병원으로 간다.
치료를 받은 제제는 뽀루뚜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그를 좋아하게 된다.
연 만들기를 배우던 제제는 화가 난 누나 자자에게 연이 망가지게 되자 욕을 하다 가 화가 난 누나와 형에게 몰매를 맞는다. 그후 한동안 아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다시 의지를 가지고 일어난다. 그리고 실직상태의 침울한 아버지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 해 장팔도에게 배운 노래를 부르다가 아버지에게 맞아 기절한다.
오랜만에 제제를 만 난 뽀루뚜까는 기쁨을 느끼나 그 동안의 얘기를 듣고는 제제를 위로해 주기 위해 차 뒤에 매달리는 것을 허락한다. 제제는 라임 오렌지 나무에게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 고 싶은 마음과 뽀루뚜까와 함께 낚시를 가기로 약속했음을 이야기한다.
제제와 뽀루 뚜까는 함께 낚시를 가고 뽀루뚜까는 자신을 아들로 데려가 달라는 제제의 말에 친아 들처럼 사랑해 줄 것을 약속한다. 뽀루뚜까의 차가 기차와 충돌하는 사고가 난다. 뽀루뚜까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제제는 병이 나고 가족들은 제제를 사랑해 줄 것을 다짐 한다. 제제는 뽀루뚜까가 죽게 되자 누구나 그렇듯 어쩔 수 없이 슬픔이란 사실을 가 슴 아프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와 대화하는 라임오렌지나무는 제제와 함께 성장했다. 제제가 어른이 될 무렵 오렌지 나무는 꽃을 피운다.
직접 체험을 바탕으로 놀라운 상상력과 기억력을 동원하여 내면의 흐르는 삶에 대한 강한 동경과 사랑을 묘사하고 있는 바스콘셀로스(Jose Mauro de vasconce los)는 1968년에 발표된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Meu pe Laranja Lima)>로 전역에 걸쳐 유례없는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 미국을 비롯한 유럽과 심지어 공산권까지 번역 소개되 기도 했으며 소르본 대학의 교재로도 채택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초현실주의 수법의 문체와 서술적이고 정서적인 감정이 풍부한 회화적 언어를 구사하 고 있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는 어느 슬픔을 발견한 한 꼬마의 이야기를 그 리고 있다. 감수성에 예민한 어린 소년 제제를 통해 사랑과 비극의 원초적인 조건, 그 리고 자연과의 교감, 어린 소년과 어른과의 우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인생에 있어 슬픔이란 것은 이성을 갖게 되고 인생의 양면성을 발견하며 동심의 세계를 떠나는 순 간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사랑의 결핍이란 어른들의 상상력과 감정 의 메마름이 원인이며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연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것은 얼 마나 불쌍한 일인가 말한다.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꽃과 같이 화려함이 아니라 강물에 떠다니는 낙엽 같은 것임을 어린 소년 제제를 통해 역설하는 작품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황폐해지는 인간 의 메마른 감정 세계를 동심으로의 회복을 호소하고 있다.
동심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갈등과 분열의 세계를 조화와 화해의 세계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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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이 세계의 인식방법
우리는 어린이를 이해하고 사랑하자고 흔히 말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구호에 그치고 마 는 경우 가 많다.
제제는 장난꾸러기이다. 아직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알지 못하는 여섯 살 소년의 행위는 어른들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면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어른들이 어렸을 때도 했던 행위들이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그들의 어린 시절의 행위는 다 잊어 버리고 현재 어른들의 기준에 따라 어린이를 판단한다. 그래서 때론 어른들로부터 얻 어맞기도 하고 심하면 몽둥이 세례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은 그냥 세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그 호기심이 발동하여 행동으로 옮기다 보면 장난꾸러기가 되는 것이다.
제제에게 있어 빨래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이며 자신에게 장 난을 걸어오는 존재이기도 하다.
무생물을 생물로 인식하는 물화적 사유는 어린이의 독특한 인식 방법이다. 제제의 이런 인식방법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제제가 라임오렌지 나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도 이런 환상적 사유능력이다. 환상적 사유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고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인식하고 자기 나 름대로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독특한 인식능력이다.
제제가 어린이날의 선물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집안형편과는 상관없는 자신의 믿음 때 문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가난이라는 현실로 인해 무참하게 깨어지고 만다. 어른들의 어린이의 정신세계에 대한 무지, 어린이의 행위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가난 이란 환경적 폭력 등으로 인해 그들은 현실의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2) 어린이의 수호천사 - 순진성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을 험난한 현실로부터 지켜주는 그 들의 수호천사는 어린이만이 가지고 있는 순진성이다. 이것은 신체적으로나 의식적으 로는 유연성이며 정신적인 면에서는 포용성이며 세계인식의 총체성이다.
이 작품은 제제의 순진성과 그로 인한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어린이를 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어린이의 세계를 바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 린이들이 지니고 있는 순진성에 대한 이해이며 나아가 잃어버린 순진성을 회복해야하 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3) 라임오렌지나무의 상징
제제는 말썽꾸러기이지만 좋은 친구들이 많이 있다. 그 좋은 친구들은 자연물들이다. 라임오렌지나무, 닭, 고양이, 새, 박쥐 등의 모든 것들이 제제의 친구들이다.
이 작품의 제목인 라임오렌지나무는 제제의 피난처이며 순진성을 회복하게 해주는 가 장 좋은 친구이다. 제제가 자연물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제제와 같은 모든 어 린이들의 공통된 특성이다.
어린이들은 이런 다양한 채널을 통해 꿈꾼다. 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적 모순을 긍정적 이고 생산적이며 창의적으로 이끄는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제 제에게 있어 현실적 고통을 이기게 하며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한 꿈의 공장이다. 이 작품 곳곳에서 우리는 제제가 가족이나 가난 그 밖의 고통을 받을 때 늘 라임오렌 지나무 밑으로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라임오렌지나무는 제제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또 하나의 제제가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연물과의 의사소통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꿈의 상실을 뜻한다. 현실의 논리에 눌려 꿈을 꿀 줄 모르는 어른들에게 라임오렌지나무는 그 꿈을 회복시켜주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것이다.
....
여기까지 잘 읽으셨나요?
아직 동심이란 것이 있는 여러분이라면
아마 제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